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칼럼
이민자부모를 위한 “쉬운” 기독교교육이야기 (4)
A: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앎이며,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신앙을 양육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본 칼럼에서는 존 칼빈의 신앙이해를 중심으로 신앙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앎으로서의 신앙의 목적을 하나님과의 연합이라 보았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라 했다. 그에게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없이는 어느 인간도 그를 알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 계시해주셨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칼빈의 계시론과 신앙론에서 중요한 God’s accommodation, 즉 하나님의 수용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칼빈은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 구부리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하나님의 수용이라 생각했다. 하나님의 수용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시작점이다. 인간의 연약함에 자신을 맞추시는 하나님의 수용이 없다면, 전적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이고 실존론적인 차이 때문에 어느 인간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단들을 사용하시면서 인간을 초대하신다고 생각하였다.
먼저,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창조 안에 계시하셨다고 칼빈은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연질서와 웅장함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한 묵상이 주요한 증거는 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첫 번째 증거 (the first proof for the presence of God) 일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거울로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듯이, 자연을 거울삼아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조 안에 당신을 객관적으로 계시하셨고, 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둘째로, 칼빈은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계시하시되 외적으로 창조된 세계를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적 능력들도 사용하셨다고 본다. 하나님을 아는 앎과 관련하여 칼빈은 인간의 두 가지 내적 능력에 관심을 가졌다. 거룩한 감정 (sensus divinitatis) 과 양심 (sensus conscientiae) 이다.
먼저 거룩한 감정을 살펴보자. 칼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거룩한 감정을 심으셨고, 그렇기에 사람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자연 안에서 발견되는 계시는 외적 계시인 반면, 인간 내면 안의 거룩함은 내적 계시의 형태이다. 거룩한 감정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내적 깨달음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 마음 속에 심으신 “종교의 씨앗 (some seed of religion)” 과 같다. 하나님은 인간 마음 속에 거룩한 감정을 심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소멸되지 않도록 새롭게 하신다. 주목할만한 것은 자연 안의 일반 계시처럼 타락한 인간은 거룩한 감정만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면, 거룩한 감정과 함께 하나님께서 당신을 알 수 있도록 인간에게 허락하신 또 다른 인간 내면의 능력은 양심이다. 거룩한 감정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볼 수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양심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칼빈에게 깨끗한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심판의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순종하기를 다짐케 하는 하나의 통로이다. 칼빈은 양심의 역할을 거룩한 감정의 그것보다는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양심도 우리의 죄로 인해 쉽게 오염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 존재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내적 능력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빈은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일반 계시의 실재와 인간의 내면 능력을 인정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그러한 자연적인 수단들로는 손상되지 않은 하나님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칼빈은 특별 계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특별 계시는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 번째 수단이다. 칼빈에게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셨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성경을 읽음으로 만날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돕는 선생이자 안내자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의 신앙을 거룩한 성경의 열매로 이해하였다.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앎으로서의 신앙이 없이는 누구도 성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성경의 내적 조명 (the inner illumination of the Spirit) 없이 인간 존재는 성경의 내용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이다.
칼빈의 신앙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Pietas, 곧 경건 개념이다. 칼빈은 순종을 신앙의 필수불가결한 면이라고 믿었는데, 왜냐하면 순종 없이는 하나님을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하나님을 아는데 매우 중요한 통로가 된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아는 모든 바른 앎은 순종에서 태어난다고 보았다. 신앙에서 순종의 중요성에 대한 칼빈의 강조는 경건 (pietas) 에 대한 그의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는 경건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결합된 존경” 이라 정의했고,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유익들이 만들어낸다” 고 보았다. 칼빈은 경건은 하나님을 알기 위한 선행조건이며, 또한 동시에 신앙의 열매라고 이해하였다. 경건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의 연합하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완성된다.또한 칼빈의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까지 확장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칼빈은 경건에 이르는 것을 한번의 사건이 아닌 평생의 과정 (a life-long process) 으로 이해하였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도 인간 존재는 죄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칼빈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교회는 사람들을 양육하고 그들이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외적 수단 (an outward means) 이다. 칼빈은 복음의 선포와 성례전을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기 위해 허락하신 두 가지 대표적인 외적 도움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말한다: “종교가 우리 안에서 소멸되거나 침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거룩한 모임들에 참여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돕는 외적 수단들을 활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모든 경건한 이들의 어머니 (the mother of all the godly) 이다: 교회의 교육적인, 양육하는 역할은 신앙성장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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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 목사 (호주 이민교회교육연구소장/ 오션그로브연합교회담임,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