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12월 8일,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 ~ 1957) 출생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년 12월 8일 ~ 1957년 11월 24일)는 멕시코의 화가이다.

–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본명: 디에고 마리아 데 라 콘셉시온 후안 네포무세노 에스타니슬라오 데 라 리베라 이 바리엔토스 아코스타 이 로드리게스 (Diego María de la Concepción Juan Nepomuceno Estanislao de la Rivera y Barrientos Acosta y Rodríguez)
.출생: 1886년 12월 8일, 멕시코 과나후아토
.사망: 1957년 11월 24일, 멕시코 멕시코시티
.배우자: 에마 우르타도 (1955 ~ 1957년), 프리다 칼로 (1940 ~ 1954년), 과달루페 마린 (1922 ~ 1928년, 이혼), 안젤리나 벨로프 (1911 ~ 1921년, 이혼)
.시대: 벽화주의, 립체파, 근대 미술, 사실주의, 인상주의, 탈인상주의, 사회적 사실주의
.영향을 받은 사람: 프리다 칼로, 오카모토 다로, 존 T. 비거스, 루이스 네벨슨, 벤 샨, R. C. 고먼
.종교: 무종교 (무신론)
생전에는 멕시코 미술계의 거장으로 유명하였으나 사후에는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 훨씬 유명하다. 여성편력으로 인해 그녀와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프리다와 결혼 후에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남겼으며 다양한 작품도 남겼다.
1954년 7월 프리다가 먼저 사망한 후 3년 4개월 뒤인 1957년 11월 24일, 뇌일혈로 저택에서 사망한다.
화장되어서 프리다의 곁에 있고 싶어했지만 그 유언은 이뤄지지 않고 돌로레스 유명인사 묘지에 매장되었다.

○ 생애 및 활동
과나후아토주(州)에서 출생하여 멕시코 시에 있는 국립 미술학교에서 배운 후에 에스파냐,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로 연구 여행을 하고 1910년 파리에 정주하였다.
그는 모딜리아니와 친교를 맺고 또 바토 라부아르 (洗濯船)의 전위 화가인 피카소, 브라크, 그리스 등과 사귀어 1910년대의 큐비즘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당시 시인 아폴리네르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파리의 화단에 몸을 담지 못하고 1921년 멕시코로 고대 문화를 탐구하였고 또 당시 멕시코에 대두한 혁명적인 정신에 공명 (共鳴)하여 참다운 민중화가로서 모든 계층이 이해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결심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한때 판화 (板畵, tableau)를 그만두고 민중이 모이는 장소에 거대한 벽화 (프레스코)를 그리는 일에 열중하였다.
문부성 (文部省), 보건성, 차핑고 농업학교, 호텔, 레폴마 등의 벽화는 1920년대에 제작한 작품이다.
그후 1930년대에는 미국의 초청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의 증권거래소와 디트로이트 미술학교에도 벽화를 그렸다.
1920년대 말 리베라, 오로스코의 벽화 그림들이 미국에 알려졌고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의 시작과 함께 대중 예술 지원 정책을 세운다.
이로 인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다수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는 개념이 생격났다.
1930년 칼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리베라는 오래된 예술인 마을 몽고메리 거리에 스튜디오를 두고 일하면서 미국의 문화를 높이 평가했다.
1932년 리베라는 중서부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로 자리르 옮긴다. 굴지의 기업가 헨리 포드의 주문으로 디트로이트 미술학교에 노동자들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1933년에 완성된 이 벽화는 미국의 공업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리베라 자신도 자신의 주요한 작품으로 인정할 정도. 그러나 이 프레스코 벽화는 급진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33년 록펠러 가문에서 뉴욕 록펠러 센터 안을 장식할 벽화를 주문했을 때는 리베라는 그 벽화에 20세기 사회와 정치, 산업과 과학의 가능성을 모두 그리고자 했다.
록펠러 센터 내 RCA의 그림 속에는 노동자들이 벌이는 거대한 메이데이 행진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 행진을 이끌며 노동자들을 마치 그리스도처럼 보듬고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레닌의 초상이 선명하게 그림 속에 들어가 있었고, 잠시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 이 초상을 제거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러나 리베라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이 벽화는 파괴되었다.
1933년 12월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좌파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찬사를 받았지만, 보수파와 기업주들로부터는 경멸을 샀다.
1940년대에도 여전히 멕시코를 사랑했으며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그려냈고 1957년 11월 14일 멕시코시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후 그는 그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 프리다 칼로의 곁에 잠들기를 원하였지만 결국 무산되고 멕시코시티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 평가
그의 형태와 색채는 모국의 전통과 국민성에 뿌리를 박은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멕시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대표작으로 프라드호텔의 대벽화 《아라메다 공원의 일요일의 꿈》(1948), 《헬렌 윌스 무디의 초상》 (1930), 《농민지도자 사파타》 (1931) 등과 중앙정청, 교육부, 차핑고농업학교 등의 벽화 및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주식거래소의 장식화 등이 있다.
작품의 특색은 멕시코 민중에 대한 애정이 넘쳐 흐르며, 유럽회화의 전통을 멕시코의 전통에 결합시키려 한 점에 있으며, 멕시코 근대회화의 4대 거장, 즉 리베라, 시케이로스, J.C.오로츠코, R.타마요 중에서도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1933년 12월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좌파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찬사를 받았지만, 보수파와 기업주들로부터는 경멸을 샀다.
1940년대에도 여전히 멕시코를 사랑했으며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그려냈고 1957년 11월 14일 멕시코시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후 그는 그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 프리다 칼로의 곁에 잠들기를 원하였지만 결국 무산되고 멕시코시티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 화려한 여성편력
디에고 리베라는 자신의 예술적인 창조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다.
그의 첫 번째 아내로 유명한 안젤리나 벨로프는 러시아 출신의 멕시코 화가다. 리베라하고는 1909년 말에 만나 1911년에 결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둘의 관계는 꽤 낭만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폐합병증으로 2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거기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아서 벨로프가 리베라의 그림 활동을 위해 나가서 일을 하는 등의 여러 희생을 했다. 그러나 리베라는 그녀에게 이미 마음이 떠나버렸고 1921년 이혼을 했다. 참고로 벨로프는 리베라의 영향을 받아 작품이 어두워졌고 이혼한 후 다시 재혼하지 않았다.
두 번째 아내인 과달루페 마린은 멕시코의 모델이자 소설가다. 리베라의 그림 모델이 되면서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1922년 결혼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리베라를 보고 1928년 이혼하고 바로 시인 호르헤 쿠에스타라는 사람과 결혼했으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1933년 이혼했다.
세 번째 아내는 그 유명한 프리다 칼로다. 결혼 후 프리다는 디에고와 여러 작품 활동을 했지만 디에고의 여성 편력으로 이혼과 재결합을 했다. 과거에 겪었던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해서 그녀는 평생 아이를 원했지만 모두 유산했다. 이혼 후에도 여러 작품을 그리면서 활동을 열심히 했으며, 재결합 후 여러 작품을 남기고 공산주의 활동에 나서다 폐렴의 재발로 인한 폐경색으로 1954년 7월 13일에 사망하게 된다. 사망하기 8일 전 수박들의 단면을 통해 자기 인생의 고통스러웠던 면을 승화시킨 Viva la Vida라는 그림을 유작으로 남겼다.
1954년 프리다 칼로 사망 후 1955년 마지막 부인인 자신의 에이전트이자 출판 편집자 에마 우르타도와 바로 결혼을 했다. 하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리베라는 1957년 사망했고 에마 우르타도는 리베라와 2년 남짓이라는 결혼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녀는 벨로프와의 사이에서 2살에 요절한 아들이 있었고, 벨로프와 결혼 중에 사귄 마리아 보로비에프 스테벨스카와 낳은 딸인 무용가이자 배우인 마리카, 과달루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이자 건축가로 유명한 루스를 두었다. 또한 칼로의 모델이기도 했던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는 그의 모델이기도 했는데 이를 넘어서 그녀와 불륜을 저질렀단 얘기가 있다.

○ 작품
안젤리나 벨로프의 초상화 (1909)
우물가의 여인 (1913)
두 여인 (1914)
게릴라 (1915)
페온의 해방 (1923)
착취자들 (1926)
풍요의 대지(1926)
난장판인 부자들의 밤 (1928)
무기고에서 (1928)
월스트리트 연회 (1928)
빈자들의 밤 (1928)
농민 지도자 사파타 (1931)
동결 자산 (1931)
캘리포니아 알레고리 (1931)
교차로에 서 있는 남자 (1933)
꽃을 나르는 사람 (1935)
멕시코 역사 (1935)
작공 (1936)
멕시코인 인생의 사육제 (1936)
루페 마린 초상화 (1938)
상징적 풍경 (1940)
무어 박사의 손 (1940)
팬 아메리칸 유니티 (1940)
나타샤 겔만의 초상 (1943)
카라를 안은 누드 (1944)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