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푸치니, 그 삶과 음악 : CD2장포함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6)
줄리언 헤일록 / 포노(PHONO) / 2017.11.15
– 영화음악을 예고한 작곡가, 푸치니의 삶과 음악
인생과 사랑을 자유롭게 즐긴 풍류가인 동시에 300년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의 결미를 장식한 대작곡가. 꿈이 아닌 삶을 질료로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고조에 집중한 ‘민중의 작곡가’를 만난다.
–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의 찬란한 석양이자 새로운 여명 : 영화음악을 예고한 작곡가, 푸치니(1858-1924)의 삶과 음악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새끼손가락으로 나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극장을 위해 쓰거라. 명심하거라, 반드시 극장만을 위해 음악을 써야 하느니라.’ 그리고 나는 그분의 지엄한 명령에 복종했다.”(16p, <서문> 중에서)
자코모 푸치니는 몬테베르디, 로시니, 베르디 등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역사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생전에는 그에게 오페라의 전통을 20세기로 이어갈 책임이 부과되었던 동시에, 서거 이후에는 뒤를 이을 만한 신인 작곡가가 나타나지 않은 만큼 300년 이탈리아 오페라의 결미를 장식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예술가 가운데 누구 하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지 않은 이 있겠느냐마는, 오페라라는 장르에서 현대의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한 작품을 선보였고 그것이 현대 영화음악 발전의 단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가 ‘신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천착한 장르가 그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유의미한 진척을 보이지 못했기에 푸치니는 한편 저무는 태양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다만 그 과정이 황혼녘처럼 눈부시고 찬란했으므로 우리가 이 대작곡가를 기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의 16번째 책인 《푸치니, 그 삶과 음악》은 푸치니의 출생과 유년시절 이야기부터, 그의 첫 오페라인 〈요정 빌리〉를 시작으로 유작으로 남은 〈투란도트〉까지 다양한 오페라를 기획하고 작곡한 과정, 그리고 애틋했던 가족들과의 관계와 그가 사랑했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를 한 권에 담았다.
푸치니는 완벽을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극과 음악을 서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게끔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게 목표였다. 이런 과정에서 대본작가들을 비롯해 평생 그의 지지자이자 지원자, 동료이기도 했던 출판업자 리코르디(그의 회사는 지금도 세계적인 악보 출판사로 남아 있다) 등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같은, 지금도 전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활발히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대작들은 완벽에 대한 그의 집요한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푸치니의 오페라가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흥행을 이어간 데는 다음의 요소들이 한몫했다. 우선 이야기가 어렵지 않다. 그는 “듣는 이를 사로잡을 수 있는 단순한 스토리의 슬픈 이야기, 사랑 이야기”에 집중코자 했다. 여기에 그 자신이 ‘사랑꾼’이기도 했지만(엘비라와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곤 했다) 그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과 분위기를 귀신같이 잡아냈으며, 감정적 추진력과 함께 이를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줄 알았다. 이뿐 아니라 인물 앞에 닥친 파멸과 비극을 음악으로 암시하는 데도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즉, 관객들이 기존의 오페라에서 극과 음악, 레치타티보, 연출 등의 요소를 하나로 합쳐내기에 바빴다면,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갈마들면서 좀 더 편안한 감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여정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선율의 아리아는 푸치니라는 작곡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누린 유명세에 비해 좀처럼 평론가들의 호평은 얻지 못한 작곡가로도 기억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위의 요소들 때문이기도 한데, 비평가들의 입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는 ‘지적 요소’와 ‘깊이’를 결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치니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집중했던 터라 극의 소재에 있어 자극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긴 하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비평이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재평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 어디에서나 항상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어떤 혹평도 푸치니를 무너뜨릴 수 없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를 종횡무진으로 지배하고 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과거의 작품들과 인기가 떨어지는 현재의 오페라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엔진이 된 것이다.” (데니스 포먼)
위에서 언급된 익숙한 이름의 오페라들 외에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푸치니 스스로 자신이 아무런 걱정 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오페라라고 표현한 작품이자, 평론가 조반니 포차가 “스스로의 저력을 인지하고 있는 천재의 작품이자,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고 가다듬어 마침내 정복한 이의 오페라”라고 일컬은 〈마농 레스코〉, 저자가 푸치니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낭만주의적 이상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 평가한 〈제비〉, 그리고 점점 더 많은 평론가들이 오페라 역사에 기여한 가장 빼어난 공로작 가운데 하나로 뽑는 〈망토〉까지 과연 푸치니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도처에 있다.
작곡을 하지 않을 때 푸치니는 진정 인생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는 풍류가의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빌라를 지어 자연을 음미했으며 때로는 사냥에 흠뻑 빠졌다. 새로운 발명품인 자동차와 모터보트를 구입해 직접 몰며 스피드를 즐겼으며 이 때문에 사고도 여러 차례 겪었다. 유부녀를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아내로 맞은 엘비라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서 기대할 수 없었던 예술적 교양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다른 여인들을 통해 채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소녀가 엘비라의 오해를 사 억울한 희생을 당한 일도 있었다.
푸치니 인생의 희로애락은 어찌 보면 그의 작품들과 닮아 있다. 아니, 반대로 작품들에 그의 인생이 투영되어 있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같은 작품을 보며 작곡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 그와 다를 바 없는 날것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 푸치니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획득한다.
책에는 푸치니 주요 작품의 줄거리, 훌륭한 음질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 2장과 수록된 곡들에 대한 해설, 오페라 등 기타 음악 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용어집 및 등장인물 소개, 마지막으로 푸치니의 생애를 둘러싼 당시의 문화예술 및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비교 연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오페라 역사의 대미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물, 하지만 결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태양, 푸치니, 그의 삶과 음악을 만나보자.
○ 목차
서문
제1장 루카를 떠나 밀라노로
제2장 실패와 성공, 〈요정 빌리〉
제3장 엘비라와 〈에드가르〉
제4장 견인차가 된 〈마농 레스코〉
제5장 히스 마스터스 보이스, 〈라 보엠〉
제6장 베리스모 스릴러물, 〈토스카〉
제7장 동쪽으로, 〈나비부인〉
제8장 서쪽으로, 〈서부의 아가씨〉
제9장 적국을 위해 쓰다, 〈제비〉
제10장 셋을 묶어 하나 가격에, 〈삼부작〉
제11장 찬란한 황혼과 새로운 여명, 〈투란도트〉
부록
등장인물
용어집
음반 수록곡 해설
비교 연표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찾아보기
○ 저자소개 : 줄리언 헤일록 (Julian Haylock)
〈CD 리뷰〉와 〈인터내셔널 피아노〉의 편집장을 지냈고,〈CD 클래식스〉의 음반 리뷰 지면의 편집을 담당했다. 이밖에도 말러와 라흐마니노프의 전기를 집필했고, 알렉산더 워와 함께 《CD로 듣는 클래식 음악》과 《CD로 듣는 오페라》를 펴냈다. 올림피아에서 출시된 알렉산더 체레프닌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을 포함해 여러 편의 녹음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클래식 FM 매거진〉과 〈BBC 뮤직 매거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레코드 리뷰〉 등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전생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반주자 겸 지휘자로 바삐 살았으리라 믿는다.
– 역자: 이석호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에드워드 사이드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필립 글래스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을 비롯해 『다시, 피아노』, 『스타인웨이 만들기』, 『지휘의 발견』, 『슈베르트 평전』,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등 스무 권에 가까운 음악 관련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책 속으로
푸치니는 모든 일에서 완벽을 추구했고, 자신의 드높은 기준에 부합하는 대본을 발견하기 위해 일평생 악전고투했다. 맞는 대본을 구한 다음에는 각각의 장면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과 신빙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음악과 대사, 동작의 모든 요소를 하나로 통합했다. 푸치니는 무대를 이루는 제諸개념의 일체성을 강조한 바그너의 이상에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웅장함과는 달리 푸치니의 음악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태연자약하고 교묘하게 미끄러져 넘어간다. 그는 민중의 목소리를 빌려 말했고, 포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비극보다는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고조에 집중했다. 11p, <서문> 중에서
1876년 3월 11일 푸치니는 친구 두 명과 함께 피사까지 20킬로미터를 걸어가 난생처음으로 전문 오페라 극단이 공연하는 무대를 관람했다. 입장권도, 표를 살 돈도 없었지만 꾀와 허세를 부려가며 간신히 극장 진입에 성공했고, 그렇게 보게 된 무대는 그의 인생 항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훗날 “피사에서 〈아이다〉를 듣던 중 내 앞에 음악의 길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날 이후로 푸치니의 시선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추부인 밀라노에 고정되었다. 23p, <제1장 루카를 떠나 밀라노로> 중에서
스물다섯 먹은 청년들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느낄 테지만, 푸치니에게 대도시에서의 삶은 달콤한 유혹의 연속이었다. 재밋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문을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만 앉아 있기가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작곡에 보인 재능이야 물론 뚜렷했지만 그래도 음악 이론서를 끼고 앉아 골몰하기보다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포도주와 맥주를 만판 마시면서 걸쭉한 입담을 주고받고 지나가는 여자를 곁눈질하는 편을 훨씬 더 선호하는 평범한 남자가 바로 푸치니였다. 장난꾸러기 기질이 다분한 그의 이런 성격적 측면이 훗날 그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배역들에 그토록 강력하게 공감한 음악을 써낼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36p, <제1장 루카를 떠나 밀라노로> 중에서
폰키엘리는 재능을 재능으로 알아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었고, 일단 발견한 재능이라면 믿어주고 밀어주는 마음씨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폰키엘리는 푸치니가 음악계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악보 출판사인 리코르디 사의 경영자인 줄리오 리코르디Giulio Ricordi(1840-1912)에게 제자를 소개해주었고, 발등의 불인 콩쿠르에 참가해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이나마 붙잡아볼 수 있도록 시인, 극작가 겸 언론인인 페르디난도 폰타나Ferdinando Fontana(1850-1919)에게 풋내기 작곡가에게 줄 대본 작업을 맡기기도 했다. 46p, <제2장 실패와 성공, 〈요정 빌리〉> 중에서
둘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푸치니와 엘비라는 그들 사이에 있었던 강렬한 육체적 끌림을 제하고 보자면 도무지 하늘이 점지해준 한 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엘비라가 ‘진지한’ 음악에는 도무지 흥미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해 무관심했다. 시작부터 둘 사이에는 미적인 문제에 관한 깊은 골이 존재했다.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 골짜기의 간격은 조금도 메워지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했다. 그럼에도 자석의 음극과 양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그들 사이에는 거역할 수 없는 인력이 있었다. 66p, <제3장 엘비라와 〈에드가르〉> 중에서
등장인물이 내면을 향한 성찰을 보이는 시점이 찾아올 때마다 푸치니는 물 만난 고기처럼 뛰었다. 그러나 군중 장면과 종교적 상징주의는 그의 본령이 아니었다. 그의 영감에 불이 붙는 순간은 오로지 등장인물 개인의 원초적인 감정이 표현될 때였다. 86p, <제4장 견인차가 된 〈마농 레스코〉> 중에서
푸치니는 바그너가 후기 작품에서 달성했던 일종의 공존공생을 목표했다. 음악과 언어, 연출 기법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일체화되는 경지, 즉 음악을 들으면 대본과 연출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고 대본을 읽으면 음악과 연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합일의 경지를 꿈꾼 것이다. 93p, <제4장 견인차가 된 〈마농 레스코〉> 중에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라 보엠〉은 마치 숭고한 영감을 받아 힘들이지 않고 일필휘지로 적어 내린 작품인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간난신고 끝에 기어이 완성된 대본은 푸치니 스스로도 다시는 넘어서지 못할 열정적인 걸작을 이끌어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때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지금의 우리 역시 백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보편성 때문이다. … (본문중에서)
○ 출판사 서평
– 이탈리아 낭만 오페라의 찬란한 석양이자 새로운 여명 : 영화음악을 예고한 작곡가, 푸치니(1858-1924)의 삶과 음악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새끼손가락으로 나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극장을 위해 쓰거라. 명심하거라, 반드시 극장만을 위해 음악을 써야 하느니라.’ 그리고 나는 그분의 지엄한 명령에 복종했다.”(16p, <서문> 중에서)
자코모 푸치니는 몬테베르디, 로시니, 베르디 등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역사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생전에는 그에게 오페라의 전통을 20세기로 이어갈 책임이 부과되었던 동시에, 서거 이후에는 뒤를 이을 만한 신인 작곡가가 나타나지 않은 만큼 300년 이탈리아 오페라의 결미를 장식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역사에 이름을 새긴 예술가 가운데 누구 하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지 않은 이 있겠느냐마는, 오페라라는 장르에서 현대의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한 작품을 선보였고 그것이 현대 영화음악 발전의 단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가 ‘신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천착한 장르가 그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유의미한 진척을 보이지 못했기에 푸치니는 한편 저무는 태양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다만 그 과정이 황혼녘처럼 눈부시고 찬란했으므로 우리가 이 대작곡가를 기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의 16번째 책인 《푸치니, 그 삶과 음악》은 푸치니의 출생과 유년시절 이야기부터, 그의 첫 오페라인 〈요정 빌리〉를 시작으로 유작으로 남은 〈투란도트〉까지 다양한 오페라를 기획하고 작곡한 과정, 그리고 애틋했던 가족들과의 관계와 그가 사랑했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를 한 권에 담았다.
푸치니는 완벽을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극과 음악을 서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게끔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게 목표였다. 이런 과정에서 대본작가들을 비롯해 평생 그의 지지자이자 지원자, 동료이기도 했던 출판업자 리코르디(그의 회사는 지금도 세계적인 악보 출판사로 남아 있다) 등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같은, 지금도 전 세계 오페라극장에서 활발히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대작들은 완벽에 대한 그의 집요한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푸치니의 오페라가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흥행을 이어간 데는 다음의 요소들이 한몫했다. 우선 이야기가 어렵지 않다. 그는 “듣는 이를 사로잡을 수 있는 단순한 스토리의 슬픈 이야기, 사랑 이야기”에 집중코자 했다. 여기에 그 자신이 ‘사랑꾼’이기도 했지만(엘비라와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곤 했다) 그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과 분위기를 귀신같이 잡아냈으며, 감정적 추진력과 함께 이를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줄 알았다. 이뿐 아니라 인물 앞에 닥친 파멸과 비극을 음악으로 암시하는 데도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즉, 관객들이 기존의 오페라에서 극과 음악, 레치타티보, 연출 등의 요소를 하나로 합쳐내기에 바빴다면,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이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갈마들면서 좀 더 편안한 감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여정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선율의 아리아는 푸치니라는 작곡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누린 유명세에 비해 좀처럼 평론가들의 호평은 얻지 못한 작곡가로도 기억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위의 요소들 때문이기도 한데, 비평가들의 입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는 ‘지적 요소’와 ‘깊이’를 결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치니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집중했던 터라 극의 소재에 있어 자극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긴 하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비평이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재평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 어디에서나 항상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어떤 혹평도 푸치니를 무너뜨릴 수 없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를 종횡무진으로 지배하고 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과거의 작품들과 인기가 떨어지는 현재의 오페라들을 선두에서 이끄는 엔진이 된 것이다.” (데니스 포먼)
위에서 언급된 익숙한 이름의 오페라들 외에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푸치니 스스로 자신이 아무런 걱정 없이 내놓을 수 있었던 오페라라고 표현한 작품이자, 평론가 조반니 포차가 “스스로의 저력을 인지하고 있는 천재의 작품이자,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고 가다듬어 마침내 정복한 이의 오페라”라고 일컬은 〈마농 레스코〉, 저자가 푸치니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낭만주의적 이상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 평가한 〈제비〉, 그리고 점점 더 많은 평론가들이 오페라 역사에 기여한 가장 빼어난 공로작 가운데 하나로 뽑는 〈망토〉까지 과연 푸치니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도처에 있다.
작곡을 하지 않을 때 푸치니는 진정 인생을 즐기고 사랑을 즐기는 풍류가의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빌라를 지어 자연을 음미했으며 때로는 사냥에 흠뻑 빠졌다. 새로운 발명품인 자동차와 모터보트를 구입해 직접 몰며 스피드를 즐겼으며 이 때문에 사고도 여러 차례 겪었다. 유부녀를 오랜 시간 공들인 끝에 아내로 맞은 엘비라를 사랑했지만, 그녀에게서 기대할 수 없었던 예술적 교양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다른 여인들을 통해 채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소녀가 엘비라의 오해를 사 억울한 희생을 당한 일도 있었다.
푸치니 인생의 희로애락은 어찌 보면 그의 작품들과 닮아 있다. 아니, 반대로 작품들에 그의 인생이 투영되어 있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같은 작품을 보며 작곡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 그와 다를 바 없는 날것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 푸치니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획득한다.
책에는 푸치니 주요 작품의 줄거리, 훌륭한 음질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음반 2장과 수록된 곡들에 대한 해설, 오페라 등 기타 음악 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용어집 및 등장인물 소개, 마지막으로 푸치니의 생애를 둘러싼 당시의 문화예술 및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비교 연표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오페라 역사의 대미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물, 하지만 결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태양, 푸치니, 그의 삶과 음악을 만나보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