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6년 7월 10일, 덴마크의 10대 국왕 크누드 4세 (Knud IV, 1042 ~ 1086) 타계
크누드 4세 (덴: Knud IV, 1042년경 ~ 1086년 7월 10일)는 덴마크의 국왕 (재위: 1080년 ~ 1086년)이다. 성왕 (덴: den Hellige) 혹은 상트크누드 (덴: Sankt Knud)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 크누드 4세 (Knud IV)
.별칭: 성왕 (den Hellige), 상트크누드 (Sankt Knud)
.출생: 1043년, 덴마크
.사망: 1086년 7월 10일, 덴마크 오덴세
.묘지: 덴마크 오덴세 Odense Cathedral – St. Canute’s Church
.부모: 스베인 아스트리다르손
.배우자: 아델라 (Adela)
.자녀: Charles the Good, Cecilia Knutsdatter, Ingegerd Knutsdatter
*덴마크의 국왕
.재위: 1080년 ~ 1086년
*성인 가누토 4세 (Canute IV)
.축일: 1월 19일
.활동년도: 1086년
.신분: 왕, 순교자
.지역: 덴마크 (Denmark)
.같은이름: 가누또, 가누투스, 카누또, 카누토, 카누투스, 카누트, 크누드, 크누토, 크누트
덴마크 왕국의 10번째 왕이다. 가톨릭 성인으로 덴마크의 수호성인이다.
1080년에 이복형 하랄 3세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부왕 스벤 2세 에스트리드센에 이어 잉글랜드 왕국 정복을 추진하였으나 성사되진 못했다. 1086년 반란을 진압하러 출전했다가 패퇴하여 오덴세의 산크트올반 성당 (St. Alban’s Priory)으로 피신하였는데 반란군들이 성당까지 들이닥쳐 성당 내 제대 앞에서 피살당했다. 왕위는 이복동생 올루프가 계승하였다.
성당에서 피살됐다는 점과 평소 기독교 전파에 힘썼다는 점에서 덴마크 내에서 성인으로 공경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교황도 이에 응하여 1101년에 시성되었다.

○ 생애 및 활동
에스트리센가 (Estridsen) 출신이며 스베인 아스트리다르손 (스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080년 스벤 2세의 뒤를 이어 덴마크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왕권을 강화하는 데에 주력했으며 덴마크의 국왕으로는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덴마크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에 주력했을 정도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받았다.
한때는 잉글랜드 정복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086년 7월 10일 오덴세에서 반대파에 의해 피살당했으며 그의 시신은 오덴세의 성 크누드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덴마크의 왕위는 올라프 1세가 승계받았다.
1101년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덴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대되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성 가누토라고 불리우며 성 가누토 라바드는 이 사람의 조카로 동명이인이다.

○ 성인 가누토 4세 (Canute IV)
덴마크의 국왕 스웨닌 어스트릿슨 (Sweyn Estrithson)의 아들이며,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크누드 왕의 조카인 성 카누투스 (Canutus, 또는 카누토)는 1075년에 성공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여 카누투스 4세로서 덴마크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플랑드르 (Flandre)의 로버트 백작의 동생인 아델라 (Adela)와 결혼함으로써 성직자와 선교사들을 적극 지원하였고 또 많은 성당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1085년에 영국 침공을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귀족들에 대한 무거운 세금이 그의 동생 올라프 (Olaf)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결국 전쟁을 그만두고 푸넨 (Funen) 섬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그는 여기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성 알바누스 (Albanus) 성당에서 반란자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순교자로 보았다.
그의 무덤에는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그의 경건한 신앙생활은 높이 평가받아 왔으므로 교황 파스칼 2세 (Paschalis II)는 1101년 그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였다. 그는 크누토 (Knute)로도 불린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가톨릭신문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