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년 2월 7일, 중국 후한 말의 무장 여포 (呂布, ? ~ 199) 교수형
여포 (呂布, ? ~ 199년 2월 7일 / 198년 음력 12월)는 중국 후한 말의 장군이다.

– 여포 (呂布)
.성씨: 여(呂)
.이름: 포(布)
.자: 봉선(奉先)
.생사: ? ~ 199년 2월 7일
.고향: 병주 오원군 구원현
.가족: 양아버지 동탁
.부인: 엄씨
.딸: 여씨
*작위: 도정후(都亭侯) → 온후(溫侯)
→ 평도후(平陶侯)
.최종직위: 자칭 서주목(徐州牧) 겸 좌장군(左將軍)
자는 봉선 (奉先)이며 병주 오원군 구원현 (五原郡 九原縣) 사람이다.
‘마중적토 인중여포 (馬中赤兎 人中呂布)’라는 말로 표상되듯 신기 (神技)에 가까운 무예로 천하의 명성을 얻었다.
동탁의 양아들이었지만 왕윤과 공모하여 동탁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가 30여 일 만에 이각·곽사·장제·번조에게 패하고 장안에서 달아났다.
이후 각지를 떠돌다 자신을 받아준 유비를 내쫓고 서주를 탈취하였다.
조조에 맞서다가 패망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서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정원의 양아들로 등장한다.
동향 사람 이숙이 온갖 보물과 적토마로 회유하니 정원을 죽이고 양아버지를 동탁으로 바꾼다.
동탁 토벌전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와 동시에 일기토를 벌인다.
왕윤과 공모하여 동탁을 주살했던 일은 왕윤의 양녀 초선을 둘러싼 이간책에 넘어가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장안 전투에서 투항해 온 호적아를 벤다.

○ 무력
여포는 효호 (虓虎, 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다. _ 진수
여포는 활쏘기와 기마에 능하고 여력 (膂力-완력, 용력)이 남보다 뛰어나 비장 (飛將)으로 불리었다. _ 여포전
여포는 장사 (壯士)로 싸움을 잘해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으니 (善戰無前) _ 진궁, 장막전
여포는 연의상으로도 실제 역사상으로도 탁월한 무예 실력을 뽐낸 맹장으로 묘사된다.
○ 평가
여포는 효호 (虓虎, 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다. 그러나 특출한 지략은 없었고 경박하고 교활하게 반복 (反覆, 언행을 이리저리 바꿈)하여 그의 안중에는 오직 이익 밖에 없었으니,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가 이멸 (夷滅, 멸망)되지 않은 적이 없다. _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평가
원술은 탐욕스러웠고 여포 또한 반복무상 (反覆無常, 언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거나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이르는 말) 하였도다. _ 후한서의 저자 범엽의 평가
洪水滔滔淹下邳 (홍수도도엄하비) 홍수가 도도히 하비성을 덮치니
當年呂布受擒時 (당년여포수금시) 그해 여포가 사로 잡힐 때다
空餘赤免馬千里 (공여적면마천리)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 주인을 잃고
漫有方天戟一枝 (만유방천극일지) 방천화극 한 자루 버려졌네
縛虎望寬今太懦 (박호망관금태나) 묶인 범이 겁먹어 관용을 비니
養鷹休飽昔無疑 (양응휴포석무의) 매를 기를 때 굶기란 옛말 틀림없구나
戀妻不納陳宮諫 (연처불납진궁간) 아내를 사랑하다 진궁 간언 안 듣더니
枉罵無恩大耳兒 (왕매무은대이아) 부질없이 귀 큰 녀석 은혜 모른다 욕하네 _ 모종강본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의 최후를 노래한 시
삼국지의 군벌들은 사서들마다 평가가 갈리는 등 복합적인 면이 있는데 여포만은 뛰어난 무력과 그에 걸맞지 못한 인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