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 S. 루이스 / 홍성사 / 2018.11.15

– 20세기 기독교 최고의 변증가 C.S. 루이스의 대표작
경험많고 노회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해 쓴 31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통찰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읽는 재미도 커서 루이스라는 20세기 기독교의 큰 산맥을 탐험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특히 루이스 자신이 이 책의 배경을 설명한 ‘1961년 서문’이 국내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소한 일들로 유발되는 가족 간의 갈등, 기도에 관한 오해, 영적 침체, 영적 요소와 동물적 요소를 공유하는 인간의 이중성, 변화와 영속성의 관계, 남녀 차이, 사랑, 웃음, 쾌락, 욕망 등 삶의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이 “우리 시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20세기 기독교의 큰 산맥 루이스의 사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그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 목차
서문
스크루테이프가 보내는 31통의 편지

○ 저자소개 :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으로,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1963년 작고했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잭 (Jack)”이라 불린 그의 본명은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이다.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3년 먼저 태어난 형 워런 Warren은 역사학자였고 그의 평생에 걸친 절친한 친구였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 W. T. Kirkpatrick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어린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비트릭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 (Northernness)’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 (joy)’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 (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1916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으며,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 Paddy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 Mrs. Moore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University College)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 A Preface to “Paradise Lost”』 『사랑의 알레고리 : The Allegory of Love』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 (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Joy Gresham)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그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그녀에게 떿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한다.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A Grief Observed』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홍성사가 역간한 루이스의 저작으로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예기치 못한 기쁨』, 『천국과 지옥의 이혼』, 『헤아려 본 슬픔』,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인간 폐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개인 기도』, 『기적』, 『영광의 무게』, 『루이스가 메리에게』, 『피고석의 하나님』,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숙고』,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세상의 마지막 밤』, 『실낙원 서문』, 『오독』, 『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이 있다.

○ 책 속으로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네가 요즘 맡은 환자의 책 읽기를 지도하는 한편, 유물론자 친구와 자주 만나도록 신경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잘 들었다. _ 첫문장
지금 제가 여러분 앞에 공개하고자 하는 편지들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정반대이지만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인 오류들이지요.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악마들은 이 두 가지 오류를 똑같이 기뻐하며, 유물론자와 마술사를 가리지 않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_ 서문에서
이제는 내 말을 좀 알아듣겠느냐?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해.
꼭 한 가지만 명심해 두거라. 기독교에 대해 방어를 하겠답시고 과학 (그러니까 진짜 과학)을 활용하려 들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말이다. 과학은 결국 네 환자를 부추겨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사색하게 만들고 말 게다. 현대 물리학자들가운데 그런 애석한 사례가 많이 있었지..
만일 환자가 계속 과학을 가지고 장난치려 들거든, 경제학과사회학을 들이파게 하거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소중한 ‘실제의 삶‘ 에서 멀어지는 것만큼은 용납하면 안 돼,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방법은 과학서적 따위는 아예 읽지 못하게하면서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만 심어 주는 거지. —p19
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다. 오해는 말도록. 내가 말하는 교회는 우리가 보는 바 영원에 뿌리를 박고 모든 시공간에 걸쳐 뻗어나가는 교회, 기치를 높이 올린 군대처럼 두려운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광경은 우리의 가장 대담한 유혹자들까지도 동요하게 만들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들은 그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한다. —- p.21~22
개인적으로 나는 박쥐보다 관료들을 더 싫어한다. 나는 경영의 시대이자 ‘행정’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제 가장 큰 악은 디킨즈가 즐겨 그렸듯이 지저분한 ‘범죄의 소굴’에서 행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수용소나 노동수용소에서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장소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악의 최종적인 결과이다.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 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 (제안하고 제청받고 통과시키고 의사록에 기록)하는 것이다. _ 부록 ‘1961년판 서문’에서
사랑이나 애국심, 독신생활, 제단에 놓는 촛불, 절대 금주, 교육 따위가 좋으냐 나쁘냐는 인간들이나 실컷 토론하게 내버려 두거라. 그런 질문에는 해답이 없다는 걸 척 보면 모르겠느냐? 중요한 건 주어진 상황의 심리 경향이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환자(스크루테이프는 성도들을 환자라고 부름)를 원수에게로 더 가까이 몰고 가느냐, 우리에게로 더 가까이 몰고 오느냐하는 것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바,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인간들이 기독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라도 – 하다못해 사회 정의를 위한 수단으로라도 – 삼게 해야지. 이 경우, 사회 정의는 원수가 요구하는 것이므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일단 믿게 한 후, 기독교는 그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가치 있다고 믿는 단계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라는 것,이게 바로 우리의 수법이야.’ — 본문중에서
나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으며, 그들 중 일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의 적이 되었고, 따라서 인간의 적이 되었음을 믿는다. 이렇게 타락한 천사들을 우리는 ‘악마들’이라고 부른다. 악마들은 선한 천사들과 본질이 아예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본질이 부패한 존재들이다. 악인이 선인의 반대이듯이 악마는 천사의 반대이다. 악마들의 지도자 내지 독재자인 사탄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라 미가엘과 반대되는 존재인 것이다. — p.191
거짓 영성은 어떤 경우에든 부추길 만한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기도’라는 겉보기에만 경건한 근거에 속아 넘어가, 일용할 양식과 아픈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원수 (그리스도)의 분명한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릴 때가 많단다. — p.157

○ 출판사 서평
새로운 표지로 선보이는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첫 권! 故 유진 피터슨 추천!
– 악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치유하는 해독제
양장에서 무선으로 새로운 표지를 갈아입은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그 첫 번째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경험 많고 노회한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 충고하는 서른한 통의 편지이다.
인간의 본성과 유혹의 본질에 관한 탁월한 통찰이 가득한 이 책은 웜우드가 맡은 ‘환자’ (이 책에서 악마들은 자기들이 각각 책임지고 있는 인간을 ‘환자’라고 부른다)의 회심부터 전쟁 중에 사망하여 천국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사소한 일들로 유발되는 가족 간의 갈등, 기도에 관한 오해, 영적 침체, 영적 요소와 동물적 요소를 공유하는 인간의 이중성, 변화와 영속성의 관계, 남녀 차이, 사랑, 웃음, 쾌락, 욕망 등 삶의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영국 C. S. 루이스 협회의 허락을 받아 실은 ‘1961년판 서문’은 원서가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난 후 저자가 덧붙인 것으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이 “우리 시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20세기 기독교의 큰 산맥 루이스의 사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그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 새 디자인으로 선보이는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영국 C. S. 루이스 협회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국내에 루이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빼어난 번역과 정치한 편집으로 정본의 기준을 마련한 루이스 클래식이 새로운 표지로 갈아입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자 영문학자였던 C. S. 루이스의 저작을 ‘변증’, ‘소설’, ‘고백’, ‘에세이’, ‘산문 및 서간’ 총 다섯 갈래로 나누어 루이스 사상의 전모를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하도록 돕습니다.
변증 _ 《순전한 기독교》《고통의 문제》《기적》 《인간 폐지》
소설 _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천국과 지옥의 이혼》《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순례자의 귀향》《침묵의 행성 밖에서》《페렐란드라》《그 가공할 힘》
고백 _ 《예기치 못한 기쁨》《헤아려 본 슬픔》
에세이 _ 《세상의 마지막 밤》《영광의 무게》 《기독교적 숙고》《피고석의 하나님》《오독》 《실낙원 서문》
산문 및 서간 _ 《시편 사색》《네 가지 사랑》 《개인 기도》《당신의 벗, 루이스》《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 독자의 평 1
저자 루이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2가지를 지적한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하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이다. 더불어 눈여봐야 할 점은 루이스의 관료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루이스의 1961년판 서문에 의하면, 가장 큰 악은 디킨스가 즐겨 그린 범죄의 소굴이 아니라, 관료조직에서 일어난다.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 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루이스의 고백처럼, 악마의 삶을 고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이 책에 그려진 악마의 언행을 통해 인간을 성찰하는 것이 저자인 루이스의 의도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기독교 신앙관에 대한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 독자의 평 2
– 작가의 다른 작품
나니아 연대기, 기적, 세상의 마지막 밤,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실낙원 서문, 그 가공할 힘, 오독, 기독교적 숙고 등
– 읽고 나서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C. S. 루이스는 사실 신학자로 더 유명하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가디언지’에 연재되었던 C. S. 루이스의 글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해 쓴 31통의 편지글이다.
지옥 심연숭고부 차관, TE, BS, 기타 등등의 ‘스크루테이프 각하’라고 불리는 경험 많은 악마가 ‘사랑하는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조언에는 ‘악마’가 어떻게 우리의 약점들을 이용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초짜 악마 ‘웜우드’에게 ‘할당된 환자’가 ‘원수 도당’들에게 멀어졌다 다시 구원받는 과정은 모든 인간, 아니 나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듯 조마조마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고 웜우드가 그토록 사랑한다 외쳤던 스크루테이프 삼촌에게 곧 ‘잡아먹히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 때에는 안도와 통쾌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스크루테이프의 ‘조언’을 통해 우리는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악마로서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 그들은 당연한 악의 선택을 제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실제로 ‘악’이 되는 것들을 꼬집는다. 일상의 사소한 불평과 불만들이 사실 얼마나 ‘악’하게 변화될 수 있는지 보는 과정은 그동안 악의 유혹에 빠졌을지 모를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불편하게 만든다. 진정한 쾌락은 신이 내린 선물이므로 오히려 ‘가짜 쾌락’을 부추기라는 점이나, 불안한 미래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무너뜨리게 하는 점이나, 사소한 ‘짜증’이 악마들에게 얼마나 쉬운 요리 재료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스크루테이프가 ‘악마들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날, 전쟁은 끝이 나고 우리는 천국에 재입성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가 매 편지 앞에 쓰던 ‘사랑하는 웜우드에게’나, 편지 말미의 ‘너를 아끼는 삼촌’이라는 말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이야기였는지, 결국 악마일 수밖에 없는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의 ‘실수’를 계기로 조카를 ‘게걸스럽게 탐내’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안도를 느끼게 된다.
짧은 31편의 편지글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악과 매번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교훈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 밑줄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지만, 아래 몇 가지만 옮긴다.
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나한테는 한 가지 위대한 소망이 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과학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신화함으로써, 원수를 믿으려는 인간의 마음이 미처 열리기 전에 사실상 우리에 대한 믿음(물론 우리 이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지는 않겠지만)을 슬금슬금 밀어 넣는 법을 터득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소망이지.
우린 그저 ‘근래 들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불편하지만 막연한 감정만 요리하면 된다.
넌 ‘세상’을 이용해서, 즉 허영심이나 부산스러움, 아이러니, 사치스런 따분함을 쾌락인 양 속임으로써 환자를 파멸시키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네가 어떻게 진정한 쾌락이야말로 최후까지 막아야 할 금기사항임을 잊을 수 있단 말이냐?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악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 – 샴페인이든 홍차든 생선요리든 담배든 아무거나 – 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의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조리 네 손안에 들어올 게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하는 데 있다. 즉 나한테 좋은 건 나한테 좋은 거고, 너한테 좋은 건 너한테 좋은 거지. 누군가 얻은 게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은 게 있는 법이다.
원수 도당들이 자주 인정하듯이, 우리 악마들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날, 전쟁은 끝이 나고 우리는 천국에 재입성할 수 있어.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 내야 할 대 과업이지. 알다시피 그 작자는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 사랑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고말고. 우리가 그 작자의 진짜 속셈을 알 수만 있다면!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 시간이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 시간이 저희들 것이라면 해와 달도 저희들 소지품이게?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낼 경우에는 우리의 입지가 한층 더 확고해진다. 풍요로움은 인간을 세상에 엮어 놓거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는 인간은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인데도 말이야.

○ 독자의 평 3
“인간이라는 존재가 속된것의 압력에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지 너는 알아야 한다
언젠가 내가 맡았던 환자는 골수 무신론 자였는데 대영박물관에서 책읽기를 즐겼지.
그런데 하루는 책을 읽고있던 환자의 생각이 영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꼴이 보이더구나
아차하는 사이에 원수(예수님 .혹은 하나님) 가 내 환자의 곁에 바짝 달라붙었던 게야 .
미처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20년 동안이나 쌓아온 탑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어 .
그때 내가 이성을 잃고 논증으로 방어하려 들었다면 난 아마 완전히 끝장나고 말았을걸.
하지만 내가 그런 바보짓을 할 리가 없지.
나는 그 즉시 내가 제일 만만하게 쥐고 흔들 수 있는 부분을 건드렸어.
인간은 속된것에 순식간에 무너진다 예를들면 배고픔 같은거 하나로 충분히 ~
나는 슬며시 점심을 좀 먹어야 할때가 아니냐고 일러주었어.
원수가 즉시 반격에 나서서 이문제는 점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원수가 말하더구나.
중요하고 말고 사실 이건 오전이 다끝나가는 자투리 시간에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야” 라고 내가 맞장구를 치자 환자의 안색이 밝아지는걸 보았지 .
이때를 놓칠세라 ‘점심먹고와서 개운하 머리로 다시 생각하자’ 라고 얼른 덧붙이니까 .
벌써 저만치 문쪽으로 걸어가고 있더라구 …
아무리 고상하고 거룩한 생각도 오줌누고 싶은생각.머리 긁고 싶은생각을 집어넣어
순식간에 에너지를 바꿀수 있지 너의 임무는 환자곁을 지키며 그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려면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게 없어 …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것이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건든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 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걸 네가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시키거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