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35-1)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6장 해외유학 공부 – 박사 따기 그렇게 어려운가?
4. 이런 지도교수는 곤란하다
(가) 교수의 역할과 책임
영미대학의 대학원에 들어가 지도교수가 정해지면, 학생은 한국에서와는 크게 다른 상황을 맞게 된다. 무엇보다도 학교와 교수가 학생에게 기대하는 것, 학생이 교수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 큰 거리가 있어 그렇다. 이 또한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온다. 이 때문에 교수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은 잘 모르고, 학생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교수가 잘 모르고 지내는 일이 생긴다.
한국에서 사제관계는 특별하다. 학생은 스승을 일단 존경하고 따르며, 스승은 정과 의리로 학생을 대한다. 선생이 여러 학생을 상대하는 대학 학부와는 달리 대학원의 사제관계는 더 친밀한 게 특징이다. 연구에 있어서 학생은 교수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게 보통이다. 그렇게 하면 대개 대과 없이 일이 끝난다. 따라서 학생이 교수의 책임, 학생의 권한 등을 따로 논하는 일도 별로 없고 큰 문제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영미 대학에 있어서 사제관계는 이와 크게 다르다. 그것은 한국에서처럼 권위에 따른 주종 및 도제 관계가 아니다. 정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계약에 따른 사무적인 관계라고 봐야 한다. 물론 거기도 인간사회니만큼 특별한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나라 문화가 그렇다면 유학생들은 대비하는 것이 옳다. 우리식 의리나 정서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실망이 크다.
영미 대학의 교수들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야속할 정도로 공사(公私)가 분명하다. 한국에서처럼 교수와 가깝다는 이유로 어떤 일이 적당히 넘어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교수가 특별히 지적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 되고 있다고 안심하거나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될 거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거기에서 박사 공부를 하게 된 한국학생은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좀 더 사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면 할 말을 하고 짚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이런 사제관계의 당연한 결과지만, 외국에서 교수와 학생은 우리에 비해 훨씬 대등하다. 박사 수준이면 더욱 그렇다. 학부에서든 대학원 수준에서든 영미 대학에서 교수는 학생을 일반 사회에서처럼 인격적으로 대한다. 한국에서와 같이 교수라고 해서 학생에게 실례되는 말이나 태도도 불사하고 심부름 따위를 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학위과정에 관련을 갖는 주체는 학교, 교사, 학생의 3자이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역시 지도교수와 학생이다. 학교는 학생을 선발하고 논문심사위원회를 소집하며, 그 외 때때로 학사위원회를 열어 필요한 사항들을 결정해 나가는 책임을 갖지만 여기에 어려움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학사에 관한 것도 대개 지도교수와 협의를 해서 처리하게 된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계약이라 함은 구체적인 계약서가 있다는 게 아니고, 관계가 사무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지도교수는 직책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지만 학위를 꼭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이런 태도는 독립적 리서치를 강조하는 영국. 호주식 제도에서 더하다. 실제 많은 외국인 지도교수가 자기는 학교와의 합의에 따라 학생을 지도 할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학교에 마땅한 사람이 없어 외부 인사 (타 대학이나, 학계가 아닌 전문직 인사)를 지도교수로 임명할 때는 계약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나) 학위과정 지침
외국대학들은 지도교수의 책임을 학칙과 [학위과정 별도 지침서/Postgraduate Studies Handbook] 등에서 명시적으로 적고 있다. 아래는 멜번의 라트로브대학 교육학과가 마련해 놓은 지침 의 사례 일부다.
– 박사학위는 학위논문을 평가함으로써 결정된다. 지도교수는 학생이 먼저 해당 학위 통과에 기대되는 논문의 수준에 눈뜨게 하고, 이를 위한 연구 내용, 방법과 발표 전반에 대한 훈련을 거치도록 배려해야 한다.
– 교수의 책임은 수준급 논문이 나올 수 있도록 감수하는 것이다. 그가 학생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기준이 여기에서 나올 것이다. 이를 위해 교수와 학생은 어느 정도를 어떻게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초년도에 집중적으로 의논해야 한다. 교수는 적절한 지도와 감수를 위해 학생과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데, 적어도 월 1회는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학생은 [연구안/research proposal]을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논문제목과 내용에 대한 방향이 결정되면, 이에 따른 논문과 리서치 계획 세부에 대해 토의를 해야 한다.
– 교수는 학생의 진도에 대해 확인하고 시간이 없어 논문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필요하면 글로 써서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각 학생의 취약점, 문제점 등을 빨리 파악하고 개선방법을 본인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특히 1년차 준비단계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래야 한다.
– 지도교수는 학생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학사위원회에 권고한다. 권고 내용 가운데는 논문의 진도, 논문을 석사에서 박사 수준으로 승격시킬지 여부, 실적 부진으로 인한 코스 중단 등이 포함된다.
이런 규정은 대원칙을 천명할 뿐이고, 실제는 구체적인 상황과 두 사람간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학생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지도교수를 만날 확률이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국 유학생이 명시된 기준을 가지고 지도교수와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명시된 기준이 있다면, 학생이 교수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독자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지도교수와의 관계에서 처하게 되는 상황은 대개 다음 다섯 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a) 서로가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하는 경우, (b) 학생은 지도교수에 대해 불만이지만 참고 꾸준히 노력하여 목표에 이르는 경우, (c) 지도교수는 학생이 수준 과 노력에 불만이지만 너그럽게 도와서 목표를 성취하게 지도해 주는 경우, (d) 서로가 상대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좀처럼 간격이 좁혀지지 않아서 학생이 떠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 (e) 교수가 학생의 퇴출을 권하는 경우 등.
언어 면에서 늘 불리한 한국 유학생은 대개 (c)의 경험을 겪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흔한 경우가 (e)일 것이다. 이러한 필자 관찰은 주관적 일 수 있지만, 50-60년대에는 ‘병풍 박사’라는 말이 생길 만큼 유학생들은 교수의 처분에 매달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흔적과 지금도 인문분야 한인 박사후보들은 현지인들보다 대개 2-3년 더 걸려 끝내는 사실을 근거로 하는 말이다. ‘병풍박사’는 지도교수에게 병풍을 선사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가 성의와 충성을 보이는 등 어렵게 참고 견뎌 끝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재론하겠지만 유학생의 당연한 영어의 핸디캡과 이에 대한 외국 교수들 간 보편타당하고 공정한 기준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 예로 교수가 언어를 빌미로 마음에 안 드는 유학생을 골탕 먹일 수 있는 일은 매우 가능하며, 학생은 그런 가능성 때문에 자연히 교수와의 관계에서 예속적이 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억울한 결과로 끝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가능성이 유학을 보내는 나라의 관심사가 되고 유학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이미 말한 셈이다.
아래에서 박사과정을 약 몇 단계로 나눠서 지도교수가 각 단계마다 어떤 지도를 해야 할까를 필자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문헌을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미 말한 것들과 일부 중복 될 수 있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