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까치와 까마귀 이야기(1)
아침 산책길에는 에누리 없이 마주치는 사람과 개가 있고 새[birds]가 있다. 사람과 개도 제 각각 다양한 모습이지만 새 종류가 더 다양한 것 같다. 집을 나서면서 첫 번째로 잔디밭에서 어정거리는 코카투[Cockatoos] 무리와 마주치고 200여m쯤 걸어 올라가다보면 2-3마리의 호주까치 무리가 잔디밭위에서 열심히 아침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까치무리의 지절거리는 소리가 한국의 까치와는 생판 다른 발성을 하고 검은 바탕에 백색무늬가 한국의 까치와는 영 딴판이란걸 알아차릴 수 있다. 호주 조류도감을 열람해 보니 한국까치와는 전혀 다른 새 종류다. 호주까치(Australian magpie)는 분류상으로 과[family]에서부터 한국의 까치와 다르다. 호주까치는 숲제비과다. 숲제비과(Artamidae)는 참새목에 속하는 조류 과의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南)아시아에서 발견되는 까마귀를 닮은 명금류이다. 명금류(鳴禽類)는 참새아목(Passeri)에 속하는 노래하는 조류의 총칭이다. 호주에 처음 와서 동이 트는 새벽녘에 생전에 들어 보지 못한 새소리가 들렸다. 낯선 호주 땅에서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느라고 고심하고 있던 때에 유난히 많은 새소리가 영 반갑지 않았었다. “저런 소리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는가?”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일이 있었다. 그 새 소리가 호주까치 소리였다. 남태평양 지역의 새종류는 유난히 성대가 발달한 것 같다. 앵무새류가 많고 웬만한 새는 거의가 한곡조 뽑을 수 있는 성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호주에서 새, 쿠쿠아바라[Kookaburra]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 이 새의 그 요란한 소리를 거의 새벽마다 듣는다. 한 마리가 “kook-kook-kook-ka-ka-ka…”로 뽑아대면 뒤 따라서 숲속의 모든 쿠쿠아바라가 요란한 합창으로 숲속의 정적을 깬다. 쿠쿠아바라의 소리를 웃음에서 나오는 소리로 들리는지, full name으로 Laughing Kookabura라고 표기하고 있다. 호주의 새들이 화려한 음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까치는 음색이 단조롭다. 그러나 한국까치의 음량은 까치 종을 통틀어서 가장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까치의 소리를 표현하자면 “깎-깎-깎…”(아닌가?) 이소리가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는지 한국까치는 소리와 함께 오랫동안 극진한 사랑을 받아 왔다. 한국까치는 호주까치와는 족보부터 전혀 다른 종족이다.
호주까치가 숲제비과(Artamidae)인 반면에 한국까치는 까마귀과(Corvidae)다. 한국까치는 종친회[宗親會]를 까마귀와 할 처지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까치 까치 설날은…” 동요와 함께 길조[吉鳥]로 극진한 대우를 받아 왔지만 현재는 생태계도 파괴하고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단전[斷電]사고며 농작물 피해 등 해조[害鳥]중에 해조로 낙인 찍혀 버렸다. 과수 농가 입장에서 원수중에 원수가 까치다. 까치도 까마귀 못지않게 6살 정도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까마귀와 4촌정도 되는 가까운 사이이니 그 머리 어디 가랴? 왠만한 개나 원숭이보다 더 좋다. 그래서 종종 농장에 기겁을 하고 도망가라고 험상궂은 허수아비 세워 놔야 아무 소용도 없다. 게다가 성격도 엄청나게 난폭하고 호전적인 녀석들이라 사람 정도나 되어야 슬슬 피하지 독수리한테도 겁없이 달려들어 사생결단을 하는 새다. 일부 종은 번식기에 사람한테도 공격을 한다. 겨울철 비닐하우스 농가에 심대한 피해를 입힌다. 참새 등이 비닐하우스에 한 번 들어오면 출구를 못 찾아서 미친 듯 날뛰곤 하지만, 까치는 비닐을 살짝 들어 올리고 들어와서 과일을 한입씩 다 쪼아 버리고는 들어온 곳으로 나간다고 한다. 특히 과일을 쪼아먹을 때 하나 먹는게 아니라 과수원 과일 전부 한 번씩만 쪼아놓기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뿐더러 이 녀석들이 맛있는 과일은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맛난 과일부터 드신다. 과수원 농가의 주적이며, 까치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여러 대책들이 실시되고는 있다. 그런데 까치가 영악한 것은 학습효과가 있어서 이런 것들에 한 번 당하면 다음에는 잘 당하지 않는다. 군 부대에서 가끔 두꺼운 비닐을 찢고 고기를 훔쳐먹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각국의 까치 이미지
북한에서도 예전부터 저 새는 해로운 새로 여겨져서 보이는 까치들은 죄다 쏴죽여 버렸고 식량난 때에 시달리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까치들을 보이는대로 죄다 잡아먹어 버렸다고 한다. 북한에서 까치가 진짜 안 보인다고 한다. 스웨덴의 셀마 라게를뢰프(1858~1940)가 지은 “닐스의 모험”이라는 장편동화가 있다. 스웨덴의 아름다운 자연을 아이들에게 쉽게 이해시켜주는 동화이다. 이 작품으로 셀마 라게를뢰프는 여성 최초로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강의 스토리는 허구한 날 부모 속 썩이고, 농장의 동물들이나 괴롭히던 닐스라는 개망나니 소년이 어느 일요일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톰테(스칸디나비아 민담에 나오는 난쟁이)를 괴롭히다가 저주에 걸려 난쟁이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서 키우던 거위 모르텐이 기러기떼를 따라간답시고 날아가는 것을 붙잡고 따라가 기러기떼와 스웨덴을 거의 일주하는 모험을 시작한다. 모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서 착한 소년이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이 동화에 까마귀, 까치이야기가 나온다. 까마귀들은 장난꾸러기인데 반해 까치는 새들의 알을 노리는 흉조로 나온다. 일부 만화에서는 말썽 피우는 새로 까치가 들어가 있다.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먹는데다가, 본디 나무에 둥지를 지어야할 것을 전신주나 엉뚱한데 지어놔서 인간의 생활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유해조류로 지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젠 몇몇 지역에선 아예 비둘기 뒤를 이은(?) 새가 되기도 한다. 취한 사람이 토한 걸 비둘기랑 어울려 먹는 까치를 목격한 경우도 있다.
바다 건너 일본이나 땅끝 유럽에서는 까마귀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까마귀는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기를 못펴는데, 그 이유가 바로 까치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까마귀 보기는 정말 힘들다. 까마귀는 원래 인간이 생활하는 곳에서 많이 발견되는 새인데, 한국에서 까마귀를 찾으려면 산골짜기로 들어가야 몇 마리 볼 수 있다. 까치에게 쳐발려서 그렇거니와 까마귀 소리가 재수없다고 여기던 인식 때문에 보이는 대로 사냥당하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필자도 철없던 어린시절에 까치집, 까마귀집을 습격한 기억이 있다. 까치집은 쉽게 발견되지만 까마귀는 높은 나무꼭대기에 집을 짓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힘들고 둥지를 습격해서 알을 꺼내기도 힘들다. 총포상을 하는 분이 잡아온 까마귀와 까치고기를 먹어본 일이 있다. 의외로 까치고기보다는 까마귀고기가 훨씬 맛이 있었다. 까치가 역적으로 몰려서인지 최근에는 전체적으로 까치의 수도 줄어서 몇몇 지역에선 까마귀도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까치는 까마귀를 압도한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우리와 반대로 까치보다 까마귀가 압도적으로 많이 서식한다. 특히나 까치는 현재 큐슈 지역에만 분포하고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어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까마귀가 이미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열도 점령에 실패한 것이다. 현재 일본에 소수 남아있는 까치는 한반도에서 유입됐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유입시기는 임진왜란으로 당시 사가성 성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 조선에서 잡아다가 데려가 번식시킨 것이 현재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일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에서 자연유입됐다고 주장한다고 하는데, 철새도 아닌 까치가 바다를 건너갔다고 보기엔 힘들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다. 대전에서는 도시의 상징새로 인정되는 만큼 비둘기만큼 많이 굴러다니는 새다. 물론 광역시 중에서는 비교적 자연친화적인 관계로 까치뿐 아니라 참새, 멧비둘기도 흔히 볼 수 있지만.. 특히 모 대학 근처에 가면 정말 도심의 비둘기 수준으로 굴러다닌다고 할 정도로 많다.
추락하는 까치의 위상
1980년대 서울의 상징이 까치였는데,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까치를 비둘기처럼 길들여서 키워보겠다고 포획해서 번식시키려다가 실패한 역사가 있다. 이것은 새의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일로서 결국 까치의 번식은 실패하고 고작 알 하나 낳은게 다였다고 한다. 그 알에서 깨어난 새끼도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관공서공무원들이 무식하면 죄없는 까치만 죽는다. 1989년 아시아나항공이 제주도에 길조인 까치를 날려 보내자는 운동(제주도에는 까치가 없었다)을 저지르는 한심한 짓을 해서 제주도 생태계가 엉망이 되었다는 소리가 퍼진 일이 있었으나 이는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89년 일간스포츠신문사가 창간 기념으로 당시 제주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조인 까치가 없었고 길조를 선물한다는 의미로 제주도에 풀어줬다고 한다. 아시아나 항공은 당시 창간 기념행사를 하는데 있어서 제주도까지 까치 운송을 협찬해 주었다고 한다. 책임을 묻자니 27년전 방사 당시 제주도내 전문가들도 찬성했었고, 산림청이나 제주도 역시 후원했던 만큼 업체들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른 토박이 조류를 깊은 산으로 쫒아내고 완전이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당시 53마리를 날렸는데 지금은 10만여 마리로 추산하고 있다. 20년새 2,000배 가까이 번식했다. 생태학자들은 고유종을 멸종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감을 보이고 있고, 제주도의회에서는 소송을 고려중이다. 주변 섬까지 건너가서 쑥대밭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까치밥이라고 해서 과일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한두 개씩 남겨 놓는 풍습도 있다. 이는 고수레와 같은 맥락. 현실은 한두 개씩 남겨 놓고 과일을 다 털어간다.
한국인에게 까치는 친숙하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는 동요도 있고, 어린이때 유치[乳齒]를 빼면 지붕 위에 던지는 풍습도 있다. 까치가 뺀 이를 가지고 가서 새 이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치밥으로 감나무의 감도 모두 따지 않고 몇 개씩 남겨 두었다. 우리 선조들은 까치를 아주 좋아했다. 옛이야기 중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도 있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수컷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진 까치를 구해 주었다. 나중에 그 선비가 죽은 구렁이의 짝에게 죽게 생겼을 때, 그 까치가 머리로 절의 종을 들이받아 종을 울려서 선비를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까치를 싫어하면 이런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까치가 텃새인 데서 찾을 수 있다. 까치는 동네 어귀의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또 영리하고 눈이 밝다. 그래서 마을에 늘 드나드는 사람이나 짐승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시각뿐 아니라 후각도 뛰어나서 멀리서 낯선 사람이 오면 까치가 높은 곳에서 금방 알아차리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의 왕래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까치가 마을 사람들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외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오면 경계심으로 울어 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까치가 진짜 반가워서 우는 것은 아니고, 경계의 표시로 울어대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길조로 알려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까치가 현재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림 개발 및 도시화를 통해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까치의 천적이던 맹금류의 수가 줄어들어 번식력이 좋은 까치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된 데 원인이 있다. 봄, 여름에 나무의 유해 곤충을 잡아먹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반해 딸기, 수박, 감귤, 사과 등의 과실을 쪼아 먹어 과수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하고, 비닐하우스를 쪼아 구멍을 뚫어놓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재산피해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에는 까치의 농작물 피해를 줄이는 다각적인 연구 및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학습능력이 좋은 까치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농작물의 재배시기에 따라 까치를 유해조수로 분류하여 해마다 포획하고 있어 더 이상 길조로 사랑받던 새의 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다음호에 계속>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