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9월 5일,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 (Rudolf Ludwig Karl Virchow, 1821 ~ 1902) 별세
루돌프 루트비히 카를 피르호 (독: Rudolf Ludwig Karl Virchow, 1821년 10월 13일 ~ 1902년 9월 5일)는 독일의 병리학자·인류학자이다.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로 1856년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되어 세포 병리학을 세웠다. “모든 병원체는 세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으로 병의 원인이 세포의 기능적이고 형태적인 변화에 있다고 하였다.
1862년 프로이센 하원 의원이 되어, 진보당의 수령으로서 비스마르크의 군국주의에 반대하였다. 또한 독일 인류학회를 만들고 슐리만과 함께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하였다.
저서에 《세포 병리학과 조직학》, 《병적 종양론》 등이 있다.

– 루돌프 루트비히 카를 피르호 (Rudolf Ludwig Karl Virchow)
.출생: 1821년 10월 13일, 프러시아
.사망: 1902년 9월 5일
.국적: 독일
.직업: 병리학자, 인류학자, 정치가
.업적: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
.소속: 독일 베를린대학
.정당: 진보당
.저서: 세포 병리학과 조직학, 병적 종양론
프로이센 왕국 · 독일 제국의 의사이자 병리학자 · 인류학자 · 정치가이다.
병리학 연구의 선구자로서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다졌을 뿐 아니라 공중위생과 보건복지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빈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흔히 ‘병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 생애 및 활동
1821년 프러시아에서 태어난 루돌프 피르호 (Rudolf Ludwig Karl Virchow)는 1902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포병리학의 창시자, 사회개혁가, 정치가, 인류학자, 사회의학의 원조 등 다양한 타이틀을 얻으며 명성을 날렸고, 이 모든 분야를 의학에 통합시키고자 노력한 이론가이며 행동가였다.
그가 정초한 세포병리학은 오늘날까지도 질병의 최종 진단에 없어서는 안될 개념적 도구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이는 현대의학을 이전시대와 가르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로써 막연히 몸속에 들어 있는 체액의 불균형이라 정의된 고대 의학의 질병은 그 애매성을 벗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인 세포 속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비르쇼를 모든 질병의 원인을 인체의 최소구성단위로 분해하는 분자생물학적 의학의 선구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사실 베살리우스가 근대적 해부학을 굳건한 토대에 올려놓은 뒤, 질병의 자리는 간, 신장, 폐 등 눈에 보이는 장기 (organ)에서 그 장기 속의 기능적 단위인 조직 (tissue)으로, 그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cell)로,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세포 속의 분자와 유전자로 환원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 말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비르쇼의 세포병리학은 거시적 병리학을 미시적 세포병리학으로 이어주는 연결점이었던 셈이며 거시적 맥락을 잃어버렸다고 비판받는 현대의학의 선구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의학적 업적과 사회적 활동을 추적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세포에 돌리지도 않았고 질병을 세포의 수준에서만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혈액 속에 있는 알부민이나 피브린과 같은 단백질의 불균형에서 질병이 발생한다는 신체액설과, 아체 (芽體; blastema)라고 불리는 무정형의 구조물에서 세포가 발생한다는 로키탄스키 (Karl von Rokitansky; 1794 ~ 1878)를 맹렬히 공격하면서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omnis cellula a cellula)” 라는 유명한 경구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모든 세포가 이전 단계의 세포에서 유래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진리로 여겨진다.
- “의학은 사회과학” 주장
그의 의학사상을 환원주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 세포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에 있다. 비르쇼에게 몸은 “각각의 세포가 시민인 세포들의 국가”이고, 질병은 “몸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 (세포)들 사이의 투쟁”이며 “변화된 조건 속의 생명”이다. 몸은 세포들의 공화국이고 건강은 그 세포들의 민주주의가 구현된 상태이며 질병은 세포 민주주의의 파국이다.
이처럼 비르쇼 의학사상의 특징은 미시적이고 생물학적인 세포병리학과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정치학을 교묘히 결합시킨 데 있다.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학은 확대된 의학”이라고 주장할 만큼 그는 생물학적 의학과 사회적 의학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이는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하는 생물-심리-사회 모델 (bio-psycho-social model)의 초기적 형태라 할 수도 있다. 질병의 원인을 세포라는 몸의 구성단위에서 찾기는 했지만 존재로서의 세포보다는 그 세포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질병을 스스로의 생애를 가지는 자율적 존재로 보는 시든햄의 반 (半) 근대적 의학사상과 거리를 두면서도 몸을 구성하는 최소 구성단위만을 바라보는 물질적이고 환원적인 의학의 함정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체세포의 핵을 이식받는 난자 세포의 모습. 비르쇼는, 우리의 몸은 이와 같은 세포들의 공화국이며 건강은 이러한 세포들의 평등과 자유에 바탕을 둔 민주적 협동이라 했다.
하지만 그의 의학사상은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세균설 (접촉 감염설)과는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균설에 따르면 질병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독립적 생명체인 미생물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세포병리학은 외부적 요인보다는 신체 내부의 세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균설이, 질병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낭만적 의학을 끌어들여,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증거에 기반을 둔 과학적 의학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이 모든 전염병의 결정적 원인으로 밝혀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세균설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사회상황과 사회적 질병의 퇴치를 위해 싸워온 비르쇼의 다양한 업적을 검토해 보면 이러한 평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 “교육·경제정책 개혁” 처방법
1848년 프러시아 정부는, 생물학적 의학의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아올린 비르쇼를 실레지아 지방에 만연한 발진티푸스의 퇴치를 위한 조사관으로 파견한다. 그곳에 3주간 머무는 동안 그가 듣고 본 가난한 자들의 처참한 현실은 본래 자유주의적 정치성향을 갖고 있던 그의 본성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된다. 이후 그가 프러시아 정부에 제시한 처방은 놀랍게도, 위생과 영양상태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이고 개별적인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아닌,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포함한 교육과 경제정책의 전면적 개혁이었다. 발진티푸스가 만연한 궁극적 원인은 특정 세균이 아닌 열악한 생활조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라고 진단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그가 어째서 그토록 세균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설사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몸에서 일정한 세균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질병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결정적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세균의 존재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며 세균이 분비하는 독소가 발견되기 훨씬 전에 그 존재를 예측할 만큼 과학적 의학에 밝았지만 과학적 사실이 질병현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았다.
- 나치의 우생학 예견하고 비판?
그는 의학을 과학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정치적ㆍ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했다. 184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건강을 헌법적 권리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급진적이었으며, 독일 진보당의 하원의원으로서, 무력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결투신청을 받을 만큼 타협을 모르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또한 의학이 인간이 가진 예지의 최고 형식이며 모든 과학의 어머니라고 주장할 만큼 천진한 의학적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을 의학의 실천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물학적 과학에서 윤리적 규범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과학과 윤리를 대립이 아닌 조화의 관점에서 해석한 초기 생명윤리의 모범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독일 고고인류학회를 창립하고 트로이와 이집트의 발굴에 참여하는 등 인류학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병리학자로서 사람의 골격을 다루던 경험을 살려 두개골의 기형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초등학교 학생의 두개골 모양에 대한 전국적 조사를 벌여 순수한 독일 민족의 두상 (頭狀)은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아무튼 비르쇼는 근대의 과학정신을 철저히 내재화하면서도 질병과 건강을 대상화하거나 객체화하지 않고 인간의 존재조건이라는 바탕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그리고 열성적으로 실천한 위대한 의학 사상가로 기억되어 마땅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과학자와 의사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 영향
아이작 뉴턴 이후 과학적 방법론이 모든 학문을 휩쓸며 큰 영향을 미쳤다. 의학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의학은 의사들 (특히 귀족 출신의 엘리트들)의 반발에 의해 형이상학에 치우쳐져 있었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르네 데카르트의 근대 철학에 영향을 받아, (현재의 의학과 이전 세대의 의학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과학적 근거에 따른 의학’이 받아들어 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피르호라고 할 수 있다. 즉, Evidence Based Medicine은 서양의학에서도 19세기에 와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피르호는 학창시절 데카르트와 근대철학(특히 기계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에 ‘세포의 병이 신체를 병들게 한다.’ 라고 생각, 세포병리학 연구의 장을 열었다. 이는 피르호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데, 세포병리학 연구 이후로 자신은 색전증과 백혈병 연구로 명성을 쌓았고, 후대의 많은 의사와 의학자들이 피르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빛나는 업적들을 이뤄냈다. 실제로 피르호의 위 업적 덕택에 의학은 과거의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현대의학’ 이라 불릴 수 있게 되었으며 드디어 ‘과학’ 이라는 범주에 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피르호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의학의 패러다임은 그가 창시한 그것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당장 암의 진단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최종 단계의 확진은 암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생검해 세포병리학적으로 암세포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가 의학에 남긴 족적은, 염증의 삼대 임상 소견 (발적, 통증, 부종)을 일컫는 ‘피르호의 삼증상’ 등의 명칭에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피르호의 가장 큰 의학적 업적은 세포병리학이지만, 예방의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예방의학의 선구자로는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가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을 강타한 콜레라의 피해를 역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막아낸 인물로, 당시 의학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명망 있는 마취과 의사였던 존 스노우 덕분에 런던의 콜레라는 진정될 수 있었다. 피르호 역시 위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공중위생이 질병예방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공중보건운동을 직접 진두지휘 했다. 덕분에 독일의 공중보건은 진일보 하였으며, 실제로 전염병을 크게 예방하였다. 이는 전염병이 의학적 현상으로만 여겨질 것이 아니라 공공보건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건에 의해 크게 구애받는다는 것을 파악한 피르호의 혜안에 힘입은 바가 컸고, 질병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아이디어는 피르호의 정치적 입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인류학자로서의 피르호
당대 피르호는 의사로서 가장 유명했지만 역시 저명한 인류학자였다. 의학적 지식이 뛰어났던 피르호는 각 유럽의 민족들의 해부학적 비교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는 각 지방마다, 민족마다 유골들을 비교연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독일인이 타 인종에 비해 우월하지도 않으며, 순수민족이란 증거가 없다.’였다. 이 연구 결과를 받아 들이지 못한 아돌프 히틀러는 피르호를 후대에 깎아내렸다. 이 외에도 1,180편의 인류학 논문을 썼으며, 하인리히 슐리만과 더불어 트로이 발굴에 참가하였다. 덕분에 베를린 박물관이 풍족해졌다.
- 정치가로서 피르호
당대 가장 유명한 좌파 정치인이었던 피르호는 군 예산 증액을 항상 반대하였고, 대신 공중보건 및 위생 쪽으로 예산 집행을 하려 하였다. 이에 철혈재상으로 유명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는 정치생활 내내 대립하였다. 군 예산 증액을 언제나처럼 거부한 피르호에게 격노한 비스마르크는 결투신청까지 하였으나, 피르호의 재치로 이는 유야무야 넘어갔다.
피르호는 당대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죽자 신문에 ‘독일은 위대한 인물 4명을 잃었다. 위대한 의사, 위대한 자유주의자, 위대한 인류학자, 위대한 위생학자’ 라는 논고가 실렸을 정도였다. 그는 의학을 자연과학의 꽃이자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으로 여겼으며 실제로 두 분야(자연과학으로서의 의학, 사회과학으로서의 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의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변인이다.” 라는 신념 하에 수많은 정책을 실시하였고, 일생 내내 사치를 하지 않았다.
- 오진, 오판
독일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후두암을 잘못 진단하여 치료 시기를 놓치고 결국 이른 죽음을 맞게 한 흑역사가 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좀 더 오래 재위했다면 그 아들 빌헬름 2세의 온갖 삽질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도 어쩌면 실제보다 덜 참혹하게 일어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피르호의 오진은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프리드리히 3세의 암이 당대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종류의 암이었다는 사실, 1차대전과 같은 역사적 대사건이 단지 일국의 군주의 성향에 의해서 좌우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부분에서 피르호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제일 심각한 잘못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발견되었을때, 이것은 관절염을 앓은 현생인류의 화석이라 주장하며 연구를 막은 것이다. 피르호가 바로 독일이 그러한 현장을 두고도 고인류학 학문 주도에서 낙오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오판했던 이유는 피르호가 입수했던 화석이 하필이면 생존 당시에 심한 관절염을 앓은 개체였기 때문이다.

○ Honours and legacy
In June 1859, Virchow was elected to Berlin Chamber of Representatives.
In 1860, he was elected official Member of the Königliche Wissenschaftliche Deputation für das Medizinalwesen (Royal Scientific Board for Medical Affairs).
In 1861, he was elected foreign member of 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In 1862, he was elected as an international Member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In March 1862, he was elected to the Prussian House of Representatives.
In 1873, he was elected to the Prussian Academy of Sciences. He declined to be ennobled as “von Virchow,” he was nonetheless designated Geheimrat (“privy councillor”) in 1894.
In 1880, he was elected member of the Reichstag of the German Empire.
In 1881, Rudolf-Virchow-Foundation was established on the occasion of his 60th birthday.
In 1892, he was appointed Rector of the Berlin University.
In 1892, he was awarded the British Royal Society’s Copley Medal.
The Rudolf Virchow Center, a biomedical research center in the University of Würzburg was established in January 2002.
Rudolf Virchow Award is given by the Society for Medical Anthropology for research achievements in medical anthropology.
Rudolf Virchow lecture, an annual public lecture, is organised by the Römisch-Germanisches Zentralmuseum Mainz, for eminent scientists in the field of palaeolithic archaeology.
Rudolf Virchow Medical Society is based in New York, and offers Rudolf Virchow Medal.
Campus Virchow Klinikum (CVK) is the name of a campus of Charité hospital in Berlin.
The Rudolf Virchow Monument, a muscular limestone statue, was erected in 1910 at Karlplatz in Berlin.
Langenbeck-Virchow-Haus was built in 1915 in Berlin, jointly honouring Virchow and Bernhard von Langenbeck. Originally a medical centre, the building is now used as conference centre of the German Surgical Association (Deutsche Gesellschaft für Chirurgie) and the Berlin Medical Association (BMG-Berliner Medizinische Gesellschaft).
The Rudolf Virchow Study Center is instituted by the European University Viadrina for compiling of the complete works of Virchow.
Virchow Hill in Antarctica is named after Rudolf Virchow.
- Eponymous medical terms
Virchow’s angle, the angle between the nasobasilar line and the nasosubnasal line
Virchow’s cell, a macrophage in Hansen’s disease
Virchow’s cell theory, omnis cellula e cellula – every living cell comes from another living cell
Virchow’s concept of pathology, comparison of diseases common to humans and animals
Virchow’s disease, leontiasis ossea, now recognized as a symptom rather than a disease
Virchow’s gland, Virchow’s node
Virchow’s law, during craniosynostosis, skull growth is restricted to a plane perpendicular to the affected, prematurely fused suture and is enhanced in a plane parallel to it.
Virchow’s line, a line from the root of the nose to the lambda
Virchow’s metamorphosis, lipomatosis in the heart and salivary glands
Virchow’s method of autopsy, a method of autopsy where each organ is taken out one by one
Virchow’s node, the presence of metastatic cancer in a lymph node in the supraclavicular fossa (root of the neck left of the midline), also known as Troisier’s sign
Virchow’s psammoma, psammoma bodies in meningiomas
Virchow–Robin spaces, enlarged perivascular spaces (EPVS) (often only potential) that surround blood vessels for a short distance as they enter the brain
Virchow–Seckel syndrome, a very rare disease also known as “bird-headed dwarfism”
Virchow skull breaker, a chisel-like device used to separate the calvaria from the rest of the skull to expose the brain in autopsies
Virchow’s triad, the classic factors which precipitate venous thrombus formation: endothelial dysfunction or injury, hemodynamic changes, and hypercoagulability

○ 저서
주요 저서에 《세포 병리학과 조직학》, 《병적 종양론》 등이 있다.
- Works
Mittheilungen über die in Oberschlesien herrschende Typhus-Epidemie (1848)
Die Cellularpathologie in ihrer Begründung auf physiologische und pathologische Gewebelehre., his chief work (1859; English translation, 1860): The fourth edition of this work formed the first volume of Vorlesungen über Pathologie below.
Handbuch der Speciellen Pathologie und Therapie, prepared in collaboration with others (1854–76)
Vorlesungen über Pathologie (1862–72)
Die krankhaften Geschwülste (1863–67)
Ueber den Hungertyphus (1868)
Ueber einige Merkmale niederer Menschenrassen am Schädel (1875)
Beiträge zur physischen Anthropologie der Deutschen (1876)
Die Freiheit der Wissenschaft im Modernen Staat (1877)
Gesammelte Abhandlungen aus dem Gebiete der offentlichen Medizin und der Seuchenlehre (1879)
Gegen den Antisemitismus (1880)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