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중세 유럽을 지배한 매혹적인 여인
앨리슨 위어 / 루비박스 / 2011.3.20
- 중세 유럽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여인이자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던 여걸, 엘레오노르
엘레오노르라는 인물에 대해 세밀하고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첫 책이다. 베스트셀러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와 여인들>을 쓴 역사가이자 유명 작가인 앨리슨 위어는 엘레오노르의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며 생동감 넘치는 중세 유럽사를 풀어내었다.
아키텐의 여공 엘레오노르는 중세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8백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당돌했으며,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몰고 다닌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자비로운 통치자였으며, 여러 왕의 훌륭한 조언자이자 현명한 모후이기도 했다.
저자는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평가로 일축되어왔던 엘레오노르의 면면을 한 켜씩 들추어낸다. 그리하여 수많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종합한 치밀한 연구 끝에 그녀를 가장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해냈다. 화려하고 철없던 왕비가 모두의 존경을 받는 중년과 노년의 대비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추적한다.

○ 목차
역사와 전설 속의 위대한 여인을 기억하며 · 18
서문 · 22
프롤로그: 1152년 5월 18일 · 25
- 풍요로운 아키텐 · 28
- 미덕의 표상 · 56
- 악마의 부추김 · 78
- 예루살렘으로! · 106
- 정당한 이혼 · 134
- 행복한 결말 · 157
- 왕국에 관한 모든 것 · 178
- 신의 은총을 받은 잉글랜드 왕비 엘레오노르 · 196
- 왕께서 기적을 행하셨다 · 214
- 날로 깊어가는 의혹 · 235
- 성스러운 순교자 · 257
- 새끼들이 깨어날지니 · 273
- 왕비님과 왕자님들을 조심하십시오 · 286
- 가여운 포로 · 304
- 패배한 왕, 수치, 수치로다 · 327
- 독수리가 세 번째 둥지에서 기쁨을 찾으리라 · 348
- 연륜에 대한 찬사 · 364
- 악마가 풀려난다네! · 389
- 내 노년의 지팡이 · 411
- 가장 경애하는 엘레오노르 · 433
- 악인의 소생은 번성하지 못하리라 · 449
- 촛불이 꺼지다 · 464
엘레오노르의 가계도 · 478
참고문헌 · 483
○ 저자소개 : 앨리슨 위어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 소설가. 노스웨스턴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 철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주로 중세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역사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역사 쓰기’를 지향하는 그녀는 영미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한다. 그녀의 저서들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역사학자들에 의해 자료로 인용되며 역사 교과서 및 교양서로 널리 애독되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헨리 8세와 여인들》, 《엘리자베스 1세》는 인문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헨리 8세의 후예들》, 《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 등도 널리 알려져 많은 팬을 확보했다. 이 책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지은이가 철저한 자료 분석과 연구를 거듭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명성에 걸맞게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어, 역사와 전설의 경이로운 결합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밖의 책으로는 《장미전쟁 The Wars of the Roses》,《이사벨라 여왕 Queen Isabella》, 《영국의 왕가 Britain’s Royal Families》,《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Mary, Queen of Scots》, 《군주의 연인 캐서린 스윈퍼드 Mistress of the Monarchy》, 《런던타워의 왕자들 The Princes in the Tower》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영미권의 베스트셀러이다. 지은이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는 http://alisonweir.org.xn--uk-q04jk9m/ 볼 수 있다.
– 역자: 곽재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강의했다. 옮긴 책으로 《나는 왜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성형수술의 문화사》, 《다빈치 코드의 비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왜 책을 만드는가?》(공역), 《비즈니스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현대의 고딕 스타일》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P.27
이제 앙주의 앙리는 중세 유럽의 가장 부유한 상속녀 가운데 한 사람과 혼인함으로써 영지를 더욱 넓히려 하고 있었다. 앙리의 옆에 선 여인은 아키텐의 여공 女公이자 푸아투의 여백 女伯그리고 프랑스의 전 왕비 엘레오노르였다.
… 앙리는 이 결혼에 성공한 데 이어 몇 년 뒤 1154년 잉글랜드 왕위까지 제 것으로 만듦으로써, 잉글랜드와 지금의 프랑스 지역, 곧 스코틀랜드 접경에서 피레네 산맥에까지 뻗친 방대한 영토를 소유한 앙주 제국의 기틀을 확립하게 된다. 이만한 규모의 제국이라면, 그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프랑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었다.
… 향후 4백 년에 걸쳐 서유럽의 외교와 안녕을 좌우하게 될 새로운 판도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대대로 앙주 제국을 조각내고 정복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플랜태저넷 가 최초의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두 사람의 결혼은, 12세기 기독교세계의 정치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상당기간 유럽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P.209
왕실이 이동을 할 때면 말과 마차, 수레, 그리고 온갖 종류의 물품과 살림살이를 실은 소나 말 같은 동물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왕비와 귀부인들은 말 위에 앉거나 가죽으로 지붕을 덮은 통 모양의 마차를 탔다. 궁에 딸린 관료와 시종만도 2백 이상을 헤아렸고, 동행한 하인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요리사, 빵 굽는 사람, 과자 굽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과일류, 가금류, 와인, 고깃간, 술 창고, 각종 잔, 접시, 버터 등을 담당하는 급사나 장인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식료품의 공급과 조달, 부엌과 식품저장고의 관리를 책임졌다. 여기에 사제, 서기, 화가, 의전관, 사냥꾼, 뿔 나팔 부는 사람, 파수꾼, 경호원, 궁수, 중기병, 고양이 잡는 사람, 늑대 쫓는 사람, 사냥개 관리인, 왕실 고양이 관리인, 천막 관리인, 촛불 시종, 국왕 침대 운반자, 국왕 재단사, 세탁하는 사람 등이 보태졌다. 특히 세탁 시종 가운데는 국왕의 옷을 말리고 목욕을 준비하는 시종도 있었는데, 이 시종들이 헨리의 목욜 수발을 얼마나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1209년 존 왕은 6개월 동안 여덟 번째 목욕을 하면서 스스로도 놀라했다고 한다.

P.214-273
테오발드 대주교가 토머스 베켓을 왕에게 소개하면서 그를 대법관직에 추천했던 것도 이 회의였던 것 같다. 헨리는 첫눈에 베켓이 마음에 들었고, … 이것이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친교 가운데 하나이자 동시에 훗날 두 사람 모두를 엄청난 파국으로 몰고 갔던 우정의 시작이었다.
… 베켓과 헨리의 관계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까웠다. 당시 사람들은 두 사람이 요셉과 파라오처럼 궁합이 잘 맞았다고 말했다.
… 국왕은 공석으로 남아있는 캔터베리 주교 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부활절을 전후하여 왕비와 팔레즈에서 머무는 동안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베켓을 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베켓은 자신에게 충직하며, 또한 그가 교회개혁을 위해 구상 중인 급진적인 계획들을 추진하는 데도 큰 도움을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하룻밤사이에 이 도도하고 세속적인 궁정인이자 정치가, 군인은 오로지 영적인 사명에만 헌신하는 금욕적인 사제로 환골탈태한 것처럼 보였다.
… 국왕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 베켓 역시 성직자 처벌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와 특권은 교회를 세속의 개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대주교는 어떤 식으로든 이것이 침해받는 것은 좌시할 수 없었다. 베켓은 왕의 개혁을 반대했고, … ‘우리의 관례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헨리는 불쾌했다.
… “신께서 보시는 앞에서,” 헨리는 고함을 질렀다. “짐은 경들의 관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않겠다! 나의 관습에 지금 당장, 무조건 동의하라.” 베켓과 주교들이 계속 완강하게 버티자 헨리는 홀을 뛰쳐나가 버렸다. 다음 날 새벽, 국왕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면서 아이와 버크햄스테드에 있는 베켓의 장원을 몰수하라는 명을 대법관에게 내렸고, 베켓의 집에서 헨리 왕자를 데리고 나왔다.
… 1165년에서 1170년 사이 루이 왕은 적어도 스무 차례 이상 헨리와 베켓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앞으로도 6년간 두 사람은 절대 타협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법적원칙을 둘러싸고 처음 불거졌던 분쟁이 이제는 누구의 권한이 더 막강한가를 판가름하기 위한 감정싸움으로 확대되어 버렸다. … “누가 이 골칫거리 성직자를 내게서 좀 치워주겠나?” 정확히 기록된 바는 없지만 아마 헨리 왕은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 “빌어먹을! 군주가 천박한 사제 놈 하나한테 이런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다니!”
… 기사 넷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헨리는 뒤늦게 그들의 의중을 간파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재빨리 그들을 소환하는 사자를 보냈으나, 이미 상황은 종료된 듯했다. 헨리는 아무런 손도 쓸 수가 없었다. … 잉글랜드의 대주교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은 온 유럽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이후로 가장 최악의 악행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 거의 모든 이들이 순교자의 죽음을 국왕의 책임으로 돌렸고, 기독교 세계 전체가 헨리를 비방했다.
… 살아있는 베켓보다 죽은 베켓이 발휘한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종과 거의 동시에 그는 순교자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캔터베리에 살았던 이들은 앞다투어 몰려와 베켓의 피를 몸에 문지르거나 병에 담아갔고, 그의 옷자락을 찢어갔다.
P.288
어느 날 레몽은 헨리에게 경고를 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폐하, 왕비님과 왕자님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렇지만 이때도 헨리는 엘레오노르가 남편을 배신하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감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중세 시대에 아내가 남편에게 정치적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철저하게 결혼서약을 짓밟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P.344
필리프는 가장 굴욕적인 조건들을 헨리에게 강요했다. 헨리는 대륙의 모든 봉토에 대해 필리프에게 충성서약을 하고, 잉글랜드를 포함한 모든 영토를 리처드에게 물려주는 데 동의할 것이며, 그의 모든 봉신들이 리처드를 부왕의 상속자로 인정하고 충성맹세를 하도록 할 것을 요구받았다. … 헨리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이 조건들을 모두 수락했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헨리에게 필리프는 아들 리처드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라고 요구했다. 마지못해 아들에게 키스를 한 뒤, 헨리는 아들에게서 몸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네게 합당한 복수를 하는 날까지 내가 눈을 감지 않기를 바란다.”
P.374
리처드의 잔인한 보복 행위 역시 아크레의 승리에 오점을 남겼다. 왕은 살라딘이 일주일 안에 협정을 맺으러 오지 않으면, 사라센 병사들을 모조리 도시 밖으로 끌고 나가 죽이겠다고 공포했다. 이는 1187년 예루살렘에서 성전기사단과 병원기사단이 학살당한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그러나 살라딘은 항복을 거절했다. 그리고 기독교인 포로들을 풀어주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돌려주지도 않았다. 결국 리처드는 동료 십자군 전사들의 간곡한 청을 무시하고, 2천7백에서 3천에 이르는 투르크 인 남성과 여성, 아이들의 목을 베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동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치를 떨며 이 끔찍한 잔학행위를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 수백 년 동안 투르크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훈육할 때마다 위협 삼아 ‘말리크 리크 (사악한 리처드)’를 입에 올리게 된다.
P.427-428
리처드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을 본 베르트랑 드 귀르뒹이라는 어느 석궁병이 화살로 왕을 겨냥하여 팔을 맞추었다. 왕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 베르트랑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폐하께서는 내 아비와 내 형제를 살해했고, 이제는 저까지 죽이려 하십니다. … 그러니 무엇이든 좋으니 폐하께서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복수를 제게 하십시오.” … 리처드는 궁수의 말에 매우 놀랐고 감동받았다. 그래서 그는 궁수를 풀어주라 명하고, 이렇게 말했다. “나를 죽게 만든 너를 용서하겠다. 살아라, 살아서 나의 덕을 입고 대낮의 빛을 보라.” 이어 궁수는 족쇄에서 풀려났고 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왕은 잉글랜드 화폐 백 실링을 그에게 주라고 명했다. 하지만 메르카디에는 리처드 몰래 궁수를 체포했고, 왕이 사망한 다음, 그를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목을 매달았다.

○ 출판사 서평
베스트셀러 《엘리자베스 1세》,《헨리 8세의 여인들》의 작가 앨리슨 위어의 최신작으로 중세 유럽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여인,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던 여걸의 파란만장한 삶과 어우러진 12세기 유럽사
- 중세 유럽을 지배한 여걸
십자군 전쟁과 음유시인의 시대, 기사도 문학이 꽃피우던 12세기 유럽.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으며 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였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들들과 자손들은 대대로 잉글랜드의 왕을 지냈으며 딸들은 시칠리아와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다. 손자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나 카스티야와 예루살렘의 왕이, 증손자는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그녀와 헨리 2세가 시작한 플랜태저넷 왕조는 1485년까지 이어졌으며,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은 물론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가 그녀로부터 시작됐으니, 이쯤 되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에게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당연하다.
엘레오노르가 살았던 유럽은 봉건사회로 크고 작은 영지들로 나뉘어 있었다 (12세기는 고려시대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여진족의 세력 확장으로 송나라가 남쪽으로 밀려갈 때이다). 아직 국가의 기틀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고,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왕과 공작, 백작과 같은 상위 군주에게 충성을 바쳤다. 이 시기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왕실령보다 더 큰 영지를 물려받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녀였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프랑스의 루이 7세와 결혼한 후에도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로 염문을 뿌렸고,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혼을 했다. 한낱 앙주의 백작이었던 앙리는 엘레오노르와 재혼하면서 세력을 키워 훗날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될 수 있었다 (이때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방대한 영토는 잉글랜드 소유가 되어 이후 백년전쟁의 원인이 된다). 한편 그녀는 왕자들 간의 세력다툼에 개입하여, 리처드 1세가 프랑스와 필리프 왕과 손을 잡고 부왕을 공격하도록 도왔다. 마침내 헨리 2세는 아내와 아들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존마저 리처드의 편이 되었음을 알고 충격 속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결국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뜻대로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존 왕을 차례로 왕좌에 앉혔다.
유럽사의 위대한 여인을 꼽아 보라면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룩한 엘리자베스 1세나 영국의 황금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한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등이 떠오른다. 이 여인들은 모두 남성 중심 사회였던 유럽에서 비범한 삶을 산 유능한 정치가이자 유럽의 지배자였다. 엘레오노르는 그보다 수백 년이나 전에 유럽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여인이었으니 우리가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녀에 대해서 다룬 책은 다른 역사 속 여인들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는 데서 그치거나, 소설의 형식을 빌린 아동 도서가 전부였다. 이 책은 엘레오노르라는 인물에 대해 세밀하고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첫 책이다. 베스트셀러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와 여인들》을 쓴 역사가이자 유명 작가인 앨리슨 위어는 엘레오노르의 파란만장한 삶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며 생동감 넘치는 중세 유럽사를 풀어내었다.

- 매혹적인 요부 혹은 현명한 왕비
아키텐의 여공 엘레오노르는 중세를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살아생전에는 물론이고 8백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당돌했으며, 끊임없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몰고 다닌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영지에 대해 평생 뜨거운 애정과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자비로운 통치자였으며, 여러 왕의 훌륭한 조언자이자 현명한 모후이기도 했다.
엘레오노르의 명성에 따라붙은 전설들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그녀의 참된 모습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프랑스 왕과 이혼하고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한 또 다른 실력자와 재혼한 요부, 숙부와 예비 시아버지를 상대로 염문을 뿌렸던 발칙한 간부 姦婦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십자군 원정에 동행할 당시의 온갖 스캔들이나, 남편 헨리 2세와 왕자들 간의 권력 다툼에 개입하여 아들들이 부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배후 조종했던 일은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존 왕》에서 엘레오노르는 ‘타락한 할망구, 하늘과 땅을 망가뜨리는 괴물’로 묘사된다).
지은이는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평가로 일축되어왔던 엘레오노르의 면면을 한 켜씩 들추어낸다. 그리하여 수많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종합한 치밀한 연구 끝에 그녀를 가장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해냈다. 그 덕분에 비로소 우리는 ‘페르풀크라 Perpulchra’, ‘아름답다는 말 그 이상’의 칭송을 들었던 화려하고 철없던 왕비가 ‘미덕의 꽃’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중년과 노년의 대비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차분히 추적해갈 수 있게 되었다.
한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세 역사 연대기
이 책은 단순히 엘레오노르의 전기는 아니다. 한 인물을 통해 보는 중세 유럽사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엘레오노르의 드라마틱한 개인적 삶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봉건제의 구조 아래 유럽의 모습과 정세,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이 기틀을 세워가는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리처드가 무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한 아크레 전투를 비롯하여 십자군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또한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도 생생하게 그려내었는데, 특히 클래런던 헌장을 둘러싼 헨리 2세와 성 토머스 베켓의 불화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감탄할 만큼 실감난다.
기사도 정신과 음유시인의 시가 꽃피웠던 중세 궁정 문화를 엿보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지은이는 당시 왕족과 귀족, 기사계급, 평민들의 의식주 생활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p.64, 74, 178 ~ 195, 208 ~ 213), 엘레오노르를 찬양하는 음유시인의 노래나 각종 서한들을 풍부하게 인용해 놓아 (p.170, 202, 305, 395) 당시의 시대상과 중세 감성을 한껏 느낄 수가 있다. 또 자신을 죽게 만든 궁수에게 “살아라, 살아서 나의 덕을 입고 대낮의 빛을 보라.”라고 말하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사망 장면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감동적이다 (p.428). 드세고 제멋대로인 봉건 영주들을 진압하려 고군분투하는 군주나, 다혈질에다 온갖 술수를 동원해 배신을 일삼는 중세인들의 모습은 중세 로망을 방불케 하며 아스라이 오랜 이국 이야기와 환상의 세계를 선사한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남부의 문화적인 환경에서 공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당시 여성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귀족 여성이라 해도 교육이라고는 신부수업을 받는 게 고작이었다), 화려한 궁정생활을 누렸다. 루이 7세와 결혼한 후 보여준 사치스럽고 파격적인 행실은 프랑스 귀족들과 성 베르나르두스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예술인들을 후원하며 프랑스 왕실을 예술적인 환경으로 바꾸어 놓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영토에 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프랑스 왕실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을 답답하게 느낀 엘레오노르는 루이 7세의 십자군 원정에 귀부인들을 거느리고 동행했다. 그곳에서 엘레오노르는 이동에 방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숙부 안티오키아의 레몽과 노예들을 상대로 추문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루이 왕과의 사이가 틀어지자 엘레오노르는 근친혼을 빌미로 교회의 동의를 얻어냈고, 이혼을 감행했다.
그러나 엘레오노르를 그런 팜므 파탈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왕가와 귀족가의 여인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거나 수도원으로 은퇴하는 나이에 엘레오노르의 공적 생활은 비로소 만개한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을 위해 떠난 동안 그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맡아 정력적으로 정무를 이끌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의 신붓감을 인도해 오기 위해, 프랑스 왕과 결혼시킬 손녀딸을 정해 데려오기 위해, 리처드의 임종의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 노년의 몸으로 수차례나 피레네 산맥을 오르내리며 동분서주한 철의 여인이었다. 중세 여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장수를 누렸던 엘레오노르는 여든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기까지 열 명의 자식들 중 여덟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평생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현명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

-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네 명의 왕들
엘레오노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각양각색의 왕들 네 명을 소개한다. 역사에 남아 현대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또는 문학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이들은, 엘레오노르의 남편들이자 그녀가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아들들이다.
① 첫 번째 남편, 프랑스의 왕 루이 7세 (1121 ~ 1180)
루이 6세의 둘째 아들이었던 루이 7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유년 시절을 생드니 수도원의 ‘꼬마 수사’로 보냈으나, 장손 필리프의 죽음으로 왕위를 이었다. 성인군자나 다름없는 성품을 지녔던 루이 7세는 평생을 ‘미덕의 표상’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왕비를 ‘이성을 잃을 지경으로’ 사랑했지만 자유분방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엘레오노르는 남편의 고리타분한 성격과 프랑스 궁정 생활을 답답하게 느꼈다.
② 두 번째 남편,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 (1133 ~ 1189)
‘앙주의 앙리’로도 알려져 있다. 19세에 열한 살 연상의 엘레오노르를 신부를 맞이하여 프랑스 국토의 서반부를 수중에 넣었고, 스티븐 왕이 죽자 플랜태저넷 왕가 출신의 첫 번째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헨리와 엘레오노르 둘 다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드센 성격의 소유자였고 야망과 이해관계 면에서도 잘 맞는 배우자였다. 그러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배후에 왕비가 있음을 눈치챈 헨리는 오랜 세월 그녀를 감금하기도 했다.
③ 사자심왕 리처드 1세 (1157 ~ 1199)
헨리 1세와 엘레오노르의 셋째로 태어난 리처드는 엘레오노르가 ‘내 노년의 지팡이, 내 두 눈의 빛’이라 부를 만큼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 부모의 성격을 빼닮아 정열적이고 성미가 급했으며 엄청난 색정광으로 알려져 있다. 3차 십자군 전쟁에 출정해 용맹을 떨쳐 사자심왕이라는 별칭을 얻고 수많은 기사도 문학과 무훈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묘사하는 한편, 재위 기간 대부분을 외지에 나가 있으면서 군비와 자신의 몸값으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인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면모도 다루고 있다.
④ 무지왕 존 (1166 ~ 1216)
헨리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로, 리처드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부왕 때의 영토가 모두 형들에게 분배되고, 프랑스와의 싸움으로 대륙에 있던 영토 대부분을 상실했기 때문에 ‘무지왕 無地王’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귀족들의 강압에 못 이겨 ‘마그나카르타 (대헌장)’를 승인하기도 했다. 악한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는 유능한 행정관이었고 사법질서 확립과 복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으며, 형 리처드와 달리 대륙보다 잉글랜드 왕국을 통치하는 데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인 왕이었다.
○ 추천글
더 타임스 (The Times): 앨리슨 위어의 매우 대중적인 역사책은 마치 소설 같다. 이제 그녀는 가볍게 문학과 역사학의 경계선을 넘어섰다. 그녀의 배경지식은 너무나 정확해서, 그녀는 역사적 사실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소설적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
헤럴드경제: 영국 역사계의 시오노 나나미로 회자되는 앨리슨 위어의 대중적인 글쓰기 덕분에 미국드라마를 보듯 혹은 연애소설을 읽듯 이제 역사가 흥미롭기만 하다.
북 월드: 한 번 잡으면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역사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저자의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서로서의 냉정함을 잃지 않는 점 또한 놀랍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