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형제를 식물(음식)로 망하게 하지 말라
종종 믿음이 강한 형제자매나 혹은 교회 지도자들이 믿음이 약한 신자나 초신자에게 이렇게 강요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려면 술먹지 말고 담배피지 마라, 새벽예배나 금요 철야 예배등 예배시간은 빠짐없이 잘 지켜라. 십일조나 건축헌금등 헌금 생활은 철저히 해라.” 이것이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사랑으로 하는 개인적인 권면이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공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이라면 큰 일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강요하면서, 이러한 신앙의 규칙들을 따르지 못한다고 비난한다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은 어떠 입장에 처할까요? 물론 그 가운데 순종하고 따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상처를 입거나 시험에 들어서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거나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과 시대를 잘못읽고 있는 것처럼 오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교회에서는 자신을 술취함과 방탕을 멀리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장로님들이 술을 마시거나 오래된 집사님들이 여전히 담배 피는 문제를 단절하지 모하고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하거나 합리화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 교회는 이미 술 담배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새신지자 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로 술담대를 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기존 성도들에게 더 철저히 경건을 지키며 살것을 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경견의 기준을 술 담배를 안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문화적인 차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술마신다’는 것은 거의 취할때까지 마시는 문화와 알콜중독 수준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호주나 미국 문화에서는 ‘술 마신다’는 개념이 기분 좋을 정도로 포도주 한잔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건은 눈에 보이는 경건스러운 행동이나 외모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이 마음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을 금기하는 것이 경건의 본질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또 새벽예배에 열심히 나가고 금식 기도를 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경건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경건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보이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예수님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고아와 과부를 볼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삶이 진정한 경건입니다. 그 사랑은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 속에서 믿음이 어린(약한) 신자들의 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포용하는 마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자는 믿음이 약한 형제의 신앙 생활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마음은 경건이나 성숙한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여기서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는 말은 단순히 먹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14장 전체의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말은 율법에 규정된 식물(음식)을 먹지 말라고 강요함으로써 ‘형제를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말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에게 음식을 가려 먹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과 경건을 드러내려고 하지말고 또 그러한 율법을 이방인 신자들이 시험에 들어서 믿음이 실족하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유대인 신자들의 그런 율법주의 적인 신앙 생활을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형제를 식물(음식)로 망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권면합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술 답배 문제보다 헌금문제로 신자들이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는 사례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 봉사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일들로 인해서 신앙 생활을 부담스러워 할수도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술담배, 헌금, 교회 봉사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믿음이 자라가면서 자연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권면하거나 강요함으로서 새신자나 기존 신자들이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이 자신의 신앙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은혜의 복음이 아닙니다.
물론 바른 신앙 그리고 성숙한 신앙을 위해서 신앙의 권면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권면을 넘어서는 강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강요적인 신앙은 은혜의 복음위에 율법이라는 신앙의 장애물을 놓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신앙행위들을 하도록 하는 권면도 지나칠때 ‘강요한다’는 부담으로 받을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권면은 반드시 사랑안에서 행해져야 하고 그것이 강요로 느껴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를 식물(음식)로 망하게 하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