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4일, 미국의 예술가 (화가, 조각가)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1905 ~ 1970) 별세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1905년 1월 29일, 미국 뉴욕 ~ 1970년 7월 4일, 미국 뉴욕)은 미국의 예술가로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가운데 호소력 있는 화가로 대형의 모노크롬 작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뉴먼이 ‘지퍼’라고 이름 붙였던, 단색 캔퍼스 화면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수직선이 작품의 특징이다.

–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출생: 1905년 1월 29일, 미국 뉴욕
.사망: 1970년 7월 4일, 미국 뉴욕
.부모: 아브라함 뉴먼, 안나 뉴먼
.배우자: 애널리 뉴먼 (1936 ~ )
.직업: 화가, 조각가
.작품 시리즈: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뉴먼의 회화는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의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에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zip’을 그 특징으로 하는 작가이다.
그의 캔버스에는 이 ‘zip’이라 부르는 수직선과 색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두 개의 색면에 하나의 수직선을 그려 넣어 크기, 모양, 색채에 관계없이 모든 것은 두 개가 아닌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생애 및 활동
바넷 뉴먼 (Barnett Newman)은 1905년 1월 29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뉴먼의 부모는 러시아인으로, 뉴먼이 태어나기 얼마 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22년부터 1926년까지 아트스튜던츠리그에서 공부하면서 동시에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1927년 졸업했다.
1930년대 아버지의 의류회사에서 일하는 한편,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고, 1934년에는 뉴욕시장에 출마하는 등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추상표현주의 양식의 회화를 제작했으나 화가보다는 주로 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는 여타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그들 작품의 특징인 강렬한 에너지의 표출에서 점차 벗어나 엄격하고 절제된 태도로 추상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1943년에 뉴먼은 아돌프 고틀리브와 마크 로스코와 함께 “우리에게 미술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다. 그것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탐험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1948년경 단색의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했는데,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띠가 캔버스 위에서 아래까지 세로로 지나가도록 했다. ‘지퍼 zips’로 알려진 이 작품들은 뉴먼을 대표하는 양식이 되었다.
뉴먼의 회화는 언뜻 미니멀리즘 양식으로도 보이나, 창조와 창작이라는 방대한 개념을 포괄하며 종교적인 분위기와 숭고한 신비주의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가 1950년 이전에 그린 그림들은 1950년대 전반에 뉴먼이 확립했던 양식에 대한 리허설로 평가되곤 한다. 예를 들어 꾸밈없고 금욕적이며 성서적인 제목을 가진 <아브라함> (1949)은 약간 밝은 갈색 바탕 위에 더 진한 갈색 띠를 세로로 배치한 작품이다.
이때부터 그는 형상과 바탕 사이의 관계를 세련되게 다듬으며 자신의 미학을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했다. 형상과 바탕, 이 둘은 <빛의 프로필> (1967) 같은 후기작에서 상호 호환적이 되었다. 그 결과 뉴먼이 ‘지퍼’ (zips)라고 이름 붙였던 일련의 줄무늬들은 종종 균일한 색면의 팽창을 강조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유일성 Ⅰ> (1948)에서 수직 줄무늬의 ‘지퍼’는 실제로 지퍼처럼 그림의 양쪽 절반을 나누기도 하고 다시 결합하기도 한다. 뉴먼에게 있어 그것은 “다른 영역들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영역이며, 다른 영역들 역시 이 선이라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 다른 예로 뉴먼이 뉴욕의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해에 그린 <비르 헤로이쿠스 수블리미스> (1950 ~ 1951)에서 그는 5.5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캔버스에 다섯 개의 수직 줄무늬 또는 지퍼를 표현했다. 그 결과 관람자는 색채의 확장에 몰두하게 되었다. 지퍼로 인해 관람자가 작품에 익숙해질 수 있다하더라도, 뉴먼이 의도한 작품은 선험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라벨이 붙었을 때 (다소 차갑고 분리된 이 대상들에 “표현주의적”이라는 수식어구는 정확히 무슨 뜻을 지니는 것일까?) 그의 작품은 모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르 헤로이쿠스 수블리미스> 같은 작품 뒤에 숨겨진 의도는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다른 많은 미술가들의 의도와 다르지 않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동일한 비판적 이해라는 지점에 다다르는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1950년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훼손까지 당했다. 이듬해에 전시회를 한 번 더 열었으나 반응은 나아지지 않았다. 1951년부터 1955년까지는 작품을 단 한 점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 대신 미술 비평과 미학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예술관을 알리고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공격적으로 주장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59년 개인전 이후에는 추상 표현주의 그룹 내에서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작품에 대한 오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뉴먼은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곳은 아무리 큰 미술관이라도 전시회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1958년부터 1966년까지 뉴먼은 흰색과 검은색만을 사용하여 14점의 평면 회화 시리즈를 그렸다. 각각 2개의 스트라이프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힘에서 부활까지의 14단계 고행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깊이감 있는 순색을 사용했으며, 강철을 재료로 몇몇의 대형 조각을 제작하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한 1950년대 초반부터 뉴먼은 뉴욕 화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으나, 그가 미국을 이끄는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거의 60세가 다 되어서였다.
1966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었던 전시회를 계기로 마침내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 이후부터는 그의 대표작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선명하고 순수한 색과 매우 거대한 캔버스를 사용했다. 대표작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랴〉 시리즈를 비롯해, 1965년 사망한 어머니를 추모하는 작품 〈안나의 빛〉은 그가 만든 가장 거대한 그림으로 꼽힌다. 또한 〈부러진 오벨리스크〉와 같은 대형 조각 작품도 만들었다.
뉴먼이 거대한 회화 작품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조각을 빼놓고는 그의 미술 세계를 논할 수 없다. 캔버스에서 공간과 형상의 관계를 탐구했던 그는 이것을 삼차원적 형상까지 밀고 나갔다.
뉴먼의 가장 커다란 작품인 <부러진 오벨리스크> (1963 ~ 1967)는 부러진 오벨리스크가 피라미드의 꼭대기 지점에 거꾸로 놓인 조각 작품이다. 균형을 잡고 있는 오벨리스크는 내재적으로 역동적이며 굉장한 시각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 노년과 별세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자 미국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지만 잭슨 폴록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에 예순 살이 되어서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특정 유파에 속한다거나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주제와 재현, 색과 선의 관계 등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예술은 아름다움의 재현이 아니라 감각을 넘어선 숭고함에 대한 경험, 영적이고 신성한 체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넷 뉴먼 (Barnett Newman)은 1970년 7월 4일, 미국 뉴욕에서 심장 마비로 별세했다.
뉴먼의 진보성은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등을 비롯한 다음 세대의 미국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주요 작품에는 《단일성 1 Onement 1》 (1948),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 Vir Heroicus Sublimis》 (1950~1951), 《아담 Adam》(1951~1952), 《부러진 오벨리스크 Broken Obelisk》 (1963~1967), 《누가 적, 황, 청을 두려워 하는가 III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II》 (1966~1967) 등이 있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작품은 큰 관심을 끌었다.
2014년 5월 바넷 뉴먼의 작품 단일성6 (가로:305cm, 세로:259cm)은 경매에서 4380만 달러 (한화 약 487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전화로 경매에 참여한 이탈리아 사람(추정)이 작품을 낙찰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금액은 당시 바넷 뉴먼의 작품들 가운데 ‘사상 최고가 추상화’ 반열에 올라섰다.
종전 기록은 바넷 뉴먼의 ‘단일성 5’ 시리즈다. 2012년 2240만 달러 (한화 약 250억 원)의 낙찰 기룩을 세운 바 있다.

○ 특징
숭고의 감정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 대상이 보여 질 수 없는 어떤 것, 혹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무(無)의 미(美)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근원적인 숭고미다. 무 앞에서 인간은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존재에의 경외심을 느낀다. 미국의 색면추상화가 바넷뉴먼은 바로 이 `무’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체험을 통한 근원적인 숭고에 미메시스적으로 접근한 화가이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인 지퍼로 전통적 미술 관습에서 탈피해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작품 활동 외에도 비평과 에세이를 통해 현대 미술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그로 인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체의 구성을 포기함으로써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형상이 제거된 화면은 소멸되거나 중첩돼 실재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사물’로서 존재할 따름이다.
뉴먼의 작품은 평범한 색면회화 (color-field painting)와는 구별된다.
모노크롬의 색체로 가득 채워진 그의 캔버스는 색채 자체의 직접성과 자율성을 지닌다. 대상의 묘사가 없이 널따란 색면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색면 회화와 비슷하나, 그의 작품은 단순히 색의 탐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회화의 본질이라 여긴 어떤 주제 (subject matter)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색면 자체의 절대적 대상화이자 객체화이다.
뉴먼의 캔버스 앞에 선 관람자는 일종의 무 앞에 서게 된다.
작품의 거대함으로 인해 관람자는 색채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무의 미 (美)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근원적인 숭고미다. 무 앞에서 인간은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존재에의 경외심을 느낀다.

○ 뉴먼의 목소리
모든 추상표현주의 화가들 가운데서 뉴먼은 아마도 가장 호소력 있는 화가이며, 확실히 가장 명료한 화가이다.
뉴먼은 자신의 작업이 성숙해졌다고 여겼을 때 초기작들을 대거 삭제하고 제거해버렸다.
늦은 시작으로 성공에 목말랐던 그는 자신의 초기작들이 가치 없고 쓸데없는 것이라 여겼다.
초기에 보인 무수한 실수와 실패가 창피했다. 그러나 넘어지고 실수하는 과거는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거울이다.
과거는 자꾸 꺼내어 닦아볼 필요가 있다.
뉴먼의 회화는 언뜻 미니멀리즘 양식으로도 보이나, 창조와 창작이라는 방대한 개념을 포괄하며 종교적인 분위기와 숭고한 신비주의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1943년에 뉴먼은 아돌프 고틀리브와 마크 로스코와 함께 “우리에게 미술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다. 그것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탐험될 수 있다”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1962년의 인터뷰에서 뉴먼은 “감정의 첫 폭발이나 감정적 소비의 흥분이 아닌, 서서히 차오르는 감정의 충만함이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1969년에 바넷 뉴먼은 역사학자인 도로시 기스 세클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임에 틀림없다고 확언했다.
오늘날 이 말은 당시의 많은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이 호언장담하던 다소 과장된 말로 들리긴 하지만, 이 말에 담긴 야심의 정도와 수위는 뉴먼이 1950 ~ 1960년대에 회화를 통해 성취하고자 했던 바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 Selected collections
Several public collections hold works by Barnett Newman. These include:
Addison Gallery of American Art (Andover, Massachusetts)
Allen Memorial Art Museum (Oberlin College, Ohio)
Art Institute of Chicago
Berlin State Museums
Cleveland Museum of Art
Detroit Institute of Art
Harvard University Art Museums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
Indianapolis Museum of Art
Kawamura Memorial Museum of Art (Japan)
Kunstmuseum Basel (Switzerland)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Madrid)
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Nasher Sculpture Center (Dallas, Texas)
Nassau County Museum of Art (Roslyn Harbor, New York)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Canada (Ottawa)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heldon Museum of Art (Lincoln, Nebraska)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Stedelijk Museum (Amsterdam)
Tate Gallery (London)
Wadsworth Atheneum (Hartford, Connecticut)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Wallraf-Richartz-Museum (Cologne, Germany)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City)



















참고 = 위키백과, 두산백과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