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6)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10. 계약사회 – 도장과 사인
한국인의 형태에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인간관계에서 정과 의리가 강조되고, 작은 거래에서 계산을 꼼꼼히 하는 행위는 야박하게 받아진다. 이는 서양인의 계약 중심 사고와는 배치된다. 서양사회에서 모든 거래는 문서로 명시되고, 액수는 크든 적든 철저히 따져서 수수 되어야 한다.
중요한 일은 늘 조건이 깨알처럼 적힌 용지를 읽고 [싸인/sign; 서명/signature]을 함으로써 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이 계약서인 셈이다. 방을 하나 얻는데도 세입자와 집주인의 권리 및 의무가 임대계약서에 아주 세밀하게 명시된다. 사람을 고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고받은 편지도 계약 효과를 갖는다. 영미사회에서는 도장 대신 서명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액수가 큰 사항은 변호사를 통해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번 서명함으로써 어떤 계약의 당사자가 되면 잘 몰랐다든가 정황을 참작하여 봐 달라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를 할 때도 소유자는 나타나지 않고 부동산 중개인과 변호사가 대신 일하며 서류로만 처리한다. 부동산 문제, 자동차 사고 등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는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고 빠져 버리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직접 만나 동정을 구한다든가 타협을 보기 어렵다.
서양인들의 이런 타산적이고 메마른 생활태도는 셱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서도 잘 풍자되었지만, 이를 좋다 나쁘다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정과 의리를 내세우며 적당히 하는 거래나 인간관계가 나중에 더 큰 분쟁으로 발전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또 한국인은 [운용의 묘]를 살린다거나 [신축성 있게 운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지만, 이는 말로만 가능하지 실제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때가 많다.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거래에 있어 우리와 서양인간 차이점을 모르거나 알아도 습관적으로 소홀히 함으로써 손해를 본다.
영미사회에서 주택을 임대할 때는 계약 서류를 잘 살펴서 해야 한다. 그 서류에는 주택 내부의 이상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체크 리스트가 들어 있다. 이것을 미리 확실히 해 두면 나중 분쟁을 막을 수 있다. 값이 나가는 상품 구입 또한 마찬가지다.
하숙집들은 학생이 사정상 2,3일만 더 있게 되면 추가분을 계산해서 돈을 받는다. 서양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야박하게 느껴진다. 넓은 집에 자녀 없이 사는 노부부가 빈방을 세놓는 일이 있지만, 이들도 생계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지라도 돈 계산은 역시 철저하다.
해방 후 후한 원조물자로 도와준 미국인에 대해 듣고 자란 한국인들은 서양인은 부자이며 인정 있다는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현지에 나와 보면 그런 감각은 싹 달라진다. 이것도 일종의 문화충격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마리아의 여인/The good Samaritans/누가복음 10장, 30-35절)의 미국인 이미지와 현지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야박한 서양인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서양인들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겠다는 집념이 우리처럼 강하지 않아 공익을 위해 기부하는 사례가 많다. ‘야박하게’ 모은 돈이 종교단체를 비롯한 각종 공공단체를 통해 한때 한국 같은 나라에서 큰 선심으로 받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전통이 되다시피 한 공공성을 띤 자선사업과 개인간 거래는 차원이 다르다.
11. 홀로 지내는데 익숙해져야
“한국인들은 집단 속에서 일한다. 혼자서 하는 일은 고독하고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살아본 서양인들이 한국인에 대하여 한 평이다. 우리의 성장과정을 생각해보면 맞다. 우리가 가정 밖의 활동 가운데 개인으로서 독립해서 창의적으로 한 일이 별로 없다.
[나] 개인보다도 [우리나라] [우리 학교] [우리 모임]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더 귀에 익숙하다. 지도자들은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며 개인의 희생과 획일적인 사고와 행동을 강요해온 게 사실이다.
[집단주의/collectivism]의 반대가 [개인주의/individualism]다. 개인주의는 가능한 한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최대로 옹호하자는 사상이다.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을 먼저로 하는 사상 자체에 잘못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집단주의는 전체 이익이라는 구실 아래 [전체주의/totalitarianism], 독재주의로 변질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런 집단주의와 인구 과밀이 섞인 결과 한국에서는 인간교류가 아주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서울의 한 샐러리맨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그는 조기 축구 등 클럽의 회원으로 새벽 일찍부터 다른 회원들과 근처 공원에서 어울리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자가용 또는 전철로 출근할 때도 근처에 사는 직장동료와 함께 갈 확률이 높다.
낮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가고, 그 후에는 찻집에서 30분 정도 잡담을 즐기는 일도 흔하다. 퇴근 후에도 들러야 할 동창회, 종친회, 계, 강연회, 동호인 파티 등 모임이 한두 건은 꼭 있다. 국회의원이라면 주말에 결혼식만 십여 군데를 들러야 하는 것이 통례라고 하며, 가정주부도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관계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크게는 같다. 서울에 전화를 해보면 주말에도 젊은이는 집에 없다. 이런 문화에서 살다가 해외로 나오면 적응하기 어렵다. 도시 근교 웬만한 거리에도 낮에 사람이 없다. 있다 해도 외국인들과 우리식으로 밀착되어 지내기 어렵다. 이들 자신들끼리도 우리처럼 밀착되지 않는다.
영 미국가의 중년 남자들이 주말을 보내는 것을 보면 우리와 아주 다르다. 이들은 대개 부부가 집수리나 정원 손질을 하면서 보낸다. 한국 남자들에게 이게 어렵다. 해외에 나온 한국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가족과 떨어져 와 지내는 유학생들의 경우는 더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예외 없이 유학생회를 조직하고 서로 어울리곤 하지만, 그래도 외롭다. 이런 상황에서 이따금 실수를 하게 된다. 식당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싸움을 벌여 경찰의 신세를 진다든가 카지노에서 생활비를 날리고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 영미지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외로움을 덜 느끼려면 한국에서 익숙해진 집단주의 생활습성을 빨리 버려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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