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인생에서 버릴 토막은 없구나.”
– <디어 마이 프렌즈> 의 김혜자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며
목회자이며 연출가인 제게 있어서 드라마는 단지 시간을 때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드라마 한 편은 연기를 가르치는 제게도 큰 공부의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드라마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하여 수업의 재료들을 찾기도 합니다.
요즘 저는 tvN ‘디어 마이 프렌즈’ 라는 드라마를 통하여 많은 공부를 합니다. 진행되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는 근래 보기드문 탁월함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과 ‘꼰대’를 내세운 케이블 드라마가 시청률 5%를 넘기며 청춘들에게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마 연기하는 배우는 행복하고, 보는 시청자는 감동을 받는다는 증거입니다.
인생의 노년을 맞이하는 다섯 명의 평생지기 친구들과 주변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말년의 쓸쓸하면서 행복한 이야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큰 공감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특별히, 이 드라마에서 ’72세 4차원 독거 소녀’ 조희자 역을 맞고 있는 김혜자의 연기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오늘은 이번 역할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받는 원로 연기자인 김혜자와 한 언론사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 봅니다. 김혜자는 평소에 인터뷰를 싫어 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늘 대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연기로 다 쏟아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다시 말을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합니다.
지난 수십년 ‘한국의 어머니상’을 대표해온 김혜자는 이 드라마에서도 자애로운 엄마로 등장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조희자라는 인물은 깔끔하고 경우가 바르며 넉넉하고 예쁜 우리들의 엄마입니다. 하지만 수줍음도 많고 엉뚱한 면도 많은 발랄한 소녀이기도 한 이 엄마의 머리 속에서는 망각이라는 병이 퍼져 나가며 치매가 시작됩니다.
그런 조희자의 모습은 나비처럼 살랑살랑 날아오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벌처럼 가슴을 꾹 찌르기도 합니다. 늘 소곤소곤하며 조용하게 말을 하지만 조희자의 생각과 말은 우리에게 큰 울림과 여운을 줍니다. 연기를 하는 김혜자는 대본에 있는 여자(조희자)를 어떻게든 표현하려 할 뿐인데 참 쓸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한 행복하다고도 합니다.
비슷한 나이의 인물을 연기하면서 자신이 그 여자(희자) 같은 기분이 되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치매는 뇌가 줄어드는 병이라고 들었는데 머릿속이 어찌 될까 옛날부터 궁금했었는데 조용하게 진행되는 치매의 증상을 보며 긍금증이 더 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봉사활동 하러 파키스탄 지진 난 데 가면 큰 빌딩은 폭삭 무너졌는데 그 옆에 작은 집은 안 무너졌다. 큰 빌딩은 지반도 다지고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 무너지고 그 옆에 허술하게 지은 집은 멀쩡하더라. 그걸 보면서 도대체 땅속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치매는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다.” 고 말을 하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인 ‘희자’에게 붙은 ‘4차원 소녀’라는 애칭이 배우 김혜자에게도 어울린다는 평가에 대한 질문에는 “내가 그런가? 모르겠다. ‘소녀’는 철이 안 들었다는 얘기인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 같다.” 라고 하며 “소녀는 모르겠고…이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걸 느낀다. 나이 먹어서 뭐하나 했는데 이런 드라마 만나 연기하는 건 축복이다. 내가 다시 배우로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라고 하며 작품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맡았던 배역들에 비하면 이렇게 작은 역할을 하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대도 대본에서 볼 게 너무 많다고 합니다. 다섯 여자의 인생이 다 얽혀 있다 보니 대본 안에서 들여다볼 게 많다는 것입니다. 내 대사나 자신만의 역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본 전체에 숨어있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도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게 흥미롭고 진력이 안 난다고 합니다.
또 다섯 명의 여자가 연결된 장면이 많아서 한두 마디 하려고 다 함께 기다리며 촬영하는 게 많았는데 그동안 조연과 단역들이 (주연인 내가 연기하는 동안)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등장이 적은 배역이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작품을 집필한 ‘노희경 작가’ 의 작품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생각을 해서 같은 대사라도 다 다르게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면 연기도 다르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작품을 하든, 시청자의 눈에도 들고 싶고 작가의 눈에도 들고 싶다고 하면서 작가가 “난 그냥 썼는데 배우가 이렇게 표현해주네”라며 감탄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연출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배우를 만나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주문라는 내용, 그 이상을 연구하며 만들어 내는 배우는 연기를 이끄는 사람에게나 연기를 보는 사람에게나 모두를 만족시키기 때문입니다.
베테랑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것이 즐겁지 않냐는 질문에 “‘즐겁다’는 아니고, 반갑다. 너무 반갑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나. 다른 배우들 연기 보는 재미도 크다.” 고 말하며 “정아 역은 ‘나문희 이상 갈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하면서 매번 감탄하며 본다. 윤여정은 어떻고. 충남이 나이 어린 교수들에게 “니들이 제일 잘못한 건 니들이 얼마나 잘난지 모른 죄”라고 할 때, 고두심이 아픈 엄마에게 “나 속 썩이려고 병원 안가냐”고 악다구니 쓸 때 기가 막히지 않나. 박원숙이 옛 연인과 재회한 장면은 잠깐이지만 그간의 세월이 느껴졌고, 주현 씨는 얼렁뚱땅하는 것 같지만 다 표현한다. 신구 씨는 이번에 처음 연기하는데 정말 잘하는구나 한다. 내가 신구 씨를 이제야 처음 만난 걸 보면 아직 연기해야 할 게 한참인 것 같다.(웃음) 시청자도 딴 데서 못 본 걸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할 거라 믿는다.” 라고 합니다.
정말 이 드라마의 최고의 압권은 역시 캐스팅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최고의 배우들을 모았으며 최고의 배역을 부여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배우 김혜자에게 어떤 작품인가? 라는 질문에 “배우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드라마, 순하고 희망이 되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도 안 보는 드라마가 무슨 소용이 있나.(웃음) 이 드라마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하던데 이 드라마가 내게 그걸 다 충족시켜줬다.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걸 이뤄준 작품이다.” 라며 극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극으로서는 1인 11역을 한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내 꿈을 이뤄줬다면, 드라마는 이 작품이다. 최근작 중 단연 이 드라마가 최고다. 내가 그 여자로 인해 쓸쓸한 것도 좋다. 한없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쓸쓸한데, 좋다. 그 쓸쓸함이 좋다. 인생에서 버릴 토막은 없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평생을 대중들 앞에서 연기를 했던 70대의 노배우에게 주어진 새로운 배역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역이었습니다. 그것도 이전에 자신이 출연하던 작품들의 분량에 비하면 반도 않되는 작은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배역을 통하여 평생을 쌓아온 연기의 내공을 보여주켜 감동을 선사합니다.
치매에 걸려 죽은 어린 아들을 그리는 마음으로 몇 일을 헤매고 돌아 다니다가 극중에서 가장 단짝 친구로 나오는 ‘정아(나문희 역)’를 만났을 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정아에 대한 원망을 쏫아 놓는 장면은 연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이 분명합니다.
인생의 말년에도 작은 배역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작품에서도 인생에는 버릴 토막이 없다는 것을 배우는 원로 배우의 고백속에서 다시금 겸손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