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6월 18일,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작가 레몽 라디게 (Raymond Radiguet, 1903 ~ 1923) 출생
레몽 라디게 (Raymond Radiguet, 1903년 6월 18일 ~ 1923년 12월 12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파리 근교에서 출생이며, 출정 병사의 아내와 소년의 연애를 냉정하고 관능적인 필치로 그린 소설 《육체의 악마》(1922년) 로 일약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비견할 신성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멘토가 되어준 장 콕토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모더니스트 작가로 활약했으나, 그 해에 “나는 사흘 후면 신 (神)의 병사 (兵士)에게 총살을 당할 거야”라고 콕토에게 말한 얼마 후 병사하였다.
1924년 유작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가 출판되었으나 《클레브의 아낙네들》 등 고전적 심리소설을 모방하여, 이른바 전후 풍속의 난잡함에 고의적으로 반항한 점에 독자성이 있으며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단순하고 이지적인 연애심리의 분석이 체스 선수 같은 명석한 의식과 과정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전작을 능가하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외에 시집 《타오르는 뺨》(1920년) 외에 희곡 작품이 있다.

– 레몽 라디게 (Raymond Radiguet)
.출생: 1903년 6월 18일, 생모르데포세
.사망: 1923년 12월 12일, 파리 16구
.묘소: 페르 라셰즈 묘지 (Grave of Radiguet)
.국적: 프랑스
.언어: 프랑스어
.직업: 작가, 언론인, 시인, 소설가
.학력: 리세 샤를마뉴
.부모: Maurice Radiguet(부)
.동거인: Beatrice Hastings, Irène Lagut
.주요 작품: Le Diable au corps, Le bal du Comte d’Orgel
“그렇다! 내가 마르트를 위해 바랐던 것은 어느 날엔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새로운 세계보다는 차라리 무(無), 바로 그것이었다.” – 육체의 악마 (Le Diable au Corps) 中
“나는 사흘 후면 신의 병사에게 총살을 당할거야” – 장 콕토에게 그가 말한 유언
프랑스의 유명작가이며 젊은 나이에 뛰어난 글 실력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 <르 코크>와 같은 문예지를 직접 창간하기도 했으며,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한 적있다. 그러나 자신의 일생은 자신의 소설과는 다르게 다섯 정부를 두었으며 또한 술집과 호텔을 전전하는 등 정숙하지 못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의 정신만은 맑고 투명하고 논리적이었다고 평가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설로는 <육체의 악마>와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가 있고 희곡으로는 <펠리캉네 집 사람들> 등이 있다.

○ 생애 및 활동
1903년 화가 모리스 라디게의 자녀 7남매 중 장남으로 생모르에서 태어났다.
1913년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의 샤를마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처음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성적이 좋지 못하자 학교 수업을 빼먹다가 학교를 자퇴하여 집에 있는 장서 읽기에 골몰했다. 주로 읽은 장서들은 마르셀 프루스트, 스탕달과 같은 대문호 작가의 책이었다.
1918년에는 <카나르 앙셰네>에 몇몇 콩트를 게재하였다. 그리고 저널리스트 이자 시인인 앙드레 살몽과 친해져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다. 이때, 그는 장 콕토를 만나며 인생의 전성기를 맞는다. 장 콕토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시를 잡지에 오르도록 권유했다.
1920년 그는 장 콕토와 <르 코크>라는 작은 잡지를 창간한다. 그러나 이때 라디게에게는 다섯 정부가 있었는데 마르트의 모델이기도 한 이웃 젊은 유부녀 알리스 세리예, 베아트리스 아스탱 등등 수많은 여자와 어울려 다녀 정숙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1921년, 그는 마침내 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정신상태를 바로 잡기로 하였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여전했다.
1922년, 남프랑스 라방두에서 지내며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를 집필하였다.
1923년 3월 10일, 그는 <육체의 악마>를 출간하였다. 이때가 무려 그의 나이 겨우 20살이었다.
책은 엄청난 호평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10월에 파리로 돌아온 후, 12월 12일에 장티푸스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24년, 사후 그의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가 출간된다.

– 기타
프랑스 문학사와 더불어 세계 문학사에서도 전무후무한 나이에 글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당시에서 중고등학교를 자퇴한 17세가 쓴 소설이 프랑스의 베스트셀러가 될 줄 프랑스 사람들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천재성을 가졌으나 요절한 작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장 콕토와 그는 서로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죽기 전 “나는 사흘 후면 신의 병사에게 총살을 당할 것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얼마 후 장티푸스로 죽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그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라디게는 자신의 청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레몽 라디게’란 이름으로 부르고 민음사나 동서문화사 등의 출판사들은 ‘레이몽 라디게’라고 주로 부르는데 프랑스어에서 ‘ay’는 단모음 ‘ㅔ’로 발음되므로 굳이 따지자면 ‘레몽 라디게’로 쓰고 부름이 옳다. ‘레이몽 라디게’는 일본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인 ‘レイモン・ラディゲ’에서 온 것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같은 여타 프랑스 작가들과 비교하면 한국내에서 현저하게 인지도가 떨어진다. 아마도 작품이 적고 프랑스 내에서도 그렇게 알려진 작가는 아니여서 그럴것이다. 한국에서 레몽 라디게의 작품을 번역한 출판사들은 동서문화사와 민음사 뿐이다.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육체의 악마》는 내용이 특히나 막다른데, 내용이 군대 간 남자의 애인과 밀애를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마르코 벨로키오가 영화화했는데 메인스트림 배우가 등장한다.

○ 저작
1918년 <카나르 앙셰네>에 몇몇 콩트 게재, 1920년 장 콕토와 <르 코크> 잡지 창간, 1922년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 집필, 1923년 <육체의 악마> 출간, 1924년, 사후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가 출간된다. 이 외에 시집 《타오르는 뺨》(1920년) 외에 희곡 작품 <펠리캉네 집 사람들> 등이 있다.
– 주요저서
시집 <타오르는 뺨> (1920년)
시집 <휴가의 숙제> (1921년)
희곡 <펠리캉네 집 사람들> (1921년)
소설 <육체의 악마> (1923년)
소설 <도르젤 백작의 무도회 (1924년)
단편소설 <드니즈> (1926년)
– 한국어 번역
원윤수 옮김, 《육체의 악마》, 민음사, 2014년 5월 16일

– Bibliography
Les Joues en feu (1920) – poetry, translated by Alan Stone as Cheeks on Fire: Collected Poems
Devoirs de vacances (1921) – poetry (English translation Holiday Homework)
Les Pelican (1921) – drama, translated by Michael Benedikt and George Wellworth as The Pelicans
Le Diable au corps (1923) – novel, translated by Kay Boyle as The Devil in the Flesh
Le Bal du comte d’Orgel (1924) – novel, translated by Malcolm Cowley as The Count’s Ball
Oeuvres completes (1952) – translated as Complete Works
Regle du jeu (1957) – translated as Game Rule
Vers Libres & Jeux Innocents, Le Livre a Venir (1988) – translated as About Free & Games Innocents, The Book is Coming
– Film adaptations
In 1947, Claude Autant-Lara released his film Le diable au corps, based on Radiguet’s novel, and starring Gérard Philipe. Coming just after World War II, the movie caused controversy in its turn. Among the other cinematic versions of Radiguet’s story, the heavily adapted version by Marco Bellocchio, Il diavolo in corpo (1986), was notable as being among the first mainstream films to show unsimulated sex.
In 1970, Le Bal du compte d’Orgel was adapted into a film, starring Jean-Claude Brialy as Le comte Anne d’Orgel. It was the last movie directed by Marc Allégret, who, like Radiguet, had once fallen under the spell of Cocteau.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