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이틀간의 ‘단절’이 준 교훈
이틀 동안 핸드폰이 고장 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함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편함은 점점 커져갔고, 결국에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깊은 고립감에 휩싸였습니다. 마치 캄캄한 동굴 속에 갇힌 듯, 주변의 모든 소리와 빛이 차단된 느낌이었습니다.
핸드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소통의 창구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의 연락, 중요한 업무 처리,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모든 것이 핸드폰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핸드폰이 꺼진 순간, 나는 이 모든 것들과 단절되었습니다. 마치 혈관이 막힌 듯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단절은 ‘소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루소의 말처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과 소통하고, 성장하면서 친구, 동료, 사회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단절은 육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영적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고 말씀을 통해 소통하며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단절은 이러한 영적인 교류를 방해하고, 영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때때로 단절을 경험해야 할까요? 기계는 고장으로 인해 단절되지만, 인간관계에서의 단절은 다른 이유에서 발생합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의 단절이 ‘과도한 자신의 의로움’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폄하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날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교만입니다.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만’은 마음의 벽을 만들고, 결국에는 소통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소통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은 겸손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이틀간의 핸드폰 고장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소통의 중요성과 겸손의 필요성을 깊이 새기며, 앞으로 나의 삶 속에서 진정한 소통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생각해 볼 일들
1.나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요?
2.나의 소통 방식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3.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4. 겸손한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5. 하나님앞에서 나의 겸손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3)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중력(gravity)이야기
오늘은 중력이야기를 해 볼까합니다. 중력은 간단하게 말하면 ”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 당긴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뉴턴이라는 과학자는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에 대한 법칙을 발견했어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원리입니다. 좀 달리 말하면, ” 끌림의 법칙”으로 말할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질량이 클수록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합니다.
예를 들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가벼운 사람보다 지구에 더 강하게 끌어당집니다. 그래서 무거운 물체일수록 땅에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다시말하면, 지구는 우리보다 훨씬 질량이 크기 때문에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기게 됩니다. 또한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흡수합니다.
2. 거리가 멀수록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친구와 가까이 있을 때는 서로에게 끌리는 느낌이 강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느낌이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주에서 멀리 떨어진 별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됩니다. 이는 사랑에는 거리에 정비례한다고 말할수 있는 이유입니다.
중력의 원리를 삶에 원리에 적용을 할수가 있습니다. 물리학을 통한 삶의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다.
아래 몇가지 예를 들어 볼수가 있습니다.
1. 관계의 중력:
사람들 사이의 ‘끌림’: 마치 질량이 큰 물체가 더 강한 중력을 가지듯, 매력적인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중력’과 같은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집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주 소통하고 가까이 지낼수록 관계는 돈독해지지만, 소홀히 하고 거리를 두면 관계는 점점 약해지게 됩니다. 관계는 항상 가까이에 있어야 합니다.
2. 목표와 중력
‘강력한 목표’는 강한 중력: 뚜렷하고 강력한 목표는 우리를 끌어당기는 강한 중력과 같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기 부여를 제공하고,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목표와의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마치 중력에 이끌려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듯, 꾸준한 노력을 통해 목표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3. 겸손과 중력
‘낮은 자세’: 중력은 모든 물체를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태도입니다. 마치 중력에 순응하듯 겸손한 자세를 유지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더욱 조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더 겸손하고 낮아 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할수 있습니다. 결국 교만한 사람 주위에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겸손은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교만이나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게 해 줍니다.
4. 영적인 중력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 우리의 영혼은 마치 중력에 이끌리듯 하나님께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기도와 묵상, 말씀 공부등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영적인 ‘중력’에 이끌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력의 원리는 우리 삶의 다양한 측면에 적용될 수 있으며, 삶의 지혜를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함으로써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63:8).
I cling to you; your right hand upholds me.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신약 4복음서에 걸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전체 내용으로 분석해 볼때 엄청난 분량의 기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류별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치유 기적: 병든 자를 고치신 기적 (맹인, 귀머거리, 앉은뱅이, 나병환자, 열병, 중풍병자 등)
자연에 대한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기적,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등
죽은 자를 살리신 기적: 나인 성 과부의 아들, 야이로의 딸, 나사로 등
귀신을 쫓아내신 기적: 여러 종류의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
각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적이 얼마나 기록되어 있을까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약 20개
마가복음: 약 18개
누가복음: 약 20개
요한복음: 약 7개
마태복음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기적들을 중심으로 20가지 정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문둥병자를 고치심 (8:1-4)
2.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8:5-13)
3.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 (8:14-15)
4. 저녁에 많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8:16-17)
5. 풍랑을 잔잔하게 하심 (8:23-27)
6. 거라사 지방의 두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8:28-34)
7. 중풍병자를 고치심 (9:1-8)
8.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 (9:20-22)
9.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9:18-26)
10. 두 맹인을 고치심 (9:27-31)
11.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심 (9:32-34)
12. 오병이어의 기적 (14:13-21)
13. 물 위를 걸으심 (14:22-33)
14. 귀신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심 (15:21-28)
15. 맹인들을 고치심 (15:29-31)
16. 사천 명을 먹이심 (15:32-39)
17. 맹인을 고치심 (20:29-34)
18.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21:18-22)
19.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심 (21:12-13)
20.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27-28장)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전파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단순한 이적 행위를 넘어 하나님 나라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적이 하나님의 나라의 관련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질병, 고통, 죽음, 악령 등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마 8:4).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나타냅니다.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신 기적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또한 자연을 다스리시고, 질병과 죽음을 이기시는 기적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 14:12). 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고, 샬롬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전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합니다.
예수님 시대처럼 오늘날 기적이 자주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성경은 기적이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 기적이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믿음을 키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다른 한가지는 현대 사회는 과학의 극도로 발전하고 또한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기적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함 속에서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기적에 대한 갈망이나 민감성이 낮아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적은 일어 납니다. 이 패악한 시대에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영혼의 갈증이 해소되는 주일
1. 목마른 사슴처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메마른 땅을 힘겹게 걷는 사슴을 떠올려 보세요. 목은 타들어가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지만, 생존 본능은 사슴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오직 하나의 목표, ‘물’을 찾아서.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의 갈증’입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세상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우리의 영혼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쁨과 만족을 찾아 방황합니다.
2. 사도행전 1장의 120명의 성도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명의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즉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 목마른 사슴처럼, 성령이라는 생명수를 간절히 갈망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간절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영혼의 참된 만족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세상의 유혹과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세상을 이겨낼 수 없음을,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참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심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오순절 날,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듯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셨고, 그들은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며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3. 성령께서 갈증을 해소하게 하신다:
사도행전 1장의 120명의 성도들처럼, 우리도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능력을 주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채워주시고,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을 쫓아 방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되고, 세상의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의 갈증은 성령님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성령 충만함을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 예배를 통해 모두 영혼의 갈증이 해소되는 복된 주일 되세요.
관성의 법칙 (The law of inertia)
관성의 법칙은 뉴턴의 운동 법칙 중 첫 번째 법칙으로, 물체가 가진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말합니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등속 직선 운동을 합니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체가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처럼, 우리도 익숙한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관성’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따라서 우리들의 습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좋은 습관을 가졌다면 계속적으로 그 습관을 유지하게 됩니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생활 패턴 등은 관성 덕분에 꾸준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한번 좋은 습관이 자리 잡으면, 마치 관성처럼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이와 반면에 만일 나쁜 습관이 한번 자리를 잡게 되면 나쁜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예를 들면 게으름, 미루는 습관,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 등은 관성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러한 나쁜 습관을 벗어나려면 의식적인 노력과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과 관성의 법칙은 흥미로운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외부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계속 정지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때 ‘시작’이라는 외부 힘을 가해야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즉, ‘시작’이라는 행동이 관성을 깨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두려움, 불안감, 막막함 등의 심리적 저항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이러한 심리적 저항은 줄어들고, 오히려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물론, 모든 일이 시작만 하면 쉽게 완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작이라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야말로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임을 관성의 법칙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다시 도전하고 시작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진정한 멋, 겸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겸손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마치 깊은 샘물처럼 맑고 잔잔한 내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하나님, 저는 약합니다. 당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눈부신 성공과 권력을 좇으며 마치 바벨탑을 쌓듯 교만에 빠져 있습니다. SNS 속 화려한 삶에 매료되어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결국 공허함과 불안감을 남길 뿐,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들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조화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마치 햇살처럼 따스하게 주변을 비추며,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항상 귀 기울여 경청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이처럼 겸손은 단순한 미덕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노라” (마가복음 10:45)는 삶의 자세를 실천합니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나눔과 봉사를 통해 세상에 온기를 더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삶은 우리 사회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줍니다.
결국, 가장 멋진 사람은 겸손과 사랑을 바탕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섬기는 삶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습니다. 우리 모두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며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 2: 3-4).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