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63)
고속터미널 가는 길
예전에 나는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어디를 가기 위해 터미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터미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하는 거기에는 내가 즐겨 찾던 지하상가가 있었다. 쉬는 날이나 휴일 오후가 되면 난 주로 혼자 좌석버스를 탄다. 전철을 타면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여러 번 갈아 타야하기 때문에 주로 시간이 좀 걸려도 편하게 갈 수 있는 좌석버스를 이용 한 것이다.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덜컹 거리며 냄새나는 버스를 타면 늘 혼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복잡한 여러 일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창문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좋고 가방 안 파우치 안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화장품을 정리하기에도 딱 적당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면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잠이 들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고속터미널에 도착 한다. 복잡한 거리에 지독한 매연이 가득 넘치지만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고 이런 바쁜 일상 가운데 왠지 나만 여유로운 것 같아서 좋았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상가에 들어서면 지하상가만의 특이한 냄새가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무질서 하게 놓여 진 여러 물건들을 보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다. 목적을 두고 간 것이 아니니 꼭 무엇을 사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그냥 걷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으면 나도 관심 있는 척 쓱 들어가 보기도 하고 중간에 다리가 아프면 의자에 앉아 찬 음료를 마구 들이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서서히 허기가 밀려오게 마련이다. 그러면 나는 상가의 제일 끝에 위치한 식당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기에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즉석에서 만두와 찐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호주에서도 아직 혼자 밥 먹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한국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유독 거기에서만은 늘 혼자 많은 양을 먹고도 전혀 불편 하지 않았다. 식당이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해서도 그렇고 묵뚝뚝한 주인이 눈치 안주는 점도 그렇고 아니면 식당 조명이 조금 어두운 편이라 그랬을지도. 여하튼 금방 만든 따끈한 김치 만두로 배를 채우면 나는 다시 시장 같은 지하상가를 익숙한 듯 거닌다. 가게 앞에 잔뜩 헌 옷들을 쌓아놓고 천원에 몇 개…하며 옷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은근히 잘 살펴보면 괜찮은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가. 거기에 있는 옷들은 디자인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헌 옷이라 그런지 늘 뭔가 애잔함이 느껴지게 했다. 보풀은 조금 생겼지만 따스해 보이는 니트라던가, 집에서 마구 입을 수 있는 티 정도는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어 한참을 뒤적이고는 그냥 있던 그대로 던져 놓고 와도 눈치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중간쯤엔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들로 즐비하고 더 위쪽으로는 싱싱한 생화를 파는 곳이 나온다. 간혹 잎사귀가 조금 떨어졌거나 시들어 가는 꽃을 아주 싼 값에 팔기도 하지만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세심하게 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 날은 아무것도 건진 게 없이 빈손으로 집에 돌아 갈 때도 있고 두 손 가득 검은 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가는 날도 있는 고속터미널로의 작은 일탈. 나만 아는 어쩌면 나만 느끼는 소소한 재미. 이 글이 신문에 나오는 그날 나는 사랑하는 학생부 아이들과 작은 캠프를 떠난다. 바쁘게 쫓기는 일상 중 내 유일한 탈출구는 교회 수련회 이다. 조금은 호주에서 숨을 돌리고 나를 돌아보며 점검하는 시간. 그때만큼은 어른이라는 이름과 사모님 이라는 무게감도 내려놓고 한바탕 아이들과 어울리며 엉뚱하고 웃기는 주책바가지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늘 나를 장난꾸러기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비록 고속터미널에 가지는 못하지만 난 그때와 마찬가지로 두 손 가득 봉지를 챙긴다. 아이들에게 줄 간식이다. 향기로운 4월이 되면 괜히 이렇듯 가슴이 설레 여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생기니 하람이랑 나들이라도 가야겠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