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68)
추석
서서히 호주의 겨울이 물러가고 있다. 늘 더운 것 보다는 추운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역시 약간은 선선함을 품고 있으면서 오후의 햇살은 따뜻한 딱 요맘때가 가장 좋은게 사실이다. 하람이를 재워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는 편이라 잠은 모자라지 않은데 아침마다 나는 늘 피곤하다. 그래서 잠은 시간과는 그다지 상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나서는 출근길. 그렇게 걷기 시작하면 참 이상하게도 피로가 조금은 사라진다. 연하게 개어 오르는 핑크빛 하늘을 보는 것도 좋고 촉촉하게 젖어 있는 아침 길을 걷는 발걸음도 가볍다. 비가 오는 날은 공기속에 미세하게 느껴지는 신선함이 있다. 계절의 냄새가 그렇게 보인다. 늘 같은 곳을 지나가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을 대하는 감격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런 것 들이 나 또한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연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그래서 인지 늘 부모님은 자식들이 다 결혼하면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젊은 시절 도시로 내려와 참 열심히 사신 부모님. 아버지는 삼교대를 하며 자식 셋을 다 대학까지 보내셨고, 본인을 꾸미기 보다는 가정을 돌보시기에 바빴던 어머니는 부업까지 하시며 책임감있게 가정을 꾸리셨다. 지금 내가 생각해 보니 부모님의 그때가 아마도 30~40대 정도 되셨을 때인데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어찌 그렇게 사셨는지 존경스럽기만 하다. 한국과 호주의 계절이 조금은 비슷하게 가는 요즘 그래서 더욱 부모님 생각이 나고 한없이 마음은 싱숭생숭 하다. 부모님은 그렇게 몇 해전 살던 집을 떠나 형제분들이 다 모여 사시는 시골로 내려가셨다. “거기 불편하지 않아요? ” 가끔 아버지한테 삐지시면 어머니가 기분전환겸 마실처럼 가던 대형마트도 없을텐데 걱정되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 물었다. “여기 읍내야 읍내. 있을 건 다 있어. 걱정마 ” 하긴 도시를 떠나 말이 시골이지 오히려 더 좋으시단다. 새로운 교회 갔더니 목사님이 언니랑 나이가 비슷하고 애가 셋인데 서글서글 하시다며 잘 다니신다 했다.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우리 지금 치킨 배달해서 먹고 있다. 의성 마늘 치킨” 건강 생각해서 사다 드려도 잘 드시지 않던 치킨을 두분이 시켜 드셨다길래 왠일인가 싶어 답장을 보냈더니 이제 잘 먹고 잘 살아야 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그 말이 왠지 결연하고 대단해 보여 꼭꼭 씹어 천천히 드세요 하고는 나도 냉동실에서 치킨 너겟을 꺼내 금방 튀겨 하람이와 먹는데 갑자기 목이 메인다. 부모님이 자식의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적어도 조금의 도움이라도 드려야 정상인 상황에 나는 호주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가끔 이렇게 전화나 문자만 드리니 참 나쁜 딸인 것이다. 가슴이 콱콱 막혀 손으로 두드리니 하람이가 물을 떠다 주며 이야기 한다. “엄마 다 먹어도 되니까 천천히 드세요” 단지 그 말 뿐인데 신기하게도 막힌게 쑥 내려간다.
Mother’s day에 하람이가 종이배를 예쁘게 접어 무지개 색으로 칠한 후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색깔이 너무 곱고 예쁘길래 “고마워 정말 멋져” 하며 선반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하람이가 “엄마! 내 생일 September야 알지?” 하고 묻는다. “응. 알지. 엄마도 하람이 생일날 종이배 접어서 선물 할꺼야” 했더니 갑자기 화들짝 놀란다. “하람이도 엄마 종이배 접어서 줬으니까 괜찮지?” 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하람이. 혼자 배꼽빠지게 웃었다. 이번주가 한국의 추석이다. 교회에서 송편도 먹고 집에서 추석때 나오는 흔한 TV프로그램도 봤는데 한국에서 보낸 그런 느낌이 아니다. 아니 느낌조차 나지 않는다. 추석음식을 하면서 힘들다며 투정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누워서 뒹굴 거리며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을 보내 핀잔 받던 연휴 때 아버지의 게으름도(그러다 결국 늘 청소 담당이 되시곤 했다. 그러면 꼭 청소기만 살짝 밀면 될 것을 꼭 스팀청소기까지 해야 한다며 부산을 떨어 더 우리를 귀찮게 하셨다) 시끄러운 형제들의 웃음 소리와 윷놀이 게임으로 치킨을 배달시켜 먹던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아니, 사실 나를 빼고는 모든게 예전과 같이 이루어질 한국 식구들의 추석. 그래서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마음을 인터넷 쇼핑으로 조금 달래 본다. 회사 다닐때는 추석 선물로 여기 저기서 받던 선물 셋트들을 늘 부모님께 잔뜩 안겨 드렸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샴푸셋트에 참치, 식용유 셋트, 과일음료셋트에 스팸이며 치약, 등등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직접 시킨다. 그 돈도 만만치 않다. 차라리 돈으로 보내 드릴 걸 그랬다 싶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못 가는 대신 하루하루 택배아저씨가 방문 해 줄것이다.
옆에 함께 있다면 종이배 만으로도 행복한 법. 함께 하지 못해 더욱 죄송한 추석. 조금은 띄어 보낸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