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제2차 인문학여행 (8)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에 대하여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드 다빈치, 라파엘로를 중심으로
초기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전성기를 맞았으며 북유럽과 동부, 서부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1400년대 초기 서구 세계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태어나다’는 의미의 르네상스는 처음에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인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과거의 미술개념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스타일을 탄생시킨 과트로첸토 시기 (15세기) 미술계의 삼두마차는 미술에서 자연주의를 다시 도입한 화가 마사초와 조각가 도나테로, 그리고 우아한 선을 통해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준 화가 보티첼리였다.
마사초 (Masaccio 1401 ~ 1428) : 6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서구 미술의 금자탑을 이루게 될 전통을 세운 사람이 마사초이다. 마사초는 조토이후 최초로 인체를 고딕 스타일의 기둥 같이 묘사하는 대신 진짜 인간과 같이 묘사한 화가이다. 마사초는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하고, 미술 기법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의 그림으로는 종교세, 성 삼위일체, 성 안나와 있는 성모, 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 등이 있다.
도나텔로 (Donatello, 1386 ~ 1466) : 마사초가 회화에서 이룬 업적을 도나텔로는 조각에서 이루었다. 그는 고전 조각의 중요한 발견인 ‘콘트라포스토: 무게를 한 발에 집중하고 다른 발은 편안히 놓는 동작’을 재발견한 조각가이며, 골격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옷 속에 몸이 숨겨져 있는 듯 조각했다. 도나텔로의 조각품들은 너무나도 실물 같았는데 그 자신이 조각품에 대고 ‘말하라,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는 다윗, 막달라 마리아 등이 있다,
보티첼리 (Botticelli, 1446 ~ 1510) : 도나텔로와 마사초가 사실주의의 토대를 쌓고 있는 동안 보티첼리는 그의 장식적인 선 스타일과 발끝으로 살짝 서 있는 아름다운 금발머리 처녀 그림은 비잔틴 시대로 돌아간듯 하나 (비너스의 탄생)의 누드화는 고대 신화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비너스의 탄생, 아름다운 우의화, 카밀라와 켄타우로스, 프리마베라 등이 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16세기는 미술의 주도권이 피렌체에서 로마와 베네치아로 옮겨갔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들이 회화, 조각에서 엄격한 구도와 완벽한 비례, 원근법등의 기법을 총망라하여 회화 발전의 정점을 이룬 시기로, 이 시기를 (1500 ~ 20)를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라 부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 15190) :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술가는 천재라는 개념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비행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낙하산, 헬리콥터, 장갑차, 종 모양의 잠수함에 이르는 그의 발명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사제의 말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과학 실험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붓을 쥐고 있을 틈이 없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레오나르도는 20개의 작품밖에는 제작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자궁속,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성모영보, 동방박사의 예배, 베들레헴 별꽃, 폭우 풍경, 수태고지, 성모자, 브누아의 성, 어두운 동굴의 성모등이 있다. 그외에 기마상, 성안나와 성모자, 축성법 도안, 대형 석궁 설계도, 체칠리아 갈레라니, 아름다운 포르니에레, 유명한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 이사벨레 데스테, 고양이와 용 소묘 등이 있다.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 : 미켈란젤로는 석공을 남편으로 둔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조각과 소묘 등 미술과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는 조각가가 되고 싶어 했으나 가족들은 보다 존경받는 직업 갖기를 원했다. 그러다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열다섯에 피렌체에 있는 그의 궁전에 데리고 와서 수양아들로 삼는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일체 제자를 두지 않았고 작업하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건축가, 화가, 조각가, 공학자로 활약할 정도로 매우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예술 가운데에서 조각가가 신과 가장 가깝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신이 진흙에서 생명체를 창조했듯이 조각가 역시 돌에서 미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중 유명한 것이 ‘피에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이다. 화가로서는 시스티나 성당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천장화를 주문해서 이곳에 인류의 탄생과 죽음을 표현하는 340여 개의 인물상을 그려 넣어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재건을 지위하며 건축에도 투신했다. 그가 설계한 혁신적인 스타일의 가장 좋은 예는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공회당인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이다. 그외에 계단의 성모, 십자가의 처형, 촛대를 든 천사, 바쿠스, 다윗, 피티 톤도, 타데이 톤도, 도니 톤도,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설계, 로렌초 무덤의 황혼, 새벽 제작, 메데치 무덤의 낮과 밤 제작, 팔레스트리나 피아타, 론다니니 피에타 제작중 생을 마감하였다.
라파엘로 (Raffaele, 1483 ~ 1520) : 르네상스를 빛냈던 3명의 인물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인물은 라파엘로였다. 다른 두 사람이 널리 존경받았으며, 그들의 작품은 찬탄의 대상이었던 반면, 라파엘로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았다. 동시대인으로 최초로 미술사를 기술했던 바사리는 “라파엘로의 성품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짐승들까지도 그를 사랑했다.”라고 쓰고 있다. 회화의 기초를 아버지에게서 배우고, 17세에 독립적인 화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라파엘로의 예술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특징을 모두 집약해 놓은 것이다. 레오나르도에게는 파라미드 구도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인물의 조형성을 강조하는 기법 (키아로스쿠로)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에게는 우람하고 역동적인 인물형과 균형의 동작을 배워 자신의 그림 속에 응용하고 있다. 그의 그림으로는 아테네 학당, 자화상, 그리스도의 매장등이 있다 (아테네 학당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헤라클에이토스, 유클리드,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로아스터, 자신인 라파엘로가 그려져 있다).
근대 회화의 아버지 티치아노 (Tiziano, 1490 ~ 1576) : 60년 동안 베네치아 미술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티치아노는 강한 색채를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나무판을 버리고 헝겊으로 만든 캔버스 위에 유화를 그린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티치아노의 ‘아드리아인들의 축제’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 회화와 조각에서 조화로운 균형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처럼, 건축에서도 고대 로마의 장엄함과 화려함이 부활한다.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브라만테, 팔라디오였다. 문필가이자 화가, 조각가, 건축가였던 알베르티 (Alberti, 1404 ~ 72)는 회화, 조각, 건축의 규범에 관하여 글을 썼던 르네상스 시기의 중요한 이론가였다. 그는 예술의 종교적 목적을 중요시했고 예술가들에게 기본 교양으로 역사, 시, 수학과 같은 학문을 공부할 것을 권장했다. 처음으로 원근법에 대해 책을 썼고, 조각가들에게 도움되는 이상적 신체의 비례에 대한 이론을 확립했다.
브루넬레스키 (Brunelleschi, 1377 ~ 1446): 금세공가, 조각가, 수학자, 시계탑 설계자, 건축가로 활약했으며 근대 건축공학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외에 피렌체와 로마에서 활약했던 화가들이 조각적인 형태와 서사적인 주제를 주요하게 추구한 반면, 베네치아 유파의 화가들은 색채와 질감, 분위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조반니 벨리니 (Giovanni Bellini, 1430 ~ 1516): 새로운 유화 기법에 정통했던 첫 이탈리아 화가였다. 티치아노의 스승이었던 벨리니는 풍경과 인물을 융합시킨 최초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조르조네 (Giorgione, 1476 ~ 1510): 빛과 색채를 이용하여 분위기를 상승시켰던 화가였다. 베네치아 화가중 가장 명성을 날렸던 티치아노 이후, 틴토레토와 베로제네가 이 전통을 이어받아 짙은 색채와 극적인 구성으로 거대한 스케일과 웅장한 스케일을 계승했다.
르네상스 시기 건축의 네 가지 규칙
로마: 고전에 대한 열렬한 탐구심으로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로마적인 양식과 그 비례를 모방하기 위해 로마 유적을 체계적으로 측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둥근 아치와 콘크리트 건축물, 돔이 얹어진 원형 홀, 현관의 주랑, 원통형 궁륭, 그리고 원주같은 요소들을 재발견했다.
규칙: 당시의 건축가들은 자신을 건설가라기보다는 학자라고 자부했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을 여러가지 논리로 된 이론으로 구축했다. 알베르티는 널리 알려진 미학적 규칙을 정립했다.
합리성: 이론가들은 건축에서 과학, 수학, 건축 공학에 근거한 합리적인 이론적 기초를 중시했다. 냉철한 이성이 중세의 신비적 접근 방법을 대신했던 것이다.
수학: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결정하는 요소는 수학에 달렸다고 믿었다. 이상적인 비례 체계는 건물과 부분들간의 수학적인 비율과 관련이 있는데, 교회 건물의 경우 건물의 높이와 폭의 비율은 2:1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는 원과 정사각형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특징: 이상적인 아름다움
스타일: 단순한 형태, 일정한 비례
주제: 종교적, 신화적 장면
인물형: 영웅적인 남성누드
초상화: 공식적, 비개성적
매체: 프레스코, 템페라, 유화
강조점: 해부학적 구조
방법: 이론적
구조: 정적, 균형적
바티칸 / 시스티나 성당에서 볼 것: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과 ‘아테네 학당’, 조토, 카라바조의 ‘예수 입관’, 다빈치의 ‘성 히에로니므스’, 마티스의 방.
성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 – ‘쿠폴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베드로 청동상, 베르르니의 교황의 제단 ‘발카디노’ 베르르니의 발코니와 조각들
우피치 미술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레오나르 다빈치의 성모영보, 동방박사의 예배, 다섯명의 머리 소묘, 라파엘로의 오색방울새의 성모. 레오 10세의 초상화가 있다.
메디치의 예배당: 성당 내부의 신성구실 (Sagrestia Nuova)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건물이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돔으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 상은 원래 이 성당의 북쪽 익랑위에 있는 부벽에 놓여질 것이었으나 6톤에 이르는 조각상을 올리기가 어렵고 조각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하였다.
쇠사슬 성당 / 베끼오 궁전: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 상도 바로 이 곳에 1504년부터 1873년까지 서있었다. 1873년에 조각상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서있는 상은 복제품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16세기에 조르조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그림이다.
산타크로체 성당 : 성당에 존재하는 작품들을 제작한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베네데토 다 마이아노 (설교단; 그의 형제 줄리아노와 함께 제작한 파치 예배당으로 향하는 문)
안토니오 카노바 (알피에리의 기념비)
치마부에 (십자가 책형, 1966년 홍수로 인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현재 수도원 식당에 있다)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 (메디치 예배당의 제단화)
루카 델라 로비아 (파치 예배당의 장식)
데시데리오 다 세티냐노 (마르수피니의 무덤; 파치 예배당내 프리즈)
도나텔로 (남쪽 벽에 있는 수태고지 부조; 바르디 예배당 왼쪽의 십자가상; 수도원 식당에 있는 본래 오르산미켈레를 위해 만들어진 툴루즈의 성 루이)
아뇰로 가디 (카스텔라니 예배당, 성단소의 프레스코화; 카스텔라니 성단소의 스테인드 글라스)
타데오 가디 (바론첼리 예배당의 프레스코화; 성구실의 십자가상; 그의 최고 걸작이라 여겨지는 수도원 식당의 최후의 만찬)
조토 (페루치 예배당과 바르디 예배당의 오른쪽의 프레스코화; 바론첼리 예배당의 제단화 성모의 대관 역시도 그가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타테오 가디가 했을것이라고도 본다)
조반니 다 밀라노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막달라 마리아의 장면이 있는 리누치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
마소 디 방코 (성 실베스테르 1세의 생애 장면이 그려진 바르디 디 브리니오 예배당의 프레스코화, 1335 ~ 1338년작).
헨리 무어 (주 회랑에 있는 전사 조각상)
안드레아 오르카냐 (바사리의 리모델링 중에 크게 사라진 프레스코화, 수도우너 식당내에 일부가 남아있다)
안토니오 로셀리노 (남쪽 측랑에 있는 Madonna del Latte <1478년 작> 부조)
베르나르도 로셀리노 (브루니의 무덤)
산티 디 티토 (복쪽 측랑에 있는 제단화 엠마오의 저녁식사, 부활)
조르조 바사리 (발레리오 치올리, 이보반니 반디니, 바티스타 로렌치와 함께 만든 미켈란젤로 무덤의 조각상. 십자가의 길는 바사리가 그린 것이다.
도메니코 베네치아노 (수도원 식당에 있는 성 요한과 프란치시코)
500년간 이 성당에 설립된 기념비의 인물들로는 다음과 같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15세기 건축가이자 미술 이론가)
비토리오 알피에리 (18세기 시인이자 극작가)
에우제니오 바르산티 (내연 기관 공동 발명가)
로렌초 바르톨리니 (19세기 조각가)
줄리 클라리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아내이며, 샤를로트 나폴레온 보나파르트는 그들의 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기념 명판, 프랑스의 앙부아즈 성에 묻힘)
레오나르도 브루니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의 수상이자 학자, 역사가)
단테 (라벤나에 묻힘)
우고 포스콜로 (19세기 시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조반니 젠틸레 (20세기 철학자)
로렌초 기베르티 (예술가이자 청동 세공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인노첸초 스피나치가 제작)
카를로 마르수피니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의 수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모르겐 (19세기 판화가)
조아키노 로시니 (주세페 카시올리가 제작)
슈톨베르크-게데른의 공녀 루이제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부인)
굴리엘모 마르코니 (볼로냐 인근 그가 태어난 사소마르코니에 묻힘)
엔리코 페르미 (핵 물리학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묻힘)
참고 문헌 및 자료
서양미술사, 캐롤 스트릭랜드/김호경 역, (주)애경북스, 2010
미켈란젤로, 박영택/도서출판 다림, 2018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성두/대한교과서 주식회사 2002
http//m.biog.naver.cpm
http//ko.wikipedia.org
이순희 회원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