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4년 3월 11일, 이탈리아의 시인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1544 ~ 1595) 출생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1544년 3월 11일 ~ 1595년 4월 25일)는 이탈리아의 시인이다.

–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사망: 1595년 4월 25일, 로마
.묘소: Sant’Onofrio
.국적: 이탈리아
.부모: Bernardo Tasso (부)
.언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직업: 시인, 작가, 극작가, 저자
.스승: Federico Pendasio
.학력: 파도바 대학교
.사조: 인문주의, 매너리즘
.수상: Poet’s Crown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1544 ~ 1595)는 르네상스 말미를 풍미했던 이탈리아 시인, 극작가이다.
대표작으로 ‘해방된 예루살렘’, ‘리날도’, ‘아민타’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는 1544년 3월 11일, 소렌토에서 출생하였다.
18세 때 서사시 《리날도 (Rinaldo)》를 발표하여 인정을 받았다.
그의 부친도 정신 (廷臣)이자 시인이었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시재를 인정받았다.
부친을 따라 각지를 편력하였으며 파도바 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며 장학금을 얻어 볼로냐 대학에 진학하였으나 필화 사건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페라라의 에스테 가의 정신이 되어 처음에는 추기경 루이지데스테에게, 다음은 공작 알폰소 2세에게 봉사하면서 동가 (同家) 자매의 애호를 받았다.
1573년 목가극 (牧歌劇) 《아민타 (Aminta》를 저작 상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목동 아민타는 아름다운 님프를 짝사랑하여 반수신 (半獸神)에게 나체로 묶여 있는 그녀를 구해 주었으나 냉대를 받는다.
그녀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자살하려 할 때 살아서 달려온 그녀와 맺어진다는 내용으로 밀턴의 《코머스 (Comus)》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17세 때부터 이탈리아 문학에 결여되어 있는 서사시를, 십자군을 소재로 하여 쓰고자 마음먹고 장시 《리날도》 (1562)를 습작으로 썼으며, 1575년에 《해방된 예루살렘 (Gerussalemme liberata)》을 완성하여 공작에게 바쳤다.

전편 8행운시 형식으로 일관, 26수로 된 대작인데 제1차 십자군의 성지 탈환을 배경으로 용사 리날도 (에스테 가의 조상)와 요녀 (妖女) 아르미다, 올린도와 소프로니아, 탄그레디와 에르미니아, 아르간테와 클로린다 간의 여러 가지 사랑의 갈등을 엮어 넣어 그 관능적 묘사가 특히 아름답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반 (反)종교혁명 시대로 종교 재판소의 감시 아래에 있어 이 걸작 가운데의 사실 (史實)이 왜곡된 것이며 교리로부터 이탈되었다고 하는 비평가들의 추궁 때문에 박해 공포증에 걸려 피신하였다.
약 2년간의 방랑 끝에 7년 여의 감금생활을 했다.
귀비 (貴妃)의 도움으로 풀려나 로마 교황의 보호를 받으며 주저 《정복된 예루살렘 (Gerusalemme conquistata》을 완성하였다. 캄피도리오 언덕에서의 계관 (桂冠)을 목전에 두고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그 밖에 다수의 시편, 시론, 서간 등이 있으나 그의 주저와 《아민타》를 통해서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 문학에 불후의 이름을 남겼다.
또한 괴테는 그의 전기를 빌어 극 《타소》 속에 시와 현실의 상극을 묘사하였다.

○ 희곡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
토르콰토 타소 (Torquato Tasso)는 독일인 극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고전주의 극작 스타일을 보여 주는 희곡이다. 실존 인물 토르콰토 타소의 생애를 각색했다. 예술가로서 고뇌, 아집,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 그로 인해 겪는 주변인과의 갈등이 묘사된다.
– 내용
토르콰토 타소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1554년 소렌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는데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아들과 함께 고향에서 추방된다. 이 사건으로 고향에 남은 가족들은 일생을 어두운 그늘 속에서 보내게 되고 타소는 타향을 전전하며 어려운 소년 시절을 보내지만 어려서부터 시재를 인정받는다. 에스테가의 궁정 시인이 되어 다른 임무를 맡지 않고 공작 자매의 애호를 받으며 창작에 전념하게 되나 경제적으로 영주에게 얽매인다. 타소는 영웅적 목가극 〈아민타〉(1573),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1575)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문학적 성취는 궁정에서 시기를 불러일으킨다. 영주의 총애를 둘러싸고 타소와 경쟁하던 정신들이 그를 시기하고 모함한다. 소모적 논쟁은 타소의 정신 건강을 해친다. 이때부터 타소는 궁정의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된다. 한 번 도주했다가 다시 페라라로 돌아온 타소는 광란 상태에서 공작의 가족에게 욕설을 퍼붓는 무례를 범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1586년 만토바 공작의 청원으로 풀려난 타소는 만토바로 간다. 그사이 〈행방된 예루살렘〉이 그의 동의 없이 출간되었다. 제목도 그가 붙인 것이 아니다. 타소는 유랑 생활을 하다 1595년 시인으로서 최고 명예인 계관 (桂冠) 직전 로마에서 사망한다.
타소의 생애는 18세기 후반 독일 식자층 사이에 유명한 전설이었다. 괴테 시대의 사람들에게 타소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극단적인 성향의 시인이었다. 타소의 생애에 허구를 보태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타소의 전기를 쓴 만조 (Manso)다. 괴테는 어려서 독일 식자층의 필독서였던 〈해방된 예루살렘〉을 읽었고 그 인상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도 남겼다. 일찍이 타소에게 관심을 가졌던 괴테는 1780년 이 시인의 비극적 삶을 소재로 희곡을 쓰기로 결심하고 펜을 들지만 1781년에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집필을 중단한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여행 중이던 1787년에 〈타소〉를 끝내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러고도 1년 반이 지나 바이마르로 돌아온 후에야 탈고한다.
괴테의 타소는 공작의 후원과 보호 아래 오직 시만 짓는 궁정 시인이다. 그의 임무는 궁정과 영주를 찬양하는 일이다. 마침내 오래 끌던 〈해방된 예루살렘〉을 탈고하고 원고를 공작에게 바친다. 그 대가로 공작의 누이 레오노레가 베르길리우스의 흉상에 있던 월계관을 타소에게 씌워 준다. 이 대관은 이 대관으로 타소는 뜻밖의 회의에 빠진다. 시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시 창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타소의 고뇌와 절망은 예술가로서, 작가로서 괴테가 마주해야 했던 고민의 지점에 있었다. 괴테가 타소의 생애에 연민을 갖고 그를 영웅적 천재 시인으로 묘사한 이유일 것이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