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인설
주희 / 책세상 / 2003.1.30

서구의 산업사회는 점차 전문화, 세분화, 대량화되어 가면서 인간과 노동을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며 결국 마음의 상실이라는 결과까지 불러일으켰다. 자연에는 결코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마음이 있다는 동양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서구의 물리주의는 불완전한 사고일 수 밖에 없다. 송대의 유학자 주희의 ‘인설’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전통 세계를 주도했던 유가의 핵심사상인 ‘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한 심성론의 요체이다. 이 책은 마음을 재발견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며 진정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궁리함으로써 인간성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목차
- 인설 … 15
- 장식에게 보낸 다섯 편의 서간 … 23
- 진기지에게 답하다 … 43
- 원형리정설 … 51
- 인설도 … 55
해제 – <인설>, 유가 인 개념의 정점 … 61
주희, 유학의 집대성자
저작 배경과 동기
<인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인설>과 현대 심리철학

○ 저자소개 : 주희 (朱熹, 1130∼1200)
주자의 이름은 주희 (朱熹, 1130∼1200)이며, 자는 원회 (元晦) 또는 중회 (仲晦), 호는 회암 (晦庵), 시호는 ‘문 (文)’이어서 ‘주문공 (朱文公)’이라 부른다. 원적은 흡주 (翕州) 무원 [지금의 장시성 (江西省) 우위안시]인데, 흡주가 남송 때 휘주 (徽州)로 개칭되었고, 휘주 (지금의 안후이성) 아래쪽에 신안강 (新安江)이 흘러서 그의 본관을 ‘신안’이라고 한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 이후로 중국 역대 최고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북송 5자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 (邵雍)]의 유가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주돈이의 ‘태극 (太極)’을 정호의 ‘천리 (天理)’와 같은 것으로 보고, 정이의 ‘성즉리 (性卽理)’ 사상을 발전시켜 성리학을 완성했다. 또 중국 유가 경전을 정리해 논어 (論語), 맹자 (孟子), 대학 (大學), 중용 (中庸)을 4서로, 시경 (詩經), 상서 (尙書), 주역 (周易), 예기 (禮記), 춘추 (春秋)를 5경으로 분류했다.
19세 때 진사에 급제한 이후, 고종 (高宗), 효종 (孝宗), 광종 (光宗), 영종 (寧宗) 등 네 임금이 차례로 바뀌는 동안 실제로 벼슬을 한 기간은 지방 관리로 8년 여, 황제에게 조언과 강의를 하는 벼슬인 궁중 시강으로 46일, 도합 9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관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무이산과 부근의 숭안, 건양 등지에서 보냈다.
주자는 강경한 성격과 단호한 태도로 인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는데, 결국 당시 실세인 한탁주의 의도적인 배척과 호굉이 작성하고 심계조 (沈繼祖)가 올린 탄핵문에 의해 1196년 시강과 사당 관리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198년에는 ‘위학 (僞學)’으로 내몰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일절 금지되었다. 물론 ‘위학’ 규정에 따라 벼슬도 하지 못했다. 그는 향년 71세의 나이로 1200년 음력 3월 9일에 건양 고정 (孤亭) 마을의 창주정사 (滄州精舍)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인 1208년에 시호를 받았고,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1221년이 되어서야 겨우 행장 (行狀), 즉 전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사위인 황간 (1152∼1221)이 썼다. 1227년에는 ‘태사 (太師)’라는 칭호를 받아 ‘신국공 (信國公)’에 추봉 (追封)되었으며, 이듬해 ‘휘국공 (徽國公)’으로 개봉 (改封)되었다.
그가 편찬한 책은 80여 종, 남아 있는 편지글은 2000여 편, 대화록은 140편에 달하며, 총 자수로는 2천만 자나 된다.
주요 저서로는 사서장구집주 (四書章句集注), 초사집주 (楚辭集注), 시집전 (詩集傳),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 송명신언행록 (宋名臣言行錄) 등이 있으며,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주자어류 (朱子語類), 문공가례 (文公家禮), 주회암집 (朱晦庵集) 등이 있다. 그리고 여조겸과 공동 편찬한 근사록 (近思錄)은 주돈이, 정호 (程顥), 정이, 장재 (張載)의 글과 말에서 622개 항목을 가려 뽑아 14개의 주제별로 분류 정리한 책으로, 이후 성리학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문헌 중 하나가 되었다. 주자는 경학, 사학, 문학, 불학 (佛學)뿐만 아니라 ‘이 (理)’가 물질세계의 근원에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심지어는 자연과학 서적까지도 고증을 거치고 훈고를 행해 올바른 주석을 달았다.
– 역자 : 임헌규
경북대 철학과, 서울대 대학원(서양철학,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동양철학, 석·박사), 유도회 부설 한문연구원(3년), 미국 하와이대(비교철학) 등에서 공부했다. 동양고전학회 회장과 동방학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남대 철학과 및 사단법인 유도회 한문연수원(논어담당) 교수이다.
저서로는 『공자에서 다산 정약용까지-유교 인문학의 동서철학적 성찰』, 『유교인문학의 이념과 방법』, 『유가의 심성론과 현대 심리철학』, 『노자 도덕경해설 』, 『리란 무엇인가』, 『노자: 도와 덕이 실현된 삶』, 『전통철학과 의학에서 본 몸과 마음』(공저), 『유가철학의 이해』(공저), 『장자사상의 이해』(공저), 『노년의 풍경』(공저),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공저), 『기독교와 현대사회』(공저), 『대학의 종합적 고찰』(공저), 『21세기의 동양사상』(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인설』, 『노자』, 『답성호원』, 『사단칠정을 논하다』, 『주자의 철학』, 『노자철학연구』, 『장자:고대중국의 실존주의』, 『후설의 현상학』, 『하버마스: 다시읽기』,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데리다, 푸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인간 이상과 경험을 근거로 했던 서구의 근대는 필연적으로 관찰과 실험을 통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사회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점차 전문화, 세분화, 대량화되어가면서 인간과 노동을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며 결국 마음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자연에는 결코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마음이 있다는 동양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서구의 물리주의는 불완전한 사고일 수밖에 없다. 송대의 유학자 주희의 ‘인설’을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824자로 압축 구성된 이 간략한 저작은 동아시아 전통 세계를 주도했던 유가의 핵심 사싱인 ‘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한 심성론의 요체이다. 이 책은 마음을 재발견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며 진정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궁리함으로써 ‘마음의 덕’과 ‘사랑의 이치’를 통해 인간성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유가의 핵심 사상인 ‘인 (仁)’에 대한 개념적 혼란을 바로잡고 진정한 인간본성이 무엇인지를 궁리
동양철학에서 ‘인 (仁)’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덕목으로 손꼽혀왔다. 유가의 집대성자인 주희의 ‘인설’ (仁說)은 이러한 인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리, 완성함으로써 유가가 내놓은 인에 대한 여러 논의 가운데 완결판으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다.
그는 ‘인’을 만물의 생성을 본체로 하는 하늘과 땅의 마음이 부여한 것이자 우리 마음이 얻어 지니고 있는 마음의 덕으로 정의한다. 즉, 인간의 인을 끊임없이 만물을 낳는 우주 자체와 연관지으며, 인간을 우주 목적에 동참하는 존재로 정립하는 도덕의 형이상학을 구축한다.
824자로 압축, 구성된 이 책은 동아시아 전통 세계를 주도했던 유가의 핵심 사상인 ‘인 (仁)’에 대한 개념적 혼란을 바로잡고 진정한 인간본성이 무엇인지를 궁리하게 하고 있다.
○ 추천사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 824자로 압축 구성된 이 저작은 유가의 핵심 사상인 ‘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한 심성론의 요체이다. 이 책은 마음을 재발견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며 진정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궁리함으로써 ‘마음과 덕’과 ‘사랑의 이치’를 통해 인간성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 독자의 평 1
내가 아는 유학이란 조선의 지배사상이 유교였으며, 그 중에서도 송대의 주희 사상이 그 주류라는 정도이다. 주희의 방대한 저서 중 핵심 개념인 ‘인’에 대한 명확한 개념적 정리가 된 인설을 읽었다. 역자인 임헌규는 현대의 사상사는 과학으로 수렴되어, 세계를 물리적인 방법으로서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류가 되었으며 심지어 심리학이나 철학 조차도 인간 존재를 물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인설은 객체화 된 인간을 주체로 되돌리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사상서이다.
“하늘과 땅의 마음은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주희가 말하는 인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해본다. 현대인들과 현대 과학이 세계를 물리적인 객체, 존재 자체로만 바라보는 데 비하여, 주희는 존재하는 우주의 발현된 모습 그 이면 어딘가에 만물을 생성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완성하게 하고 갈무리하게 하는(원형이정) 원리라던가 이치 같은 것이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는 그것을 ‘하늘과 땅의 마음’이라고 말했고 그것이 바로 ‘인’이다.
인간에게도 인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동사로서의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마음으로서, 누구나 사람이라면 이 인을 갖추고 있다. 인은 인, 의, 예, 지라고 하는 사덕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본성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덕이 피어나 발하면 각각 불쌍히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며, 사양하고 공경하고, 올바름과 그름을 판단하고, 효도하고 공경하는 감정이 된다.
주희는 인이 인간 개개인에 내재하므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본 것 같다. 인이 ‘사랑’이라는 것은 우주 만물과 인간 존재의 본성 속에 따뜻하고 고운 마음씨의 신(? 종교적으로 본다면)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사사로운 마음이 인의 실현을 막으므로 가만히 있으면 본성대로 선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이 발현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역자 임헌규가 우려하듯이 나도 세계와 과학이라는 것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과학은 있는 그대로를 분석하고 탐구하여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낼 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은 하지 못한다. ‘하늘과 땅의 마음이 만물을 생성하는 데 있다’는 주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과학은 그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발전만을 향해 갈 것이 아니라 만물을 ‘사랑의 마음’으로 옳고 곧은 방향으로 성찰하며 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고, 과학이 우주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다 해결하는데 철학은 이제 무얼 하나 하는 고민을 혼자 해본 일이 있는데, 인설을 읽고 그 답이 생겼다.
고대 철학은 우주의 모습과 근원, 세상의 최소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를 했었고 이제는 그 물음을 과학이 해결한다. 이제 철학이 할 일은 이 우주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는 ‘인’의 모습을 밝혀 이 세계 속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의 질문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인이란 주희의 말에 따르면 본질과 이치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그대로 흘러나와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지향점이라거나 살아가면서 실현해야 할 목적으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 독자의 평 2
주객전도. 오늘날 인간의 삶은 화려함 속에도 피폐함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기 위한 것인 듯 보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날이 발달해 가는 과학 기술. 하지만 정작 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들에 의해 지배당할 뿐이다. 컴퓨터가 가져다 준 편리함 못지 않게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 강도 역시 강렬해졌다. 삶과 죽음, 그 고귀함마저도 인공적인 과학 기술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서양적인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 앞만 보고 바삐 달리던 이들이 동양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 하겠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없듯이, 인류는 느리게 사는 삶을 포기하면서 인생의 아름다움도 함께 잃어버렸던 것이다. 주희가 누구던가. 오늘날까지도 성리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사상이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우리는 묻지 않는다. 그의 저서를 읽는 이들 역시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인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권해본다. 824자에 불과한 짧은 글 안에 담겨 있는 오묘함은 시간에 쫓기는 이들을 빨리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해방시킴과 동시에 ‘인(仁)’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통해 사고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은 주희 이전의 전통 유가에서도 존재하는 개념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이전까지 하나의 바람직한 덕목으로 파악, 선한 정치를 베푼 이를 찬양하기 위하여 사용되던 ‘인’의 개념에 보편성을 불어넣었다. 맹자는 이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을 실현할 내적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공자와 맹자 모두 ‘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정작 침묵하였다. 명확하게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인’이었기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를 이해했다. 실천을 위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파악한 주희가 이러한 현실을 개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인’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미천함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그는 <인설>을 지음으로써 ‘인’에 대한 개념을 명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상세한 해제와 더불어 수록되어 있는 장식, 진기지와의 문답글은-여전히 인,의,예,지 네 가지 덕목 중 ‘인’을 으뜸으로 취급한 나머지 모든 것을 ‘인’으로 환원한 듯한 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나-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던 ‘인’의 개념을 보다 명확화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서양 철학과의 비교 부분은 많은 생각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고 객관화하는데 익숙한 서양 철학은 인간의 심성마저도 같은 방식으로 파악하려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인식한 기능주의 철학은 색다른 시도를 하지만, 이러한 시도조차도 마음의 ‘기능’에 집착한 나머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은 외면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주희의 인설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을 ‘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정의내림으로써 서양 철학이 봉착한 문제와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철학적 자아는 인간도 아니며, 사람의 몸도 아니며, 심리학의 대상인 사람의 영혼도 아니라 형이상학적 주체이며 세계의 일부가 아닌 ‘세계의 한계’이다. 비트겐슈타인이 했다는 이 말은 주희의 철학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하다. 모든 것을 실증주의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 했던 서양 철학은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결국 ‘無’로 회귀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자기-패배적인 회의주의를 낳을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