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성탄절과 연말연시라서 몸도 마음도많이 바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제가 정리한 잡기장 하나를 올릴려고 하는데 부탁은 너무 빨리 읽지 마시고 천천히 읽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금년 (2023년)도 하반기에 두권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 두 권 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쓴 것입니다. 먼저 올리려는 책은 베트남 출신 미국시민 응우옌의 “동조자”이고 다음에 올릴 소설은 한국 출신 이민 2세 그레이스 조가 쓴 “전쟁 같은 맛”입니다. 이 책은 미국 필라델피아 인문학교실에 소개하였더니 2024년 1월 모임에서 독서토론의 주교제로 하겠다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여튼 연휴가 이어지는 때인지라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계신분들은 제가 요약한 잡기장을 우선 천천히 한번 읽어 보시고 관심이 가시면 그 소설을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전쟁 같은 맛
- 여기에 남겨놓는 <잡기장>은 최근에 읽은 소설 <전쟁같은 맛, Tastes Like War : A Memoir> 에서 직접 옮겨왔거나, 거기에 내 생각을 약간 덧붙여서 정리해둔 잡문이다.
<전쟁같은 맛>은 미국이민 1.5세라고 할수 있는 그레이스 조(Grace M. Cho)가 자신을 낳아준 친 어머니의 지난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쓴 자서전적이며 회고론적 소설이다. 그레이스 조는 상선에서 선원과 선장으로 일하던 백인 아버지가 부산에 들어왔다가 한국인 접대부였던 군자를 한 미군부대 클럽에서 만나 낳은 혼혈아요, 튀기였다. 애기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레이스 조는 지금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 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녀의 처음 책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 Shame, Secrecy and the Forgotten War 2008>이다.
이번에 읽은 책 <전쟁같은 맛>은 2021년에 출판되어 여러개의 상을 받았으며, 한국어 판은 토론토대학 교수 주해연에 의해 2023년에 번역되어 <글항아리>가 출판하였다.
그레이스 조의 어머니 군자는 중학교 정도를 다녔고, 한국전쟁 후 미군 기지촌에서 waitress, 접대부 혹은 양공주로 일하다가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그녀를 낳고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레이스가 아마 2,3살 정도였을 때였다. 이 소설은 그런 어머니가 조현병으로 돌아가시기 까지의 일생을 <무섭도록 솔직하게> 기록하면서 동시에 <사려 깊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한 인간의 삶과 죽음, 한 가족의 경험과 고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과 그들 가족의 경험이 어떻게 사회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느지를 분석하며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소설이라고 할수 있다.
다음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놓았던 데서 옮겨 쓴 나의 잡기장이다.
- 나는 이 책을 <내가 소리질러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친다>
- 많은 이민자들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한국을 떤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한국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 언어를 잃으면 친밀감도 잃게 되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서도 소외된다.
- 내 어머니는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존재였다.
-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엄마를 억지로 먹게하는 방법은 <그럼 이 음식 버릴거야!>하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 엄마는 절대로 분유를 먹지 않았다. 분유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전쟁과 전후,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미국이 보내준 구호품 분유에 질려버린 난 엄마는 말했다. <진절머리가 나 ! 분유는 전쟁같은 맛이야 !> (미국의 식량원조에서 쌀이나 보리를 기다렸던 한국인들은 그만 계속된 분유 배급에 전국민이 설사를 할 정도였다)
- 엄마가 무얼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주체성의 표현이었고, 더 나아가 거대한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반란행위였다. 엄마는 <무얼 먹을 것인가?> 보다 <왜 이걸 먹어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단일 국가, 단일 민족>이라는 일국일민주의를 깨트린자들로써,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 될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공립학교엔 다닐수가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 1960년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기관과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들을 외국에 입양시킬 때,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없는 부모들에게 아니를 만들어 주는 공급기관의 역활을 했다.
-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외친다 <자유는 위험하다. 노예제도는 평화롭다.> 트럼프를 포함한 이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이민자들을 노예화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 사회를 가장 평화스런 사회로 만든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엄마의 물음에 대한 엄마의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네가 성공하는 것이 내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 우리 엄마처럼 미군부대의 클럽에서 웨이트레스나 양공주로 일한 사람들은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성노동을 했지만 국가로 부터 단 한번도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젊은 남자 군인들만이 아니라, 사실 젊은 여자 육체 노동자들에게서도 크게 빚진사회인데, 이들은 단 한번도 감사의 말을 듣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악의 근원인양 근절의 대상으로만 취급을 받아왔다.
- 앤 앨리슨(Anne Alison)이 쓴 <일본 어머니들의 오벤토 :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써의 도시락, Japanese Mothers and Obentos : The Lunch-Box as Ideological State Apparatus>에 의하면, 벤토를 포함한 도시락, 일상의 먹거리들은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결정하고, 세뇌하고, 강제하는 것이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자신이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인간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자본과 권력이 <이런 것은 먹지 말고, 저런 것은 먹어도 좋다>는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벤토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다> 앨리슨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경찰이나 군대 같은 국가기구는 무력으로 사회와 시민들을 규제하지만, 언론, 종교, 교육 같은 기관들 역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써 은근히 시민들을 억압하고 규제하며 통치한다.
-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엄마의 사랑 때문>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마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학업의 목표를 성취하여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어 보려는 교육열 때문에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싸준다. 그런데 그 뒤에는 국가가 있다. 국가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이루어가기 위해, 계획되고, 통제되고, 계산된 도시락을 만들도록 함으로 국가를 경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는 초기 엄마가 주는 음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국가의 미래는 국가가 아이들과 시민들에게 무엇을 먹도록 권장하고 강제하는지, 또 무엇은 먹지 못하도록 하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 이것이 음식의 사회학이다.
- 한미동맹을 위해 오랫동안 가장 크게 공헌하고 희생을 치룬 이들은 양공주들이다.
- 한국인 열명에게 <없으면 못사는 게 무어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들 중 일곱명이 <김치>라고 대답했다.
- 엄마에게 있어서 김치는 생존의 상징이었고, 김치만 있으면 인생의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할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우리 엄마다.
- 어느날 종순이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린 아들이 서랍장에 깔려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 종순은 부르짖었다. <내가 우리 아들을 죽였어! 내가 우리 아들을 죽였다고!> 그후 종순은 경찰이 왔을 때도 울면서 부르짖었다. <우리 아들은 내가 죽였어요! 내가 죽였어요! 나는 먹고 사느라고 우리 아들을 돌보지 못했어요!> 그후 종순은 기소되어 최종법정에서 2급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년 형을 선고 받았다. 미국 사람들과 미국의 경찰과 미국의 법정은 종일 일하고 돌아온 엄마가 사고로 죽은 아들의 시체 앞에서 계속 <내가 죽였어요! 내 아들은 내가 죽인 거예요!> 라는 말의 의미를 알수가 없는 것이다.
-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은 지난날 가난과 폭력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 병이다. 조현병, Schizophrenic 이란, 지난날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그 후 굴욕과 학대, 차별과 따돌림을 받는 등 백인 동네에 사는 유색인종들에게서 더 높이 발생되는 질병이다.
- 서양의학에서는 <정신질환>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 <한>이라는 한국말은 영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한 말이다. <한>이란 불의에 대해 풀리지 않은 억울함이다. <한>이란 맺혀서 풀어지지 아니한 멍울이다. <한>이란 응어리진 비통함이다.
- 나는 한국어로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말하는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적, 이론적, 합리적, 과학적이라고 하는 서구인들은 감성적, 서정적, 시적, 통찰적 동양인들을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오늘날은 감옥과 산업도 서로 Link가 되어 연계되어 일한다. 소위 말하는 <감옥 –산업 복합체, Prison – Industrial Complex>가 그것이다. 감옥은 국가기관에서 점차 개인기업으로 하청이 되거나 민영화 되어간다.. 그래서 <감옥 –산업 컴플렉스> 사업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더 늘릴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또한 감옥도 비행기의 1등석, 비지니스석, 이코노미석 처럼 다양화하고 감옥에서의 서비스의 질 또한 향상시켜 나간다. 거기에 따라서 요즘은 감옥내에 있는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 사회에 있는 정신질환자 의료시설 보다 숫자도 늘어나고, 질도 향상되고 있다. 로스안젤리스 카운티 감옥, 시카고 쿡 카운티 감옥, 뉴욕 라이커스 아일랜드 감옥은 미국의 3대 정신과 입원 시설이 되었다.
- 2009년 1월 7일 <뉴욕 타임스>는, 한국에서 미국인을 위한 성매매업소를 조성하는데 지난 날 한국정부가 했던 역할을 밝힌 전직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 중에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정부는 미군들을 위한 포주였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 이제는 120여명이나 되었고 이들은 힘을 합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8년이 지난 후 한국의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그들 여성들을 창문이 막힌 방에 강제로 불법 수용했고, 성병치료를 강제하는 등 중대한 인권 침해를 했다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마침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이는 그동안 말해온 <자발적 매춘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나라와 정부가 무력하고 힘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되어진 매춘부>라는 생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 한국정부나 의료기관이 매춘부들에게 성병치료를 강요한 것도 사실 매춘부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취했던 조치가 아니라, 성매입자들인 미군의 요청에 의해서, 미군들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도 드러나게 되었다.
- 세상은 불공평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늘 불공평해 왔고, 지금도 불공평하고, 앞으로도 불공평할수 밖에 없다. 불공평은 없앨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사는 이런 세상을 떠나야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일 것이다.
- 뒤 늦게나마 알았다. 우리를 구해주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그 사람들과 그 사회와 그 국가가 사실은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것을 !
- <원 타임, 노 러브, – One Time, No Love!> 엄마는 늘 <한번만 주면 정 없어!>하는 한국말을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원 타임, 노 러브!>
- 사실 밥을 먹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다. 그것은 종교의식과 같다. 그래서 밥상 앞에서는 합장을 하던, 성호를 긋던, 아님 기도를 하게된다. 엄마에게 있어서 밥상을 차리는 행위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을 넘어서, 엄마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후기>
- 그레이스 조는 이 책 <전쟁같은 맛>을 통하여 <양공주>라는 말과 한 때 양공주로 살았던 여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그녀는 이런 말들이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고, 떳떳하고, 아름다운 인생길 중 하나였고, 지금 우리들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준 헌신이요, 희생이었음을 밝혀내려고 했다.
그녀는 <위대한 양공주>를 탄생시켰다.
- 우리 개개인이 경험한 고통, 비극, 아픔, 질병들은 모두가 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적 질병이요, 공동체의 아픔이다.
때문에 지난날 개인이 격었던 아픔은 개인적 위로와 보상으로만 치유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를 보다 더 건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어 가려고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개인적 고통과 비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