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라스트 베르메르 (The Last Vermeer, Lyrebird)
감독) 댄 프리드킨 / 주연) 가이 피어스, 클라에스 방 / 2019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위작을 독일 나치에게 팔아 넘겨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사기꾼 ‘한 판 메이헤런’ 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수작 드라마로 <라스트 미션> <올 더 머니> 댄 프리드킨 감독의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 <에이리언: 커버넌트> <아이언맨 3> <메멘토> 가이 피어스가 선보이는 천재 예술가의 카리스마와 압도적 열연과 <거미줄에 걸린 소녀> <더 스퀘어> 클라에스 방의 묵직한 연기로 2019년 작품이다.
– 전범보다 위조범이 되기를 택하고 위조 사실을 자백한 화가와 이를 믿지 않은 사람들과의 치열한 법정 다툼
.국보급 명작들이 위작임이 증명되는 순간의 충격과 문화 유산을 나치에 팔아 넘긴 매국노에서 위작으로 나치를 속여 넘긴 영웅으로 뒤바뀌는 순간의 전율
.미술품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격전과 스릴 넘치는 전개
1930년대 나치에게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위작을 독일 나치들에게 속여 팔아 넘긴 희대의 사기꾼 ‘한반 메헤렌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대한 위작화가이자, 희대의 사기꾼 그리고 매국노였던 그가 어떻게 나치군을 속일 수 있었을까…
본작은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및 제46회 텔루라이드 영화제 노미네이트됐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댄 프리드킨 (Dan Friedkin)
제작: 라이언 프라이드킨 (Ryan Friedkin)
기획: 지노 팔세토 (Gino Falsetto), 피터 헤슬로프 (Peter Heslop),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각본: 마크 퍼거스 (Mark Fergus), 제임스 맥기 (James McGee), 호크 오츠비 (Hawk Ostby)
촬영: 레미 아데파라신 (Remi Adefarasin)
음악: 요한 쇠데르크비스트 (Johan Soderqvist)
편집: 빅토리아 보이델 (Victoria Boydell)
– 출연진
가이 피어스
클라에스 방
빅키 크리엡스
롤랜드 묄러
귀도 덴 브뢰더
– 수상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및 제46회 텔루라이드 영화제 노미네이트
○ 줄거리
1945년 2차 세계대전 끝무렵,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소금광산에서 나치가 점령지에서 약탈하고 숨겨놓은 다량의 예술작품들을 발견한다.
나치의 2인자 ‘헤르만괴링’의 수집품중 예술전문가들도 처음보는 네덜란드의 거장 베르메르의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가 발견되고, 연합군 ‘요섭 필러르’ 대위는 그림의 유출경로에 대해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그림의 최초 공급자가 ‘한 판 메이헤런’임이 밝혀지고 그는 네덜란드의 문화유산을 나치에게 팔아넘겨 적국에 부역한 죄로 체포되어 독방에 수감된다.
네덜란드 법무부는 판메이헤런이 나치들의 돈세탁에 관여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그를 수사하려 하지만, 법무부를 믿지않는 필러르는 판 메이헤런을 교도소에서 빼내 독단으로 그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더디기만하고, 전쟁종식과 연합군의 해산으로 판 메이헤런은 네덜란드정부에 넘겨져 반역죄로 기소되고 재판을 받게된다. 하지만 계속된 조사과정중 최근 발견된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모두 위작이고 판 메이헤런이 직접 위작을 그렸음을 알게된 필러르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 네덜란드의 화가 한 판 메이헤런 (Han van Meegeren, 1889 ~ 1947)
한 판 메이헤런, 또는 반 메헤렌 (네: Han van Meegeren, 1889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30일)은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위조범이다.
본명은 헨리퀴스 안토니위스 판 메이헤런 (Henricus Antonius van Meegeren)이다.
그의 일생은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였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와 깊은 연관이 있다.
– 한 판 메이헤런 (Han van Meegeren)
.출생: 1889년 12월 10일, 네덜란드 데벤테르
.사망: 1947년 12월 3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적: 네덜란드
.부모: 헨드리쿠스 요하네스 반 메이헤런, 아우구스타 루이자 헨리에타 캠프
.배우자: 조 오를레만스, 안나 드 보그트
.자녀: 자크 반 메이헤런
.전시 장소: J. Paul Getty Museum
네덜란드의 유명한 위작 작가. 얀 페르메이르 (얀 베르메르)의 위작을 가장 많이 그린 인물로 본명은 헨리퀴스 안토니위스 판메이헤런 (Henricus Antonius van Meegeren)으로 이름 한은 헨리퀴스의 약칭이다.
네덜란드어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공식적인 자료에는 판메이헤런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 메헤렌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한 판 메이헤런 (Han van Meegeren)은 1889년 12월 10일, 네덜란드 데벤테르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 쪽으로 진로를 개척하고 싶어했으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와 건축학 공부 강요로 대학 역시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건축공학 쪽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하기 이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화가였던 바르튀스 코르텔링 (Bartus Korteling)을 멘토삼아 종종 의견을 나누면서 미술가의 꿈을 꾸고 있었고, 이 시기에 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소개받아 큰 감명을 받았다.
어쨌든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학한 것이었기에 판메이헤런은 곧 건축학 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판메이헤런이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미술계는 인상주의 사조가 주류였는데 공교롭게도 판메이헤런은 고전화가들의 화풍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비평가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작품에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고전화풍이나 흉내낼 줄 아는 화가라는 식으로 혹평을 가하는 비평가들도 있었는데 결국 계속되는 혹평에 시달린 판메이헤런은 결국 비평가들을 망신주기로 작정했다.
당시 고전화풍이 인기가없다해도 만약 네덜란드 황금기의 유명화가가 그린 작품이라면 비평가들이 찬사를 늘어놓았는데, 이런 점을 노려 얀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어 비평가들에게 보여주어 온갖 찬사를 하게 한 다음 “사실 내가 그린 위작이었다. 네놈들은 비평가라면서 안목이 그것밖에 안 되냐?”이란 말을 하여 공개적인 망신을 주려 하였다.
이에 근 4년간 페르메이르의 화풍을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도록 연습하였다.
17세기에 제작된 캔버스를 구해 당시 스케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였으며, 페르메이르가 사용했다는 붓과 동일한 붓을 구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이 오래된 그림처럼 보일 수 있도록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로 처리를 하였으며, 베이클라이트를 이용해 딱딱하게 굳힌 그림을 100도~120도 사이의 높은 온도에 구워낸 후 드럼통 위에 놓고 굴려서 의도적으로 균열이 생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균열에는 검은 잉크를 흘려 채워넣는 형태로 17세기에 그린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기법적인 부분에서 기존의 페르메이르 작품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도리어 그 부분이 전문가들의 눈을 속였다.
그 당시 학계에서는 페르메이르에게는 밝혀지지 않은 숨은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메이헤런의 그림에서 나타난 기법상의 차이가 학계에서 추측했던 숨은 작품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래서 판메이헤런의 위작은 페르메이르 작품들 사이의 미싱 링크로 여겨졌다.
– 조작
제2차 세계 대전 끝무렵에,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의 암염갱 (岩鹽坑)에 나치 고위관계자가 점령지에서 약탈한 예술 작품을 숨겨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 중에는 헤르만 괴링의 수집품이 있었는데, 예술 전문가들도 처음 보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있었다.
조사 결과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에서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는 한 판 메이헤런이라는 네덜란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판 메이헤런은 1945년 5월 나치에 협력한 죄로 체포되었다. 이것은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네덜란드의 국보급 미술품을 나치에 팔아넘긴 혐의로 반역죄로 기소된다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며칠 동안의 강도높은 심문이 있은 후, 그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실토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사실 자신이 가짜로 만든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판 메이헤런이 위작을 만들게 된 동기도 흥미로운데, 그는 돈 때문에 가짜를 만든 것이 아니었고, 적어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데번터르에서 태어난 판 메이헤런은 처음에는 델프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나, 곧 미술을 배웠고 네덜란드의 고전 화가들에게 강한 흥미를 느꼈다.
아버지는 그가 화가가 되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였으나, 판 메이헤런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고전 화가들의 방식으로 그린 그림들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판 메이헤런은 예술 비평가들을 몹시 경멸하게 되었으며 그들을 골탕먹이기 위해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위작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비평가들이 위작인지도 모르고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으면, 나중에 그것이 위작이었음을 밝혀서 비평가들이 사실은 예술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망신을 주려는 생각이었다.
특히, 그가 삼은 목표는 페르메이르 전문가였던 아브라함 브레디위스 박사였는데, 그는 판 메이헤런이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판 메이헤런은 꼼꼼하게 그의 계획을 진행시켰다. 페르메이르의 스타일과 기술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뿐 아니라, 그림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해야 했다.
판 메이헤런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캔버스를 구해서, 고전 화가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스케치를 하고 페르메이르가 사용했다는 붓과 같은 것을 사용하여 색을 칠했다.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하여 300년이 지난 것처럼 보이도록 그림의 색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불에 구워서 바싹 말리고 북을 그 위에다 대고 굴려서 그림에 균열이 약간 생기게 한 다음에, 갈라진 틈에다가는 검은 잉크를 채워 넣었다.
판 메이헤런이 이런 방식을 완전히 익히는데는 4년이 걸렸으며, 그는 자신이 만든 《엠마우스에서의 만찬 (The Supper at Emmaus)》이 꽤 잘 만들어진 위작이며, 그 자체로도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판 메이헤런은 이 그림을 브레디위스 박사에게 보였으며, 예상대로 그는 이 작품이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감정했다.
네덜란드 예술 협회도 마찬가지로 속아 넘어갔으며, 오늘날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고 그 그림을 사들였다. 판 메이헤런의 원래 목적은 예술 비평가들을 골탕먹이는 것이었지만, 짭잘한 수익을 거두게 되자 돈벌이로 위작을 만들게 되었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여섯개의 페르메이르 위작을 더 만들었으며, 프란스 할스와 피터르 더 호흐의 위작도 만들었다. 특히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이후 나치 점령으로 인해서 사회가 어수선했기 때문에, 아무도 판 메이헤런이 만들어내는 많은 가짜 그림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나치 점령기에도 미술품 거래는 이루어졌다. 1942년에 그린 판 메이헤런의 위작은 160만 휠던에 팔렸는데, 이것은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 가격이었다. 판 메이헤런이 그린 가짜 페르메이르 그림은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 (Christ with the Adultress)》였는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헤르만 괴링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 그림이 훗날 연합군에 의해 발견되고, 이 그림 때문에 판 메이헤런이 체포된 것이다. 한편, 괴링이 지불한 금액은 모두 위조지폐였다고 한다.
– 조작 증명과 재판
판 메이헤런이 그 그림은 진짜 페르메이르 그림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짜라고 하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판 메이헤런이 직접 위작을 만들어 보여야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있다고 했고, 판 메이헤런은 이에 선뜻 응했다. 판 메이헤런은 3개월간 가택 연금을 당했으며 그 기간 동안 경찰의 감시하에 직접 《신전에서 설교하는 젊은 예수 (Young Jesus preaching in the Temple)》이라는 마지막 위작을 만들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판 메이허런은 네덜란드의 수상에 이어서 두 번째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재판은 1947년 8월 29일에 열렸다. 당시 판 메이허런은 58세였으며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으며, 자신이 위조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술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무지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을 우려하여 그가 위작으로 만든 그림을 심사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나, 위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가 꾸려졌다. 조사 결과, 페르메이르가 살던 17세기에는 쓰이지 않았던 코발트블루가 위작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판 메이헤런의 그림은 모두 위작임이 증명되었다. 판 메이헤런은 나치에게 국보급 미술품을 팔아넘긴 매국노가 아니라, 나치까지 속여넘긴 사기꾼이 된 셈이었다. 그는 미술품 위조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태가 안 좋아서 감옥 대신 요양원으로 보내졌고 1947년 12월 29일에 사망했다.
○ 영화화
그의 재판과정을 영화화한 2020년작 ‘라스트 베르메르’라는 영화가 있다. 다만 영화적 각색으로 메이헤런이 법정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이미 그려진 위작에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넣었다는 사실이 증명됨으로써 위작임이 증명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