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12월 5일, 미국의 항공기 디자이너•사업가•항공기 제작회사 세스나의 설립자 클라이드 세스나 (Clyde Vernon Cessna, 1879 ~ 1954) 출생
클라이드 세스나 (Clyde Vernon Cessna, 1879년 12월 5일 ~ 1954년 11월 20일)는 미국 항공기 설계자, 비행사 및 초기 항공 기업가였다. 그는 1927년 캔자스 주 위치타에서 시작한 Cessna Aircraft Corporation의 주요 설립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 클라이드 세스나 (Clyde Vernon Cessna)
.출생: 1879년 12월 5일, 미국 아이오와 몽고메리 카운티
.사망: 1954년 11월 20일, 미국 캔자스 킹맨 카운티
.항공기: Cessna Comet, Travel Air 2000, Travel Air 5000
.자녀: 엘던 웨인 세스나
Cessna Aircraft Corporation의 설립자 클라이드 S.세스나는 농부 겸 기계공으로 시작해 로키산맥 동쪽, 미시시피 서쪽 지역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띄운 인물이었다. 그는 무려 13회에 걸쳐서 비행을 시도했는데, 성공하기 전에는 다음 말을 한 것처럼 화가 많이난 모양이다.
“나는 이걸 타고 난 다음 불태워버릴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라면 다시는 거들떠도 안 보겠다.”
아무튼 비행에 성공한 뒤 1925년, 월터 비치와 로이드 스티어먼과 함께 트래블 에어 매뉴팩처링 컴퍼니를 세웠다. 이 회사는 복엽기를 만들었지만 세스나는 단엽기에 관심이 있어서 이 회사를 떠났다.
1927년 9월, 빅터 루스와 함께 세스나-루스 에어크래프트 컴퍼니를 세웠으나 이내 결별하고 같은 해 연말에 캔자스 주 위치타에 혼자서 세스나 에어크래프트 컴퍼니를 세운다.
잘 나가는 듯하던 회사는 세스나 DC-6이 자격증명을 받은 날 대공황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1931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1932~1934년 항공기 생산을 공식 중단했다.
1936년 세스나는 조카인 드웨인 월리스에게 주식매각 방식으로 넘겨주고 업계에서 은퇴했다. 조카가 조업을 재개했고, 1940년 미국이 재무장을 시작하면서 호황을 맞이했다.
전후 세스나는 진정한 호황기를 맞이하여 다양한 경비행기와 비즈니스제트기를 만들어 팔았다. 라인업이 다양하여 단좌 농업용 항공기, 복좌 연습기, 4인승/6인승 관광기, 쌍발 경항공기, 비즈니스 제트기, 군용제트기까지 만들었다.

○ 생애 및 활동
- 초기
클라이드 세스나 (Clyde Vernon Cessna, 1879년 12월 5일 ~ 1954년 11월 20일)는 미국 캔자스 주의 한 농촌에서 1879년에 태어났다.
라이트 형제 중 형인 윌버가 1867년, 오빌이 1871년생이니 라이트 형제의 비행에서부터 경쟁하던 커티스, 대서양 건너 프랑스의 블레리오 같은 초창기 항공기 개척자들이 무언가를 막 내 놓던 시기에 20대 청년기를 맞는다.
학교 교육이라고는 5학년 공부가 전부였지만 기계를 만지는 소질이 뛰어나 고향 옆 주인 오클라호마에서 자동차 딜러를 하다가 1909년에 프랑스의 블레리오가 도버 해협을 건넜다는 소리를 듣고 감동한다.
1903년에 처음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아주 불안정해서 조종이 무지하게 힘들었던 라이트 형제의 귀날개 (커나드) 형 복엽기에 비교하자면 사실 블레리오의 비행기는 거의 완벽한 현대적 모습의 단엽 비행기를 만들어 내었다.

- 비행기에 매료되다
마침 1911년에 자신이 살던 오클라호마에서 비행기 전시회가 열리자 세스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새로운 기계에 매료된다.
세스나는 잘 하던 자동차 딜러 일을 그만두고 바로 비행기 만들어 파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그러고는 뉴욕으로 가서 그 당시에 있던 퀸 비행기 회사 (Queen Aeroplane Company)라는 곳에서 잠시 일을 하며 비행기 만드는 법을 배운다.
이 회사는 블레리오 비행기의 유사품을 만들었는데, 세스나는 이 회사 기체를 가져다가 엔진을 다른 모델로 바꿔 달고 이름도 ‘실버윙 (Silverwing)’으로 명명되었다.
이 기체는 미국산 블레리오 XI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어로 스페셜”이라고 불리는 엘브리지 모터보트 엔진을 개조하여 이 비행기에 동력을 공급했다.
‘실버윙’은 1911년, 클라이드 세스나 (Clyde Cessna)가 제작했다.
전신주 나무 (주로 가문비나무)와 린넨으로 만들어졌다.

세스나 항공기 회사의 최초 비행기이다.
이 엔진은 1,050rpm에서 최대 40마력을 낼 수 있다.
기체가 준비되자 알팔파 카운티의 솔트 플레인스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 근처의 그레이트 솔트 플레인스에서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렇게 조립한 비행기를 스스로 타고 비행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다행히 크게 망가지지 않았는지 몇 달간 수리해서 조심조심 비행술을 훈련해 비행에 성공한다.
1911년 6월 실버윙은 성공적인 비행을 했고, 대중의 인식을 회의에서 찬사로 바꾸었으며, “대담한 영웅”이라는 꼬리표와 “이니드의 버드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비행기를 분해해서 기차로 싣고 다니며 일종의 에어쇼를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현란한 곡예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축구공을 떨어뜨리고, 그걸 바로 받은 사람에게 5불, 멀리 튕겨 다니는 것을 주워다 주면 2불 50센트를 준다고 했는데, 관중들이 많았다.
5분 동안 쇼를 해서 당시 돈으로 200불,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0불 정도의 큰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오클라호만 (Oklahoman) 에 따르면, 세스나가 해당 모델을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항공기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원래 항공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 항공기 사업의 시작과 끝
세스나는 에어쇼 공연을 하려고 자기 비행기를 여러 대 만들었는데, 매번 새로 만들 때마다 조금씩 설계 개량을 하였다.
그런데 이 때 세스나의 독창성이 나타난다.
당시 남들은 모두 복엽기를 만들어 탔는데, 세스나는 블레리오 식의 단엽기만 고집했다.
비행기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단엽기라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했던 모양이다.
공장 건물도 하나 얻어 거기서 비행기 조립도 하고 비행학교도 운영할 생각으로 조종 학생도 모집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가려 할 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1917년에 미국이 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세상이 바뀌고 사업은 망했다.
그래서 다시 농사나 짓자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전쟁은 끝났지만 농촌으로 돌아간 이 훌륭한 기술자는 탈곡 사업을 해서 돈을 좀 모았다.
등이 따스해지고 배가 불러지려 하는 찰나에 유혹의 손길이 생긴다.
월터 비치(Walter Beech, 항공인들이 잘 아는 비치크래프트 사를 만든 사람), 료이드 스티어맨 (Lloyd Stearman, 유명한 복엽기 스턴트맨) 같은 사람들이 비행기 회사를 동업하자고 한다.

Travel Air Manufacturing Company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한다.
세스나가 가장 많은 투자도 했고 이전의 사업 경험도 있어서 사장을 맡아 회사를 운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동업자끼리 의견 충돌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은 복엽기 만들자 하는데, 세스나는 단엽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분을 다 팔고 나와서 1927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새로 세운다.
그것이 바로 세스나 항공기 회사 (Cessna Aircraft Company)다.
세스나의 첫 모델 A는 120마력 엔진을 달고 3-4명을 태워서 160km/h의 속력을 낼 수 있는 모델이었다.
이 정도의 성능은 요즘 비행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성능이다. 당연히 큰 관심을 모았으나 이번에는 미국 경제공황으로 주식시장 대폭락 사태가 터진다.
그 날은 이 모델 A가 연방항공청으로부터 형식증명을 발급받은 날이었다.
1931년에 회사의 생산 라인을 중단하게 되었지만 그 어려운 시기에 속도경주 비행기를 만든다.
그러다가 결국 1936년에 이 회사를 25살의 유능한 젊은 청년에게 넘겨주고 세스나는 다시 시골로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18년 동안 다시 농사를 짓다가 1954년에 74세를 일기로 별세한다.

○ 세스나 이후
- 세스나 사의 새로운 출발과 성쇠
세스나 이후 세스나의 생질(조카)들이다. 세스나에게는 외과의사 월러스에게 시집 간 8살 아래 여동생인 그레이스가 있었는데, 그의 두 아들 드웨인 월러스 (Dwane Wallace)와 드와잇 월러스 (Dwight Wallace) 형제들이다.
이 중 드웨인이 당시 신학문인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1933년에 졸업을 하였다. 이 갓 졸업한 젊은 친구가 잠시 외삼촌이 처음 설립했던 트래블 에어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온다.
외삼촌인 클라이드 세스나의 죽어가는 회사를 살려 보자고 과거의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한다.
외삼촌이 잠시 사장을 맡았지만 곧 물러나 고향 농촌으로 은퇴하고 이 패기 충만한 25세 청년은 세스나 사의 새 사장으로 취임, 1936년부터 약 40년간 세스나를 경영한다.
요즘 흔히 보는 세스나 172나 그 이전 모델인 150 같은 형상의 단엽 경비행기 모델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그치고 1946년에 내 놓은 모델 120, 140, 140A, 1955년에 172, 1959년에는 150이 나와 형제·자매의 모습을 하고 있다.
1963년에 세스나의 5만 번 째 기체인 세스나 172가 생산되었고, 그로부터 12년 후에는 단발기만으로 10만 번 째 호기가 생산되었다고 하니 평균으로 치면 한 달에 350대의 단발기를 생산한 셈이다.
1980년대가 되면서 일반항공 분야에 구름이 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스나뿐만 아니라 여러 경비행기 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1985년에는 제너럴 다이내믹스 사에 인수되었다가 1992년에 현재의 텍스트론 사 (Textron Inc.)에 계열사로 인수되었지만 여전히 세스나 사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2006부터 경기가 조금 나아 보이던 경량항공기 사업에 도전하다가 2014년에 정리해버린 모델 162 사업의 황망한 기억을 남겼고, 2014년 3월에는 독립된 회사명 세스나 사는 사라지고, 텍스트론 항공 (textron Aviation)의 한 브랜드 이름으로 조직이 축소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동업자였던 비치의 비치크래프트 사 역시 이 텍스트론 항공의 한 브랜드 이름이 되고 말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