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 현대 세속주의를 의심하다
팀 켈러 / 두란노 / 2018.1.22
– 맹신과 불신의 벽을 넘어 마침내 “피조물의 한복판에 계신 창조주”께 이르다! 합리적이고 탄탄한 기독교적 답변들
마음을 정하지 못한 구도자와 회의론자들에게 이 책은 어느 때보다도 더 시의성 있는 기독교의 심오한 가치와 중요성을 밝히 드러내 준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늘 현재에 깊게 개입하시는 분이시며, 길을 잃은 세상 속 사람들을 온전케 하실 분이심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어 인류 역사의 그 어떤 사상보다 말이 되는 기독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진리가 여기 있다. 이제껏 딛고 휘청휘청 서 있던 허술한 인생 기초를 뒤흔들어,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인생을 세우라!
○ 목차
‘하나님 없는 삶’에 말을 걸다
프롤로그. 이 시대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가
Part 1 ― ‘복음은 시의성을 잃었다’ 단언하는 이들에게
이 시대에도 종교가 필요한가
- 종교는 곧 사라질 것이란 전망, 속단이었다
― 종교는 왜 계속 살아남아 성장하는가 - 세속주의의 기초는 ‘이성’과 ‘증거’다?
― 세속주의,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신앙’이다
Part 2 ― 신이 없다면 설명할 길이 없는 본질들
종교,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 세속주의, ‘삶의 의미’를 외면하다
- 의미는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 세속주의, ‘만족’을 갈망하다 - 사랑의 질서가 회복되면, ‘누리는 즐거움’이 더 커진다
― 세속주의, ‘자유’를 오해하다 - 제약을 제대로 선택하는 것이 ‘진짜 자유’다
― 세속주의, ‘거짓 정체성’을 주입하다 - 나만 나를 사랑하면 그만이다?
― 세속주의, ‘기독교 정체성’을 엿보다 - 십자가에서 ‘겸손’과 ‘자신감’이 함께 자라는 정체성을 받았다
― 세속주의, ‘희망’이 바닥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낙관론이 아니라 ‘더 깊은 희망’이다
― 세속주의, ‘도덕’의 난제에 빠지다 - 선을 추구한다면, 이미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 세속주의, ‘정의’의 기초가 흔들리다 - ‘압제받던 사람’이 ‘압제자’로 변하는 악순환을 끊다
Part 3 ― 당연하게 따르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라
미로를 헤매는 현대 세속주의의 출구 찾기
-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 가장 말이 되는 선택이다
― 믿지 않을 때보다 믿을 때 더 삶이 이해된다면 - 기독교 신앙은 답을 줄 수 있다
― 철학적 추론이 아니라 예수 자체가 논증이다
인간의 이기심에서 해방될 유일한 길
에필로그.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은혜’ 사이에서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다
감사의 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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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팀 켈러 (티머시 켈러, Timothy J. Keller)
맨해튼을 비롯해, 미국 뉴욕 세 군데 지역에서 약 6천 명의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리디머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설립 목사. 팀 켈러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 복음 중심이며,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지성으로 이 시대를 통찰력 있게 읽어 준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구도자와 회의론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팀 켈러는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만들어지고 집약되는 ‘도시 지역’ 선교에 헌신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 100개 이상 도시에 430개 교회의 개척을 도왔다. 한편 〈뉴스위크〉에서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변증가로서도 영향력 있는 행보를 보인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버크넬대학교(Bucknell University), 고든콘웰신학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다. 대학 시절 IVF 활동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고, 신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네 살의 나이에 버지니아 웨스트호프웰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5년간 모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강단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저서로는 《팀 켈러의 복음과 삶 성경공부》, 《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팀 켈러의 예수, 예수》,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팀 켈러의 묵상》, 《팀 켈러의 설교》,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팀 켈러의 센터처치》, 《팀 켈러의 기도》, 《팀 켈러의 일과 영성》,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2》,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 《당신을 위한 사사기》(이상 두란노)가 있다.
– 역자 : 윤종석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Golden Gat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MA)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상담학(MA)을 공부하였다. 그는 탁월하고 유연한 언어 구사 능력을 가진 대표적인 변역가로서,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부부학교》, 《부모학교》(CUP), 《하나님의 임재 연습》(IVP), 《예수님처럼》(복있는사람)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하였다.
○ 책 속으로
신을 믿는 믿음은 세계 인구 5명 중 4명에게 진지한 현실이며, 가까운 장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쯤 되면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고개를 들 것이다. ‘왜 그런가? 세속주의가 이토록 거세게 방해하는데도 종교가 계속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는 세상 사람 대다수가 못 배워서 그렇다고 답할 것이고, 또 누구는 더 직설적으로 사람들이 대부분 바보라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더 사려 깊고, 인간을 혐오하지 않는 답변이 필요하다. 종교가 왜 계속 살아남아 성장하는지의 문제에는 두 가지 확실한 답변이 있다. 하나의 설명은 많은 사람이 보기에 세속 이성에는 삶을 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설명은 허다한 사람이 자연 세계 너머의 초월 세계를 직관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 p. 23
니체의 요지는 이것이다. 당신이 만일 신을 믿지 않는다면서 만인의 권리를 믿고 모든 약자와 빈민을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면, 스스로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은 여전히 기독교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다. 예컨대 삶의 한 부분이고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사랑과 폭력 중 하나는 선하다고 취하고, 하나는 악하다고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둘 다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런 선택의 기준은 어디서 왔는가? 신이나 초자연 세계가 없다면 그런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속적 인본주의를 비판한 니체를 제대로 반박한 사람은 없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저작을 논평하면서 니체는, 장차 영어권 세계가 신을 믿는 믿음을 버리면서도 연민과 보편적 자비와 양심 등의 가치는 유지하려 할 거라는 선견지명을 보였다. 그러면서 니체는 신을 거부하는 사회에서는 도덕 자체도 결국 “문제”가 되리라고 예견했다. 도덕을 정당화하거나 동기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고, 사람은 더 이기적이 될 것이며, 강압 외에는 사람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질 것이다. — pp. 72-73
무엇이든 더 적게 사랑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나머지 모두를 사랑하는 데서 오는 만족이 훨씬 커진다. 상대를 과보호할 일도 없고, 무리한 기대를 품을 일도 없고, 당신의 바람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늘 격분할 일도 없다. 무엇에 대해서든 열정적인 사랑을 억누를 게 아니라 최고의 사랑의 방향을 하나님 쪽으로 틀라.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되 무엇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분을 위해 사랑하라. 그래야만 비로소 만족이 찾아온다. 이것이 기독교적 관점의 만족이다. 이 관점은 초연해져서 평정을 얻는다는 고대의 전략과 무언가를 얻어 가짐으로써 행복을 얻는다는 현대의 전략, 이 두 가지 함정을 모두 비껴간다. 불치병처럼 보이는 우리의 불만족이라는 깊은 난제는 이것으로 설명되고, 해결된다. — pp. 135-136
진짜 자유는 전략적으로 일부 자유를 잃고 다른 자유를 얻으면서 가능해진다. 제약이 없는 게 아니라, 제약과 잃어야 할 자유를 제대로 선택하는 게 참자유다. 이런 관점에 반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유가 제약을 선택한다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다음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약조차도 내가 선택했다. 그러니 오늘날의 정의대로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내 마음대로 하는 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친 단순논리다. 삶의 필연적 한계 중 대부분은 정말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그런 한계는 당신의 갈망이나 선택과 무관하게 실존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몸은 할 일과 못할 일이 따로 있게끔 태어났다. 몸의 자유를 누리려면 몸이 한계에 부딪친 순간 괜히 애써 극복하려 하지 말고 순순히 의지를 복종시켜야만 한다. 식생활과 운동을 제대로 하면 삶의 자유를 얻지만, 이런 요법을 거부하면 기력과 건강을 잃어 결국 자유마저 사라진다. 이는 ‘자아를 창출한다’라는 포스트모던의 개념과 너무 거리가 멀다. 많은 것이 그러하듯 해방을 가져다주는 “적절한” 제약도 당신의 취향대로 지어내는 게 아니다. 이는 본디 인간과 세상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복종하는 것이다. — pp. 147-148
내 정체성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가 해 주신 일과 내가 그분 안에서 은혜로 영원한 이름을 얻었다는 사실에 둔다면, 나는 한편으로 누구에게도 우월감을 품을 수 없고 또 한편으로 어느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아예 자신을 그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 정체성의 기초는, 나를 위해 배제되신 분, 나 때문에 내쫓기신 분, 원수를 사랑하신 분께 있다. 그래서 나도 타자를 포용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물론 기독교인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갈 역량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 복음이 우리를 떠밀며 그런 능력을 부여한다. — p. 216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아는 주된 방법은, 우리의 철학적 추론이 아니라 그분의 자기계시를 통해서이고, 우리의 사고가 먼저가 아니라 그분이 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다. 물론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그 일을 예수님을 통해 해 주셨다고 믿는다.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주장이 사실이고 그분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이는 하나님이 존재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신구약 성경의 그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증거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이유의 주된 논증은 예수님 그분 자체다. — p. 323
○ 출판사 서평
– 기독교는 시의성을 잃었다?
“최첨단 시대에 아직도 종교 타령인가.” “무식한 사람이나 예수 믿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기독교는 말이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은 모자란 지성과 지나친 감상이 결합한 맹신일 뿐이다.” 오늘날은 경험적 이성을 중시하고, 인간 진보의 진화를 중시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과 기쁨을 가장 자기답게 표현할 수 있는 만인의 선택권을 중시한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나 절대자의 개념이 말이 될까? 이 시대에 신앙과 종교가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가?
– 회의론자 · 냉소주의자들의 성지 뉴욕 맨해튼에서
현대 세속주의를 경청하다, 함께 길을 찾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인생을 과연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철저한 성경적 시각으로 현 세대를 예리하게 읽고 예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 팀 켈러가, 종교와 기독교 신앙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과 세속적 관점을 지지하는 이들을 초대했다. 세속주의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며, 초월 세계나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세속주의에 한껏 젖어 산다. 이 책은 이 시대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맹종하는 세속주의에 말을 건다. 나아가, 세속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적인 요소들(삶의 의미, 만족, 자유, 정체성, 희망, 정의)에 대한 답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다.
– 21세기 종교는 사라진다? 세속주의에 답하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다. 세속주의는 종교를 합리적으로 사유할 줄 모르는 사람이나 믿는 것으로 여겨왔다. 지난 30년간 세속주의 문화의 최전선인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목회를 해온 팀 켈러 목사가 이런 세태가 과연 맞는지 찬찬히 따져본다. 오는 4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저자가 2016년 내놓은 원작 ‘Making Sense of God’을 ‘답이 되는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먼저 저자가 정의하는 ‘세속 사회 (secular society)’는 이렇다. ‘자연 세계 너머에 신이나 초자연 세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모르고, 세상 모든 일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며 ‘삶의 의미와 지침은 물론 행복의 기준을 현세에서 누리는 경제적 번영, 물질적 안락, 정서적 만족에 두고 오직 그것만 추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세속주의자는 자신은 사실만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종교적인 사람은 자기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켈러 목사는 이러한 세속주의가 단순히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신앙이자 신념 체계임을 지적한다. “(세속주의라는) 이 신앙도 증명될 수 없고, 대다수 사람에게 자명하지 않으며, 계속 더 살펴보겠지만 다른 종교적 신앙처럼 자체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80쪽)
그는 먼저 ‘종교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단임을 지적한다. 종교사회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사회가 근대화할수록 종교는 쇠퇴한다는 세속화 명제가 ‘경험적으로 오류로 입증됐다’”고 소개한다. 무엇보다 인구통계학에 따르면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무종교인을 합한 비율은 세계 인구의 16.4%에서 40년 후 13.2%로 서서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고 있다. 문화계 엘리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현실은 또 있다. ‘온건한 자유주의’ 형태의 종교가 살아남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갈수록 보수적인 종교집단의 신앙 유지율이 높다는 통계 결과가 나오고 있다. 보수적인 종교집단의 높은 출산율과 달리 세속적인 사람일수록 결혼율도 낮고 출산율도 낮은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어 세속주의자의 주요 신념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가령 세속주의자는 삶의 의미를 인간 개인이 저마다 자유롭게 찾아내면 된다고 말한다. 이런 세속주의 문화에서 고난은 삶의 목표를 방해하거나 우연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된다. 삶의 순간에 찾아오는 고난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거나 고난이 닥쳤을 때 쉽사리 무너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기독교인에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요 이유가 된다. 그들에게 고난은 그분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이다. 직접 삶의 의미를 지어내야 하는 세속주의자와 달리 기독교인은 우리를 찾아 세상에 오신 그분의 의미를 발견하면 된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세속주의자의 삶에 있어 만족, 자유, 정체성, 희망, 도덕, 정의라는 가치의 의미와 이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살핀다. 이를 통해 그들이 처한 한계를 짚어낸다. 그리고 그들이 알 수 없거나 오해하고 있던 기독교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세속주의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발언을 가져와 그들의 논지를 반박하는 도구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 합리적 이성과 비판 의식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을 목회자가 읽어도 좋겠다. 다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근대와 현대의 철학자, 사상가들의 사조와 작품 속 인용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서양 철학과 서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속주의자가 종교인을 비판할 때와 똑같은 전제조건을 세속주의자에게 적용할 때 그들은 어떤 허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기독교인은 무엇이 다른지를 지금까지 나온 다양한 연구 결과와 학자들의 주장을 토대로 종합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자긍심은 갖되 결코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비아냥거리지 않는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과 대화할 때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나는 당신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초지일관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태도에서 느끼는 점이 많은 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