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년 10월 4일, 비잔티움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2세 (Flavius Iustinus Iunior Augustus, 520? ~ 578) 타계
유스티누스 2세 (Flavius Iustinus Iunior Augustus, 520년경 ~ 578년 10월 4일)는 비잔티움의 황제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조카로 565년 대제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다.
그의 치세는 아바르족과 롬바르드족의 침입과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얼룩졌다.

– 유스티누스 2세 (Flavius Iustinus Iunior Augustus)
.휘: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 유니오르 (Flavius Iustinus Iunior)
.출생: 482년 경
.사망: 578년 10월 5일
.가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부친: 둘키디오 (둘키시무스), 모친: 비길란티아
.배우자: 소피아
.자녀: 아라비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재위: 565년 11월 14일 – 574년
.전임: 유스티니아누스 1세 / 후임: 티베리우스 2세
로마 제국 제62대 황제이자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제3대 황제. 565년부터 578년까지 제국을 통치하면서 사산 왕조와 아바르 칸국, 랑고바르드족 등 외세의 침략으로 많은 영토를 잃어 실지 황제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말기 재정이 파탄 지경이 되어버린 제국의 암울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 생애 및 활동
유스티누스 2세는 482년 경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누이 비길란티아와 둘키디오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565년 11월 황제가 된 직후 유스티누스는 아바르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공물요구를 단호하게 물리쳐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했다.
비잔티움 제국이 아바르족의 침입에 대처하느라고 여력이 없는 동안 롬바르드족은 568년 이탈리아를 침공해 토스카나지방에서 정착하고 스폴레토와 베네벤토에 독립 공국을 세웠다.
572년 아르메니아 왕국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사산조 페르시아와 마찰을 일으키자 비잔티움 제국은 이에 개입하여 사산조와 전쟁을 벌였다.
초기부터 페르시아는 비잔티움의 공격을 물리치고 영토를 침공하여 573년 11월 다라를 비롯한 수많은 제국의 도시를 점령했다.

유스티누스는 정신질환을 앓게되고 황후 소피아가 그를 대신해서 정치에 관여하고 574년 사산조와 평화 협상에 착수했고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휴전을 맺었다.
유스티누스의 정신병은 주변 사람을 마구 폭행하는 광기로 번져 결국 소피아는 티베리우스 장군을 부제 (caesar)로 삼고 공동으로 섭정을 맡았다.
종교적으로도 황제는 즉위전에는 단성론자였다가 제위 초기에는 정통 기독교로 돌아서면서 단성론자에 대한 관용정책을 폈으나 나중에는 대대적인 탄압을 폈다.
정신이 나가버린 남편을 대신해 제국의 통치를 맡은 아일리아 소피아 황후는 574년에 호스로 1세에게 4만 5천 노마스마타의 돈을 주고 휴전에 합의했다.
그녀는 혼자서 제국을 다스리는 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잠시 정신이 돌아온 남편을 설득해 티베리우스를 섭정에 임명시켰다. 이리하여 티베리우스는 소피아 황후로부터 추천받은 자이며 황제는 그의 미덕과 행운을 자신이 현명하게 선택한 성과라 여겼다.
티베리우스가 카이사르 또는 아우구스투스에 오르는 즉위식이 총대주교와 원로원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황궁에서 열렸다 (574년 12월).

하지만 제국의 분란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 투르크족은 동로마 제국과 손을 잡고 페르시아와 공동 대응하고 있었는데, 동로마 제국이 페르시아와 강화를 맺자 자신들과 상의하지도 않고 전쟁을 멈췄다며 화를 내고 제국을 배신자라고 욕하며 동맹을 깨고 크리미아의 동로마 제국 요새를 점령했다.
또한 577년에는 대략 10만에 달하는 슬라브족이 트라키아와 일리리쿰에 침입해 그곳에 정착했다. 게다가 제국을 공동으로 통치한 소피아 황후와 티베리우스 부제와의 갈등도 극심했다.
소피아는 티베리우스가 불필요하게 사치스럽다며 비난했고 황실의 재정을 움켜쥐고 티베리우스에게 가족이 먹고 살 만큼만 내줬다. 또한 그녀는 티베리우스의 아내인 이노와 그의 두 딸이 황궁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했다.
유스티누스는 578년 10월 4일 후계자 없이 마침내 사망했고 티베리우스가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578년 10월 5일, 티베리우스는 황위에 올랐고 자신을 폐위시키려고 음모를 꾸몄다가 발각된 소피아를 수도원에 감금했다.
이노는 소피아가 실각한 후에야 비로소 황후의 특권을 차지했고 이름을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로 바꿨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