광야의 소리
죽음과 구원(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우리는 얼마 전에 추석을 지냈습니다. 이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로, 보름달이 유난히 큰 날입니다. 즉 달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추석의 보름달은 특별히 큰 달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월식의 영향으로 붉은 빛을 띤 달이 세계 도처에서 보였습니다. 영어로는 ‘Super Blood Moon’이라고 합니다. 이번 특별한 달에 대한 여러 가지 설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오늘 하려는 것은 아니고, 오늘은 죽음과 조상, 그리고 죽음과 육신 그리고 영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추석의 중요한 의미는 큰 보름달을 보면서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이 그 의미중 하나일 것이고, 풍요로운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그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의미는 가족들이 모여서 가족 간에 정을 나누고, 또한 조상님들을 기리는 일일 것입니다. 간혹 기독교인 중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에 대하여 경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 우는 것을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신앙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오늘 말씀으로 깨닫게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묘지의 중요성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서 가족 묘지를 마련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창 23: 16-20)
곧 아브라함은 그가 사고자했던 땅의 주인(또는 권리자)로부터 그들 중에 거하는 하나님의 (방백)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원하는 땅에 대가없이 매장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굳이 돈을 주고 매장지를 사고 그 곳에 가족묘실을 준비합니다. 곧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배려가 후대에는 잊히게 될 것을 예견하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가족묘실을 보존할 명분을 마련해 줍니다. 즉 가족묘지 또는 선산이라고 불리는 곳이나, 또는 요즈음의 공원묘지 등은 성경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보존되어야 하는 장소들인 것입니다.
가족묘지의 중요성
성경에서는 가족묘지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은 야곱의 장례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야곱이 죽은 땅은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이었습니다.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서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훌륭한 묘실을 장만하여 묻힐 수 있었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부친인 이삭이 묻힌 가족묘지에 본인을 장사지내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유언을 할 때,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땅에 가족묘실에 모실 것을 아들인 요셉에게 맹세시킨 바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에게는 자신의 시신이 가족묘지에 묻히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성경은 기록으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리다. 하라 하였더니’(창 50: 5)
애굽의 바로도 묘지의 중요성, 조상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요셉이 부친 야곱을 장사지내러 다녀오도록 허락합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까? 요셉이 애굽의 총리이고, 그의 온 가족이 애굽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묘지에 장사지내기 위하여, 막중한 국가대소사를 막론하고 가나안으로 긴 여행을 다녀오도록 허락했으니 말입니다.
장례식에서 우는 문제
요셉은 부친 야곱이 죽었을 때, 애굽사람들이 칠십일 동안 곡을 하였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 요셉도 그의 부친과의 이생에서의 이별의 슬픔을 공식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부친을 장사지내기 위하여 가나안에 도착하였을 때, 아래와 같이 애곡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일동안 애곡하였더니’(창 50:10)
믿음의 사람으로 꼽으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요셉은 부친의 시신을 두고 이렇게 슬프게 칠 일간을 울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과 같은 영적거장도 부모의 죽음 앞에 심적, 영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며, 눈물과 애곡은 오히려 자제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어머님의 소천소식을 들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호주에서 한국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여정 내내 멈출 수 없었던 눈물과 슬픔을 지금도 기억합니다.<다음호에 계속>
손창건 전도자(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