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죽음과 구원(2)
작은 그리스도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믿음의 거장이었던 요셉도 이 땅에서의 육신적 삶과 죽은 시신에 대한 중요성을 그의 유언을 통하여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 50: 25-26)
즉 요셉도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에 가족묘지에 안치해 달라는 유언을 함으로써, 가족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400년 후에 그의 유골을 그의 후손들이 수습하여 가나안에 아브라함이 마련하였던 가족묘지에 안장시켜줍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으로 영혼은 육신을 떠나 하나님의 손에 맡겨집니다. 그러나 이 땅에 남겨진 육신은 결코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떠난 시신은 그 사람의 생애의 육신적인 열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시신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고 이런 저런 평가를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생애의 열매로서의 시신
다윗은 그가 이룬 통일 이스라엘의 상징이었던 다윗 성에 왕족의 묘실을 마련하여, 그 자신과 후대들의 가족 묘지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윗, 솔로몬 그리고 르호보암 등등 대대로 이 다윗의 묘실에 그 시신을 보관합니다. 그러나 그 왕족의 계보 중에 이 다윗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왕들도 있었던 것을 성경은 또한 전합니다. 그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왕들은 그들의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로 여호람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그의 형제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그가 창자에 큰 병이 들어 죽었는데, 그는 다윗 성에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21:20)
이 여호람은 생애의 육신적인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시신이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곧 그의 생애에서 거둔 육신적인 열매는 소중한 것으로 취급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죽음으로 이 땅에 남길 시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 사이에서의 화목함이 우리 영혼이 떠난 육신이 받게 될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신의 관계
곧 우리들과 돌아가신 조상과의 연결 끈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는 일이시나, 이 땅에서의 일(장사, 묘)은 사람에 관한 일이니, 이것도 중히 여기고 저것도 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우리들이 영혼과 육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이 글을 기록한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죽는 것이 유익한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렇게 죽는 것은 자신이 육신적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은혜를 전하는 일이 종식된다는 것 때문에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그의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존귀를 나타내는 일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한 일임을 역설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을 때,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도 있으나, 죽어 천국에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입니다. 육신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사는 것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구원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실천은 우리의 상급을 약속합니다. 곧 우리들은 육신을 지니고 사는 동안에 믿음의 실천을 하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자세이며, 현명한 일인 것입니다.
곧, 예수를 위하여 죽는 것도 유익함이나, 살아서 예수를 존귀하게 하는 일에도 열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삶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적인 삶에서도 믿음의 실천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조상님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혼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남겨진 조상들의 시신과 묘지에 대한 문제는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보아, 그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요셉은 부친 야곱의 시신을 향 재료를 넣어 준비하는데 사십일이 걸릴 정도로 세심하게 정성을 다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장에 버금가도록 애굽사람들이 70일을 곡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선조들이 두고 간 육신과 그분들이 묻힌 묘소를 마음으로부터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늘에서 곧 만날 선조들을 인식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연장이며, 믿음의 실천의 일환임을 깨닫고 사시는 복된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 (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