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교수의 신학논단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
필자는 ‘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주제 아래,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주요한 주제들을 연재하여 다루고자 한다. 본고를 통해 신약의 각권을 설명하는 각론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신약 전체를 조망하고 큰 그림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고자 한다. 졸고를 통해 독자들이 신약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이해를 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 첫 번째로, 신약이해의 단초가 되는 역사의 방향을 하나님께서어떻게 흐르게 하셨는 투박하게 조망해 보고자 한다.
인간은 시간의 틀 안에서 산다. 또한 공간의 틀안에서 산다. 시간의 틀과 공간의 틀이 만나서 쌓이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역사의 일부이며 역사를 벗어나 살 수 없다. 기독교는 이러한 틀 속에 있는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시각에서 시간과 공간, 즉 역사를 보게 한다. 그런데 그 하나님에 대해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하나님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관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틀 속에 있는 역사를 어떻게 간섭하시느냐에 따라 역사의 흐름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즉, 하나님만이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시며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신다. 그것을 반대로 보면, 역사의 흐름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며, 그 방향을 이끄시고 계시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큰 틀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역사의 흐름과 방향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성경이 역사를 보는 관점이며, 우리가ㅏ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인류의 역사의 일부를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간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멸망할 즈음부터 예수님께서 오셔서 교회가 태동하여 발전하는 시간이고, 공간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국가들, 즉 동쪽과 서쪽에 펼쳐져 있던 나라들을 염두해 두고 역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국가가 가장 전성기였다. 찬란한 문화와 강력한 국가의 위용을 과시했지만,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볼 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 쇄퇴의 나락의 끝자락을 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은 국가의 내부적인 요인(종교적 타락과 하나님의 징벌과 같은)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위치한 공간, 즉 팔레스타인 지역은 세계 열강이 각축장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인류 구속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큰 걸음이었다).
주변의 열강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하고 차지하여 그 주변의 나라들을 다스리고자 하였고, 그러한 각축은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당시의 세계의 역사의 향방을 좌우하였다. 이러한 방향의 변화를 필자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길 때문이라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도구로 여러 제국들을 들어 사용하셨다(그것은 결국 구속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성취하시는 사역,을 이루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제국들은 그 힘을 멈출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힘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가에 따라 역사의 방향은 동쪽을 향하는가, 서쪽을 향하는가의 향배를 갈랐다. 또한 제국은 그 특성상 그 힘을 내부적으로 향하는 것 외에, 외부를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정복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복속시키면서 그 힘을 계속해서 확장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무너뜨린, 앗시리아와 바벨로니아 제국, 그리고 그 후에 메데와 바사로 알려진 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던 당시는 역사의 힘의 방향이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볼 때,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의 방향은 서진이 주를 이루었다. 특별히 페르시아제국의 힘의 팽창은 오늘날 터키 지역을 넘어 그리스쪽을 향하였다. 여기서 큰 힘의 충돌이 일어난다. 세상을 호령하던 페르시아 제국이 서진하다 서쪽의 나라에 의해 저지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저 유명한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이다. 결국 페르시아를 이긴 그리스는 이제 세상의 역사의 방향을 돌리게 된다. 그 힘의 방향의 변화는 곧 역사의 흐름의 변화를 낳았다. 결국 알렉산더 대제가 이끄는 그리스 제국은 헬레니즘이라는 문화를 꽃피우며, 그간의 힘의 방향을 동쪽을 돌리며 동쪽의 나라들을 정복하며 확장하였다. 이러한 헬라제국의 팽창은 동진을 통해 일어나며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세상을 통일하는 결과를 낳았다. 언어와 문화, 인종과 지역의 경계를 모두 허물어 버리고, 오직 헬라 제국안으로 모든 사람들을 통합함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제국은 탄생은 그 내부에서 무수한 동쪽과 서쪽의 왕래를 촉발하였고, 결국 동서의 융합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낳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헬라문화였다.
동진을 통해 세상을 호령하던 헬라제국도 그러나 그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다. 오히려 헬라제국이 이루어 놓은 그 터전 위에 천년왕국을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게 된 것은 로마제국이었다. 이 로마 제국의 특성은 동진이나 서진을 통한 방식으로 정복하거나 다스린 것이 아니라, 마치 소용돌이처럼 모든 시간과 공간을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어갔다. 로마제국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팽창보다는 안정을 선택하였고, 그 역사의 방향성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렸다. 다시 말해 팍스 로마나(로마 아래에서 누리는 평화)를 외치며 거대한 제국이라는 공간 안에서 시간을 멈추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거대한 로마 제국이 천년왕국으로 가장 오랬동안 통치를 하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즈음에 하나님은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틀을 깨고 역사 안으로 강하게 들어오심으로 기독교는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역사의 방향을 움직이지 않고 멈추고자 했던 로마제국에 맞서 다시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자 했던 것이 예수운동이었다. 그리고 예수로부터 출발한 기독교는 유대 땅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를 향하는 서진을 함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움직이는 힘은 결국 서진을 통해 로마제국을 정복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정복의 힘과 방법은 세상 제국의 방법과 달랐다. 역사의 방향을 움직이는 힘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시간도 세상이 계산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성육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세상을 향해 멈추지 않았던 복음의 증언과 같은 방식이었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힘이 아닌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 개입의 결과물, 즉 성육신한 그리스도께서 자기 희생적 사랑과 섬김으로 촉발된 가르침과 삶, 그리고 그의 희생과 부활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하였고, 로마 제국이 아닌, 예수 제국을 형성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제국은 로마 제국보다 더 긴 역사를 만드는, 아니 영원한 역사를 만드는 제국으로 이 땅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방향을 주도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이제 세상에서 사람들이 로마제국과 헬라문화 속에서 서로 왕래하며 섞이는 시점에서, 그 제국과 문화를 수단으로 삼아 예수의 제국와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냄으로, 더 큰 세상, 더 나은 세상 이라는 세계관을 세상에 심었고,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전파하며, 그 나라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로마제국과 헬라문화라는 가장 큰 시간과 공간의 틀, 즉 역사의 장에서 기독교는 태동하여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개입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완성으로 귀결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연 그 시간과 공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역사의 방향성(동진이나 서진)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그야말로 지구촌에서 살기 때문이다(사방이 왕래하는 그런 시대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지구촌에서 하나님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하시는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거대한 시간의 틀 속에서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보였던 역사의 방향은 이제 그 역사의 틀 속에서 찰라와 같은 시간을 사는 우리들이 발견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완성된 이 세상은 이제 종말을 향해 흘러가고 있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점점 그 끝자락을 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때에 역사의 끝자락에 서있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역사의 방향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이 시간을 채워야 할지, 역사를 완성해야 할지 깊이 숙고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김세현 교수(SCD 신약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