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8년 11월 24일, 프랑스의 귀족 장 드 뒤누아 (Jean de Dunois, 1402 ~ 1468) 별세
뒤누아 백작 오를레앙의 장 (프: Jean de Dunois, 대개 오를레앙의 서자 혹은 오를레앙의 장, 1402년 11월 23일 ~ 1468년 11월 24일)은 오를레앙 공작 루이 드 발루아 (Duc d’Orléans)와 마리에트 앙갱 (Mariette d’Enghien)의 사생아였다.
– 장 드 뒤누아 (Jean de Dunois)
.출생: 1403년 2월, 프랑스 파리
.사망: 1468년 11월 24일, 프랑스 르 에이 르 로제
.부모: 루이 1세 도를레앙 공작, Mariette d’Enghien
.형제자매: 샤를 1세 도를레앙
.배우자: 마리 르베(Marie Louvet), 하르쿠르의 마리(Marie of Harcourt)
.자녀: François I, Duke of Longueville, 캐서린 도를레앙
.손주: Louis I d’Orléans, duc de Longueville, 앤 도를레앙 롱게빌 등
그의 경력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은 대개 “오를레앙의 사생아” (“Bastard of Orléans” (bâtard d’Orléans; 바타르 드를레앙)라고 불렸다. 그가 왕실 가문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배다른 형의 포로신세로 인해 사실상의 첫 번째 계승자가 될 자격이 되었던 것이다.
1407년 아버지 루이가 암살되었고, 배다른 형 샤를은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어 10년간 구금되었다. 오를레앙 가문에서 유일한 성인남자는 이제 장 밖에 없었다.
샤를 6세의 치세 때 그는 프랑스 내란에서 아르마냐크파로서 참가해 1418년 부르고뉴파에게 사로잡혔다. 1420년에 해방된 뒤 그는 도팽 샤를을 섬기며 백년 전쟁에서 잉글랜드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백년 전쟁때에는 오를레앙 공략 총사령관이 되어, 잔 다르크와 함께 오를레앙의 포위를 진행했다. 그는 이 전투 이후 잔다르크와 행동을 함께하며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휘하에서 전투를 벌였다.
또 백년 전쟁 종결후 오랜 전우였던 알랑송 공 장 2세를 체포했다 (죄목은 불명).
샤를 7세 사후, 그의 후계자에게 불만을 품은 뒤누아 백작은 1465년 공익 동맹 (리그 뒤 비앙 퓨브리크)에 참가했다.
- 결혼과 자손
그는 1422년 4월 부르주에서 마리 르베 (Marie Louvet, 1426년 사망)와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1439년 10월 26일 하르쿠르의 마리 (Marie of Harcourt, 1464년 사망)와 2번째 결혼을 올렸고, 그녀는 파르트네의 영주권을 갖고 있었다.
슬하에 2명의 아이를 두었다.
프랑수아 다를레앙-롱그빌 (François d’Orléans-Longueville; 1447 ~ 1491년), 뒤누아 백작, 탕커빌, 롱그빌, 몽고메리, 바렝그벡 남작, 멜룬의 자작, 프랑스의 시종, 도팽과 노르망디의 지배자, 노르망디의 시종과 총사령관 등. 1466년 7월 2일 아그네스 드 사부아 (1445 ~ 1508년)와 결혼했다.
카트린 다를레앙 (Catherine d’Orléans; 1449 ~ 1501년) – 루시 백작 장 7세 (요한 폰 잘브뤼겐 (John VII of Saarbrucken, 1430 ~ 1492년)와 1468년 5월 14일 결혼했다.
- 작위, 칭호
프랑스 대시종(1403년 – 1468년) 1살때부터
바르보네 영주(1421년 – 1468년)
모르텡 백작(1421년 – 1425년)
생소뵈르 자작
피리고드 백작(1430년 – 1439년)
뒤누아 백작(1439년 – 1468년)
롱그빌 백작(1443년 – 1468년)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