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동물의 권리 : 인문학, 동물을 말하다
피터 싱어, 보리스 시륄니크,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 이숲 / 2014.11.20
인간에게 가장 모순적이고 문제적 존재인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역사, 철학, 행동학, 인류학적 관점에서 파헤친 역작으로, 동물 문제에 혁신적 변화를 불러온 세 명의 세계적 권위자가 대담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동물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낙인을 찍어 동물을 이용한 배경에는 어떤 이념이 작용했는지, 육식의 문제는 무엇이고, 동물은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지, 동물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해야 하고, 동물과 인간의 미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심도 있게 다뤘다. 동물 문제와 관련해 국내에 소개된 단편적 저서들과 달리 ‘동물’이라는 주제 전반을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기획의도가 돋보인다.

○ 목차
서문 | 동물 혁명 5
1부 | 동물해방 _피터 싱어
소개글 | 동물과 해방 15
동물의 권리 보호 19 | 도덕 영역의 확장 22 | 생명의 평등 27 | 동물에 대한 배려 30 | 비폭력의 이상 38 | 차선의 적이 되는 최선 43 | 대형 유인원의 권리 48 | 감정과 이성 53 |윤리적 채식주의 57 | 의식적인 자각 59 | 동물의 도덕적 위상 65 | 동물이 권리를 누리는 세상 70 | 악의 평범성 74 | 선의의 부도덕성 79 | 동물과의 공존 86 | 도덕의 진화 90 | 거래의 볼모 95 | 이상적인 삶 99
2부 | 동물에 대한 배려 _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소개글 | 동물과 철학 103
인간의 본성 107 | 인간의 특성 111 | 아프리카의 눈물 116 | 인간과 다른 감각능력 121 | 벌거벗은 삶의 허약함 127 | 인간의 위기인가, 도덕적 진화인가 131 | 동물의 위상 133 | 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가 138 |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동물 문제 144 | 윤리의 미덕 151 눈물을 흘리는 기계 155 | 동물-상품 160 | 선의와 화해하기 163 | 복종시키고 죽일 권리 167 | 강제수용소에 갇힌 동물과 인간 171 | 변해야 하는 인간중심주의 176 | 동물의 친족관계 181 | 거래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 185 | 너무 높은 곳을 향하다가 추락하다 190 | 동물의 표정 196 | 고통받는 동물의 처지 201
3부 | 동물의 행동 _ 보리스 시륄릭
소개글 | 동물과 행동 207
동물이 인간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211 | 동물행동학이 밝혀낸 사실들 216 | 동물 살해가 범죄가 되는 날 219 | 사회를 개혁하려는 이상가들 224 | 세상을 탐험하는 다른 방식 229 | 교육의 역할 233 | 귀먹은 책임자 238 | 복종이 주는 행복 242 | 문명화한 사회로 진화하는 단계 246 | 인간 같은 동물, 동물 같은 인간 252 | 속죄 의식 256 | 동물 고유의 존엄 261 | 동물을 위한 투쟁 265 | 이익의 논리 269 | 미친 세상에서 동물로 살아가기 273
결론 | 동물의 권리 인간의 의무 281
○ 저자소개 : 피터 싱어, 보리스 시륄니크,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 저자 : 피터 싱어 (Peter Albert David Singer)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 1975) 출간 이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 ‘인간 가치 대학 센터’에서 생명 윤리학 Ira W. DeCamp 교수이자 멜버른 대학교 계관 교수이다.
그는 『실천윤리학 (Practical Ethics)』(1979),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 (The Life You Can Save)』(2009), 『현실 세계에서의 윤리학 (Ethics in the Real World)』(2016) 등을 저술하였다.
2005년 『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명단에 포함시켰으며, 2012년에 오스트레일리아 국가 최고 시민 훈장인 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를 받았다.
– 저자 : 보리스 시륄니크 (Boris Cyrulnik)
신경정신의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 1937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툴롱 대학에서 교육 분과장을 맡고 있다. 툴롱-라 세뉴 병원에서 신경과 의사로 일했으며, 마르세유 의과대학에서 20년간 인간행동학을 가르쳤다. 툴롱-라 세뉴 병원에 임상행동학 학제간 연구그룹을 만들어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6세 때 부모가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가족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그를 인간에 대한 탐색으로 이끌었고, 일반 의학에서 신경정신학, 정신분석학, 비교행동학까지 학문 세계를 확장시켰다. 그는 동물행동학, 언어의 생물학적 기능, 트라우마와 치유에 관한 대중서를 발표해온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원숭이의 기억, 인간의 말』(1983), 『애정의 양식』(1993),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1999), 『미운 오리새끼들』(2001), 『유령의 속삭임』(2003), 『벼랑 끝에서 사랑을 말하다』(2004), 『육체와 영혼』(2006) 등이 있다. 1990년에 『관계』로 ‘미래 과학 상’을 받았으며, 2004년에 의학 연구자들에게 수여하는 ‘장 베르나르 상’을 수상했다.
– 저자 :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
프랑스 출신 철학자로 파리 1대학 석좌교수다. 초기에 마르크스에 관심을 보여 1973년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유대적 모습들』을 출간했다. 1984년에는 디드로의 물질주의 연구에 큰 획을 그은 『디드로 혹은 미망의 물질주의』를 출간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 역사적으로 인간이 동물과 맺어온 관계에 천착해 1998년 『짐승들의 침묵』이라는 역작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인간의 고유성’이라는 주제를 성찰하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부터 ‘동물-기계’의 개념을 제시했던 데카르트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물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늘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간주해온 뿌리 깊은 차별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동물 이용에 관한 윤리 문제에 주목한 그녀는 도널드 M. 브룸과 함께 2006년 『동물의 복지』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동물 문제에 대한 여러 종교의 관점과 세계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입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사유는 페터 슬로텔디즈크나 도나 해러웨이가 대변하는 포스트휴머니즘 경향과 가까우나 그녀가 실제로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은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연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나치의 아우츠비츠 수용소에서 모두 잃은 유대인 집안의 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대 문화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그녀는 쇼아교육위원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짐승들의 침묵』 서문에서는 공장식 축산과 가축의 도살을 나치의 인종말살에 비견하기도 했다.
– 역자 : 유정민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불어과 졸업 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 소르본 대학 미술사 석사과정에서 공부했고,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외교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기구 및 프랑스와 한국 정부기관에서 일했다.

○ 책 속으로
토끼가 인간보다 덜 지적이고 덜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고통을 받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 인간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존속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싱어는 고통 앞에서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삶의 가치가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했기에 이 발언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그는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어떤 존재도 다른 종에 종속될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싱어는 인종주의나성차별주의와 유사한 ‘종차별주의’에 대항해 싸웠다. 그의 급진적이고 폭넓은 사상은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공리주의적 한계와 자가당착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인종개량주의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1부. 동물해방」중에서
영국의 왕립동물잔혹행위방지협회, 미합중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휴메인 소사이어티 중 어느 곳도 공장식 축산이나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실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이득이 된다면 동물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심지어 사료 값을 줄일 수 있다면 동물이 고통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개별적이고, 가학적이고, 아무 이유 없이 자행하는 잔인한 행동만을 비판했죠.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일컫는 정당한 동물보호운동 혹은 동물복지운동이었습니다. 반면에 동물해방운동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 있는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이런 전통과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특히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큰 고통을 주는데, 특히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제품을 시험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합니다. —「1부. 동물해방」중에서
그 밖에도 우리는 몇몇 유럽 국가에서 동물해방운동이 정착되지 않는 역사적 요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가톨릭교회의 영향입니다. 데카르트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였던 피에르 벨은 이 주제에 대해 꽤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그는 데카르트가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악의 존재에 관한 전통 신학의 문제를 해결해줬기 때문이라고 가정했습니다. 만약 신이 선하고 전능한 존재라면 왜 동물이 그토록 고통받게 내버려두느냐는 의문은 당시 가톨릭 철학자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아담과 이브에게서 물려받은 원죄로 고통받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물은 어떻습니까? 동물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면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이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신속하게 해결점을 찾았던 거죠.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면 동물에게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마치 매우 정교한 시계와 같다.” —「1부. 동물해방」중에서
‘인간의 생명만이 성스럽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인간과 동물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인간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동물의 삶보다는 고귀하다는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각능력이 있는 많은 동물이 자기 어미를 알아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유전적 문제로 두뇌 성장이 멈춰서 자기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인간의 삶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춘 동물보다 더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명백한 종차별주의에 바탕을 둔 사고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1부. 동물해방」중에서
인간의 동물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고는 종교에 그 기원이 있지만, 근대 세속적인 학파들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에게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동물에게 자아 인식이 없다는 헛된 주장을 바탕으로 성립한 만큼, 이미 오래전에 폐기됐어야 할 개념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도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신봉하고, ‘자율성’, ‘도덕적 주체’, ‘결과를 위한 수단의 정당화’ 등의 개념을 내세워 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앞서 제가 말했듯이 결국 이 논리가 육류 섭취 등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동물의 권리를 부정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기만이 지난 수세기 지속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부. 동물해방」중에서
모든 지각 있는 생명체의 도덕적 평등을 주장하는 폐지주의자들만이 정도의 차이가 있는 개혁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동물 세계에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만큼, 봉건적인 발상에서가 아니라 동물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 서열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물 세계의 서열과 복잡한 다양성은 종의 진화가 낳은 결과입니다. 어떤 종은 방대한 양의 유전 정보로 구성돼 있고, 또 어떤 종은 대량의 기억 정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과학에 바탕을 둔 이런 인식은 동물들에게 권리를 부여할 때 차별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합니다. —「2부. 동물에 대한 배려」중에서
저는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동물에 대한 의무나 동물에게 부여할 권리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기 위해 동물이 반드시 인간과 같아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인간은 명백히 동물 종의 일부지만, 규칙 제정자로서 문화와 역사의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단지 자연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자율성을 증명하는 변이, 질적 도약, 출현, 이탈이 있는 거죠. —「2부. 동물에 대한 배려」중에서
저는 돌리의 유전자 복제와 광우병 위기를 보면서 정상 범위를 벗어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비로소 명확히 인식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량으로 살처분한 동물들을 장작불로 태우고 있는 모습과 훼손한 동물의 사체 더미를 기중기로 옮겨 한꺼번에 구덩이 속에 쏟아붓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사실로 믿기지 않았죠. 단지 인간이 그 고기를 먹지 않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자행한 그 어처구니없는 대학살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생산효율을 극대화하려고 동물을 극단적인 환경에서 사육하는 방식이 빚어낸 이 같은 손실은 생명을 기술적 조작의 대상으로 삼은 우리 문명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2부. 동물에 대한 배려」중에서
기독교에서 인간의 속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행동은 희생의 본질을 바꿔놓았습니다. 희생은 이제 어떤 거창한 의식이 필요 없는 순수한 내면적 행동이 됐죠. 그리고 바로 이런 변화가 동물의 위상을 사물 수준으로 격하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특징짓는 상징적인 연계에서 동물은 추방했던 겁니다. 기독교는 동물을 불경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가치를 타락시켜서 데카르트주의와 과학기술이 축산학과 공장식 사육이라는 흉악한 절정에 이르게 하는 데 기여한 셈입니다.(…)
기독교는 금기 음식과 관례적인 희생 제물 공양 등을 포함해서 동물과 관련된 규정을 모두 없앴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고, 풀을 베던 소에게 부리망을 씌웠습니다. 기독교는 이제 성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을 이루지 못하게 된 동물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죠.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단절했지만, 탈무드는 성서의 가르침을 보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부. 동물에 대한 배려」중에서
프랑스 법은 ‘지각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동물을 ‘지각이 있는 재화’라고 명기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이 ‘살아 있고, 지각이 있는’ 존재인 동시에 ‘상업적 거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동물은 지각능력이 있지만, 소유물이 될 수 있다’라는 진술도, ‘소유물이 될 수 있지만, 지각능력이 있다’는 진술도 의미상으로 양립 불가능한 모순입니다. 이 세상에서 동물은 온전한 주체로 취급할 수도 없고, 온전한 객체로 취급할 수도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된 겁니다. —「2부. 동물에 대한 배려」중에서
오늘날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살균 처리된 채 셀로판으로 포장돼 팔리고 있는 동물의 다양한 부위는 이전 단계에서 그 동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게 합니다. 즉,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그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고, 어떤 상황에서 죽었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책감도 수치심도 없이 마음 편하게 그 고기를 먹죠. 게다가 육류 소비를 권장하는 광고는 동물을 자연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다가 행복하게 희생되는, 친근하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살생이 용인되고, 우리는 동물을 아무 문제 없이 소비할 수 있게 되죠. —「3부. 동물의 행동」중에서
인간은 동물과 연루되면 자신이 격하되고, 비천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신비한 본질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수세기에 걸쳐 믿어왔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전쟁, 재난 같은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하필 동물에게 신경을 써야 하느냐는 비판 섞인 의문도 제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두 가지 고통은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얼마든지 그둘을 함께 덜어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3부. 동물의 행동」,중에서
“동물보호와 관련한 법 제정을 촉구하고,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인간이 겪는 재난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재난이 가장 약한 자들을 착취하거나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기에 일어난 일이 아닌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절대 묵인할 수 없는 또 다른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 잔인한 무관심을 표방하면서,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모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재난이 아닌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동물의 고통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겪는 재난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재난이 가장 약한 자들을 착취하거나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기에 일어난 일이 아닌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절대 묵인할 수 없는 또 다른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 잔인한 무관심을 표방하면서,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모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재난이 아닌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동물의 고통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결코 인간의 재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똑같은 권리를 위한 고귀한 투쟁이며, 그들을 해치려는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돕기 위한 투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3부. 동물의 행동」중에서
1970년대까지 사람들은 신생아나 유아는 신경 조직이 미성숙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는 것을 단순한 반사작용으로 간주했죠. 사람들은 바로 여기서 동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추리를 적용했던 겁니다. 제가 의대생이었을 때 동물을 마취 없이 해부하도록 배웠고,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상처 봉합이나 작은 외과수술을 할 때 약품 영향으로 증세에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 아예 마취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발육 부진을 앓는 아이가 많았는데 사람들은 아이의 다리를 교정할 때 마취도 없이 다리를 부러뜨리고 깁스를 해줬습니다. 마취 없이 편도선을 잘라내기도 했죠. 우리는 상대적인 지식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반드시 진실이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은 아동과 동물이 식물 같은 상태에 있으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믿었던 겁니다. —「3부. 동물의 행동」중에서

○ 출판사 서평
– 동물,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다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1천만 가구를 넘어섰다. 전체 1700만 가구 중에서 60%를 육박하는 수치다. 동물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르던 개가 귀찮아지면 길에 버리는 사람들, 장난삼아 머리에 쇠못을 박은 고양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들, 실험실에서 흰쥐에게 발암 물질을 주사하는 사람들, 돌림병에 걸린 수백 마리의 가축을 산 채로 매장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까?
동물에 대한 인간의 권력 남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동물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의무는 점점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만약 동물이 신발이나 모자처럼 마음대로 샀다가 버려도 되는 사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나름의 권리가 있는 존재라고 해도 지금처럼 동물에 대한 착취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동물학대를 형법으로 다스리면서도, 민법은 동물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이 모순된 현실에서 과연 ‘동물의 권리’라는 것이 실현 가능할까?
– 인간은 동물에게 왜 그랬을까?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이래 동물은 인간과 친족관계에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인간은 침팬지와 99%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고, 염색체가 XY인 남성과 XX인 여성 사이의 거리보다는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거리가 더 가깝지만, 예부터 인간에게 동물은 자아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도구나 재료 같은 ‘사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인간은 오랜 세월 동물의 이런 위상에 대해 침묵했다. 그저 그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 살과 젖을 먹고, 저잣거리에서 싸움을 붙여 구경하고, 정력에 좋다는 산짐승 들짐승 사냥하는 재미에 빠져 여러 세기를 지냈던 것이다.
인간이 동물의 현실에 눈을 감고, 동물의 운명에 입을 다문 배경에는 동물을 악마나 어리석음의 화신으로 보았던 중세 기독교회의 상상력이 있었고,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와 같다고 했던 ‘과학자’ 데카르트의 이성주의가 있었으며, 도덕적 수동자인 동물에게는 ‘의무도 없기에 권리도 없다’고 선언한 칸트의 도덕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엄청난 규모의 축산업과 육류 산업의 이해관계가 막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 인간이 몰랐던 동물의 세계
그러나 얼마 전부터 획기적인 직관에 이끌린 몇몇 연구자가 동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선구자’, ‘반(反)순응주의자’, ‘선동자’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주장의 이념적 성격 때문에 격렬한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이 발견한 동물의 세계는 놀라웠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싱어나 보리스 시륄닉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은 동물에게도 자아가 있고, 언어능력이 있으며, 도구를 사용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음을 밝혀냈다. 고깃덩어리, 노동의 도구, 기껏해야 작동 인형 정도로 간주했던 동물은 실제로 고통을 느끼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유머를 구사하고, 속임수를 쓰고, 시치미를 떼고, 토라지고, 미치기도 하며, 화를 내고, 우정을 나누고, 심지어 곤경에 빠진 동류를 헌신적으로 구하는 도덕 감각이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은 오늘날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동물이 제기하고 인간이 풀어야 할 문제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언젠가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오늘날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시륄닉 역시 “동물들이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해도 그들 나름대로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날, 우리는 사람들을 웃기게 하려고 동물들을 동물원 우리에 가두고 모욕했던 우리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보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유치하고 나약하고 감상적인’ 부류로 치부되고, 육식을 거부해 채식하는 사람들을 거북해하는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마치 동물과 공감하면 ‘만물의 영장’ 인간의 권위가 추락하고, 인간의 ‘우월성과 고유성’이 훼손된다는 듯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해묵은 반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묻는다. 우리는 왜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짓을 동물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무슨 이유로 우리는 동물에게 호의적이었던 과거의 몇몇 사상적 전통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한 걸까? 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성과 언어가 없는 동물은 단지 위대한 인간에게 헌신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는 어리석은 이념을 주입하고 있을까? 심지어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에서 다정하게 뛰어놀고 있는 소와 돼지와 닭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비좁은 우리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끝내 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믿었던 많은 특성을 동물에게서도 발견한 지금, 이제 동물에게도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구 곳곳에 최소한의 인권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동물에게 그런 권리를 부여해야 할까? 동물이 권리를 부여받는다고 해도 인간이 부여한 권리를 과연 인간에게 행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권리는 온전한 것일까? 그 권리는 누가 보장하고 관리할 것이며 어떻게 행사하게 할 것인가?
– 동물의 위상 대한 서로 다른 생각
동물에게 돌려줘야 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예를 들어 동물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다. 지난 세기 노예제 폐지를 위해 투쟁했던 폐지주의자들과 같은 이념적 맥락에서 그들은 단지 동물의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동물의 종속 상태를 연장하고 확고히 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채식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주의를 독려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나은 환경의 동물 사육장이 아니라 텅 빈 사육장’이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동물의 권리는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고 평등한 권리다. 싱어는 동물이 인간과 같은 종에 속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을 거부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삶이 신성하기에 동물의 삶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인간에게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윈주의자인 퐁트네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지각이 있는 모든 존재를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똑같이 다룰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면 인간에게는 ‘언어능력’이라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륄닉은 오늘날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동물의 조건을 강조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을 격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는 결국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나 공동의 선조가 있다는 사실보다는 동물의 정신세계에 대한 점진적인 발견을 통해 우리가 동물의 권리를 자각하게 되리라고 예견했다. 왜냐면 과학을 통해 우리가 동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동물에 대한 공감이 확대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감정적으로 제어돼 더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행동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동물의 권리
그동안 동물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나자, 많은 사람이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의식은 진보했고, 시민은 동물에 관한 법을 개정하도록 권력 기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제 남은 과제가 인간을 기준으로 동물을 파악하기보다는 동물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기준으로 그들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만약 지각 있는 존재로 정의된 동물이 권리가 있는 도덕적 주체로 간주된다면, 이를 어떤 동물에게까지 확장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싱어는 결국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모든 윤리적 입장과 도덕적 결정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똑같이 중요하게 다뤄야 하고, 준수되고 있는 모든 권리에 관한 이론이 이 논리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퐁트네는 동물의 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통의 기준과 의식이나 지능의 기준을 중시하는 공리주의 윤리적 주장을 따르기보다는 서열에 따라 차별적으로 종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인권의 확장과는 다른 문제이기에 새와 고래에게 같은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동물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 전문가의 의견은 일치한다. 즉, 동물을 도덕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어린이나 장애인, 노약자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싱어는 동물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미래가 위대한 인간해방운동과 같은 맥락에 있으며, 동물의 생존 조건은 틀림없이 개선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