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문학
제6장 의학과 생명의 숨은 그림 찾기
(손호현 저,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 14가지 인문학 주제로 다각적 기독교 읽기, 동연 출판사, 2015년)
Ⅰ. 히포크라테스 선서
*고대는 의술, 주술, 종교가 혼합 상태
육체고통과 질병에 대한 인식: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디미투 (질병)는 지옥에서 부터 왔다.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부터 버림받은 것.
-주술사들: 엑소시즘-악귀 축사: 빵 일곱개 + 구리줄 + 빵이 가루가 되도록 몸에 대고 문지른다 (초원지역의 야생 아카시아 나무 아래 눕혀 시행).
*히포크라테스 (460 ~ 370 BCE) – 주술에서 합리적, 자연주의적 이해 추구
근대의학의 효시
“각 질병들은 각각의 자연적 원인이 있다”
-무신론자이거나, 또는 종교적 함의적 존경을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태도 + 종교적 감사의 공존 시대 (의술관과 종교관의 혼재시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 “신전에 가서 닭 한 마리를 바쳐달라”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술 = 신적 행위, 의술의 신들을 모시고 신들에게 맹세의 약속을 담고 있음
신 = 감시자, 보상, 판정자로 간주한 일종의 ‘경건한 기도’
Ⅱ.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아르스 ARS – 순수 예술이기보다 → 기술과 공예적 의미로
나중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경구로 이해 됨.
테크네 = 결정과 도덕적 어려움 = 의술
*‘선서’ 속의 네 신:
1. 아폴론: 예언, 질병, 의술 – 병을 내리기도하고 고치기도.. = 병은 곧 징벌, 천형
2. 이스클레피오스: 고르곤 (뱀의 머리카락)의 피를 치료약으로 사용 – 구급차, 세계보건 기구의 마크 – 뱀지팡이의 유래
3. 휘기에이아 (딸) – 건강의 여신 (예방의학)
4. 파나케이아 – 치료의 여신 (치료의학)
히포크라테스가 자신의 조상신으로 인식- 초 인간적, 종교적 근거를 바탕
-자신을 신의 치료를 조력하는 대리인으로 인식
중세시대: 신들의 이름을 뺴고 대신 야훼와 예수의 이름 삽입 – (마 4:24) 질병, 고통, 환자, 귀신, 간질, 나병, 중풍병환자 치유.
Ⅲ. 7학예와 신학, 법학, 의학
선서의 내용에 충실한 의학 전수
남성에게만,
중세대학: 7학예 – 3학 4과
-3학: 문법, 변증학, 수사학
-4과: 음악, 기하학, 천문학, 수학 (고등)
아우구스티누스 (AD 354 ~ 430): 3학에서 4과를 거쳐 ‘감각 세계’에서 ‘지성 세계’로 올라가는 ‘상승의 단계’로 표현 – [질서의 세계들] – 교육의 질서 유지 강조 = 중세 대학의 기초와 질서
그 후에, 신학, 법학, 의학을 가르침 = 신학은 인간의 영혼, 의학은 몸을 치유하는 자매 학문으로 인식.
Ⅳ. 무기연고 (Weapon Slave)
파라켈수스: 16세기, 스위스 의학자 (1493 ~ 1541)
의사의 아들, 종군의사 – 48세 객사 – 원격 치료 – “상처를 입힌 칼에 치료약을 뭍혀도 치유될 수 있다” – “의술과 마술”을 혼동.
우주: 자석의 원리, 중력,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 원격 치료
1530년 – [파라그라늄] – 철학, 천문학, 연금술, 덕의 원리를 통해 자연철학, 천문학, 점성술, 화학, 연금술, 의학 연구가 총체적으로 소우주인 인간의 몸에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 의학 + 점성술이 접합된 지식과 기술형태
“마술은 의사들의 선도자이자 스승이고 교육자” – 파라켈수스. 의학의 주술적 미분화 사례.
Ⅴ. 의학의 세속화: 또 다른 히포크라테스 선서?
*오늘날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1848년 세계의사협회의 수정본 – [제네바선언]
-1955년 양재모 교수 – [제네바선언] 번역
연세 의대 졸업생들이 낭독 시작 – 1956년 유래
의미: 세속화와 탈 종교화 – 신에게의 맹세가 아니라 인류와 자신에게 하는 약속
신은 더 이상 감시자, 보상, 처벌의 역할자가 아니다.
의술을 비종교적 기술로 인식 = 의학과 윤리적 성찰의 세속화
“성공한 생명논리는 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역에서 나타난다” = 생명윤리의 세속화
*Q. 과연 비종교화는 바람직한 것인가?
-다니엘 켈러한: 신학적 진리의 영향력이 미진함으로 다원주의와 세속화속에서, 인간 근본적인 필요의 숙고가 사라지고 윤리의 도구적 성격만 강해지게 되었다.
손명세 교수:
“종교적 성찰 배제와 세속화는 의료윤리에 도움 되지 않는다”
개방성과 대화에의 헌신 필요 – 다름을 인정, 타협과 변화를 인지를 강조 = 신학이 인간 통찰에 대한 제시가 필요 – 목회자 신학자의 의사결정 통로에의 참여와 장기적인 대화의 필요성이 대두.
*의학의 탈종교화와 세속화의 상황의 5가지 소통 가능성:
1. 미분화론으로의 회귀 – 무기연고, 의사무당?
2. 종교, 의학적 병행 치료 – 의학적 사형선고자 – 기도원, 안수기도 등의 종교적 치유
3. 현대의학적 치료의 한 단계로 종교적 요소 부분적 도입 – 심리상담의 한 방편
4. 인격의학론 – 생명의 존엄성 교육, 인격의 고양
5. 인격의학론과 더불어 종교와의 사상적 법률적 구조적 대화 모색
예)
배아복제 연구, 안락사 – 의학 기술 영역을 넘어 생명의 가치판단 고려
생명윤리 위원회, 뇌사 판정위원회에 종교인의 참여 – 다양한 전문가의 참여로 소통과 교섭, 법률적 보장
Ⅵ. 태아는 사람이 아니고 모체의 일부도 아니다?
태아는 사람? 모체의 일부?
*생명 윤리:
고갱 (1848 ~ 1903):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예1. 2001년 8월
산모 이씨 – 2001 임신 5개월 – 조산원 – 자연분만의뢰 – 당뇨병진단 – 조산사 무리 태아 사망 – 8월 출산 예정 2주 지나, 당뇨로 태아가 5.2Kg의 초우량아로 성장조산사 초음파 미확인 – 전문 병원 후송 못하는 등 대응 부실 – 태아 – 저산소증제왕절개 – 사망
2005년 5월 12일 문화일보- 조산사 업무과실 치상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 대법원 무죄 취지, 환송
-검찰: 자궁내 태아의 인격권 부여 어렵다. 태아 사망한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태아를 꺼내기 위한 제왕절개 수술이 상해에 해당한다고 기소.
-태아를 모체의 일부로 볼 경우: 태아 사망이 모체 상해 – 업무상 과실치사
-중앙지법형사항소 9부: 조산사 서씨의 무죄. 산통없이 사망한 태아는 사람이 아니고 모체의 일부도 아니어서 업무상과실치사 책임없다.
-사람의 시기 – 진통이 개시된 때, 따라서 규칙적인 진통 없었으므로 무죄
*대법원 판단:
1. 태아를 임신부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2. 낙태가 임산부 신체의 일부를 상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반박: 그러면 태아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 제왕절개 빨리 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
무엇이 생명?
-시작점, 윤리적 책임은 언제?
입체 초음파 검사: 심장 박동, 얼굴, 발가락, 손가락, 노는 모양, 성별 관찰가능
문제 – 생명의 존엄성 훼손, 과학이 신의 역할 대신? 생명의 확장, 훼손?
Ⅶ. 고무줄 생명
법조계, 의료계, 생명공학계의 다른 견해 – 법의 규제와 간섭 – 관점의 차이
-민법: 전부 노출설: 생명 보호가 아니라 권리보호가 목적 – 독립호흡의 시기가 출생의 싯점. 권리능력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 – 배속의 태아는 재산의 소유하거나 양자로 입양할 수 없다.
-형법: 진통설, 분만 개시설 – 진통의 개시시점 낙태문제 – 모자 보호법시행령 15조: 28주 이후의 태아를 인간으로 간주 – 임신 중절의 시행가능 하지만 현대의학 기술 발전으로 28주이후의 낙태도 생존과 성장에 안전
매장 묘지 관한 법률 2조: 4개월 이상된 태아는 인간사체와 같이 취급 – 매장 – 자의적 해석?
배아의 생명론: 14일 배아란 수정부터 8주까지 보통 2~8주의 두 견해, 8주 이후 – 태아.
생명공학자입장: 14일 이후는 생명, 그 이전은 세포덩어리, 정자 – 14일까지 수정란단세포덩어리
14일 이후 분열시작 – 장기와 신체기관은 아직 미형성, 신체기관 가지면 생명의 지위 획득 – ‘인공적 줄기세포 복제’는 14일 이전은 생명으로 보기 어렵다 – 황우석 주장
*가톨릭 입장: 2005년 6월 4일
1. 수정되는 순간부터 – “생명-인간의 배아는 수정된 순간 부터 인간 생명의 결정 주체” 수정란도 생명 – 생명 인정의 확장
2. 자연 및 인공 수정 배아 역시 생명 – 실험이나 조작은 생명의 존엄성 훼손에 해당
3. 종교적 입장 = 히포크라테스정신: “인간의 생명을 수태한 순간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 할 것”
기원론적? 생태론적? 컴퓨터 정품과 복사품의 차이? 기원론적인 차이,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동일.
가톨릭교회 – 기원은 다르나 상태론적인 기능은 동일한 생명.
Ⅷ. 생명의 존엄과 안락사
죽음 – 호흡, 심장 박동 정지
한국 형법: 맥박이 정지 = 죽음,
현대의학: 호흡, 심장 + 뇌사 = 죽음, 죽음의 권리는 안락사의 이슈
*안락사:
1.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의사가 약물주입 – 능동적 안락사
2. 치료중단으로 수명단축, 죽음 – 수동적 안락사
*환자의 의사 표시
-자의적 안락사, 비자의적 안락사
찬성자:
1. 개인의 자유
2. 종교적 이유 – 고통을 최소화하는 사랑의 실천의 일환
반대자:
1. 생명을 받은 신의 선물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 생명의 주권이 신에 귀속
2. 인간의 존엄성 경시 – 빈번한 안락사와 법률적 관용증대로 인한 – 앉아있는 나무 가지를 스스로 절단하는 것
*Q. 인간의 절대적 가치와 그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기독교의 입장: 살인하지 말라 – 안락사에 있어 중요한 지침역할
생명은 무엇 – 정의?
Paul Davis (1946 ~): 자율 생식, 대사, 영양, 복잡성, 조직화, 성장과 발달, 정보내용, 하드-소프트웨어의 뒤얽힘, 영구성과 변화의 속성
Glen Rowe: 생명은 “첫째 주변으로부터 에너지 흡입, 자체유지를 위해 사용하고 (대사), 둘째 개체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복제 능력을 가지며 (생식), 셋째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기 위해 세대를 거쳐 가며 변이와 선택을 통한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 (진화).” – 대사, 생식, 진화하는 존재.
생물학자 신영오:
“자연과학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생명과학자에게 생명 그 자체에 관해 질문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생명의 정의는 과학자들만이 독점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에 나누어진 것,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 생명은 겹치고, 연결되고 나누어진다.
성서는 인간과 신의 숨 나눔을 이야기로 전달.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된지라” – 창 2:7
*인간은 신의 생명을 나눈 존재:
마이모니데스 (람밤): 12세기 스페인-모르도바 출신의 유대교 최고의 랍비, 천문학자, 외과의사, 점성술가, 미쉬나토라 완성자:
모든 인간이 기억해야할 두 가지
1. 모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
2.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적 생명을 갖고 사는 신적 존재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자는 우주를 구한 것과 같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신으로 부터 신적 존엄성이 부여되었다.
칼 바르트 (1886 ~ 1968) – 외부로 부터 온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소중함은 생명의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신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다. “숨은 인간의 생명과 신의 생명이 호흡하는 키스이다”
김균진 –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
인간의 생명은 인간이 책임- ‘품위 있는 삶에 대한 권리”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
인간 생명의 인위적 무란정 연장 – 약품 또는 의료기기의존- 인간의 권리가 손상.
과거 신학자: “인간 생명의 시작을 인간이 조정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침해”
하지만 의학과학의 발전으로 인간 생명의 시작을 인간의 책임에 두었다는 것에 부정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명의 마지막도 그렇게 될 것.
Ⅸ, “난 당신의 생명보험입니다”
*복제인간: 2005 [아일랜드]
-복제인간은 자신이 생태적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 인식. 이들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닌, 비일튜브에서 누에고치 처럼 사육되어 거의 어른의 모습으로 복제 탄생 – 임신한 복제인간이 아일랜드로 – 천국으로 묘사 – 실제는 폐기처분, 죽음, 아이는 젊은 부부에게 인도 – 산모는 그저 숙주역할 – 주인공 링컨 6 – 에코와 조던 2 – 델타의 탈출 – 잠자리 – 사랑? – 인간의 권리? – 태어난 아이? 복제인간? 인간?
1. 탈출: 흑인 인부 “I know Jesus loves you” – 복제인간도 생명체?
2. 자기를 만난 제작자: “I am your insurance policy” – 복제품 – 장기복제를 위한 숙주?, 신의 사랑을 동일하게 받는 생명체?
Ⅹ. 파스칼의 내기: 생명의 최대주의와 최소주의
철학자 파스칼은 내기로 유명하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 보다 합리적인 선택
-유신론자의 삶과 실재 신의 존재의 확인은 엄청난 보상이 될 것,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살다가 신이 존재 한다면 엄청난 손실 – 유신론이 무신론 보다 유익한 이성적 선택
-유신론 입장이 내기에서 이길 확률이 더 크다.
-생명 최고주의가 법률과 같은 생명범위 축소하는 최소주의보다 더 합리적이다.
-이창영 신부: 어디부터가 생명인지 100% 명확하지 않으면, 먼저 생명을 보호하는게 맞는 것 아니냐?
-독일 등: 배아줄기세포 연구 금지, 대신 성체 줄기세포 연구 추천 – 배아가 생명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 – 종교의 최대주의적 견해가 틀리다면 잃을 것은 미미할 것.
-법전의 페이지는 얼마? – 정답은 계속 변한다는 것.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의견도 변화한다.
-과학도 변화한다. 우리의 상식, 법률, 종교적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신의 개념을 생명 친화적, 군주론적 신관념으로 전이.
-생명의 정의는 단편적이지 않다. 법률, 의학, 과학, 종교를 수렴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질병: 자기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요 9:3)
장애와 질병은 신체적 다름으로 겪는 불편과 고통이지, 도덕적, 종교적 불완전성 또는 죄성을 드러내는 표시가 아니다.
부록
* 히틀러는 ‘나의 투쟁’ 에서
“만약 전쟁에서 모든 계층의 우수한 노동자가 전선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1만 2천 명에서 1만 5천명의 더러운 유대인을 독가스로 처리 할 수 있었다면, 수백만 명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그의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모든 과학의 이론을 동원해 온갖 상투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반유대주의는 완전무결한 세계관이며 가치 기준이었고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독일군으로 입대한 확고한 범게르만주의자였다. 이 두 가지 생각이 그의 인생을 지배했고 그것이 그의 확고한 정치적 아젠다가 되었고 선동의 시대적 호응을 얻는 전략이 되었다. 그는 동구 유대인들이 빈에서 벌였다는 백인 매춘부 매매 소문에서 매독이 확산되고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 이것이 유대인 볼쉐비키 정책의 일환으로 독일에 대한 정치, 군사적 위협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유대인과 얽히게 되는 것을 극히 혐오했다. 이러한 망상은 그와 그의 주변의 추종자들을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실행케 하는 광적인 관리자들로 변모시켰다.
이는 흑사병 (페스트)이 유행하던 중세시대에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인간 이하의 악마나 짐승으로 취급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사이비 과학 이론으로 유대인을 세균이나 위험한 기생충으로 간주했다. 이런 사고와 인식은 인간의 군중 심리와 희생양을 삼아 자신의 불만과 책임을 전가하는 원론적인 악한 죄성에 편승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교수와 대학생들의 지지를 등에 업게 되었다.
*유대인의 세계관, 윤리 신학의 기초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다는 성서적 근거에 기인한다.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다.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다.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일시적으로 사용할 뿐 하나님께 소유권이 있다. 그래서, 힐렐은 육체를 단련하고 건강을 유지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가르쳤다.
필로는 육과 영을 구분하고 육을 이성적인 영에 반대되는 감정적이고 비 이성적인 음모자라고 까지 폄하했다. (폴 존슨. 264)
랍비가 이끄는 주류 유대교는 선과 악의 힘을 구분하는 영적 이원론인 영지주의를 거부했다.
육체와 영은 하나 이기에 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함께 처벌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요한 차잇점 중의 하나로, The Saint (성자)와 The Sage (현자)의 추구 방향이 다르다.
– 유대교는 금식과 금욕을 통해 영을 강화 한다는 기독교 사상을 혐오했다.
– 유대교에서도 1세기까지는 고행하는 종파가 있었다 – 에세네, 열심당파와 같은 은둔, 고행과 결별
– 대 속죄일 같은 공동체적인 금식을 공표하지만 개인적 금식을 죄악으로 간주했고
– 포도주를 금하는 것도 역시 죄로 취급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학대한다는 의미)
– 채식주의, 독신을 권장 하지 않는다 – 토라가 금하는 것이 부족해서 거기에 첨가를 할 필요까지 없다는 입장.
이들의 주된 관점은 자제, 절제 이지 금욕은 아니다.
따라서, 지나친 금욕과 나아가 자살은 신성모독 행위에 속한다. 쓸데없이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죄악이다.
현자들은 홀로코스트를 거치며, 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 시키면서까지 자기목숨을 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의무도 없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율법을 어겨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절대로 배제해야 하는, 세 가지 행위가 있었다.
1. 우상숭배
2. 간음 / 근친상간
3. 살인
*생명에 대한 정의의 관점
다수의 생명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죄가 없는 자가 희생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랍비 아키바 –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포기하는 행위
필로 – 살인은 심각한 죄, 신성모독
마이모니데스 – “살인자는 아무리 피해자에게 보상해서 고소인이 방면한다 해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살해당한 자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인류의 상징이므로 한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생명의 원리를 파괴하는 것이고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류를 구한 것과 같다. (미쉬나의 중요 원리)
남이 보지 않는다고 죄를 짓는 것은 이 땅의 권력을 하나님이 내리는 천벌 보다 두려워 한다는 반증이다.
신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호주 유대인 커뮤니티가 준비한 대중 모임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극단 이슬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가을 명절인 장막절이 끝나는 안식일에 5천여 발의 로켓을 쏘고 수백 명의 무장 테러 공습을 감행해 이미 1000여 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망자와 2,000여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1. 안식일의 공격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선 음악 축제에 모인 젊은이들을 낙하산을 탄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내려와 무차별 사격으로 26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붙잡아 머리채를 휘어잡고 옷을 벗겨 나체로 질질끌며 오토바이나 트럭에 태워 인질로 잡아갔다. 도처에서 살상이 일어나고, 유아들이 40명이나 한꺼번에 죽고 임신한 여인의 배를 찔러 태아와 함께 죽이는 일과 외국인들을 포함해 150여 명이 넘는 인질이 잡혀갔다. ‘알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으로 전개된 끔찍한 살상은, 유대인의 안식일에 그들의 ‘신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보복의 전쟁은 더욱 거세지고 잔인한 유아 참수와 강간과 살상으로 울부짖는 민간인들의 슬픔은 어느 쪽을 편들 수 없이 가혹하고 처참하기만 하다.
세계 곳곳에서 하마스의 기습 테러를 규탄하고 있지만 거기에 만만치 않게, 팔레스타인을 두둔하는 시위도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버드의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260여 다문화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호주에서도, 바로 며칠 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 공격의 원흉이라며 맞불을 놓는 반 유대주의 시위가 일어났으니 유대인들 입장에서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2. 신의 이름의 시위
나는 몇몇의 호주인들과 아는 유대인들과 만나기로 연락을 하고 아내와 함께 시드니 동부에 있는 Dover Heights의 한 공원을 찾았다. 이름처럼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은 바다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고 찐 부자들의 동네라는 명성처럼 집들이 웅장하고 고급스럽다.
주최측은 보안을 유지하느라, 참석하는 사람의 각자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허락된 사람에게만 당일 오후에 개인적으로 참석 장소를 알려주는 치밀함을 놓치지 않았다. 차로 1시간여나 걸리는 곳이니 일찌감치 출발을 했는데도, 부근에 이르자 이미 머리에 키이퍼를 쓰고 이스라엘과 호주국기를 손에 들거나 몸에 감싼 수 많은 유대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파킹을 하느라 밀린 차들로 골목마다 움직일 틈이 없다. 간신히 차를 돌려 한참 온 길을 따라 멀찍이 차를 세우고 언덕길을 걸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앞에는 먼 발치서도 크게 보이는 초대형 스크린이 양 옆에 세워져 있고 중앙 스테이지엔 밴드와 사회자와 주요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언덕 꼭대기에 바닷바람이 거세지고 대형 국기와 손에 든 작은 국기들이 더욱 세차게 펄럭이고, 만 명은 넘어 보이는 셀수 없는 수많은 인파와 스피커를 통해 순전한 피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절절한 애도와 이들이 역사 가운데 반복적으로 겪어온 수많은 반 유대주의의 핍박의 호소가 절정에 달한다. 행사에는 주 수상이 참석하고 그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장하며 그들 편에 서겠다는 감동어린 연설과 연방 수상을 대리한 당의 유력 인사의 애도와 시드니 대회당의 최고 랍비의 격려와 위로의 기도가 행사의 권위를 더한다. 유대인의 최고 구심점이 되는 유대인 연합 위원회의 선출된 30대 수장의 당찬 연설은 이들의 오랜 교육과 정체성과 품격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잠시, 우리도 숫자는 비슷하고 열정은 만만치 않은데, 이런 행사를 연출해 내기엔 호주 정부를 움직일 만한 위상과 민족 구심점이 부실한 듯하다는 자존감 스크래치 나는 생각이 순간 스친다.
행사는 이들의 ‘신의 이름’이 담긴 전통 노래와 국가를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해산 되었다. 감정이 솓구쳐 소리를 지르는 일도, 상대를 비난하는 난폭한 언사도,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의 거들먹거리는 위협도, 질서를 어지럽히는 거친 행동도 볼 수 없이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삼삼오오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머금으며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살상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3. 병적 이원론
세상엔 신의 이름으로 점철된 많은 전쟁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홀로코스트, 중세의 마녀 사냥,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 르완다, 스탈린, 레닌의 구소련, 모택동의 중국 대혁명의 대량 학살이 그렇다. 어느 철학자가 병적인 이원론은 신의 이름으로 선한 사람들을 모집해 악한 일을 자행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 이데올로기이다. 수없는 지성들이 나치의 사상을 만들고 지적 위엄을 더했다. 성서학자 게르하르트 키텔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데거, 세기의 위대한 법 철학자 칼 슈미트가 그 중심에 있었다. 나치 선동의 주동자 요세프 괴벨스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독일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 지성 중의 지성이다. 아우슈비츠의 악명높은 의사 맹겔레는 인류학에 기반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었다.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결정한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의학 박사이었고 당시 인구의 2% 정도만이 대학 졸업자였는데, 친위대 장교들의 41%가 대학 졸업자였다고 한다.
시대의 지성들이 모두 반 인륜적인 악을 행하는 비인간화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오히려 유대인으로 인해 피해 받는 희생자로 둔갑하고 남에게 악을 행하는 명분을 삼았다. 극단적 이원론으로 발전한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극성을 부린다.
TV에는 매일, 가족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가족과 인질로 잡혀간 딸을 애타게 부르는 유대인 아버지의 슬픈 모습들로 가득하다.
새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 3계명의 의미가 무겁다. (한호일보 기고문)
발제 : 정원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