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 지식의숲 / 2006.3.25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 (1756 ~ 1836)의 50여권에 달하는 저서 중에서 좋은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최초의 아나키스트’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윌리엄 고드윈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을 정리하여 1793년 발표한 <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찰 (An 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을 발표하여 20세기 후반 아나키즘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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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드윈의 기본입장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에 따라 윤리, 정치, 경제, 종교 등의 큰 주제와 그 밑에 평등, 개인과 사회, 도덕규칙, 법률 등 소주제로 분류하여 그의 사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도록 구성했다. 또한 책 앞에 70여쪽 분량으로 고드윈의 생애와 사상, 영향력에 대한 엮은이의 해설을 달아 이성에 대한 신뢰 가운데 평화적 아나키즘을 내세운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 목차
머리글
편집자 서론
윌리엄 고드윈의 사상
Ⅰ. 기본 원리
Ⅱ. 인간의 본성
Ⅲ. 윤리관
Ⅳ. 정치관
Ⅴ. 경제관
Ⅵ. 교육관
Ⅶ. 자유로운 사회
발췌원문
더 읽을 거리
참고문헌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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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윌리엄 고드윈 (William Godwin, 1756 ~ 1836)
사회철학자, 정치평론가, 진보적인 교육가, 소설가인 윌리엄 고드윈은 1756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1793년『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찰 An 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을 출간해 영국 사상계를 뒤흔들었고, 50여 권의 저서를 통해 현대 아나키즘 철학을 심도 있게 다루어 최초의 현대 아나키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워즈워스, 콜리지와 절친한 사이였고 낭만파 시인 셸리가 그의 제자였다. 또한 찰스 디킨스, 불워 리턴, 사회주의 개혁가 로버트 오언, 그리고 미국 작가 찰스 브로크덴 브라운,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 등은 고드윈의 저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설 『갈렙 윌리엄스 Caleb Williams』(1794), 수필집『탐구자 The Enquirer』(1797), 『’여성의 권리 옹호’저자를 회고하며 Memoirs of the Author of ‘The Rights of Woman’』(1798), 소설 『세인트레온 St. Leon』(1799) 등 5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797년 여성해방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와 결혼했고,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 유명한 메리 셸리 (Mary Shelley)가 그의 딸이다.
– 엮은이: 피터 마셜 (Peter Marshall)
1946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런던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가르쳤으며,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버킹엄셔에서 자유주의 공동체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그 후로는 노스웨일스의 산지에 거주하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윌리엄 고드윈』(1984)과 『탄자니아 여행기』(1984) 등이 있다.
– 역자: 강미경
1964년 제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 교양서를 비롯해 영어권을 다양한 양서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유혹의 기술’, ‘권력과 탐욕의 역사’,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나의 그림 읽기’, ‘야성의 엘자’, ‘멘사 논리 퍼즐’, ‘나침반, 항해와 탐험의 역사’, ‘태풍 해안 작전’, ‘나에서 우리로’, ‘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프로파간다-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치팅 컬처’,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고대 세계의 위대한 발명 70’, ‘악마의 끈-철조망의 문화사’,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정치연합과 정당
정치연합에는 반드시 장황하고 형식적인 말잔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인 진리를 얻을 목적으로 이러한 장광설을 마치 부지런히 배워야 할 사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장황한 연설은 지식이 아니라 열정만을 부추긴다. (…)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열띤 논쟁을 벌이는 시끄러운 의사당에서는 진리를 깨닫기 어렵다. 희망과 두려움, 승리감과 분노가 난무하는 곳에서는 올바른 진리 탐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진리는 조용한 명상과 깊은 사고를 통해 획득되기 때문에 일단 그런 장소를 떠나야 한다. 지성의 발전은 오류의 눈속임이 뒤섞여 있는 곳이 아니라 두 사람이 조용한 장소에서 차분하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 본문 197~198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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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참여정부 내내 화두가 되었던 성장/분배 논쟁이 올 들어 양극화 해소로 이어지고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큰 정부/작은 정부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정치권 내에서 여야 사이의 정치노선 공방 차원에서 이뤄지거나 이념 대결 양상까지 띠기도 한다. 어쨌든 정부의 기능이 이처럼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는 것은 정부의 비대한 기능에 많은 국민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담이 커지다보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 자치를 거부하며, 관료에 의한 국가 운영뿐만 아니라 식량 및 에너지 관리까지 주도되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정부의 존재 여부까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정서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해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는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즘이란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률에 의한 강제수단을 철폐하고 자유,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천하려는 유토피아 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 아나키즘의 고전을 다시 읽는다
신간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수상록』은 아나키즘의 선구자라고 평가되는 윌리엄 고드윈의 사상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1793년 출간되어 영국 사상계를 뒤흔든 윌리엄 고드윈의 대표작『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찰』을 비롯해 5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토대로 고드윈의 윤리관, 정치관, 경제관, 교육관, 그리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견해를 요약, 정리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평가되는 윌리엄 고드윈이 아나키즘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하고 있다.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수상록』은 아나키즘의 철학적, 역사적 근원을 알기 원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고드윈의 사상 전반을 발췌, 요약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는 고드윈의 저서가 절판되었거나 미출간 혹은 단편적인 원고로만 출간된 상황이어서 아나키즘 사상의 근원과 윌리엄 고드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특히, 올해는 고드윈이 태어난 지 250주년 되는 해라서 고드윈의 저서 출간이 더욱 뜻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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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
아나키즘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을 통해 지식과 이해력을 확대하여 의식을 깨우침으로써 제도와 법률 없이 이성에 근거한 공존, 공생, 상호협력이 가능한 공동체가 점진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믿는 평화적 아나키즘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의 힘을 확대하는 순진한 방법으로는 기존 정부가 와해되기 어렵기에 무력으로 혁명을 일으킨 뒤 무정부 상태를 구축해야 한다는 혁명적 아나키즘이 있다. 윌리엄 고드윈은 전자에 속한다. 사실 윌리엄 고드윈 하면 다소 낯설다. 하지만 시인 셸리의 장인이자『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가 그의 딸이고, 여성해방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아내라고 하면 좀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드윈은 홉스, 로크, 루소, 밀에 버금가는 사회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나키즘 철학을 가장 심도 있고 일관성 있게 파헤친 아나키스트였다. 고드윈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한 명료하고 타당한 견해를 바탕으로 아나키즘 원리들을 체계적으로 풀어냈다. 고드윈은 기존의 독재체재를 대신해 단순한 분권형 사회를 제시했으며,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인간 실존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간주했다. 그의 경제이론은 경제적 불평등이 재난의 원인임을 밝혀냄과 동시에 자발적인 공산사회에 대한 이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드윈의 사상은 정부란 필요악에 불과하며 인간은 강제적인 기관의 간섭이 없을 때 가장 번성할 수 있다고 믿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기 시대의 급진주의를 뛰어넘어 최초의 위대한 아나키즘 사상가로 자리 잡았다. 고드윈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심원하고 매력적이다.
- 윌리엄 고드윈이 바라본 인간의 본성
고드윈은 인간의 본성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필연성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다. 그는 로크처럼 생득관념과 본능을 부인하고 ‘인간의 성품은 외부 환경에서 비롯한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다만 성장환경과 교육에 의해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고드윈은 인간의 본성이 일정한 특징을 지닌다고 보았으며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를 통해 최상의 능력과 동정심을 발휘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 진리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셋째, 인간은 진보하는 존재다.
- 윌리엄 고드윈의 윤리관
고드윈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위와 같은 가설을 근거로 윤리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철저하고 일관된 공리주의자로서 도덕을 ‘일반적인 선을 최대한 보편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는 행위체계’로 정의했다. 하지만 그는 법칙 중심의 공리주의자가 아니라 행동 중심의 공리주의자였다. 그는 일반적인 도덕법칙은 때로 심리 차원과 실천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이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어떤 행동도 똑같은 행동은 없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은 나름대로 법칙을 가지며, 따라서 개개의 경우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공리성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람의 의무다. 예를 들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간주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하다면 옳다고 판정해야 한다. 고드윈의 이와 같은 논리 전개는 그를 행동 중심의 공리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일체의 규칙과 법률을 거부하고 이성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최초의 위대한 아나키즘 사상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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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고드윈의 정치관
고드윈은 정의로운 사회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로우면서도 질서 있는 사회 즉, <방종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는 궁극적인 질서는 무정부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아나키스트들처럼 고드윈도 사회와 정부를 명확히 구분했다. 그 역시 크로포트킨처럼 인간은 원래 <상호협력>을 위해 결속했다고 주장했으며, 페인처럼 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축복이라고 믿었다. 인간은 본질상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 없이는 인간의 위상을 온전히 확립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고드윈은 사회는 집단의 정체성을 창출하거나 일반 의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개인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정부의 개입을 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평화와 생산 활동을 방해하는 <소수의 잘못된 사악함>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정부가 불의를 억제할 목적을 띤다 해도 오히려 불의를 구체화시키고 영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보았다. 즉, 정부는 공동체의 힘을 한 곳에 집결시켜 <재난을 야기하는 야만적인 정책, 압제, 독재, 전쟁, 그리고 정복행위>를 자극한다. 아울러 사회를 부유층과 빈민층으로 나누어 부유층에게 <국가의 입법자>라는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영구적인 압제체제를 구축한다. 그래서 고드윈은 정부라는 <야만적인 장치>는 <인류의 악덕을 촉발하는 항구적인 원인>일 뿐이며 <여러 가지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완전히 없애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는 억제가 불가능하다.>라고 결론지었다.
- 윌리엄 고드윈의 경제관
고드윈은 정부만 해체하고 소유관계는 그대로 놔두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그는 자유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고드윈은 사유재산권을 올바르게 확립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정부 없는 단순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편견들을 없앨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고드윈 역시 루소처럼 부를 독점하기 위해 이웃의 약점을 이용했던 사람에 의해 최초로 범죄행위가 자행되었다고 믿었고, 그 이후부터 소유권과 정부와의 밀월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부자가 <정부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입법자>노릇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축적된 부는 <굴종적인 노예정신>을 양산했고, 부를 획득해 과시하고자 하는 열망을 낳았으며, 지성의 발달과 진정한 즐거움을 가로막았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고드윈의 이론은 초기 사회주의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주장, 생산, 그리고 자본을 주제로 체계적으로 글을 쓴 최초의 인물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착취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고드윈이 미친 영향력을 인정했고, 그의 대표 저서인 『정치적 정의에 대한 고찰』을 번역하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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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고드윈의 교육관
고드윈은 교육을 개혁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그의 독창적인 교육사상은 그를 자유주의 진보교육의 위대한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지성을 계발해 자유로운 사회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향유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하는 데 있다고 했다. 고드윈은 자유로운 사회의 교육은 기존의 교육과 달리 매우 단순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어린아이들을 노예처럼 길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어린아이들에게 쉬운 것만을 가르치고 적당한 칭찬을 통해 부모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그런 교육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지성은 경험이나 인상을 통해 자극될 때 적절히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스스로 어떤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배우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습득할 수 없으며, 적절한 조언과 인도를 통해 어린아이들에게 자발적인 학습의지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 윌리엄 고드윈이 바라는 자유로운 사회
고드윈은 자유로운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복잡한 통치체제에 의존하는 현대 국가 대신 직접적이고 단순한 분권형 사회 형태를 제안했다. 분권형 사회는 이웃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공동체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건전하고 평등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산을 조정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역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수주의 사회체제와 관련해 고드윈은 영국의 전통적인<교구>와 같은 작은 영역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삼을 것을 제안했으며, 후대 아나키스트들은 이를 자치사회라고 불렀다. 그러면 누구나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져 모든 시민이 이성의 목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고드윈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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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의 평
시인 셸리의 장인 이자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울프턴크래프트의 아버지는 누구일까하는 질문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윌리엄 고드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지나간 인물과 사상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시류와 영합하는 측면이 있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관심과 필요에 따라 주목받는 시대와 사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아나키즘은 인류 역사에서 특별함을 갖는다. 그 특별함은 주변성에서 확보된다. 주류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이었던 아나키즘 신봉자들의 면면이 그러하다. 어쩌면 인물의 주변성이 아니라 사상의 주변성일지도 모른다. 아나키즘은 한 번도 역사의 중심 사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지류로 파악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명명되는 윌리엄 고드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외칠 수밖에 없었던 자유의 사상이 아나키즘이이다. 그 아나키즘을 최초로 주창했던 사람이 바로 윌리엄 고드윈이라고 평가받는다.
아나키즘이란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률에 의한 강제수단을 철폐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와 형제애를 실천하고자 하는 유토피아 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고드윈의 사상은 철저하고 견고한 사상적 토대와는 거리가 멀다. 철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고드윈의 생각은 이론적으로 모순적인 부분도 있고, 그 삶 자체도 아이러니 하다. 노년에 국가의 연금을 받으며 생활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의 사상과 삶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 존경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고드윈은 그런 면에서 훨씬 인간적이다. 그가 남긴 많은 저작들 속에서 그의 사상의 단면을 짚어 볼 수 있는 글들은 단편적으로 혹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해 보아도 아나키즘의 근원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생각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 하나의 전범이 되고 수정 보완 되면서 사회는 발전한다고 믿는다. 헤겔의 변증법적 결합은 이 때 필요해진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고드윈의 생각도 근본과 토대를 마련하고 모순과 단점을 수정하면서 끊임없이 국가 권력의 억압과 감시를 받으면서 조금씩 성숙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아나키즘은 무엇보다도 확고한 신념을 지닌 몇몇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온 정치 이념이나 철학적 풍토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자유롭고 유연한 흐름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혹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꿈을 꾼다. 국경없는 사회,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통일 이후의 한반도, 자동차 없는 세상, 입시없는 학교 생활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단순히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불과한가? 16세기 중엽에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Utopia’에서 그가 꿈꾸던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 가져갈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었다. 공산주의 사회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는 논쟁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 사이의 기본적인 규칙만이 살아 있는 사회를 꿈꿔본 적이 있다. 물론 ‘유토피아’에는 공무원도 존재하고 공동 농장과 공동 식당 등 고드윈의 생각과는 많은 부분들이 다른 이상 세계를 꿈꾼다. 고드윈은 공동 농장과 식당 같은 토마스 모어식 ‘유토피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의 가장 기본적 토대가 되는 자유와 평등, 자치의 개념은 일단 집단과 전체의 조화보다 개인의 행복과 쾌락이 앞선다. 물론 이 사상은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정의의 실현에 의해 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국가나 정부의 붕괴가 일시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지만 영원한 고통과 족쇄보다 나을 것이라는 고드윈의 생각은 많은 면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The anarchist writings william godwin’이라는 제목으로 1986년에 출판된 이 책은 윌리엄 고드윈의 수상록이라 할 만하다. 편집자 서론에서 고드윈의 생애와 사상을 적절하게 해설하고 있으며 본문으로 들어가면 1장에서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로 글을 시작한다. 이어서 인간의 본성과 윤리, 정치, 경제, 교육, 자유로운 사회 등 주제별로 고드윈의 핵심 사상들을 엮어 놓은 것은 순전히 편찬자인 피터 마셜의 능력에 기대고 있다. 고드윈의 책이면서도 연구자의 성과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으로 읽힌다.
우리나라에서 아나키즘은 단순히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로 오역되고 있다. 박홍규 교수의 <아나키즘 이야기>가 가장 정확하게 아나키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의 저작을 찾아 읽는 숙제가 남겨졌지만 고드윈의 영향과 상관성보다도 아나키즘은 영원한 유토피아나 이상 세계에 대한 꿈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투쟁과 사회 변화의 기초 사상으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부와 공무원, 국가 력의 강화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군림하는 존재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 기능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발 ‘제겨 디딜 곳 없는’ 현실의 토대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가 스스로 성장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독점하면서 법을 앞세워 지금도 여전히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새만금이나 미군 기지 이전 등의 사건에서 보듯이, 정부에서 자연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싶을 때 꺼내드는 ‘공무집행 방해죄’가 바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자유와 자연 그리고 자치가 아나키즘의 핵심 사상이라고 요약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의와 행복이 실현되고 쾌락이 극대화하는 가장 자연스런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고드윈의 사상을 통해 아나키즘의 기원을 살펴 본다기 보다는 ,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명명된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확장되고 전해졌는지, 현재의 유용성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아나키즘’ 속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고드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을 감고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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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