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3월 25일, 프랑스의 시인•오크어 부활 운동가 프레데릭 미스트랄 (Frédéric Mistral, 1830 ~ 1914) 별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프: Frédéric Mistral, 1830년 9월 8일 ~ 1914년 3월 25일)은 19세기에 오크어 문학의 진흥을 일으킨 프로방스 출신의 시인이다. 펠리브리지 운동의 중심적 인물이었으며, 190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Frédéric Mistral)
.출생: 1830년 9월 8일, 프랑스 쁘호벙스
.사망: 1914년 3월 25일, 프랑스 마이얀느
.부모: Adelaide Poulinet, 프랑수아 미스트랄
.배우자: 마리 루이스 리비에르 (1876 ~ 1914년)
.학력: 엑스 마르세유 대학교, 엑쓰-마흐세이-3 뽈 쎄잔느 대학
.수상: 노벨 문학상
프랑스의 시인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1830 ~ 1914)은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방언과 그 문학을 유지할 것을 주창하였으며, 웅대하고 강력한 기풍이 있는 목가적인 연애 서사시를 썼다.
19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에 서사시 <미레요(Miréio)>, 서정시 <황금의 섬> 따위가 있고, 저서에 ≪펠리브리주 보전 (Félibrige 寶典)≫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그는 1830년 남프랑스의 마이얀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미스트랄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비뇽의 왕립대학 (이후 프레데릭 미스트랄 학교로 개명)을 다녔다. 미스트랄은 1851년 액상프로방스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특별히 직업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었기에 미스트랄은 일찌감치 프로방스의 문화와 언어 부흥을 위해 힘쓰기로 결정했다. 미스트랄이 프로방스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아비뇽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 조세프 루마뉴를 만났던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1854년 프로방스와 오시타니아 전체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 진흥하기 위한 조직인 펠리브리지를 세웠다. 미스트랄은 트루바두르들의 오크어 문학전통을 부흥하기 위해 그 자신이 오크어로 많은 작품을 썼으며, 1878년에는 2권짜리 사전을 편찬했다.
미스트랄은 오크어 부흥운동을 하며 프랑스어의 철자법에 맞춘, “미스트랄 표기안”이라는 오크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만들어 냈는데, 현재까지도 중세의 표기법에 기준한 “표준안”과 병용되고 있다.
직업을 갖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했던 그는 일찍부터 프로방스 지방의 생활과 언어를 재건하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1854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프로방스어와 관습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인 ‘펠리브리주’를 창설했고, 나중에는 범위를 남부 프랑스 즉 ‘오크어의 지방’ 전역으로 넓혔다 (프랑스 남부지방을 ‘오크어의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 프랑스어로 ‘그렇다’를 뜻하는 ‘위’ (oui)가 남부지방 사투리에서는 ‘오크’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다). ‘오크어’는 음유시인들의 언어로서 남부 프랑스의 문화어였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시인들도 이 언어를 사용했다.
1848년에 최초의 서사시 <저택>을 썼는데, 이 작품은 그가 죽은 뒤인 1927년에 [르뷔 드 프랑스(Revue de France)]지 7월호와 8월호에 발표되었다. 회고록인 <나의 근원> (1906)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위대함은 첫 번째 장시인 <미레유>와 마지막 장시인 <론 강의 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2편의 작품은 12편으로 이루어진 본격적 규모의 서사시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지역을 무대로 한 <미레유>는 부유한 농부의 딸이 가난한 바구니 제조공의 아들을 사랑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생트마리드라메르 교회에서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장에 대한 사랑을 이 시에 쏟아넣었다. 구노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오페라를 작곡했다 (1863).
<론 강의 시>는 낭만적인 젊은 네덜란드 공작과 가난한 나룻배 사공의 딸이 거룻배인 ‘루 카뷔를’호를 타고 리옹에서 보케르까지 론 강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먼저 배에 탄 네덜란드 공작과 나중에 올라탄 사공의 딸 사이에 사랑이 싹트지만, 루 카뷔를 호는 론 강을 오가는 최초의 기선에 의해 뜻하지 않게 침몰당하게 되고, 이와 함께 그들의 연애도 막을 내린다. 승무원들은 강가로 헤엄쳐 가지만, 두 연인은 물에 빠져 죽는다.
이 서사시는 <미레유>보다 덜 음악적이고 문체의 밀도도 더 높지만, 생기와 문채 (文彩)로 가득 차 있다. 이 작품은 미스트랄이 말년에 이르러 자신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그가 사랑하는 것 대부분이 그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19세기에 프로방스 어문학의 부흥을 주도했고, 1904년에는 문학과 언어학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 경력
1848년 최초의 서사시 <저택>
1851년 엑상프로방스대학교 법학사학위
1854년 프로방스어와 관습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 ‘펠리브리주’ 창설
1859년 <미레유 (Mireio)>
1867년 <칼랑도 (Calendau)>
1876년 서정시집 <황금의 섬>
1878년 전2권으로 된 오크어 학술사전 <펠리브리주의 보석> 발간
1884년 <네르토 (Nerto)>
1890년 역사비극 <잔 여왕>
1897년 <론 강의 시>
1906년 <나의 근원>
1912년 <올리브 수확>
1926년 <아르마나의 산문> 발표
○ 평가
시인으로서 그는 프로방스 지역의 감성을 언어로 표현한 시를 썼으며, 부유한 지주의 딸 미레유와 가난한 광주리 장수의 아들 방상과의 맺지 못할 사랑을 노래한 미레유 (Mireio,1859)를 통해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1904년 문학과 언어학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아를에 프로방스 민속박물관을 세운 그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 작품
- 주요작품
1859년 미레유
1867년 칼랑도
1876년 황금의 섬
1884년 네르토
1886 ~ 1921년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전집 (6권)
1897년 론 강의 시
1906년 나의 근원
1912년 올리브 수확
- 시
저택 (1848)
미레유 (1859)
칼랑도 (1867)
황금의 섬들 (1875)
네르토 (Nerto, 1884)
론 강의 시 (1897)
- 시집
황금의 섬 (1876)
올리브 수확 (1912)
- 단편집
추억집 (1906)
아르마나의 산문 (1926~29)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