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9)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16. 땡큐, 굿모닝
영미사회에서는 종업원이 물건을 포장하거나 잔돈을 거슬러 줄 때, 그밖에 어떤 서비스를 해 주면 밝은 웃음과 함께 [thank you]라는 인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처럼 상대가 장사꾼이라고 해서 서비스를 받고도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그냥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Thank you/ 고맙다] [I am sorry/ 미안하다] [very good/ 좋다] 등이 상대방에게 호의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말과 제스처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쓸수록 좋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런 표현에 비교적 인색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권위와 위엄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 때문이지만, 언어도 한 몫 한다. 우선 우리의 인사말은 영어보다 길다. 영어의 [How are you?]는 음절이 세 개일 뿐이다. [안녕하세요]는 다섯 음절이다.
1950년 말에 필자는 공군에서 근무했다. 그 때 근무처에 처음 나가 모두가 아침 인사를 [굿모닝 또는 굿모닝, 써/good morning, sir]로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당시 우리 공군의 조종사와 간부들 대부분이 미국의 원조로 거기에 가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사실 말고도, 영어로 인사하기가 더 편해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최근 서울에 가 분식점마다 물통 앞에 “물은 셀프입니다”라고 쓴 안내 표지를 보고 또 한번 그런 생각을 해봤다. 여기 셀프는 [셀프 서비스/self-service]인데 이것을 우리말로 한다면 훨씬 길게 쓰고 말해야 한다. 국어 순화론자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으나, 일본인들이 외래어를 그렇게 많이 쓰는 이유를 알만하다.
영미인들은 웬만한 사이면 [hello]또는 [hi]정도로도 인사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어른에게 물론이고 동료끼리라도 [안녕]은 곤란하다.
영미인들이 [thank you]라고 할 때, 이 말이 진정 고마움을 의미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 연극의 장면이 생각난다. 상대의 말끝마다 [thank you, thank, you]를 연발하다가 [Your are fired/당신 해고야!]라는 말을 듣고도 자동적으로 [thank you]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Thank you]라는 말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쓰이는가를 잘 말해 주는 사례다.
[Thank you]는 두 음절이지만, 우리말 [고맙습니다]는 다섯 음절이다. 그렇다고 줄여서 [감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Thank you] [my pleasure], [sorry], [my apology], [no worry], [please], [all right], [okay]처럼 예의와 관계되는 영어 표현이 모두 짧은 말로 되어 있다. [excuse me]의 [excuse]는 두 음절이지만 악센트가 있는 [-cu-]를 힘주어 발음할 때는 한 음절로 들린다. 예컨대 [cuse me]가 된다.
어쨌든 영미인들은 타인과 몸이 스치면 자기 잘못이 아니어도 [I am sorry]라고 하며, 어떤 서비스를 받으면 [thank you]라고 하는데, 그렇게 안하면 예의에 어긋난다. 그런 예는 [very good]같은 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Delicious]는 영어로 맛있다는 말이지만, 영미인들은 그 대신 [um !]같은 감탄사와 함께 표정으로 짓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말에서라면 음식을 대접받고 어떤 반응을 보이려면 [어이구, 맛이 있네요.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또는 [맛이 기가 막힙니다] 정도로 길어지기 십상이다.
영미사람들은 만족, 호감, 선의나 그 밖에 감정을 표시하려고 할 때 말에 못지않게 제스처를 많이 사용한다. 짧은 말로 인사를 하는 것, 제스처로 인사를 대신하는 것은 이들의 실용주의와 관계가 있을 듯하다.
물론 이들도 예식과 행사에 있어서 우리보다 더 까다로운 격식과 표현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하나 일반적으로 우리 문화에는 짧고 편리하게 수시로 호의를 표시하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그런 표현이나 제스쳐는 경박한 행동으로 받아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친근함의 표시로 쓰이는 퍼스트 네임도 짧은 말을 선호하는 서양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Douglas, Robert, Katherine, Michael 등 2-3음절의 이름을 Doug, Bob, Katy, Mike로 줄여 부르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 지역에 나가는 유학생들은 현지에서 하는 대로 짧고 간단한 인사말이나 이름과 제스처를 자주 쓰고, 또 현지인들이 줄여 쓰는 일상어 정도는 배워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이들과 쉽게 섞이는 길이 된다.
17. ‘빨리 빨리’ 토끼문화, ‘천천히’ 거북이문화
한국인들이 보기에 영미국가의 농촌은 물론, 중소도시의 생활은 느슨하다. 이런 지역에 살다가 한국에 가보면 사회가 참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호주에 와 사는 한국인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 하나는 관공서의 서류처리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빨리]가 좋으냐 [천천히]가 좋으냐는 여기서는 논의 밖이다. 문제는 한국식의 [빨리빨리] 생활양식을 해외에 나와서도 기대한다면 갈등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영미국가 관공서나 가계에서는 서비스는 순서대로 받는 이른바 [First come, first served] 원칙이 잘 지켜진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더라도 서비스는 공평하게 받게 된다. 유학생들은 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나라의 가계에 들어가 보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게 주인은 한 손님을 상대하는 동안은 다른 손님이 기다리더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고객도 다른 사람에 개의치 않고 주인을 붙잡고 있다. 이런 태도에 익숙지 않은 우리가 기다리는 손님의 처지라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오래전 필자가 뉴욕에 도착, 이튿날 학교 앞 햄버거 식당(맥도널드가 아님)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카운터 앞에 손님들이 앉아 있고 그 안쪽으로 몇 사람의 종업원이 시중을 드는데, 새로 들어온 손님인 필자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미국이 처음인 필자는 내가 동양인아라서 그런가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됐지만 어쨌든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종업원이 무엇을 주문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때까지는 차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손님에 대한 서비스를 완전히 마친 다음에야 다른 손님 쪽을 보는 게 여기 관행이다. 한국의 가계 주인이라면, 잘 아는 손님이 들어오면 때로는 상대하던 손님을 제쳐놓고서 그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일이 흔하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도 그렇다. 앞 사람의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좀 떨어져서 기다려야 하고, 또 앞 사람이 일을 마쳤어도 직원이 그 일을 마무리 중이면 그대로 기다려야 한다. 성급히 가서 말을 걸면 [무식한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기다려달라고 차게 대한다.
고객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외부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 매너도 우리와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라면 빨리 통화를 끝내거나 나중에 걸어달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아니다. 전화로 충분히 용건을 보도록 한다. 이들 사회에서는 외부인이 전화를 걸어 길게 문의를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미사회에서는 주문한 물건의 배달이나 작업을 당일이나 2.3일에 끝내 주기를 기대하면 낭패 보기 쉽다.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영미사회라도 자동차만은 대개 급하게 몰고 다닌다. 느리게 운전하거나 규칙을 위반하면 참아 주지 않는다. 유학을 나가는 사람은 천천히 돌아가는 사회에 적응해야 하고, 자동차는 규정에 맞게 빠르게 몰아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