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메시지(2)
지난해[2015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기후변화 회칙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 회칙은 바티칸이 기후 정책에 관해 처음 내놓은 권위 있는 발표로, 전 세계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테크대학의 대기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박사는 과학계가 지난 30년간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떠들어온 것보다 교황의 이번 회칙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 말한다. “과학은 기후변화의 원인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려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시발점은 엄밀히 말해 과학이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가치의 문제예요”라고 밝혔다. 이 회칙에서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정확히 파고들은 것이다. 기후 변화라는 과학적 문제를 도덕적 경각심과 동일시한 것이다. 회칙의 몇 부분을 인용해본다. “인간은 최악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초월해 다시 선(善)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 전 세계적 문제입니다 … 현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도전과제의 하나입니다”에서 이 회칙을 통해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아직도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교황은 과학계의 주류 의견을 수용했다. 지난 100년간 지표면 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그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황은 발전에 반대하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줬고, 무수한 이익을 주었음을 인정한다. 다만 과학기술 발전이 세상 모든 것을 개선해주지는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우리의 비약적 기술 발전은 인류의 책임감과 가치관, 양심과 함께 발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환경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는 서문과 6장, 246항으로 된 방대한 내용이다. 가볍게 읽어서 이해할 내용도 아니다.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문제며, 인간의 삶에 관한 가치문제, 삶의 양식, 신앙의 영성, 세계의 정치 경제 문제 등의 기본적 바탕위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기후문제는 감성[感性]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종교적 신앙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그중에도 과학과 타협하지 않으면 말 자체를 끄집어 낼 수 없는 문제이다. 교황께서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기에 과학계의 주류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전통적으로 불편한 동거 관계
과학과 종교는 전통적으로 불편한 동거 관계다. 이문제와 관련해서 상기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2.15-1642.1.8)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철학자이자 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고 과학 혁명의 주도자이다. 갈릴레오는 요하네스 케플러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고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계와 대립했다. 그의 업적으로는 망원경을 개량하여 관찰한 것, 운동 법칙의 확립 등이 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임을 믿었다(그 당시에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것이 진리였다).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자진하여 로마 교황청을 방문, 변명했으나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의 포기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황금 측량자〉를 저술하여 지동설을 고집하였으며, 〈천문학 대화〉를 검열을 받고 출판했으나 문제가 생겨 로마에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갈릴레오는 결국 그의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의 마지막 생애를 로마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가택에서 구류되어 보냈다. 그는 실험적인 검증에 의한 물리를 추구했기 때문에 근대적인 의미의 물리학의 시작을 대개 갈릴레오의 것으로 본다. 또한, 진리의 추구를 위해 종교와 맞선 과학자의 상징적인 존재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종교계와의 대립과는 상관없이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런 대립도 자신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위키백과 자료]. 1632년 ‘천문대화’라는 책을 펴낸 갈릴레이는 이듬해 로마로 소환돼 구금됐다가 지동설 포기를 서약하고 나서야 사면됐다. 당시 갈릴레이가 했다는 혼잣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가톨릭의 과학계 탄압을 상징하는 말로 남아있다. 로마 교황청은 1992년에야 갈릴레이를 사면했다. 지동설[地動說]이 정설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359년이 지난 1992년에서야 사면을 했다. 가톨릭의 완고함에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선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갈릴레이에게 사과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는 상황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담긴 보편적 가치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일각[一角]에서는 “환경회칙”이라고도 소개하기도 하지만 환경을 뛰어 넘는 광범위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가톨릭의 사목지침으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의 신앙의 길잡이로 발표되는 것이지만 “찬미받으소서”는 70억의 세계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전무[前無]한 회칙인 것이다. 지구 온난화[溫暖化]의 증거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검증되고 있으며 교황은 이를 토대로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경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 프란치스코와 교황의 주님께 찬미를 드리는 마음은 같았지만 내용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찬미받으소서”의 서문에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사랑의 누이로 결합된 관계며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돌 봐야 한다는 권면을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성인께서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찬미받으소서’ 하고 노래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자연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땅과 지구를 살리는 데 모두가 함께 실천과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 것이다. 교황은 지구를 ‘더불어 사는 공동의 집’이라고 표현하면서, ‘공동의 집’을 가꾸고 돌보는 임무와 책임이 개인과 가족, 지역 공동체와 국가, 국제 공동체 모두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기에, 지구 환경과 생태 문제는 어느 한 개인, 어느 한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일치[知行一致]
언행일치[言行一致], 지행일치[知行一致]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인도의 간디다.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를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언행일치 지행일치의 삶을 살았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가 무엇인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만 이에 항거하며 맞서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간디는 오늘날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념을 구축했고 따라서 그 신념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그의 생애와 사상은 “언행일치”한 단어로도 대변할 수 있다. 간디의 아 힘사 사티아그라하 브라흐마차라아(감각의 완전한 통제)가 그것이다. 불살생을 실천하기 위해 간디는 평생 채식을 했으며 진실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했으나 그 방식은 비폭력이었으며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해 금욕을 실천했다. 간디는 분명히 인도 독립의 최고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릅니다. 그는 보통 사람 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진리를 찾고자 했고 종교인보다도 철저하게 계율을 지켰으며 가장 실천하기 힘든 비폭력 반문명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간디가 실천해 보인 무욕의 사상과 무소유의 공동체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면서 새로이 조명 받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를 간디와 견주워서 언급 한다는 것은 조심 스러운 일이지만 “찬미받으소서”를 읽어보면 볼수록 간디가 떠오르고,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론[畏敬論]과 겹쳐지는 느낌이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은 거룩하며, 희생되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는 기독교 사상인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저서 <나의 삶과 사상>에서 주창하였다. 따라서 그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현대사회에 분노하는 순수한 사람이 있을 때에 역사가 바뀐다고 보았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