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리스·터키, 한국 방문기 (6)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2일~11월 1일 (그리스·터키, 10박 12일), 11월 2일~4일 (한국 강진 다산 유배지와 안동 퇴계 유적지, 2박 3일)에 ‘2019 인문학여행’을 26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이에 방문지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한국 일정중의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터키 입국
우리 일행은 오늘 메테오라 방문 후 그리스 북쪽 길로 올림푸스산을 지나 데살로니키, 드라마 인근 카발라에서 중식. 이어 알렉산드로폴리를 거쳐 그리스-터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 완료해 터키에 들어섰다.
그리스 출국과 터키 입국심사는 버스에 대기해 램덤으로 검문을 받아야 하기에 버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줄은 깊었다. 하지만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리스 출국심사를 마칠 즈음에 지금까지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분이 당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인사했다. 참 친절하게 안내했는데 아쉬웠다. 헤어짐은 늘 그런 것 같다.
터키 입국 심사를 마치니 터키 현지 가이드분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장거리로 고생했다며, 하지만 오늘 일정이 예정보다 늦어졌다며 어서 호텔로 가서 쉬자고 길을 재촉했다.
.안작부대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의 대 희생지 겔리볼루 / 갈리폴리
터키에 들어서 가장 먼저 의미있는 장소로 겔리볼루 반도를 만났다.
겔리볼루 반도 (튀: Gelibolu Yarımadası) 또는 갈리폴리 반도는 터키의 유럽 지역과 동트라키아에 위치한 반도로, 서쪽으로는 에게 해, 동쪽으로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접한다. 갈리폴리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도시”를 뜻하는 단어인 “칼리폴리스” (Καλλίπολις, Kallipolis)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갈리폴리 전투 또는 다르다넬스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인 일련의 상륙 전투이다.
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인해 3척의 함대가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이로 인해 총책임자 윈스턴 처칠이 총관직에서 물러나고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도 사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새로 임명된 영국의 I. 해밀턴 장군의 지휘 아래에 4월 2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및 프랑스군 7만 명을 갈리폴리에 상륙시켰다.
하지만 독일 제국의 오토 리만 폰 산더스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휘하 터키군의 공격으로 실패했다. 또 터키군의 병력을 잘못 파악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병사가 8,587명이나 전사하고 1만 9367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연합군 총사상자는 25만 명에 달했으며 터키군도 21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던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도 전사했다.
결국 상륙 작전의 실패로 연합군은 6개월 뒤에 갈리폴리에서 철수했다.
이 전쟁에 참여한 호주-뉴질랜드 군단을 앤잭 군단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ANZAC)이라고 부르는데, 1915년 4월 25일 반도에 상륙했지만 작전을 지휘하던 영국 장군의 무능한 리더십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고, 영국이 결국 그 작전을 실패로 결론지은 1916년에 철수했다. 이후 갈리폴리반도에 상륙한 날을 기념하는 ‘앤잭의 날’은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되었다.

.차낙칼레해협
우리 일행은 겔리볼루를 지나 차낙칼레해협을 페리로 건넜다.
차나칼레 (Çanakkale)는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차나칼레 주의 주도다. 차낙 (Çanak)은 그릇, 칼레 (kale)는 성 (城)이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고 다르다넬스 해협과 접한다. 북쪽에 있는 유럽 지역을 횡단하는 페리가 운행되며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유적이 남아 있다.
터키 서부의 도시 차낙칼레는 부르사에서 서쪽으로 180km, 겔리볼루에서 서남쪽으로 30km 떨어진 해안도시로 인구는 30만 여명, 차낙칼레도의 주도이다. 다르다넬스 해협 최단 지점의 아시아 방면에 자리한 도시로, 1452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세워진 성채에서 기원한다. 1차 대전 시기에는 갈리폴리 전투의 주요 전장이었다. 북쪽 4km 지점 나라 칼레시가 있는 곶은 과거 미시아의 도시 아비도스가 있던 곳이다.
동북쪽 25km 지점에 차나칼레 1915 대교가 공사중이라 하니 개통하면 유럽 방면과의 교통이 활성화될 것이다. 2022년경 개통예정이라고 한다.
차낙칼레의 주요 볼거리로 시내의 해양 군사 박물관 & 치멘리크 성채와 해협 건너편의 킬리트 바히르 성채가 있다. 시가지 동남쪽에 차낙칼레 공항이 자리한다. 차낙칼레 항구에서는 해협 건너편 킬리트바히르와 에게해의 몇 안 되는 터키령 도서인 괵체아다 (임브로스)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이 운항한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갈리폴리 전투가 이곳 갈리폴리반도에서 벌어졌던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터키인들은 여전히 갈리폴리라는 지명을 매우 싫어하는데 이는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워터 디바이너’ (The Water Diviner, 2014년작)에서도 영국군의 휴즈 중령과 터키군의 핫산 소령과의 대화에서 휴즈 중령은 갈리폴리라고 하고, 핫산 소령이 차낙칼레라고 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묘사된다.
북쪽에 있는 유럽 지역을 횡단하는 페리가 운행되며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유적이 남아 있다.

.트로이
트로이아 (Trōia)는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언급되는 지명이다. 호메로스는 Τρωία 외에 이오니아방언 Τρωίη를 더러 쓰기도 하며 혹은 시운 때문에 Τρωες라고 쓰기도 한다. 호메로스는 자주 트로이아를 일리오스 (Ίλιος 혹은 드물게 Ίλιον)라고 부르기도하며 라틴어로는 일리룸 (Ilium)이라고 쓰인다. 영어식 발음을 따서 트로이 (Troy)라고도 하며, 표준어도 트로이로 등재되어 있다.
트로이아 유적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트로이아의 지리적 위치에 관해서 고고학적으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고고학을 취미로 하는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 역시 고고학을 취미로 일삼는 영국의 프랭크 캘버트가 내세운 주장에 따라 1871년 현재의 터키의 북동쪽 헬레스폰토스 해협의 히사를리크 (Hisarlik) 구릉에서 놀라운 유적물을 발굴한 것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의 연대기 작가들은 트로이아 전쟁의 시기를 기원전 12,13,14세기로 다양하게 잡고 있다. 에라스토테네스는 기원전 1184년으로,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1250년으로, 사모스의 두리스는 기원전 1334년으로 잡고 있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아를 트로이아 7기 유적에 비정하고 있다.
일리아스에서 아카이아인들은 그들의 캠프를 (오늘날 카라멘데레스강으로 알려진) 스카만더강 입구에 설치하고 타고온 배는 해변에 올려놓았다. 트로이아 시는 트로이아 전쟁의 전투가 일어난 스카만더강의 평원 건너편에 있는 언덕 위에 세워졌다. 이 고대 도시는 오늘날의 해안선으로부터 5km 떨어진 지점에 있지만 약 3000년 전의 고대 스카만더강 하구는 내륙 멀리 있는 큰 만으로 흘러나갔다. 이 만은 천연 항구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지금은 고대 이래로 계속된 퇴적물로 인하여 막혀버렸다. 최근 지리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고대 트로이아의 해안선이 원래 어떠했는지 재구성해 본 바, 호메로스가 묘사한 트로이아의 지형이 거의 정확했음이 확인되었다.

.아이발릭 / 아이발르크 (Ayvalık)
우리 일행은 오늘 하루동한 장거리를 이동해 늦은 밤에 되어서가 숙소가 위치한 아이발르크 (Ayvalık)에 도착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기에 호텔 석식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12시 전에 숙소에 들 수 있었다.
아이발르크는 터키 발리케시르주의 도시이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에게 해 연안에 있는 해변 도시로 도시 중심부와 아이발리크 군도의 쿤다 섬이 연결되어 있다. 불과 20km 근해에 그리스령 레스보스 섬과 마주하고 있다. 에게해의 주요 관광 도시로, 평상시 인구는 7만이지만 여름 성수기 철이면 인구의 반에 달하는 여행객들이 몰려와 활기가 돈다. 본래 그리스어로 키도니에스 (Κυδωνίες)라 불리던 도시에는 1922년까지 그리스계 기독교도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이들은 추방되고 그리스 본토의 무슬림들로 대체되었다. 다만 후자 집단 역시 대부분 그리스어 화자였음으로 여전히 그리스 언어나 문화적 요소가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출신 인물로 그리스의 작가 엘리아스 베네지스, 화가 포티스 콘토글루 등이 있다.
시내에는 모스크로 전환된 성당을 비롯한 옛 건물이 즐비하며, 연륙교로 이어진 준다 섬에는 크고 작은 호텔이 즐비하다. 항구에는 미틸리니와의 연락선이 운행된다. 철도역은 없으나 발르케시르 코자 세이트 공항과 불과 35km 떨어져 있다. 인근 유적으로 서북쪽 50km 지점의 아소스가 있다. 인근 농지에서는 올리브를 재배하며, 양질의 올리브유를 생산한다. 1998년에는 아이발르크 국제 음악 아카데미가 설립되어 세계 각지의 음악 지망생들이 몰려들게 되었고, 준다 섬에는 하버드 대학교와 터키의 코치 대학교가 합작한 하버드-코치 대학교 오스만 & 튀르크 여름 집중 학교가 세워졌다.
오늘까지 그리스 6일차 일정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그리스 국경을 넘어 터키로 무사히 도착했다. 터키에서 차낙칼레 해협을 페리로 넘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안작연합군이 큰 희생을 입은 갈리폴리 전투지 해안을 볼 수 있었다. 이어 인근에 ‘트로이’로 유명한 아이발릭에 도착해 터키에서의 첫날을 보낸다.
오늘 하룻동안 그리스 메테오라 방문 후 그리스 북쪽 올림푸스산을 지나 데살로니키, 드라마 인근 카발라에서 중식 후 이어 알렉산드로폴리를 거쳐 그리스-터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 완료, 안작부대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의 대 희생지인 겔리볼루를 거쳐 차낙칼레해협을 페리로 건너 아이발릭 숙소에 도착하는 장거리를 이동한 것이다.
아이발릭에 위치한 호텔에 묵으며 오늘을 돌아본다.
새벽녘에 그리스 메테오라 언덕에 올라 수도원공동체들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그들을 높은 바위산 위에 수도원공동체를 이루게 한 그 시대가 불행인지 복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가는 현대 수도사들의 마음도 정진인지 회피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둘러보니 빈 바위산이 몇 곳 있었는데 누군가 “저기 빈바위산에도 수도원을 만들어 보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대 문명의 이기를 맛본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운둔이냐 개방이냐 쉽지않다.
바위산 메떼오라 수도원들과 또 다르게 앞으로 터키의 지하신앙공동체인 데린쿠유에서 느낄 그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