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해석(28)
지금은 절개를 구할 때: 호세아서<28>
“내가 그 광야에서 너를 알았고, 바짝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다). (풀) 먹이운 (양들)처럼 그들은 (배가) 불렀다. 배가 불러 그들은 마음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잊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사자 (‘솨할’) 같을 것이며, 표범처럼 길가에 엎드려 노릴 것이다. 나는 (새끼) 잃은 암콤처럼 그들을 덮칠 것이며, 나는 그들의 심장 꺼풀을 찢을 것이다 (‘카라’). 그리고 나는 거기서 사자 (‘라비’)처럼 그들을 먹어치울 것이며, 들판의 짐승처럼 그들을 찢을 것이다 (‘바카’). 오, 이스라엘이여, 너의 패망함이여! 진정 나를 대적했구나, 너를 돕는 이를 거스렸구나! 네가 ‘왕과 관리들을 내게 주소서!’ 말하던,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모든 성읍들에서 너를 구원할 자와 사사들 (판관들)은 (어디 있느냐). 나는 네게 화가 나서 왕을 주었고, 너무 화가 나서 (왕을) 거두었다. 에브라임의 불의는 찰대로 찼고, 그의 죄는 적축되었(은즉), 아기 낳는 통증들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그는 지혜롭지 못한 아기라, (나와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나오는 입구 (자궁의 출구; 産門)에서 지체치 말라. (*하지만) 스올 (陰府)의 권능으로부터 나는 그들을 속량하겠다. 죽음으로부터 나는 그들을 구속하겠다. 죽음이여, 너의 재앙들이 어디 있느냐! 스올이여, 너의 멸망이 어디 있느냐! 내 눈앞에 후회가 숨으리라 (없으리라). 참으로 그가 형제들 중 (제일로) 과실들을 많이 맺어도 광야로부터 일어나는 여호와의 동풍이 불어 올 것이다. 그가 보물 곧 모든 귀한 그릇들을 약탈할 것이다. 그의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므로 사마리아가 죄를 당하여 칼을 맞아 엎드러질 것이요, 그들의 유아들은 조각날 것이며, 그의 임신한 여인들은 배가 갈리울 것이다.” (호 13:5-16, 필자 졸역) 이 단락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또한번 대조법과 점층법을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존재하는 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호세아는 광야시대부터 땅 정착 후 사무엘 시대를 지나 본인 당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거역한 이스라엘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준다. 북왕국 이스라엘에게는 그야말로 혹독한 심판이 따를 것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vs. 광야의 하나님
이 단락에서의 역사회상은 광야 때부터 시작한다. 광야가 어디인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수르광야, 바란광야, 신광야, 유대 광야, 마온 황무지…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지목되지 않았지만 본문에서 전하는 내용은 분명하다. 광야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다 알고 계셨다 (히브리어, ‘야다’ 동사가 사용됨). 그렇다. 척박한 광야를 걷는 괴로움을 주님께서는 다 아시고, 때마다 시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삶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셨다. 이스라엘의 광야 노정은 출애굽기에 조금 보이며, 민수기에는 아주 많이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민수기를 별명 붙여 ‘원망불평기’라고 부른다. 괴로운 길,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위로와 소망의 길이다. 이 길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였고, 또 이 길에서는 다윗이 식솔과 모여든 친구들을 이끌고 도망을 다녔다. 지난 학기 신명기 수업 시간에 학우들에게 설교 숙제를 내주었다. 신명기에서 본문을 선택하여 설교를 작성하고 한 사람씩 15분가량 설교를 하는 과제다. 클래스의 여러 명이 그 많은 본문 중에 ‘광야’ 내용이 담긴 본문을 선택하여 설교하였다. 많은 학우들이 설교 중에 울기도 하고 말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하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2-3) 이어지는 본문은 이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7-10절) 이스라엘은 배고플 때도 하나님께 원망불평하였고, 오늘 호세아 본문을 보면, 양들에게 배불리 풀을 먹여주시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그 땅에 들여보내 배부르게 하셨을 때에도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신 8:11 이하가 먹어서 배부를 때 “네가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권고하심이 무색하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슬러 떠나 잊고 바알과 음란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형편을 아시고 힘든 마음을 알아주셨건만 이스라엘은 마음을 불만을 쏟아냈고, 하나님은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진수성찬을 주셨건만 이스라엘은 아예 그 하나님을 망각하였다.
왕과 겸상 (兼床)하게 된 우리
배고플 때는 주님 붙잡고 기도하며 인내로써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나의 본분이다. 배부를 때는 주신 것 감사하고 찬송하여 그분께 영광돌리는 것이 나의 본분이다… 이제 한국은 추석이다. 추석날 떡과 잡채와 약식을 푸짐히 차려 놓고 먹든, 쪼들려 라면을 먹든 이것을 생각하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왕 중의 왕과 겸상하게 하신 신실하신 여호와를 생각하자.
최영헌 교수 (알파크루시스 신학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