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폴레옹의 학자들
로베르 솔레 / 아테네 / 2003.4.12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의 학술적 성과를 생동감 있는 필치로 기술한 책이다. 인도로 진출하는 영국의 통로를 막기위해 나폴레옹은 3만의 병사를 이집트로 보내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이집트 원정에 전공이 다양한 학자와 예술가 167명이 참여했고, 그 덕분에 학술적인 차원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몽주, 베르톨레 등의 위대한 인물들과 푸리에, 조프루아처럼 나중에 저명해지는 아주 비범한 젊은이들이 섞여있던 연구자들은 이집트에서 3년 동안 아주 뛰어난 연구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로제타 스톤이 발견되고, 거기에 쓰여진 상형문자가 해독되며 원정에 참여했던 학자와 예술가들이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이집트지>를 출간하면서 ‘이집트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기》 로 개정출간되었다.

○ 목차
서문을 대신하여
역자 후기
이집트원정 연대기
1.백과전서의 여행
평균 나이 25세
‘오리앙’호를 타고
말타를 지나며
2.빛의 근원에서
피라미드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신기루
정복의 노예가 된 군대
보나파르트, 이집트 학사원을 창설하다
학술 잡지와 신문
3.예언자와 마술사들
외면당한 프랑스 기술
두 문화의 충격
4.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모세의 땅에서의 보나파르트
10미터의 실수
수문 없는 직통 운하
5.거인들 사이의 연대기 작가
당나귀와 학자들
어느 미학자의 경탄
6.페스트 앞에서
현지의 의사들
시리아 원정
전염병에 대한 논란
7.유명해진 돌, 로제타스톤
알려지지 않은 문자와 언어
아부키르에서 파리로
8.도원경의 황홀
덴데라 12궁도
테베의 폐허 속에서
학제간의 작업
9.샅샅이 조사한 이집트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사회
예술가 겸 민족학자들
‘와조’호의 출발 실패
10.나일강의 모든 물고기
식민지화 계획
우울과 낙담
지칠 줄 모르는 조프루아
11.연속적인 측량 작업
피라미드의 높이 측정
마지막 회합
아주 탐내던 전리품
12.20권의 박학서
기념비적인 출간
풍요로운 박물관, 이집트
화려한 경력
부록
학자들의 리스트
과학예술위원회
이집트 학사원
<이집트지Description de I’Egypte>
참고문헌
인명찾기

○ 저자소개 : 로베르 솔레
저자 로베르 솔레는 이집트 태생의 저널리스트, <르몽드>의 편집장을 역임한 후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터키 모자>, <맘룩카>등 베스트셀러 소설을 발표했으며, 현재 세계 각국에 작품들이 번역되어 있다.
– 역자 : 이상빈
역자 이상빈은 프랑스 파리 제8대학 문학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대우교수.
저서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는가>, <세계의 소설가>등이 있으며, 역서로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 <간디가 온다>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나폴레옹은 최고의 학자들과 예술가 167명을 동원하여 이집트 원정을 떠난다”
1998년 여름, 프랑스에서는 이집트 원정 200주년을 기념하여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 3 개월에 걸쳐 총 12회 <<나폴레옹의 학자들 Les savant de Bonapart>>을 연재했다.
이집트 카이로 출신인 <르몽드> 기자 로베르 솔레는 이집트 원정에 동참했던 나폴레옹의 수많은 비범한 학자들이 보여준 탐사에 대한 믿기지 않는 대서사시를 썼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생동감 있는 필치로 기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르몽드> 지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당시 원정에 동참했던 학자들의 생생한 그림자료 200여 컷과 충실한 부록을 첨가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 몽주, 베르톨레, 비방 드농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과 수학자, 천문학자, 건축가, 화가들에 의해 18세기 이집트 대장정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1798년 이집트를 정복하러 떠날 때 나폴레옹은 전공이 다양한 학자들과 예술가 167명을 대동한다. 그들 중에는 몽주, 베르톨레, 비방 드농 같은 위대한 인물들과, 푸리에, 조프루아 생틸레르 처럼 나중에 저명해지는 아주 비범한 젊은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학자, 화학자, 엔지니어, 건축가, 박물학자, 천문학자, 의사, 출판업자, 동양 연구가, 화가, 음악가들을 망라했던 계몽주의 시대의 이 후예들은 이집트에서 3년 동안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가장 뛰어난 연구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 덕분에 파라오의 땅 이집트가 프랑스와 모든 국가들에 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기념비적인 저서 <<이집트지>> 속에 집대성되어 있는 한 국가에 대한 경이로운 탐구는 피비린내 나는 군사 원정이 저지른 실수조차 잊게 만들고 있다.

- “보나파르트는 대포와 인쇄기를 가지고 이집트에 왔다. 그러나 대포는 떠났고 인쇄기는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동양을 꿈꾸어 왔던 보나파르트에게 있어 이집트는 위대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21세의 나이에 이미 보나파르트는 <<예언자의 가면>> 이라는 동양에 대한 짧은 콩트를 쓴 바가 있다. 문학적 가치는 없었지만 이 책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칼리프에 대한 민중 반란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보나파르트는 저명한 동양 여행가이며 이집트 정복을 강력히 주창하던 볼네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전장에서 이미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고 공화국에 이탈리아를 바친 바 있는 이 젊은 장군은 이제 바다를 건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궤적을 따라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 원정은 단지 진부한 군사 정복으로만 축소 해석될 수는 없었다. 또한 원정대와 함께 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존재는 이집트 원정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하고 있다.

-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4000년의 세월이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_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원정대조차 어디로 떠나는 것인지 몰랐던 이 얼마나 이상하고도 학술적인 모험이었던가! 몇몇은 이집트로 떠나기를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와 반대로 파리에 남은 다른 사람들은, 이 원정이 ‘파라오의 나라’를 탐사하러 가는 것임을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또한 군사적인 이유로 비밀이 엄수되지만 않았어도 이 학술 여행은 훨씬 치밀하게 준비되었을 것이다. 현지에 도착한 ‘학자들’은 실험기구 일부를 잃어버리고 프랑스와 통신수단이 두절된 점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결국, 신선한 시각, 온갖 형태의 즉흥성 그리고 예기치 못한 탐험이 나일 계곡의 호화찬란함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이집트 발견은 탐험의 목표를 이루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는 초과 달성되었다.
이집트에서의 작업은 ‘이집트학’이라는 새 학문의 길을 열고,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들을 탐사하는 데 본보기로 사용된다. 그리고 푸리에, 조마르, 코스타즈, 자코탱, 샤브롤드 볼빅 같은 이들은 1821년 지리학외의 창설에 적극 참여했다. 또 <<이집트지>>의 여세를 몰아 알제리에 대한 고고학 및 예술 총목록이 1844년부터 출간된다.
1822년부터 시작된 샹폴리옹 Champollion의 상형문자 해독은 파라오의 나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여러 사람이 나일강 계곡에 정착하러 떠났는데, 그중에는 세라피즈 신전을 찾아내고 카이로 박물관을 창설한 오귀스트 마리엣 Auguste mariette 같은 인물도 들어있었다. 그가 최초로 1858년부터 1880년 사이에 맡았던 고대 이집트 유물관장 직책은 거의 한 세기동안 프랑스인들에 의해 독점된다. 원정대 엔지니어들이 연구하고, 70년 후에 페르디낭 드 레셉스 Ferdinand de Lesseps 덕분에 건설되는 수에즈 운하도 이집트에서의 프랑스 진출에 한층 무게를 더했다. 동시에 가톨릭 신부들은 신도 전도단과 함께 이집트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들을 건설한다. 나일 강변에서는 고급 불어권 신문도 만들어진다
평범하지 않았던 원정, 그 나라의 아랍화와 정신의 미국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자위가 남아있다. 구속 대신 유혹을 남겼던 이 평화적인 정복은 보나파르트의 비범한 학자들이 열령히 꿈꾸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