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1일, 일본의 의사로 “나가사키의 종”의 작가•나가사키 원폭 투하 피해자로 천주교 신자 나가이 다카시 (永井隆, 1908 ~ 1951) 별세
나가이 다카시 (永井隆, 1908년 2월 3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 1951년 5월 1일 <43세>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의대 부속병원)는 일본의 방사선학 전문 의사이자 작가로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기도와 봉사의 삶은 그에게 “우라카미의 성자”라는 애정 어린 칭호를 주었다.
주요저서로 「나가사키의 종」, 「이 아이를 남겨」 등이 있다.

– 나가이 다카시 (永井隆)
.별칭: “우라카미의 성자”, “원자벌판의 성자”
.출생: 1908년 2월 3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사망: 1951년 5월 1일 (43세),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의대 부속병원 (피폭 후유증)
.부모: Tsune Nagai, 노보루 나가이
.배우자: Midori Nagai (1934 ~ 1945)
.자녀: Kayano Nagai, Makoto Nagai, Sasano Nagai, Ikuko Nagai
.직업: 의사, 작가
.종교: 천주교 (바오로)
.주요저서: 「나가사키의 종」, 「이 아이를 남겨」
1908년 일본 마쓰에 시 (松江市)에서 태어났다. 1932년 나가사키 (長崎)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대학에 남아 방사선 연구에 매달렸다. 군의관으로 징병되어 만주 전쟁터에서 위문품 속에 들어있던『공교요리 (公敎要理)』를 읽고 귀환 후, 우라가미 (浦上) 천주교회에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방사선 장애로 인한 백혈병으로 시한부 생명을 이어가던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중상을 입었다. 그런 처지에서도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난 박애 정신으로 이재민들을 돌보았으며, 의학적 관심을 넘어서는 박사의 노력은 나가사키 시의 문화와 도시 복구,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관한 깊은 성찰로 이어졌다. 하지만 병마를 떨치지 못한 박사가 몸져눕자 1949년에는 교황이 길로이 추기경을 특사로 파견해 문병하는 한편, 헬렌 켈러 여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시에서는 같은 해 12월, 그에게 영원한 ‘명예시민’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1951년 5월 1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평화를 그리는 박사의 절절한 바람은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세계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으며, 나가사키 현과 시에서는 ‘나가이 다카시 기념 나가사키 평화상’을 제정, 방사선 피해자들의 복지와 치료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 생애 및 활동
1908년 2월 3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무사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으로 가톨릭에 감화된다.
1940년 나가사키의대 조교수 (방사선학)가 됐고, 1944년에 이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핵 등을 퇴치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변변한 보호장비도 없이 X-레이를 찍다 과다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1945년 6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마쓰야마 지역 5백 미터 상공에서 작렬한 원자폭탄으로 머리 오른쪽 동맥이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다.
나가이 박사의 부인도 같은 날 원폭에 피폭돼 세상을 떴다.
의료 체계와 장비는 괴멸됐고 그 자신도 백혈병에 더해 피폭과 함께 피를 흘리는 중상을 입은 몸으로 구호대를 꾸려 피폭자 치료와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일본에서는 ‘원자벌판의 성자’로 불린다.

이 같은 체험을 담은 『나가사키의 종』은 원폭 피폭자가 직접 원폭 피해 실태를 고발한 최초의 책이자 반전과 평화 메시지를 전한 역작으로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인 감동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구호 작업이 일단락된 후, 그는 시한부 투병을 하면서도 1948년부터 한 칸짜리 집에 살며 ‘여기당 (如己堂)’이라 이름을 짓고 생활했다.
‘여기당’은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철학을 담은 말로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원폭의 실상과 원자력의 현명한 이용, 그리고 평화를 주장하는 집필을 멈추지 않아, 『로사리오의 기도』, 『아버지의 목소리』, 『묵주알』, 『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영원한 것들』 등의 작품을 남겼다.
문학인으로서 뛰어난 문재와, 의사이자 원자력 전문가로서의 식견, 거기에 피폭 당사자만이 풀 수 있는 현장의 생생한 기록, 체험에 따른 깨달음을 달은 평화의 메시지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평화운동가들의 심금을 뒤흔들었다.
여기당에는 삼고의 천사로도 불렸던 헬렌 켈러 여사가 다녀가기도 했다.
1951년 5월 1일, 피폭 후유증이 악화돼 나가사키의대 부속병원에서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후 『나가사키의 종』은 영화와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저서에는 『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꽃 피는 언덕』, 『생명의 강』, 『촌의 (村醫』, 『평화의 탑』, 『여기당 (如己堂) 수필』, 『나가사키의 종 (鍾)』, 『사랑스런 아이여』, 『로사리오의 기도』 등이 있다.

○ 일본 나가사키대교구, ‘나가사키의 성자’ 나가이 다카시 박사 시복 추진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면서도 세계평화를 외치며 여기애인 (如己愛人)을 실천해온 나가이 다카시 박사 (바오로· 1908 ~ 1951)의 시복이 추진된다.
나가사키대교구(교구장 나카무라 미치아키 대주교)는 나가이 박사의 시복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시복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교구는 교구장 나카무라 대주교의 승인 하에 나가이 박사와 나가이 미도리 여사 부부의 시복시성에 관한 예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추후 시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시복심사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특히 교구는 시복추진에 앞서 신자들에게 나가이 박사의 삶과 영성을 알리기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교구는 지난 5월 18일 우라카미주교좌성당에서 ‘나가이 박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을 주제로 강연회를 시작으로 교구 내에 나가이 박사 관련 강연회를 이어나가고자 계획하고 있다. 또 나가이 박사의 시복을 위한 기도문을 인준한 교구는 기도문이 담긴 상본을 제작해 신자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나가이 박사는 원폭으로 폐허가 된 나가사키에서 평생을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여기애인(如己愛人)과 평화를 위해 활동해 ‘우라카미의 사도’, ‘원자벌판의 성자’로 불린 신앙인이다.
나가이 박사는 결핵 등의 병을 퇴치하기 위해 방사선 연구에 매진하다 백혈병을 얻었을 뿐 아니라, 나가사키 원폭으로 아내를 잃고 자신 역시 피폭으로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피폭자 치료와 구호활동에 몸 바쳤다. 이후 피폭 후유증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된 나가이 박사는 다다미 2장 남짓한 크기의 뇨코도(如己堂)에 머물면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문병객을 만나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나가이 박사는 1951년 5월 1일 피폭 후유증이 악화돼 선종했다.
나가사키대교구장 나카무라 대주교는 “한국에서도 여기회를 비롯해 나가이 박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참고 = 교보문고, 가톨릭신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