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 작가론(5)
꽃과 여인을 환상적 색조와 풍성한 화음으로 조율한 화가, 임직순
괴산이 본적인 임직순(1919-1998?)은 우리나라 중견 화가로 1960년 이래 계속 예술의 고장인 광주에 머물면서 오지호와 함께 호남 화풍을 이끌어 가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인물과 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인물화는 흔히 보는 실내외 사물을 배경으로 한 소녀상 아니면 여인상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 르느아르의 인물화도 색채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단순한 소재를 한 임직순의 인물화도 그에 못지않게 강한 인상과 감동을 준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의 인물화가 여느 것과 크게 달라 보이는 점은 없다. 단지 그의 그림은 모델의 개성과 특징보다는 화면 전체의 은은한 어울림을 중요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고, 배경과 인물이 상호 공명과 서로 부딪혀 음향(反響)을 일으키면서 신비한 일체감을 연출한다는데 있다.
물론 화가에 있어 여자만큼 아름다운 오브제가 없겠지만 광주에 내려가지 전에 숙명 여고에선 오랫동안 미술 교사를 한 그에게 있어서는 소녀상이나 여인상이 유난히 많다.
그의 인물의 모델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1957년 그의 초기작 「좌상」(6회 국전 대통령 수상작)에서 등장하는 인물도 역시 그저 그렇다. 수수한 옷차림에 청순하고 단정한 단발머리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물 속에서 평범하지 않을 것을 그려내는 것은 숨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그만의 안목과 미적 탐구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그림 속에 모델은 평범하다 못해 투박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인위적 표정을 피하고 여성의 내면적 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친근감을 주는 아름다움을 주려는 우도가 아닐까 싶다.
청년기에 한번 있을 법한 에피소드인 ‘한 소녀에 대한 짝사랑’은 임직순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구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편이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우연히 알게 된 친구의 여동생(진명학교 학생) 에 반하여 잠 못 이루는 세월을 보냈다. 고민 끝에, 그는 결국 그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본에 가 미술 공부를 하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그것을 몸으로 옮긴다.
결국 그에게는 꿈의 원동력인 소녀의 인상은 사라지고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 남게 되었다. 미술 평론가 이주헌은 임직순은 단테의 꿈의 여인 베아트리체처럼 그녀에 대한 꿈과 그리움의 마음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50년을 창작의 열정에 불태웠다고 평하고 있다.
임직순은 니혼 미술학교 시절 41년 처음 선전에 입선 두각을 나타내고 63년 초대 작가에 위촉되고, 국전 심사 위원 등이 되면서 그의 이름이 더욱 유명해진다.
70년대 들어오면서 그의 회화는 르네상스 기를 맞이하는데 색채도 화려해지고 장식적 요소와 조형 적 요소도 더욱 돋보이게 된다.
그의 인물화는 사람(모델)과 사물(뒷배경)이 한 화음으로 협주되는 형식을 띤다. 그 협주는 변주되고 조율되면서 다양한 리듬과 색채와 분위기를 주어 우리에게 인물화의 진가를 맛보게 해 준다.
「모자를 쓴 소녀(1970)」을 비롯하여 「가을과 여인(1974)」 「독서하는 소녀(1974)」 「정원의 여인(1974)」「실내의 여인과 꽃(1977)」「온실과 여인(1978)」 등은 이런 그의 회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70년대의 수작들이다. 그가 연출한 색은 환상적이고 신비하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의 색의 향연이 주는 축제 의식과 생명력은 여인의 단아함과 단정함과 조응이 잘 맞는다.
그의 그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세련된 사양 회화 기법의 원근법이나 기하학적 구도나 인상파 점묘법 등과는 판이하게 다른,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의 변조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한대의 편안함과 풍성함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빛과 의 만남에 따라 변화하는 색채미의 추구와 함께 자연이 주는 어느 순간의 색이 아니라 본질적 색을 찾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추구하는 색의 예술은 짧은 감동을 주는 것보다는 긴 감동과 여운을 주는 것이다.
임직순의 미술론은 그의 외모에서 보듯 매우 질박하고 단순하다. 자신의 어떤 주장이나 철학적 미학을 내세우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탈한 그의 모습은 어떤 집착과 얽매임의 단계를 넘어선 평화로움이 있다. 그에게도 「파리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장식적 경력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색채를 보면 행복해진다. 그 색채가 주는 기쁨을 우리는 임직순이 작품 속에서 쉽게 발견하게 된다. 1977년 이후에는 여인화 못지않게 풍경화도 많이 그렸는데 역시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그 깊이, 어머니로서의 자연에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작가의 유토피아를 엿볼 수 있는 「꿈(情景)(1977)」 같은 작품에서는 청색의 꿈꾸는 호수며, 적색의 불타는 대지며, 환각에서 벗어나 보다 근원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고, 또 같은 시기에 그이 대표적 「장미꽃(1977)」에서 보면 한 대의 유행과 조류를 넘어서 보다 단순하고 추상적인 회화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
화가에는 형태 화가와 색채 화가가 있다면 임직순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역량 있는 작가다.
일체의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중요시한 임 직순은 이 생명의 유기적 관계와 상호 연관성을 이론적 강요가 아니라 체험과 시각의 단련에서 오는 치밀한 구성을 텅해서 이루어 나갔다.
그는 관조의 세계가 빠지기 쉬운 도식주의, 형태주의, 타성주의를 벗어나 평면적인 회화 공간을 통해서도 그만의 색조와 화음의 세계를 잘 표출하고 있다. 힘찬 빛의 움직임과 적절하게 면과 선과 색을 처리하는 능수능란함에서 우리는 그의 회화적 천부성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그의 그림 속의 모델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가 만든 빛의 행복과 색채의 황홀경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김형순 미술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