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6월 8일,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 / 조지 말로리 (George Herbert Leigh Mallory, 1886 ~ 1924) 별세 (실종)
조지 허버트 리 맬러리 (George Herbert Leigh Mallory, 1886년 6월 18일 ~ 1924년 6월 8일?)는 영국의 산악인이며, 1924년 제3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여하였다 실종되었다. 그너라, International Geographic 이란 프로는 에베레스트를 등반을 하다가 시신이 얼려 발견 되었다.트래퍼드 리맬러리와는 형제지간이다.

– 조지 맬러리 / 조지 말로리 (George Mallory)
.본명: 조지 허버트 리 맬러리 (George Herbert Leigh Mallory)
.출생: 1886년 6월 18일, 대영제국 잉글랜드 체셔 주 모벌리
.사망: 1924년 6월 8일 ~ 6월 9일 (37세), 히말라야산맥 에베레스트 북쪽
.국적: 영국 (잉글랜드)
.직업: 산악인
.배우자: 루스 딕슨 터너 (1914년 결혼 / 1892~1942)
.자녀: 장녀 프랜시스 (1915~2001), 차녀 베리 (1917~1953), 장남 존 (1920~2011)
*영국 육군
.복무: 1915년 ~ 1918년
.병과: 포병
.최종 계급: 중위 (영국 육군)
기자: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는 거죠?(Why did you want to climb Mount Everest?)”
말로리: “그게 거기 있어서요.(Because it is there)” _ (1923년 3월 18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 생애 및 활동
1886년 6월 18일, 대영제국 잉글랜드 체셔 주 모벌리 출생.
윈체스터 칼리지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녔으며,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는 동급생이자 친구 사이였다.
졸업 이후인 1915년 왕립 포병대에 소위로 임관했으며,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솜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 뒤 1920년대에 있었던 3번의 에베레스트 산 등반 원정대에 참가했으며, 제1차는 지역 탐사에 목적을 두었으나 제2차부터 본격적으로 에베레스트 첫 등정을 목표로 하였다.
이후 1924년 제3차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서 파트너 앤드루 어빈과 함께 정상을 목표로 북벽에 도전했으나, 정상을 수백미터 남긴 채 북동쪽 산등성이 부근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다.
맬러리의 최후는 사후 75년 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지만, 1999년 5월 1일 국제 탐색대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맬러리와 어빈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완수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최초의 등반자로 기록되었다.
맬러리는 “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한때 인용문의 진위와 맬러리가 실제로 그러한 발언을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다.
기자의 의역이었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타임지 기사의 원본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와 같은 의문은 미해결인 채로 남았다.
그러나 해당 문장은 기사 초고에서 발견된 직접 인용문과 일치하므로 맬러리의 태도를 왜곡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논란
1933년 퍼시 윈 해리스 (1903~1979)가 이끌던 영국 에베레스트 등정대는 8,250m쯤 올라가서 피켈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피켈은 바로 앤드루 어빈의 것이었다.
해리스 등정대도 결국 등정에 실패했지만, 이들이 발견한 이 피켈 때문에 의문이 생긴다. 이 피켈은 말로리의 것일까? 아니면 어빈의 것일까?가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이후 피켈에 새겨져있던 모노그램과 동일한 모노그램이 어빈이 평소에 사용하던 단장에서 확인되면서 어빈의 피켈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로리와 어빈은 당시 소머벨의 카메라를 빌려 갔으므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갔다면 반드시 사진을 찍었을 테고 이게 발견된다면 말로리와 어빈이 세계 최초로 정상에 올라갔을 것임이 증명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두 사람의 마지막 목격자였던 오델은 이 둘은 틀림없이 등정했으며 내려오던 길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 나오듯이 오델은 1987년 만 97살까지 살면서 1924년의 등정대원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1953년 4월 29일, 비로소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 (Edmund Hillary, 1919~2008)가 대원자격으로 등반한 최초의 셰르파인인 텐징 노르가이 (Tenzing Norgay, 1914~1986)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진을 남기고 무사히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이들이 과연 최초 등정자가 맞는지, 아니면 말로리와 어빈이 먼저 올랐는지가 호사가들의 화제거리가 된다.
영국인의 자존심이 뉴질랜드인과 세르파의 등정을 인정 못해서 벌어지는 논란이라고도 하나, 이는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로버트 스콧과 같은 선례가 있다 보니 이런 편견이 생길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당시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등정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과 맞물려 ‘일개 섬나라로 몰락한 영국’이 아닌 ‘여전한 대영제국’의 승리라는 컨셉을 위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영국 정부와 원정대 간의 조율 하에서 이루어졌다.
다만 말로리가 등정에 성공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이후 수십 년 동안 힐러리의 등반 성공 시까지 논란일지언정 잊혀지지 않고 계속 회자되었던 것 자체는 대영제국의 자존심이라는 후광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세계 3대 극점 중 미국 (피어리)과 노르웨이 (아문센)에서 이미 북극과 남극을 빼앗겼기에, 에베레스트라도 “아마 정복했을걸?”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며 사실상 인정받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 75년만에 발견된 시신
“8,100m 지점에 웬 영국인 시체가 있었다. 영국인인지 어찌 아냐고? 당연히 유니언 잭이 다 찢어지긴 했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채로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시체는 별것도 아닌지라 대충 보고 지나쳤다.” ㅡ 왕홍보
그리고 세월이 지나 1975년 중국의 산악인 왕홍보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당시, 목격했던 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왕홍보는 에베레스트 등정일로 알고 지내던 일본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이야기를 일본인 등산가 하세가와 료텐이 글로 써서 발표하며 그가 혹시 말로리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했다. 안타깝게도 이 둘 역시 훗날 에베레스트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1980년대부터 말로리의 시신을 찾기위한 등정대가 조직되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9년 5월 1일 오전 11시 45분. 에릭 시몬슨이 이끌던 조지 말로리 시신 수습 작업 등정대에 참가한 미국 산악인 콘래드 앵커는 에베레스트 북동릉 8,138m 지점 약 30도 경사진 곳에서 앞으로 넘어진 채 숨진 모습의 시신을 발견했다. 앵커는 시신의 옷 주머니에서 손수건에 곱게 싸인 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조지 말로리의 것이었다. – 한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글 자막 영상
BBC가 스폰서로 참여해서인지 BBC는 특종으로 이걸 보도했고 생생하게 방송 카메라로도 시신이 나왔다. 추운 기후인지라 75년이나 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시신은 제법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얼핏보면 이건 무슨 마네킹이 아닐까 하는 형체로 남아있었는데, 옷이 찢어져 노출된 피부가 오랜 세월 강한 직사광선에 탈색된 것으로 보인다. 한 쪽 다리는 부러져서 뼈가 노출된 상태였는데, 이는 사망 후 미라화가 된 후 부러진 게 아니라 사고를 당했을 때 심각한 골절상으로 그가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대원들은 조지 말로리를 감고 있던 로프를 제거한 후 주머니에서 고글과 나이프, 가위, 성냥, 행동식 양철캔, 손가락부분을 잘라낸 장갑, 보겔손목시계, 고도계, 등산화 등을 회수했다. 그리고, 주변의 흙과 돌을 모아 시신을 덮어 간단히 무덤을 만들었다. 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 촬영 후 무덤을 만들어 돌과 흙으로 덮었기 때문에 현재는 근처를 지나가도 무덤과 비석을 볼 수 있어도 시신을 볼 수는 없다. 흙에 파묻혀 있던 얼굴 부분은 고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파내거나 찍지 않았다. 시신을 발견했지만 수습하지 않고 현지에 그대로 묻은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망한 나라에서 장례를 마치고 비석을 세우는 영국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시체가 수백킬로그램 무게로 꽁꽁 얼어서 도저히 가지고 내려올 수 없다는 점도 있긴 하다.
엄홍길만 해도 2005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하산 도중 사망한 후배 박무택, 백준호, 장민의 시신을 나중에 재방문 하여 발견했음에도 너무나 무거워 겨우 양지바른 곳에 시신을 옮겨가 직접 돌무덤을 만들어 묻어주었을 뿐이었다. 엄홍길이 이전에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여 듣던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너무나도 위험하다, 나 또한 친아우 귄터 (이탈리아 국적이기에 정확한 이름은 군테르 메스네르)를 눈사태로 잃어버렸지만 시신을 찾는다는 걸 포기했다며, 추운 높은 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시체는 수백킬로그램이 넘게 무거운 몸이라 그런 걸 셋이나 가지고 내려오다간 다른 사망자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런 8000미터 이상급에서 시신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고 위험하다.
그리고 관심거리였던 카메라[9]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영상에서와 같이 말로리가 리더였고 어빈이 보조였기에, 사진을 어빈이 찍고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어빈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는 말로리와 어빈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원인은 1920년대의 기술력 부족을 꼽는데 현대에 비해 너무나도 장비가 부실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동영상에서 발견된 말로리가 입었던 옷의 재질은 개버딘 (Gabardine)으로 날실에 양털, 씨실에 무명을 이용해 만든 직물이다. 유래는 영국의 버버리 사에서 트렌치 코트의 원단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 코트는 현대 정장의 조상격이며 많은 남성용 의복을 파생시킨 군복이었다. 정복은 과거엔 전투복이었고, 정복 셔츠는 전투복 상의, 정복 바지는 전투복 바지, 정복 겉옷은 야상, 정복 구두는 스웨이드 전투화, 정복에 입는 롱코트는 스키파카의 직계 조상이다. 재질은 고어텍스로 바뀌는 등 몇 가지만 달라졌을 뿐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조지 말로리를 포함한 탐험대는 최첨단 등산복을 입고 등정에 올랐다. 단지 에베레스트가 당대의 기술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였을 뿐.
그 밖의 실패 이유로 꼽히는 점은 산소 장비, 그리고 ‘극지법’과 극지법의 발전이다. 또 하나는, ‘세컨드 스텝을 돌파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사다리를 설치해서 쉽게 올라가지만 티베트 방면으로 초등정을 했던 중국팀은 ‘수많은 대원들이 서로의 어깨를 밟고 고정사다리를 설치하고 나서 올라가는 방법으로 돌파’했었고 이후 이들은 ‘사다리 없이는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공언했고 오랫동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때, 조지 말로리와 24년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등반사에 가장 뜨거운 논란의 주인공으로 남을 자격’은’ 충분하다.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말로리와 어빈이 가장 먼저 올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 기타
그의 유명한 명언인 “산이 거기 있기에”는 자주 패러디된다.
이 명언을 의외로 에드먼드 힐러리가 말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의외로 꽤 많다.
이 사람의 동생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공군 전투기사령부 사령관이었던 트래퍼드 리맬러리 장군이다.
그 역시 비행기 사고로 인해 알프스 산맥에 추락해 산에서 목숨을 잃어, 형제가 나란히 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셈이 되었다.
위 서술에서 보듯 형제의 성이 다른데, 이는 두 형제의 아버지인 허버트 리 말로리 (멜러리)가 1914년 Leigh Mallory이던 성을 ‘리말로리 (Leigh-Mallory)’로 붙여서 개명하였기 때문이다.
조지 말로리의 경우에는 이미 등산가로 유명했기 때문에 통명을 계속 말로리로 사용한 것.
조지 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한 다큐가 고화질로 유튜브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올라왔다.
SCP 재단에서는 SCP-1529에 의한 최초의 희생자로 설정되었다.
사실 힐러리보다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시신과 함께 발견된 사진기에 증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진기에 SCP-1529도 함께 찍혀있어서 사진기의 발견이 은폐되고 업적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그가 소지했던 카메라를 다룬 소설 ‘신들의 봉우리’가 애니메이션 및 영화화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