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나세요?
감정이란 E+motion이다. 행동하게 하는 힘이다. 상한 감정을 가지면 악한 행동을 하고, 좋은 감정을 가지면 선한 행동을 한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이 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있는 상한 감정을 풀지 못하면 병이 된다. 의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두 가지 병뿐이 없었다. 화병과 염병이다. 염병은 전염병이고, 화병은 ‘상한 감정’을 억누를 때 생기는 병이다. 우리 안에 불(火)을 품고 있는데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는가?
거룩한 분노
화를 대할 때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화를 내는 것처럼 남도 화를 낼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도 분노하는 장면이 많이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성전 장사치의 물건을 뒤엎으며 분노를 터트렸다. 외식하는 자들을 보고는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다. 심지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까지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다. 의분이다. 악을 보면 참지 못하는 분노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장을 품에 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논개를 기리며, 변영로 시인은 ‘거룩한 분노’라고 칭송하였다.
소극적 반응
화는 표출이 잘못될 때 죄가 된다. 잘못된 표출이란 화에 대한 소극적 반응과 과잉반응을 말한다. 소극적 반응이란 화를 억압하고 은폐하는 것이다.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조차 부정한다. “괜찮아, 나 화 안났어” 등으로 자신의 화를 부정한다. 하지만 분노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자신의 분노를 적절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억압하면 병이 생긴다. 우울증이란 ‘억압된 분노’이다. 억압된 분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분노가 수면으로 노출되어 다뤄지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심신과 영혼까지 힘들게 한다. 인간은 ‘영, 혼, 육’의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감정에 문제가 생기면 육신과 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신체적인 통증을 호소하지만 문제는 육신이 아니라 상한 감정인 경우가 많다. 상한 감정은 사탄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분을 품을 수는 있지만 죄를 짓지는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과잉반응
소극적 반응이 자기를 다치게 한다면, 과잉반응은 상대방을 다치게 한다. 과잉반응이란 화가 사람을 다스리는 상태이다. 자기 통제가 되지 않으니 함께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폭언, 폭력을 사용하며, 기물을 부수며 사소한 자극에도 참지 못하고 싸운다. 실제로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적인 분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이 되어서는 폭력으로 표출하게 된다. 힘이 없던 어린 시절 때의 소극적 반응이 성인이 되어서는 과잉반응으로 표출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일도 아닌데, 어떤 사람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들이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화의 치료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과 꿈의 해석을 통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여 문제를 치료하려고 했다. 자유연상이란 자유롭게 환자가 모든 생각, 감정, 바람, 감각, 이미지, 기억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가능한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기억이 될지라도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무엇이든 말하도록 한다. 환자의 이야기들을 분석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관찰하는 기법이다. 또한 사람이 잠을 잘 때 꿈을 꾼다. 꿈은 우리의 의식의 세계가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이다. 꿈을 해석함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고자 했다. 억눌렸던 내면의 상처를 수면으로 끌어내어 해결하는 방법이다.
지성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각지대’(Blind Spot)가 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나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질문함으로 자신을 더 알아 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내서 자신의 분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평범한 일인데 특별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는가?”, “합리적인 일인데 비합리적으로 반응하는 일들은 없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닌데 왜 나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가?” 등등의 일들을 깊이 묵상하여 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롬 7:18).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해결의 실마리를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있는 그대로를 십자가 앞에 내어놓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노출하여 그 안에서 해결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고 용서하여 주신다. 우리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말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엡 5:18).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는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령 안에 참 자유가 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김환기 사관(시드니구세군 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