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시간이 멈춘 땅 미얀마
신봉길 / 한나래 / 1991.12.1
미얀마는 서쪽으로 인도와 인도양, 북동쪽으로 중국, 동쪽으로 태국과 라오스에 접해 있다. 역사를 살펴보자면, 19세기 들어 아시아로 진출한 영국과 충돌하면서 3번에 걸친 전쟁 끝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혁명과 소음을 겪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1962년 쿠데타가 일어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경제침체가 계속되었다. 정치적 봉쇄로 인해 40여 년간 외부와 단절되었던 미얀마는 1990년 초 문호를 개방했다.

○ 목차
책머리에 = 5
1.시간의 흐름이 멈춘 땅 = 17
21세기의 땅, 근세의 숨결 = 19
소승불교의 가르침 = 23
쉐다곤 파고다 = 30
루비와 제이드의 땅 = 37
황금의 삼각 지대, 마약의 정치 경제학 = 43
론지와 슬리퍼 = 50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 나라 = 54
2.왕조의 역사 = 61
3.버마의 독립과 아웅산 장군 = 71
청년 장군 아웅산, 버마의 신화 = 73
일본의 버마 공작과 아웅산 신화의 시작 = 76
남기관 = 77
30인의 동지 = 79
일본의 버마 점령과 콰이 강의 다리 = 80
아웅산의 암살과 버마의 독립 = 82
4.버마식 사회주의, 빈곤에의 길 = 87
우누 민간 정부의 혼란과 퇴장 = 89
네윈의 등장 = 90
사회주의 사회로, 버마 방식으로 나가자! = 92
국유화의 추진 = 95
스스로 택한 빈곤 = 96
장난같이 해온 화폐개혁 = 99
세계 최빈국 공인 신청 = 102
5.랑군의 봄과 아웅산 수지 = 105
반정부 시위의 격화, 3월과 6월의 폭동 = 107
네윈의 퇴장 = 109
1988년 8월 8일 = 111
아웅산 수지, 틴우, 아웅지 = 114
군부 쿠데타 = 116
총선과 야당의 압승 = 118
아웅산 수지, 아버지와 딸 = 120
6.네윈, 카리스마의 종말 = 127
26년간의 절대 권력과 카리스마 = 129
네윈과 김일성 = 136
인야 호반에 칩거 중인 네윈 = 138
7.외로운 군부 = 141
‘슬록’, 신군부의 대두 = 143
군과 정치 = 146
군부의 실력자들 = 150
소몽 장군과 와다나베 의원, 애증의 일본 미얀마 관계 = 156
40년째 투쟁 중인 카렌 게릴라 = 162
‘미국의 소리’와 ‘BBC’ = 166
3년만에 문을 연 대학 = 172
8.한국과 미얀마, 그 인연과 앞날 = 177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의 그후 = 179
현대건설의 킨다 댐에서 유공의 석유 개발까지 = 188
9.미얀마는 어디로? = 195
부록 = 203
미얀마 개황 = 205
여행자를 위한 메모 = 207

○ 저자소개 : 신봉길
1955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서 아버지 (신달섭), 어머니 (조차녀)의 4남 1녀중 넷째로 태어났다. 대구중.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제12회 외무고시 (1978)에 합격 주유엔대표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 일본, 인도, 미얀마 등 아시아권에서 오래 근무했다. 주중공사, 주요르단대사, 주인도 특임대사를 지냈다. 2004년 이라크 김선일 사건 당시 외교부 공보관 (대변인)으로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북한 경수로원전지원기획단 특보로 2002년 북한을 여섯번 방문한 경험은 남북한 통합과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한중일협력사무국 (TCS) 초대 사무총장,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IFANS) 소장 등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동북아문제에 깊이 천착했다. 공직 재직 중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과 한림대에서 한반도국제정치론, 중국외교론, 북한개론 등을 강의했다. ‘한중일협력의 진화’ (2015), ‘시간이 멈춘 땅 미얀마’ (1992) 등의 저서가 있다.
대학재학시절 학교 신문인 ‘대학신문’의 학생편집장을 지낸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학자외교관 (scholar diplomat)으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중앙일보에 정기적으로 칼럼 ( ‘한반도 평화워치’)을 기고하기도 했다.

○ 출판사 서평
물질문명에 침습당하지 않고 자연의 순박함을 간직한 ‘미얀마’라는 나라의 역사, 문화에서 경제에 이르기까지를 저자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기행문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 미얀마 (Myanmar) 개관
미얀마 연방공화국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옛 버마 (Burma)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와 인도와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과 남동쪽에는 라오스와 태국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과 남서쪽에는 안다만 해와 벵골 만이 있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 내에서 가장 면적이 거대한 국가이며, 면적으로는 아시아에서 10번째로 거대한 국가이다. 2017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5,400만 명이었으며, 수도는 네피도이고 최대 도시는 양곤이다.
고대 미얀마에서는 북부에서는 쀼족이 살고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몬족이 모여 왕국들을 세워 살고 있었다.
이후 9세기경, 현재 미얀마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인 버마족이 들어와 1050년대에 버간 왕국을 세웠고, 점차 세를 넓혀 나가며 버마족의 언어, 문화,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미얀마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버간 왕국은 몽골족의 대침공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말았고, 그 자리에서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다투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따웅우 왕조에 의하여 통일되었고, 이후 잠시 동안이나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는 꼰바웅 왕조가 현재의 미얀마 지역과 함께 마니푸르와 아삼 지역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나 영국-버마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부터는 점차 영국 동인도회사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잠시동안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연합국에 의하여 해방되어 1948년 1월 4일에 독립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62년에 네 윈 주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다.
미얀마는 독립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류인 버마족과 수적 열세인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 분쟁으로 인하여 기나긴 내전을 겪어 왔다.
이 내전이 워낙 격렬했기에, 수많은 인권 탄압과 잔인한 학살들이 벌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결국 2011년에 군부가 2010년 총선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군부 정권은 공식적으로 해산하였고, 그 자리를 문민 정부가 들어서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았다.
이후 국부인 아웅 산의 딸인 아웅산수찌 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 갈등을 해소하면서 인권, 경제 부문 전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마저도 소수 민족에 대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종교적, 민족적 충돌은 여전하였다.
2015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문민정부와 민주주의를 더더욱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결국 2021년 2월 1일에 쿠테타를 일으켰고, 권력을 장악하며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고 말았다.
미얀마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비동맹 운동, ASEAN, BIMSTEC의 회원국이다.
보석류, 옥, 석유, 천연가스, 자연자원 등이 매우 풍부하며,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태양열 발전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명목 GDP는 5,670만 달러이며, PPP는 2억 2,15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빈부 격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부를 군부와 관련된 인물들이 틀어쥐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얀마의 인간개발지수는 189개국 가운데에서 147위를 차지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