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1월 3일,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침략하여 수에즈 운하 너머로 이집트군을 몰아낸 제2차 중동 전쟁 / 시나이 전쟁 (1956년 10월 29일 ~ 1956년 11월 3일) 종료
‘제2차 중동 전쟁’, 또는 ‘수에즈 위기’는 1956년 10월 29일부터 1956년 11월 3일까지 발생한 전쟁으로, 아랍권에서는 ‘삼국 동맹 공격’ 또는 ‘카데시 작전’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에서는 ‘시나이 전쟁’이라 불린다.
이스라엘이 1956년 말 이집트 침공을 개시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뒤이어 이집트에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의 목표는 수에즈 운하의 통치권을 영국과 프랑스가 회복하고,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를 권력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유엔과 미국, 소련이 동맹군에 정치적 압박을 가했고, 결국 동맹군은 물러났다.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굴욕을 가져다 주었고, 나세르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 개요
제1차 중동전 휴전 이후 양측은 군비를 계속 강화하였는데 이 기간 중 아랍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52년 7월 이집트에서 급진파인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파루크 왕정이 타도되고 나세르가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그는 범아랍주의 (Pan-Arabism)를 제창,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비동맹 중립노선 표방과 구소련·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와의 접근을 추진하였다. 아랍·아프리카·회교권 3세력 통합을 기도한 나세르는 당시 아프리카 각국의 독립운동을 지원, 영국·프랑스와의 충돌이 불가피하였으며 미국 또한 그의 노선에 의혹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 3국은 비밀리에 군사협정을 맺고 이스라엘의 이집트에 대한 도발을 사주하는 한편 침공계획을 작성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이라크의 실권자 누리 사이드를 포섭, 1955년 2월 바그다드 조약기구 (Baghdad pact)를 창설함으로써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와 아랍권의 분열을 기도했다.
1956년 7월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회사와 운하통행료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외교적 교섭과 군사행동 중 ‘폴리스 액션 (police action)’으로서 후자를 택하였으나 미국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양국에 권고하였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침공했고 11월 5일 영·프 연합 공수부대가 수에즈 운하의 관문인 포트 사이드에 투하되었다. 전세는 처음부터 완전한 시나리오하에 기습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에 의해 주도되어 11월 6일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반도는 공격측에 점령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철군 요구와 세계 여론의 압력이 급증, 3국은 정치적 곤경에 놓이게 되었고, 11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유엔 긴급군 (UNEF)의 파견을 내용으로 하는 정전안이 채택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철수하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