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5년 8월 16일,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사상가 장 드 라브뤼예르 (Jean de La Bruyère, 1645 ~ 1696) 출생
장 드 라브뤼예르 (프: Jean de La Bruyère, 1645년 8월 16일, 프랑스 파리 ~ 1696년 5월 11일, 프랑스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모랄리스트이다.

– 장 드 라브뤼예르 (Jean de La Bruyère)
.출생: 1645년 8월 16일, 프랑스 파리
.사망: 1696년 5월 10일, 프랑스 베르사유
.국적: 프랑스
.언어: 프랑스어
.직업: 수필가, 역자, French moralist, aphorist, 변호사, 작가
.학력: Old University of Orléans ( – 1665)
University of Orléans
.사조: 고전주의
.주요 작품: 레 카라크테르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변호사와 세무관 등의 직에 있었으나 직무에 등한한 채 독서를 일삼는 생활을 보냈다.
후에 콩데 공작 손자의 교사가 되어 콩데가에서 기숙하면서 사색과 독서의 나날을 보내며 귀족생활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1688년 당시의 풍속과 사람들의 성격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레 카라크테르》를 출판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 생애 및 활동
장 드 라브뤼예르 (Jean de La Bruyère)는 1645년 8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파리의 소시민 출신으로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법관의 자격을 취득했지만 한번도 법정에 선 적이 없었다.
그는 오를레앙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지만 개업하지는 않았다.
또 장이라는 같은 이름의 숙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캉시의 징세관 직을 샀으나, 그 자리에도 부임하지 않고 파리에 살면서 독서와 사색과관찰에 몰두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모랄리스트란 인성에 대한 성찰을 에세이나 격언이나 단장의 형식으로 남긴 문필가들을 가리킨다.
그러니 모랄리스트 라브뤼예르에게 관찰은 일종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브뤼예르는 왕족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파리 상류 사회 인사들을 꼼꼼히 관찰했고, 그 결과를 ‘사람은 가지가지’ 《레 카라크테르》 (프: Les Caractères ou les Mœurs de ce siècle)라는 책에 담았다.

- ‘사람은 가지가지’ (레 카라크테르, 프: Les Caractères ou les Mœurs de ce siècle)
《레 카라크테르》(프: Les Caractères ou les Mœurs de ce siècle, 사람도 가지가지)는 라 브뤼예르 작품이다. 수상(隨想).
처음에는 그리스 철학자 테오플라스토스의 <성격론>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자작의 〈사람도 가지가지〉를 부록으로 첨가한 형식으로 발표했으나 후에 그가 그린 초상 (肖像)이 인기를 불러일으켜 양이 증가하였다.
예리한 관찰로 당시의 풍속을 풍자적으로 취급하였고 성격을 교묘하게 그렸다.
.유명 경구들
“법관의 의무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지만 그들의 직무는 정의를 미루는 것이다. 몇몇 법관들은 의무를 알면서도 직무를 수행한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살기를 바라면서도 늙기를 두려워한다.”
“자기 하인이 보기에도 위대해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과 우정은 서로를 배척한다.”
“사람은 죄 때문이 아니라 나약함이나 자존심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
“신이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증명할 수 없다는 게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 <그리스어에서 옮긴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과 금세기의 성격 및 풍속론>
라브뤼예르는 유명한 인문주의자이자 신학자인 자크 베니뉴 보쉬에의 추천으로 콩데 공의 손자인 부르봉 공작의 가정 교사가 되었다. 가정 교사를 그만둔 뒤에도 샹티이에서 콩데 가문의 도서관 사서로 있었다. 이 곳에서의 생활은 대체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외모가 볼품 없었고 시무룩한 태도와 신랄한 말투로 언제나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등감은 그의 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런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타락한 사회에서 돈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관습의 폭력과 하는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귀족들의 게으른 생활과 변덕스러움 및 유행이 몰고 오는 갖가지 위험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 무렵에 쓴 책이 《그리스어에서 옮긴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과 금세기의 성격 및 풍속론》인데, 1688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라브뤼예르가 여기서 사용한 방법은 테오프라스토스와 같았다. 겉치장이나 아부 또는 상스러운 말투 같은 특징을 규정하고 나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실례를 찾아 내어 그 시대의 특징을 반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풍속을 개혁하려고 하였다. 라브뤼예르는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력을 지녔으며, 확실한 표현 방법도 터득하였다. 그가 활용한 풍자는 여러 가지 표현 방식으로 항상 끊임없이 날카로워지고, 그의 문체는 생생한 효과를 얻고 있다. 19세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공쿠르 형제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그의 문체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제8판까지 인쇄되었다. ‘여성에 대하여’, ‘궁정에 대하여’ 등 16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구성이 매우 자유 분방하여 짧고도 신랄한 경구가 있는가 하면 전형적인 인물들의 다채로운 묘사가 있어 변화 무쌍하다.
독자들은 이 책에 나타난 인물들에 진짜 이름을 붙여서 그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를 모으기 시작했지만 라브뤼예르 는 어느 것도 한 사람의 초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책에서 시사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1693년에 결국 회원으로 뽑혔다. 외교관이자 전기 작가인 생 시몽 공작은 그를 고결하고 매력적이며 잘난 척하지 않는 인물로 표현하였다. 그의 정치적 풍자는 18세기의 문학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숙주의에 대한 대화》도 유명한 책이다.
- 별세
장 드 라브뤼예르 (Jean de La Bruyère)는 1696년 5월 11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별세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