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8일,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김복동 (金福童, 1926 ~ 2019) 별세
김복동 (金福童, 1926년 4월 24일 / 음력 3월 13일 ~ 2019년 1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 김복동 (金福童)
.출생: 1926년 4월 24일 / 음력 3월 13일,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
.사망: 2019년 1월 28일 (92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별: 여성
.국적: 대한민국
.직업: 인권운동가
.상훈: 2015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세계 여러 곳을 돌며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활동하였다.
67주년 세계 인권 선언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받았다.
2019년 1월 28일 지병으로 별세하였고 다음날인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 조문을 했다.
현직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조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경력
김복동 (金福童)은 1926년 4월 24일 / 음력 3월 13일,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면에서 출생했다.
경상남도 양산시 출신인 김복동은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김복동은 나라 안팎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해온 평화운동가였다.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시켰다.
2015년에는 분쟁 지역 피해아동 지원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 나비기금은 이 돈으로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나비기금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함께 이뤄질 법적 배상금 전액을, 전 세계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 들을 중심으로 각종 폭력에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는 기금이다.
김복동은 2015년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2018년에는 공익사단법인 정 (이사장 김재홍 · 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익사단법인 정은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으며 평화와 통일의 신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복동은 재일동포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일본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2016년부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복동은 지난해 11월 22일 신촌 세브란스 병실에 누운 채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라며 3000만원을 더 내놓았다. 마지막까지 김복동의 소원은 “ 아베한테 진심 어린 사죄를 받는 일”이었다.
암 투병 중이었던 김복동은 2019년 1월 28일 22시 41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 About Kim bok-dong
- ‘김복동 할머니’를 아십니까?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9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누구보다 끝까지 싸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대한 투사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 다니며 성노예가 됨
1945년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 당하여 일본 군인들 간호 노동 후 버려짐.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
1947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 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 시작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 실상을 문서로 증언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제안, 1호로 기부
2012년 3월 8일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2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16년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 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
2013년 7월 30일
해외 첫 평화의 소녀상 설치.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석, 활동
2014년 3월 7일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시지 영상으로 알림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 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
2015년 6월 25일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 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5년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수상
2017년 7월 6일
재일조선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 장학금 전달
2017년 8월
사후 남은 모든 재산 기부약정
2017년 9월 26일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7년 11월 23일
한국 포항지진 피해자 돕기 1천만 원 후원
2017년 11월 25일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 수상
2017년 11월 27일
여성인권상금 5천만 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정의기억재단에 기부(1회 수상자: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인권운동가 아칸 실비아 선정)
2017년 12월 10일
국제여성인권단체가 ‘성평등 유산의 벽’에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 선정
2018년 6월 9일
일본 도쿄 사단법인 희망씨앗기금 주최 집회 참석, 발언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 장학금 수여
2018년 12월 10일
‘김복동의 희망’ 명예회장 취임
2018년 11월 22일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천만 원 ‘김복동의 희망’에 기부
2019년 1월 2일
제1회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백만 원을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2019년 1월 28일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94세를 일기로 별세
○ 대중매체
영화 ‘김복동 : My name is KIM Bok-dong’
○ 영화 ‘김복동 : My name is KIM Bok-dong’
영화 ‘김복동’은 2019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자백》, 《공범자들》을 만든 뉴스타파의 3번째 작품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 영화 ‘김복동’ (My name is KIM Bok-dong)
.감독: 송원근
.제작: 뉴스타파
.각본: 김근라
.촬영: 김정환, 김기철
.배급사: 엣나인필름
.개봉일: 2019년 8월 8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27여년간 보관해온 기록, 사진, 영상, 음성파일과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동행했던 미디어몽구의 기록영상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 캐스팅
김복동
한지민 : 나레이션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