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15세기 북유럽 플랑드르의 르네상스 시대 화가 얀 판 에이크 (Jan van Eyck, 1380/90 ~ 1441)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판 에이크 (Jan van Eyck, 1380/90년경 ~ 1441년 7월 9일)는 플랑드르의 화가이다. 후베르트 판 에이크의 동생으로, 15세기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유화 기법을 사용한 최초의 미술가. 그가 색체 가루 (안료)를 최초로 기름에 섞어서 사용, 자연에 대한 세심한 고찰, 정교한 세부 묘사 등으로 인하여 중요하게 여겨진다. 대표작은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가 있다. 1422∼1424년 헤이그의 바이에른후 (侯) 요한의 궁정화가, 이어 25년 이래 부르고뉴공 (公) 필립 [善公]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출생: 1380/90년경, 신성 로마 제국 리에주 주교 공국 림뷔르흐
.사망: 1441년 7월 9일 (51~61세), 부르고뉴령 네덜란드 플란데런 백국 브뤼헤
.국적: 벨기에
.직업: 화가, 채식사, 건축가, 데생화가, 제도사
.스승: Robert Campin
.사조: 플랑드르파, 북방 르네상스
.배우자: Margareta van Eyck
.형제: 후베르트 반 에이크 (손위 남자 형제), Lambert van Eyck, Margaretha van Eyck
.주요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Dresden Triptych, Lucca Madonna, Ghent Altarpiece, Madonna of Chancellor Rolin
.후원자: 요한 3세 바바리아 공작 → 선량공 필리프
판 에이크는 제단화, 한 폭의 종교인물, 의뢰 초상화 등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를 모두 그렸다.
그는 필립에게 많은 보수를 받았는데, 필립은 화가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예술적 자유를 얻어서 “마음 내킬 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반 에이크의 작품은 국제 고딕 양식에서 나왔지만,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에 대한 더 큰 강조를 통해 그는 곧 그것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유화 물감 사용의 발전으로 새로운 수준의 기교를 달성했다.
그는 매우 영향력이 있었고 그의 기술과 스타일은 초기 네덜란드 화가들에 의해 채택되고 다듬어졌다.

- Timeline
c. 1390 – 1441
The life of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1425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is appointed the court painter to Philip the Good, Duke of Burgundy.
1430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settles in Bruges.
1432
The Ghent Altarpiece is completed by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s Jan van Eyck and Hubert van Eyck.
1433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paints his self-portrait The Man with a Turban.
1434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paints The Arnolfini Wedding portrait.
c. 1435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paints The Virgin of Chancellor Rolin.
1436
The Netherlandish Renaissance artist Jan van Eyck paints his Madonna with Canon van der Paele.

○ 업적
네덜란드 / 벨기에의 화가 얀 판 에이크는 플랑드르 화파의 대표적인 선구자로서, 이후 전반적인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 사조에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유화라는 기법을 최초로 만들어 현재까지도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이기도 하다.
1422∼1424년 헤이그의 바이에른 후 (侯) 요한의 궁정화가, 이어 25년 이래 부르고뉴공 (公) 필립 [善公]의 궁정화가였던 그는 유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반 에이크 이전에는 화가들은 주로 색깔이 담긴 추출물에 물과 날달걀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템페라’ 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물과 날달걀의 비율을 정확히 못 맞추면 색을 칠할 때 매우 버거우며 방수 능력이 없어 물에 젖으면 그림도 함께 흘러내려 사라진다는 위험 요소와 캔버스에 그리면 그림이 금방 갈라진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반 에이크가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는 유화를 도입한 기점으로 이후 유화가 미술계에서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어 반 에이크를 유화의 발명자로 보기도 한다.
○ 작품
- 주요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Dresden Triptych
Lucca Madonna
Portrait of a Man (Self Portrait?)
Jan van Eyck (c.1380/1390–1441) The National Gallery, London
Portrait of a Man (‘Léal Souvenir’)
Jan van Eyck (c.1380/1390–1441) The National Gallery, London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Jan van Eyck (c.1380/1390–1441) The National Gallery, London
The Virgin and Child at the Fountain
Jan van Eyck (c.1380/1390–1441) (after) Paxton House
The Arnolfini Betrothal
Jan van Eyck (c.1380/1390–1441) (copy after)
The Whitaker
A Young Man holding a Ring
Jan van Eyck (c.1380/1390–1441) (follower of) The National Gallery, London
Marco Barbarigo
Jan van Eyck (c.1380/1390–1441) (follower of) The National Gallery, London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네: Portret van Giovanni Arnolfini en zijn vrouw)은 1434년 초기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얀 판 에이크가 오크 화판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다.
〈아르놀피니의 결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1434년 초기 작품으로 15세기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 (Giovanni di Nicolao Arnolfini)가 결혼하는 모습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단순히 아르놀피니 부부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그림 가운데 거울이 있고, 거울 속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있는데, 이는 화가인 얀 반 에이크로 추정된다.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작가: 얀 판 에이크
.연도: 1434
.매체: 오크 화판에 유화
.크기: 60 x 82.2 cm
.사조: 북방 르네상스
.종류: 초상화
.소장: 런던 내셔널 갤러리
실내에 있는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초상화이며, 배경의 방은 플랑드르의 브루제에 위치한 그들의 저택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서양 미술사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들어간 가장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그림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1434년과 반 에이크라는 날짜와 서명이 표시되어있으며, 자신의 형제 후베르트와 그린 《겐트 제단화》와 함께 템페라 대신 유화 물감을 쓴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그림이다. 1842년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구입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림의 세부 묘사에 쓰인 환각법은 완성될 당시에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빛을 이용한 실내 공간의 재현은 “방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방 자체의 묘사까지 완벽한 실감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리학자 찰스 M. 팔코는 반 에이크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광학 장치를 사용하여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하였다는 호크니-팔코 이론을 제시하였다.

- 모델의 정체
오랫동안 이 그림은 플랑드르 침실을 배경으로 한 조반니 디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나 체마니의 초상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7년, 그들이 그림이 그려진 지 13년 후이자 얀 판 에이크가 죽은 지 6년 후인 1447년에야 결혼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그림의 모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늘날에 이 그림은 조반니 디 아리고의 사촌인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림의 여인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데, 2003년에는 1433년 2월에 사망한 첫 번째 아내 코스탄자 트렌타라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이 가설을 토대로 한다면 이 그림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함께 표현한, 부분적으로 기념적인 초상화로 볼 수도 있다.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는 루카 출신의 이탈리아 상인으로, 적어도 1419년부터 브루제에 거주하였다.
이 그림 이후 반 에이크가 베를린에서 그린 초상화의 모델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가 화가의 친구였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반 에이크가 그린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초상을 보면, 이 그림에 묘사된 남자의 얼굴과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묘사된 남자의 얼굴은 상당히 흡사하다.

여기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등장한 두 남녀의 맞잡은 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들이 결혼하는 장면이라면, 그들은 서로의 오른손을 잡았어야 한다.
하지만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완전하지 않은 결혼인 것이다.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의 신분적 차이가 큰 경우 이런 식으로 ‘왼손 결혼’을 했으며 소위 첩을 들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이런 경우 상속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아르놀피니가 금융업에 종사했고, 그가 살던 도시인 브뤼헤를 포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거점으로 삼아 성공 가도를 달렸던 것을 고려하면 새롭게 등장한 이 학설도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즉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등장한 사람은 조반니 아르놀피니가 맞으며, 단지 이 결혼이 완전한 결혼이 아니기 때문에 아르놀피니가 그의 아내와 정식으로 결혼한 시기가 얀 판 에이크가 죽은 다음이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묘사
이 그림은 원래 약간의 손실과 손상이 있었으나 대부분 수정을 거쳤으며, 대체적으로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림을 적외선 리프렉토그램으로 촬영하면 밑그림 단계에 묘사된 인물의 얼굴, 거울, 기타 요소에서 많은 자잘한 수정과 펜티멘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창문 밖으로 열매를 맺고 있는 체리 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부가 여름철 2층 방에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보통 가정하는 것과 다르게 이 방은 침실이 아니라 응접실이다. 당시 프랑스와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응접실에 침대를 두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앉는 용도 이외에는 산모와 신생아가 손님을 맞이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되지 않았다.
창문은 여섯 개의 내부 목재 덧문이 달려 있으며, 열려 있는 창문의 최상단 부분에만 유리가 끼워져 있다.
이 유리는 파랑과 빨강, 녹색으로 칠해진 밝은 과녁 문양의 스테인드 글라스이다.
두 인물은 매우 값비싼 옷을 입고 있다.
더운 계절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가 각각 입고 있는 겉옷은 타바드와 드레스로, 모피가 의상 가장자리 장식과 안감 전체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남자의 경우는 매우 값비싼 검은담비, 여자는 어민을 모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는 짚으로 엮은 것을 검게 염색한 것으로, 당시에 사람들이 여름마다 종종 쓰는 모자였다.
남자의 타바다는 안료의 색이 바랜 현재에 비해 한때 보라빛을 많이 띄었으며, 역시나 매우 비쌌던 비단 벨벳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상 안에는 무늬가 새겨진 돈수 재질의 더블릿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 드레스는 소매자락과 길게 끌리는 옷자락에 세밀한 손질이 필요한 대깅 (옷을 접어서 바느질한 후 자르거나 닳게 하여 장식)이 되어있다. 안쪽 드레스 또한 흰 모피가 대어져 있다.
여자가 맨 황금 목걸이와 양 팔에 낀 팔찌는 단순한 보석류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비싼 값을 호가하는 장신구였으며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상인 신분에 맞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사회적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귀족의 초상화에서 대개 묘사된 것처럼 황금 목걸이나 장식이 많은 의상을 입지 않았다.
방 내부에는 이외에도 많은 부의 상징이 표현되어 있다.
천장에 달려있는 황동 샹들리에는 당시 기준에 따라 크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매우 비싼 가격이었을 것이다.
샹들리에 윗부분에는 도르래와 쇠사슬로 아래의 촛불을 쉽게 끄고 킬 수 있는 연동 장치가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 에이크는 방의 다른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것을 생략하였을 것이다.
인물의 뒤쪽 벽에 달려 있는 볼록 거울은 그리스도의 고난 장면이 그려진 목재 틀이 유리 뒷부분에 붙어있다.
이 거울은 당시에 실제 만들어질 수 있던 거울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데, 반 에이크가 시도했던 또다른 현실주의에서의 신중한 이탈이라고 볼 수 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벽난로나 실내에 놓인 물건들은 특별한 상징성이 없다.
왼쪽에 우연히 놓이게 된 오렌지도 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오렌지는 부르고뉴에서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기에 아르놀피니의 거래 품목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부의 상징으로는 천장에 걸린 철제 막대로 고정되어 있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침대 커튼, 의자와 뒤쪽 벽에 붙은 긴 의자 (오른쪽, 침대에 의해 일부가 가려짐)에 새겨진 조각을 들 수 있다.
침대 밑에 깔린 바닥의 작은 오리엔탈 카펫 또한 부의 상징이다.
이런 값비싼 카펫을 소유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탁자에 올려놓았으며, 네덜란드에서는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다.
거울에는 부부를 마주보고 문 안쪽에 서있는 두 남자가 보인다.
앞에서 파란 옷을 입는 남자는 화가 본인으로 보이는데, 벨라스케스와는 다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부부의 앞에 서있는 개는 오늘날 브뤼셀 그리펀으로 알려진 품종의 초기 형태이다.
그림에는 거울 윗부분 벽에 이름과 날짜가 다음과 같이 기입되어 있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 이 서명이 만약 벽에 실제로 큰 글씨가 쓰여 있던 형태였다면 속담이나 다른 격언이 쓰여 있었을 것이다.
반 에이크의 서명에는 자상화의 나무 액자에 트롱프뢰유로 그린 것도 있으며, 서명을 나무에 조각으로 새긴 것처럼 보인다.

○ 감상 이모저모
15세기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 (Giovanni di Nicolao Arnolfini)가 결혼하는 모습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단순히 아르놀피니 부부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그림 가운데 거울이 있고, 거울 속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있는데, 이는 화가인 얀 반 에이크로 추정된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의 이해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배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에 관한 것이다.
가정집 내부의 평범한 가구나 물건처럼 보이는 각각의 사물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아르놀피니의 머리 위로 켜 있는 하나의 초는 신의 통찰력과 지혜, 혹은 결혼에의 맹세를 의미하고, 거울 우측 가구 기둥의 상단에 있는 나무 조각은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호성인인 성 마가렛이며, 강아지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신실함을, 바닥에 벗어놓은 신발은 결혼식이 수행되는 공간의 신성함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거울의 테두리 장식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여기에는 10장면의 예수 수난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예수의 수난은 곧 교회와의 결합이며 종종 결혼으로써 비유되기도 한다.
10이라는 숫자는 예수 자신 혹은 기독교적인 문맥 내에서 ‘완전함’의 상징성을 가진다.
또한, 배경의 사물들이 주인공의 높은 경제적 수준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림에 포함되었다.
여자가 착용한 목걸이 팔찌등 장신구와, 정교하게 만들어진 황동 샹들리에, 침대 밑에 깔린 바닥의 작은 오리엔탈 카펫이 그러하며, 두꺼운 커튼으로 가리는 높은 침대는 15세기에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부유함의 과시 수단으로서 가정집 내에서 가장 중요한 방에 설치되었다.
가격이 비싸 부유층만이 구입이 가능했던 오렌지나 남녀의 의상에 나타보여지는 모피 등도 이 예비 부부의 재정적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그는 최초로 작품에 사인을 한 화가로도 유명한데, 거울 윗부분 벽에 이름과 날짜가 다음과 같이 기입되어 있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
《아르놀피니의 결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2인 초상화이며 이후의 전신 초상화, 정물화, 장르화에 큰 영향을 준 선구적인 작품이며, 서양 미술사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들어간 가장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그림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