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트럼프 미 47대 대통령 당선의 의미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해서 47대 대통령으로 당신된 의미는 그의 정치적 노선과 보수주의적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여러 정책 공약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아래는 그의 선거 공약 중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1. 공립학교 내 기도 및 종교 활동 활성화: 트럼프는 미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기도와 기타 종교 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 종교의 자유를 중시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성별 인식의 제한: 그는 ‘남성’과 ‘여성’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별로 지정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 및 성 개념을 중시하는 보수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3. 트랜스젠더 여성의 스포츠 참여 금지: 여성 스포츠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금지를 명시하며, 이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강조하는 그의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군대 내 트랜스젠더 금지: 군대에서의 트랜스젠더의 복무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은, 군의 단합과 전투 능력을 우선시하는 보수적인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5. 미성년자 성전환수술에 대한 부모 동의 법률 변경: 부모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성전환 수술을 시행할 경우, 모든 의료 전문가는 중범죄로 처벌되도록 법을 변경하겠다는 공약은 트럼프의 강력한 보수적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공약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트럼프가 추구하는 방향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선거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카말라 해리스 후보와 같은 진보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보수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이슈가 부각되며, 트럼프 지지자들은 더욱 결속하게 됩니다.
결국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선거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가치관 및 세대 간 갈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이념의 경계를 확립하고 사회 내 여러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선거를 넘어 사회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미국 대선은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을 앞두고 있는 나라나, 제정된 후에도 많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키고 나라들에게 큰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줄것이 분명합니다. 동성애자들이 한때는 세상을 지배할것 같았지만 이를 계기로 시대적 한계점을 들어내고,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권위를 지니지만, 그 표현 방식과 초점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전략과 전술, 실체와 그림자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구약은 주로 이야기와 예시를 통해 진리를 드러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순종, 모세의 율법, 다윗의 찬양 등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독자는 이야기 속에 몰입하며 교훈을 얻고 감동을 받습니다. 이는 마치 전술처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신약은 교리와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던 믿음은, 신약에 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히 11:1)라고 정의됩니다. 이처럼 신약은 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히 제시하여, 독자들이 진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마치 전략처럼, 전체적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이 전술이라면 전술은 어떻게 가는냐를 결정합니다.
구약이 그림자라면 신약은 실체입니다. 구약의 예언과 약속들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제사 의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신약은 이 그림자의 의미를 밝히 드러내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신약과 구약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리를 드러내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즉,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구약은 신약의 빛으로 더욱 풍성하게 해석됩니다.
구체적으로 신약과 구약의 조화를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율법 준수와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반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이 드러납니다. 율법은 사랑의 그림자였고, 예수님의 희생은 사랑의 실체입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의 도래가 예언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예언은 구원의 그림자였고, 예수님의 오심은 구원의 실체입니다.
구약에서는 죄 사함을 위해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단번에 드려진 완전한 제물이 되십니다. 동물 제사는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따라서 신약과 구약은 서로 보완하며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드러냅니다. 구약의 이야기와 예시는 신약의 교리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신약의 명확한 가르침은 구약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도록 해줍니다. 신약과 구약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조화입니다. 역시 성경은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어제 갑자기 핸드폰에 문자가 왔습니다. 잘 열리지 않았고 매우 느리게 작동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서비스센터에 갔습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제가 불필요한 앱을 너무 많이 설치해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웹사이트는 다른 앱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앱들을 삭제하며 일종의 디지털 대청소를 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복잡함은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단순함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순이 최고이다 (simple is the best)
우리의 삶에서도 단순함의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정보와 선택의 과부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많은 일과 계획, 물건들로 복잡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증가시키고,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합니다.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신앙 생활에서도 단순함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잡한 신앙의 전통이나 의식, 다양한 관념들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깊고 진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과 사랑 사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오늘도 모두가 주안에서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의 적용
기독교에서 “할렐루야”와 “아멘”은 단순한 단어를 넘어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찬미하는 표현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할렐루야”는 기쁨과 감사, 찬양의 순간에 울려 퍼지며,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상의 무리들이 하나님께 “할렐루야”를 외치는 장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멘”은 히브리어로 “진실로” 또는 “그렇게 되기를”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동의, 그리고 순종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말씀을 강조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는 “아멘 아멘”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할렐루야”와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은 단순한 의례적인 행위가 아닌, 신앙의 깊은 표현입니다. “할렐루야”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인정하고 찬양하며, “아멘”을 통해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우리 삶의 근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 거룩함, 정의로움 등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할렐루야”와 “아멘”의 정신을 어떻게 서로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 각자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 “할렐루야”로 찬양을 드리듯, 서로의 장점과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듯, 서로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동의하며 지지하는 태도는 신뢰를 쌓고 갈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할렐루야”와 “아멘”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며, 진심으로 소통하고 공감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빛을 전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신앙적으로 관계적으로 “할렐루야”, “아멘” 풍성한 세상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니라”(고후 1:20).
오늘도 모두 주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당신은 참 잘생긴 (handsome) 사람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피곤합니다. 익숙한 기차와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곤 합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 퇴근길에 오른 대형 버스에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텅 빈 좌석들을 보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때, 문득 버스 기사님께 칭찬 한마디를 건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칭찬에 기사님은 잠시 놀란 듯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죠.
“이렇게 인생을 살면서 저에게 잘생겼다고 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기사님의 말씀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이렇게 물었죠.
“아내분께서도 그런 말씀을 안 해주시나 봐요?”
기사님은 “글쎄요, 그렇지도 않더군요.”라며 웃음 섞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날 저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칭찬과 격려에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상대방에게 큰 힘이 되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따라 멋지네요!”,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덕분에 힘이 나네요!”와 같은 말들은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칭찬과 격려가 넘치는 세상,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나요? 오늘부터 우리 모두 칭찬 요정이 되어 세상에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려 봅시다!
사모님들의 천국 환송예배
지난 (11월 16일 현재) 수요일과 금요일, 두 번에 걸쳐 사모님들의 천국 환송 예배에 참석했습니다.14년 전 아내를 잃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특히 사모님들의 삶과 그들만의 고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긴 수명을 누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교회 내에서 사모님들은 종종 목사님들보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모님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모님들은 목사님의 아내로서 단순히 가정의 난을 돌보는 역할을 넘어, 교회의 사역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많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들은 교회행사, 기도모임, 성도들과의 상담 등에 적극 참여하며, 이를 통해 동료 목사님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이러한 지속적인 책임감은 그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인들 간의 갈등, 재정 문제, 목회자에 대한 비난 등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둘째,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고독과 외로움이 있다.
사모님들은 목회자의 아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자신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사역을 위해 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고, 교인들에게는 항상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속으로 혼자 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한적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감정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우울증이나 외로움 같은 심리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셋째, 자신을 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 많은 이들을 돕고 섬기는 사모님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녕을 우선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체력적인 요구와 심리적 압박이 누적되면서, 결국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사역하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을 우선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종종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뒤로하고, 다른 이들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를 취한다. 따라서 종종 사모들이 상담을 받게 될 때에 상담가가 이런 조언을 하기도한다. ” 이제부터는 사모님 자신을 위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적 부담이 그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사모님들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믿음을 가진 여성으로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러한 기대는 때로는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며, 정작 자신의 신앙과 감정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억누르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심리적 및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모님들은 교회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교회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독, 희생,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사모님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에 감사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위로해야 합니다. 사모님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와 성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사모님들의 삶을 기억하며…
천국 환송 예배에 참석하며 이 세상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가 떠나간 사모님들의 삶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고독과 눈물을 기억합니다. 부디 이제는 아픔과 눈물과 별이 없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사람은 어디에 모이는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달 10월 27일, 수백 만명의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 모인 것은 동생애 결혼을 합법화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필요와 목적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 모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어떤 곳에 모이는 것일까요?
1. 배고픈 사람들은 먹을 곳이 있는데 모인다.
마치 배고픈 사람들이 음식을 찾아 모입니다. 이는 물질이 풍성한 곳에 모인다는 말이기도합니다.예를들면 호주에 사람들이 크게 급증한 이유는 1850년대에 호주에서 금광이 발견된 것입니다.1851년에 뉴사우스웨일스의 배서스트(Bathurst) 근처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호주 전역에 걸친 골드러시를 촉발하였고, 특히 빅토리아 주의 발라랏(Ballarat)과 벤디고(Bendigo) 지역에서 막대한 양의 금이 채굴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호주 경제와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호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 아모스 8장 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는 육신의 양식보다 영혼의 양식이 더욱 중요함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영혼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2.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
추운 겨울날, 아이들이 난로 곁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따뜻함을 찾아 모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사람들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곳, 서로에게 진정한 관심과 위로를 주는 곳, 마치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더 데레사였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삶과 사역은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픈 사람, 고아, 노숙자 등을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에게 존엄성을 회복해주었으며,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충만하면 성도들도 자연스럽게 모이지만, 차갑고 메마른 분위기라면 사람들은 떠나가게 됩니다. 진정한 공동체, 따뜻한 공동체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입니다.
3.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가 있습니다. 관계 문제, 경제적 어려움, 질병 등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모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모이고, 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법원에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문제, 삶의 고통과 좌절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 기도와 찬양이 살아있는 곳, 믿음의 공동체에 모입니다.
4. 희망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희망을 찾기 위해 모입니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빛을 발견하고, 좌절 속에서 용기를 얻고, 고통 속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함께 모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사람들의 간증,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증언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줍니다.
특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