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4월 13일, 프랑스의 철학자•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Jacques-Marie-Émile Lacan, 1901 ~ 1981) 출생
자크마리에밀 라캉 (프: Jacques-Marie-Émile Lacan, 1901년 4월 13일 ~ 1981년 9월 9일)은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자크 라캉 (Jacques Lacan)의 철학, 라캉주의라고도 한다.
라캉은 정신과 의사에서 시작하여 철학 및 정신분석학계에 손을 뻗친 사람으로, 그 스승격인 프로이트를 방법론적으로 채용, 보충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며, 다시 해석함으로서 프로이트를 계승하고 있다.그의 강좌를 받아 적은 세미나 시리즈에선 프로이트로의 귀환이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욕망,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지표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는 것이다. 욕망이란 틀 속에 억눌린 인간의 내면세계를 해부한다고 하여 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 자크 라캉 (Jacques-Marie-Émile Lacan)
.이름: 자크마리에밀 라캉
.출생: 1901년 4월 13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81년 9월 9일, 프랑스 파리
.시대: 20세기 철학 / 지역: 서양철학
.학파: 포스트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연구분야: 정신분석학
.주요업적: 거울 단계, 실재계, 상징계, 상상계
프랑스 정신 분석 학자. 정신 분석과 철학, 문학 이론 형성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파리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자격 취득 후 1932년부터 평생을 정신분석가로 활동했다. 젊었을 때부터 초현실주의자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했으며, 파리에서 열린 코제브의 헤겔 강독 모임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최초 공개 낭독회에 참석하는 등 정신분석 외에도 20세기의 다양한 지적 흐름과 교류를 계속했다.
국제정신분석학회(IPA)에서의 데뷔는 1936년 마리엔바트에서 열린 제13차 국제정신분석 총회에서 ‘거울 단계’를 발표한 것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발표가 어니스트 존스에 의해 중단된 것은 그의 이후 활동과 관련해서도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이후 1951년부터 매주 사적으로 열리던 세미나가 1953년부터 생탄 병원에서의 공개적인 세미나로 전환되면서 그 뒤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어진 긴 ‘세미나’가 시작된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시기 라캉의 입장은 당시 IPA를 연상시키는 소피스트들에 맞서 제자들에게 산파술을 가르치던 소크라테스의 입장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해는 분석 실천 방법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로 라캉이 동료들과 함께 파리정신분석학회(SPP)를 떠나 프랑스정신분석학회(SFP)를 결성한 해이며, 1960년대는 IPA 내에서의 SFP 지위에 관한 협상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결국 라캉의 ‘대파문’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러한 파문과 무관하게 라캉은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후원하에 생탄 병원을 떠나 고등사범학교라는 프랑스 지성계의 최고 기관에 새로운 ‘기지’를 마련하고, 1959~1960년의 세미나인 『정신분석의 윤리』에서 ‘우리 시대의 윤리’를 욕망과 관련해 새롭게 탐색하기 시작한다.

○ 생애 및 활동
1901년 4월 13일, 프랑스의 파리 시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으로 철학을 접하였고, 이후 의학과 정신병리학을 배웠다.
1932년에 의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화가, 작가들의 무의식에 대한 탐구와 표출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언어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일찍이 관심을 보였다.
1936년 파리 정신분석학회에 가입하였다. 그는 그의 ‘프로이트로의 회귀’라는 명분에 의한 기존 정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인하여 다른 정신분석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제정신분석학회 (IPA)에서의 데뷔는 1936년 마리엔바트에서 열린 제13차 국제정신분석 총회에서 ‘거울 단계’를 발표한 것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발표가 어니스트 존스에 의해 중단된 것은 그의 이후 활동과 관련해서도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1953년 그는 파리정신분석학회 (프: Société Parisienne de Psychoanalyse)의 회장이 되었으나, 6개월 만에 교육 방식으로 인한 갈등으로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파리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여 프랑스정신분석학회 (프: Société Française de Psychanalyse)를 조직하였다.
같은해 그는 파리 대학교에서 세미나를 시작하였는데 이 세미나는 정신분석학자들 뿐만 아니라 장 이폴리트와 폴 리쾨르와 같은 철학자들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후 1951년부터 매주 사적으로 열리던 세미나가 1953년부터 생탄 병원에서의 공개적인 세미나로 전환되면서 그 뒤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어진 긴 ‘세미나’가 시작된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시기 라캉의 입장은 당시 IPA를 연상시키는 소피스트들에 맞서 제자들에게 산파술을 가르치던 소크라테스의 입장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해는 분석 실천 방법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로 라캉이 동료들과 함께 파리정신분석학회(SPP)를 떠나 프랑스정신분석학회(SFP)를 결성한 해이며, 1960년대는 IPA 내에서의 SFP 지위에 관한 협상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결국 라캉의 ‘대파문’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러한 파문과 무관하게 라캉은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후원하에 생탄 병원을 떠나 고등사범학교라는 프랑스 지성계의 최고 기관에 새로운 ‘기지’를 마련하고, 1959~1960년의 세미나인 『정신분석의 윤리』에서 ‘우리 시대의 윤리’를 욕망과 관련해 새롭게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 세미나는 1979년까지 계속되었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비정통적인 분석법을 사용하였고 치료가 정신분석학의 목표라는 생각을 거부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많은 동료학자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1963년 국제정신분석학회가 프랑스정신분석학회의 가입을 위해서 학회에서 라캉을 교육 분석가 목록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자 그는 프랑스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였다.
1964년 파리프로이트학회를 창설하였는데, 이 단체는 1980년 라캉 스스로에 의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충분히 추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산되었다.
1966년 논문집 Écrits의 간행으로 유명해져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1981년 9월 9일, 프랑스 파리 시에서 사망하였다.

○ 라캉철학의 근본 개념
라캉철학은 그 논란성을 제쳐두고서라도 굉장히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이는 본격적인 철학적 저술 중에 그렇지 않은 것들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의 라캉주의는 라캉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없이 2차, 3차 문헌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근본 개념들을 서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실 라캉이 까다로운 것은 그 사람이 몰고 다녔던 스캔들을 감안하면서 그 저작들을 판단하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자기가 앞장 서서 연구소를 만들었다가 해체를 시켜버리지 않나 당대의 유명 인사와 식사를 하면서 그들을 당황시킬만한 언동을 보이질 않나 기존까지 지켜왔던 룰을 자의적으로 바꾸질 않나, 그 기행들로 인해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것은 그런 것들도 함께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상의 시발점이 되는 개인 중에 자기가 살아온 방식과 관계가 없는 사상을 펼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를 신경쓰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라캉의 경우에는 그게 다른 비교적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사상가들의 그것보다는 확실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발기 기관은 ‘향유’의 자리를 상징하게 됩니다. 그 자체로서도 아니고, 이미지의 형태로서도 아니고, 바라는 이미지에 결여된 부분으로서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발기 기관은 위에서 형성된 의미 작용의 (-1)^(1/2)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표 (-1)의 결여가 가지는 기능에 대한 진술의 계수만큼 발기 기관이 복원시키는 ‘향유’의 (-1)^(1/2)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말이 어려워보이지만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발기라 함은 여기서 상식적인 단어인 음경을 말하지는 않는다. 정신분석적 용어로 팔루스,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 보면 된다.
즉 첫 문장은, ‘이렇게 해서 우리의 욕망의 대상은, 향유, 즉 주이상스를 상징해서 우리의 정신에 놓이게 됩니다.’
다음 문장은, ‘팔루스, 즉 발기는 그 자체로서도 아니고, 이미지의 형태도 아니고, 바라는 이미지의 결여된 부분으로서 말입니다.’
여기서 라캉은 비어있는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팔루스, 즉 욕망을 탄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결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세 번째 문장은, ‘그렇기 때문에 욕망하고자 하는 대상은 위의 형성된 의미를 무효화하면서 미끄러지는에 해당하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기표가 가지는 기능에 대한 진술의 정도만큼 욕망의 대상이 상징하고 유인하는 향유,(원초적 즐거움, 죽음 충동과 밀접한 욕망의 원인)에 해당합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말이 굉장히 어렵고 난해해보이지만, 이는 기표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를 좋아하는 라캉식 서술 때문에 그렇다. 간략히 정리하면 우리의 욕망은 상상계라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탈피해 불완전하고 결여로 가득한 상징계로 내쫓기다시피 한다. 그러나 상징계로 우리를 유인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의 환상을 완전히 만족시켜줄 수 있다는 팔루스, 즉 욕망의 대상 때문이다.
욕망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차일 수도 , 여자일 수도, 직업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대상은 사람으로써 하여금 그것을 소유한다면 완벽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즉 팔루스는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님에 우리는 온갖 환상을 그려 넣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며, 그 환상이 충족되는 꿈, 몽상, 소망, 염원에서 우리는 향유를 그려낸다. 하지만 이 향유는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완벽한 충족도 아닌, 즉 어중간한, 결여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벽도 아닌 이 어중간한 것이 바로 상징계이며, 정신분석의 목표는 바로 이 어중간함을 견디고 나아가는, 신경증 너머의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라캉의 사상은 세미나에 따라 나뉘는데 초기 세미나인 1에서 10에서는 주로 신경증자들이 상징계에 적응하고자 하는데 있어 어떻게 정신분석이 치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들이다. 후기 세미나인 11에서 20은 라캉의 중점이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이동하며, 단순히 상징계에 안착시키는 것만이 정신분석의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와해하고 무마시키는 실재계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이후 21에서 23 세미나에서는 기존의 상징계로의 회귀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넘어 자신만의 상징계를 창조하는 (조이스의 생톰) 기제에 대한 일련의 연구 결과들이다.
또한 위의 서술에서 어렵지 않다, 고 하였지만 바로 그 어려움이 바로 라캉이 경계했던 ‘기표와 기의가 영원히 일치해 더 이상의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 즉 0, 죽음 자체’이다. 라캉의 사유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진동하며, 심지어는 과거의 확정적이라고 여겼던 의미들도 파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정된 의미와 죽은 의미 하나로 물처럼 흐르는 사유를 재단하고 굳게 해 안정성을 느끼는 경향이 많다. 라캉에 대한 주된 비판들이 모든 세미나들이 동일한 흐름에서 지속된다는 착각 아래 거울 단계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 “성관계는 없다”
“성관계는 없다”라는 문장은 라캉 욕망 이론의 핵심을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표현한다. 리비도 등의 개념을 통해 욕망을 생물학적 방향으로 환원시키려 한 프로이트와 라캉이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서기도 하는데, 라캉이 이 문장을 통해 말하려 하는 것은 “남녀는 모두 고자다”(…)는 게 아니라 “남녀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안정적인 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관계를 넘어, “존재와 세계는 절대 안정적인 합일을 이룰 수 없다”는 라캉의 철학적 맥락은 이후의 논의에서도 이어진다.
라캉이 말한 “성관계는 없다”는 것은 이상적인 그 자체로서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그 내용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렇게 벌어진 일과 관계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관계를 하면서 개인들은 가능한 쾌락의 형식에 자기 자신을 집어 넣게 된다. 이를 쾌락원칙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을 타자에 종속된 주체로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타자에 종속된 개인들은 가능한 쾌락의 바깥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존재하려고 하는데, 이를 정신분석학의 성욕에 대한 원리에 맞춰 성관계=존재로 보아, 존재는 개인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라고 본 것.
그래서 성관계는 없다는 것은 (개인이 원하는 방면으로 인식이 가능한)존재는 없다고 풀어 쓸 수 있다. 사실 이 발상 자체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닌데, 대표적으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이라는 개념을 통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그런 건 없다고 라캉과 비슷한 시기에 이야기한 바 있다.
이 문장에 한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이 성관계를 할 때의 상대방은 물리적으로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이 상정한 객체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성행위를 하며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거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체위나 성적 지향 등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라캉은 이 예들에서 착안하여 무의식 중에라도 인간은 성행위를 하며 상상적 쾌락을 가미 (사실상 상상적 쾌락 위주로)하여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간략하게 말하면 성관계는 완벽한 충족이자 만족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그것에서 도망친다. 완벽한 만족이란 곧 죽음이며, 욕망의 소멸이자 실재계=무, 0과의 합일이기 때문.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성관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만족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관계는 상상적이다. 완벽한 무언가를 추구하는데, 실은 이것은 해골(권택영 저서의 라캉의 자연과 인간 참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아무 것도 아닌 해골에서 인간의 기표는 시작되며, 그러므로 인간은 해골을 해골 아닌 아름다움으로 보아야 한다. 완벽은 곧 완벽한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면 아름다움은 해골로 변질된다. 즉 죽음이다. 완벽한 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타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기를 인간은 원하지도 않고, 만족하는 순간 인간이 그 만족을 택할지도 의문이다 (택한다면 스스로 죽음으로써, 죽음 충동을 완성하려는 것이라 하겠다).
- 주이상스
라캉철학의 핵심 개념은 그래서 이 총체적인 흐름을 넘어서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뭐든 그렇게 총체적인 흐름으로 환원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 주이상스 (jouissance)는 프랑스어로 즐긴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 enjoyment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명사인데, 라캉에게 주이상스는 정해져 있는 쾌락을 넘어서는 것을 통해 찾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이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주체화의 욕동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체가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순간을 통해 찾아오게 된다. 이를 라캉은 환상의 횡단, 혹은 환상을 가로지르기라고 불렀는데 이를 통해 정해져 있는 쾌락원칙을 따르고 있던 개인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단하게 되고, 이를 통해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기를 선택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에 종속되기를 거부했을 때, 기표에 종속 되어 동물과 같은 순수한 쾌락이 불가능해진 인간에게 가능한 일말의 쾌락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캉은 바로 이 쾌락을 선택하는 것을 윤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수 있는 이상적인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정신분석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두산백과의 정의를 참고하면, 주이상스는 역설적으로 완전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주이상스를 가리키는 기의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동시에 라캉 또한 완전하게 해석됨으로써 기표와 기의의 완전한 결합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주이상스에 대한 해석들은 라캉의 세미나들, 특히 세미나 23과는 무관하고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가깝다.
좀 더 정확하게는 라캉은, 상상계와 상징계가 아닌 실재계에 주목하였으며, 자신의 실재에 도달한 자만이 새로운 자신만의 상징계에 도달함으로써 현실을 재구성하고 현실을 변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김서영 교수의 세미나 23에 대한 논문 참조).
위의 설명과는 반대로, 우리는 주이상스를 어느 정도 억제해야 한다. 여기서 주이상스란 다름 아닌 죽음충동에의 합일에의 충동을 의미한다. 자기를 파괴하거나 엉망으로 만드는 것들도 모두 주이상스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증상은 곧 죽음을 지연함으로써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삶충동인 셈이다. 반대로 주이상스는 이를 가속화시키고 더 큰 짜릿함-고통을 느껴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것, 즉 상징계에서 벗어나서라도 죽음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근원적인 충동을 말한다.
- 증세
역사적 흐름 앞에서 개인은 무언가를 하려고 선택할 수 없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그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삶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믿게 된다. 그렇게 한계가 정해져 있으니 어떤 것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한계 안에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한계 안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라캉은 이것이 인간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 믿음을 증세라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과정이란 이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고 좌절했지만 라캉은 그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발견한 정신분석이라는 방법론의 정수라고 보았다.
이를 넘어가는 최소한의 쾌락으로서의 주이상스를 설정한 것은 그렇다고 한들 다시 그것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라캉철학은 아도르노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데, 아도르노는 그렇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라캉은 그렇게 살게 된 과정을 주체적인 차원에서 다시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인 결정이라고 보았던 것.
이 지점에 라캉철학이 지니는 윤리학적 의의가 있다. 정신분석을 통해 분석을 받는 개인, 분석주체가 자기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선택한 삶을 긍정하고 그 삶이 던지는 문제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이것과 마주할 수 있도록 분석가가 지속적으로 분석주체가 만들어낸 증세라는 환상과 마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환상을 가로질러야 한다. 여기서 가로지른다 함은, 본래부터 환상이라 함은 유아기때부터 부모의 욕망 (혹은 세계의 욕망)을 이해할 수 없는 분석주체가 그것들을 설명하고 하나로 엮기 위한 사유들, 관점들인데, 신경증자라 함은 바로 이 환상이 자기파괴-혹은 신경증적으로 자기를 파괴하거나 조화되지 못해서 오는 고통들이다. 가로지른다는 의미는 곧 자신의 환상을 파기하고, 또 환상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며, 또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부모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나의 해석에 불과하며, 또 부모 또한 자녀인 나에게 무엇을 욕망하는지 본인조차도 모르는)는 진실에 직면함으로써, 공백 앞에 서고 동시에 그 공백이 오는 근원적인 공허함을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캉에 의하면 사실이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들의 다양한 판본들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 그 판본을 창조하고 그것을 책임짐으로써 (즉 그것이 거짓이고 환상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살겠다-라고 결심함으로써)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신경증에서 탈피해 자신만의 증상 (즉 생톰)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한계
라캉은 정신분석학, 철학 모두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라캉의 지나친 교조화 때문에 영향력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남미에서는 라캉주의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상한 종교 집단처럼 되어버린 식이다.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포스트 구조주의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다. 구조주의가 대세였을 시절, 라캉은 미셸 푸코, 레비스트로스, 바르트와 함께 구조주의의 거두로써 구조주의를 비판하며, 포스트 구조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정신분석은 정신분석 따로, 구조주의를 비롯한 철학적 사조는 그것대로 따로 움직이고 있는 데에다, 구조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은 너무나 평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라캉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프래그머티즘 철학에는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에 북미의 경향을 따라가는 한국의 철학에도 비교적 협소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미국의 유수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 편집한 주요 현대 철학 논문들을 엮은 핸드북에서 라캉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애초에 철학과 대립중인 정신분석학은 프래그머티즘 철학 조류에서는 언급 될 가치조차 없는 것. 굳이 라캉의 연구주제를 미국에서 현재 분류하고 있는 분류법에 맞춰 분류하자면 심리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현대 심리철학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물리주의 논쟁에 라캉이 기여한 바는 전혀 없다. 물론 라깡이 살았던 시기가 시기인만큼 현대 논쟁에서 비껴서 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김재권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70년대이며 물리주의 논쟁은 이미 그 전부터 활발했다.
이 같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나 철학계에서는 잘만 쓰이는데, 문학의 특징상 상상이나 실제 등과도 관련된 상징체계 (언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계에서도 상징계나 초자아나 다 도덕적인 행동들을 설명하기 적확하다고 일부 계파에서는 생각하고 있다. 특히 욕망의 의미를 셋으로 나눈 점 등에서 철학적 의의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당장 정신분석학과 철학이 대립하게 된 직접적 계기가 라깡철학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비평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한번쯤은 접하게 될 인물이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자이며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계에서 라캉의 정신분석을 일방적으로 끌어들어 비판하고 물어뜯었기에 부당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라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철학의 방향성에 대한 오해가 있다. 라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철학이, 라캉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말해서 과학도 아니고 학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도 여러 가지 있지만 일종의 학문 자체에 대한 방법론을 연구하는 측면도 강한다. 이런 관점에 입각해서 라캉의 정신분석, 즉 신경증자나 정신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유한 방법론이나 고찰들에 대해서 도대체 그것의 과학적인 실제적 근거나 논리학적인 근거가 뭐냐고 비판하는 것이다. 라캉을 싫어하는 철학자들이, 라캉의 철학을, 라캉을 싫어하는 철학자들의 상상계에 함부로 적용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북미 주류 심리철학만 해도 물리주의가 주된 주제이고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인간의 몸과 영혼과 의식의 논리적인 관계, 논리적인 작용 기전 등을 과학적인 근거와 물리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탐구하고 그에 관한 경우의 수와 가능성을 밝혀 보는 철학인데 상상계 같은 소리하면 그게 문화 비평이지 철학이거나 과학이냐는 것이 입장이다. 그런 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정신분석학은 애초에 철학 혹은 과학적 자질을 결여하고 있으니 철학이니 학문이니 하는 소리를 갖다붙이지 말고 그냥 문화 비평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주된 입장이다. 물론 아닌 철학자들도 있다.
물론 라깡이 자신의 입장을 정신분석학 안쪽이라고 명확히 밝히기는 했다. 이에 관해 김서영 교수의 논문을 인용. “라깡의 글들은 대게 정신분석의 임상과정에 연결되어 있으며 심지어 그는 ‘햄릿’과 같은 문학 작품의 분석에 있어서도 히스테리, 또는 정신 강박 등의 임상적 소재를 다루고 있으므로 앞에서 거론된 라깡의 삼계를 임상과 무관한 사회학적 또는 정치적 맥락에서 다루는 것은 라깡 자신의 정신분석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임을 밝혀둔다.” — 김영하론을 위하여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 주요 업적
- 거울 단계 이론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은 1936년 마리앙바드에서의 회의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비록 이 이론은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이론의 재구성이기는 하였으나 주체의 상태에 대한 철학적 반영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라캉에 따르면 자아는 이상적 단일성, 완결성을 표하면서 자아 자신은 아닌, 이미지와의 동일시에 의한 결과이다. 이러한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은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거울 단계 이론’은 ego가 인간의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유아기 시기 때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유아가 자신이 비추는 거울을 통해서 그 환영과 자신을 동일시 하면서 ego가 형성된다는 이론으로, 이러한 ego는 진정한 자아가 아닌 ‘오인의 자아’로써, 인간은 안정적 중심을 결여한 주체로 나타나 완전성의 이미지를 추구하며 그것들과 동일시 한다고 본다. 이러한 ‘거울 단계 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주체’의 불완전성을 제시한다. 라캉은 ‘주체’란 문화적 힘 (언어와 욕망)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산물로 인식하며, 인간의 욕망이 타자와의 상호주관적 관계를 중재하는 언어적이고 상징적인 체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즉 라캉은 ‘거울 단계 이론’을 통해서 ‘주체’가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 혹은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야만 하며, 곧 인간의 실질적 ‘주체’는 억압되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인간의 ‘주체’가 상징적 영역으로 들어갈 때, ‘주체’는 특정한 정체성을 지닌 독립된 ‘나’로서 언어속의 한 ‘기표’를 차지하지만, 동시에 ‘기의’로의 접근이 금지당한다. 즉 인간의 ‘주체’는 분할된 존재로써, 상징적 영역의 주체는 구조주의 영역에서 제시되는 ‘기표’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기의’는 결여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다. 라캉은 이러한 구조주의 언어적인 설명을 통해서 ‘주체’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결합할 수 없으며, ‘주체’는 ‘본질적 욕망’을 실현할 도구를 찾아 동일시하지만, 결합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는 ‘욕망의 환유적 운동’을 제시했다.
-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세 가지 계를 설정한다.
먼저 ‘상상계’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인의 주체적인 영역을 가리킨다. 인식이 없으면 어떠한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두 상상계의 인식을 통해 개인에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계는 인간 개인에게 가장 근본적인 영역이다.
다음으로, 상상계의 반대에 ‘상징계’가 서있다. 상징계는 말그대로 현실의 영역이다. 라캉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사회의 의미화를 벗어나려는 개인의 투쟁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라캉은 상상계가 상징계에 처음 포섭되는 과정은 상징계의 일방적인 우위로 이루어지며, 이후에도 상징계는 상상계보다 앞서 상상계의 의미를 규정지으며 절대적인 위치에 남아있는 듯 보인다. 다른 한편, 라캉에 있어 ‘욕망’이라는 개념도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상징계가 상상계를 포섭하는 과정은 상징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상계가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위치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상상계는 ‘결여’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상상계는 자신과 세계의 안정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을 꿈꾸게 되고, 이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첨언하자면 라캉에 있어 ‘욕구’와 ‘욕망’은 아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욕구는 말하자면 상징화에 앞선 지점에 있고, 욕망은 상징화 이후에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밥을 먹고 싶다”처럼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것은 욕구라 할 수 있고, “누구누구와 같이 즐겁게 밥을 먹고 싶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텐데..”는 것은 욕망이라는 것. 욕망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실재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실재계는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로 돌아가는 지점을 가리킨다. 상징계가 말할 수 없는 영역을 통해 상상계는 거꾸로 스스로 절대적인 위치라고 말하는 상징계를 ‘의심’하게 된다.
문제는 이 개념의 정확한 위치인데, 이 개념이 상상계 (개인)과 상징계 (사회)를 모두 넘어선 지점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슬라보예 지젝등은 이 개념이 상징계와 상상계 사이의 지점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즉, 상징계의 의미화 작용이 실패하지만 상상계가 인식할 수 있는 장소에 실재계가 서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앞서 욕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바 있는데, 욕망이 향하지만 상징계가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지점, 바로 그곳에 실재계가 위치한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헤겔주의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겠는데, 김서영 교수의 일반인을 위한 정의를 참고하면, ‘상상계는 그냥 ‘척’하는 거예요. “이미지에 살고 이미지에 죽는 것“ 강박적인것 히스테리 적인것 둘 다 약한 거거든요. 그게 다 상상계적인 전략이에요. 상상계는 약한 거, 상징계는 이 현실 자체를 상징계라고 불러요.’
추가적으로 라캉은 상징계를 약화시키고 헐거워진 상상계와 실재계를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조이스의 생톰’ 고리를 세미나 23에서 말한다.
- 거울단계와 그 비판
라캉은 상상계 등의 근본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도둑맞은 편지의 비유 등 많은 예시를 덧붙여 놓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논란이 되는 비유가 바로 ‘거울단계’라는 개념이다.
“거울 속 이미지를 마주하고 있는 아이는 아직 신체적으로 미숙하여 자기 몸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는데 거울 속 이미지는 완벽함과 통일된 상으로 다가오고 아이는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라는 것을 지각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대면하면서 아이는 외부 공간 속에 가시화되는 자신의 형상을 감각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커다란 환희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이는 완벽한 모습으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형상에 도취되는데 이는 나르시시즘의 최초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환호하지만 아이가 이미지를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거울단계는 실제 몸의 감각과 그것에 대해 투영하는 이미지의 괴리가 은폐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시기 아이는 아직 운동신경과 몸의 운동 조절 능력이 미숙하여 실제 몸의 느낌은 통일되지 못함에 반하여 이미지는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 (김석, 『에크리』, 2006)
‘거울단계’의 가장 근본적인 맥락은 아직 상상계적 작용에만 자신을 맡기는 아이가 처음으로 상징계가 제공해주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있다. 그렇지만 상징계의 이미지는 유동적인 것이고, 상상계는 그 앞에서 끊임없이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은 이후의 라캉의 논의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라캉을 접해보려 한다면’거울단계’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울단계에 대한 논란
라캉이 스스로 자신의 철학을 “과학과 철학 사이”라고 말한 바, 라캉은 언제나 수많은 과학도들과 철학도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되어왔었다. ‘거울단계’라는 개념 역시 논란들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 항목에서는 과학도들과 라캉주의자들이 대립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선들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로 한다.
과학도들은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자각하고, 또 소외된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한다. 한편, 라캉주의자들은 ‘거울개념’을 구성하는 상상계와 상징계라는 개념이 이미 과학의 방법론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등 이에 대한 반박을 시도한다. 라캉에 대해 과학과 철학이 대립하는 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에 대한 논란에서,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이 등장한 것은 1936년으로, 이 시기까지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자기를 인식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특질이라는 게 과학계 일반의 인식이었다. 인간 이외의 동물도 거울상을 보고 자기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1970년 고든 갤럽의 침팬지 실험에서야 확인되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런 식으로 과학적인 일단락이 있고 나서부터는 거울단계를 비유로써 보는 게 적합하다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이유로 과학이 아니라는 것. 나중에는 정신분석학을 수학에 비유해서 썼지만 이조차도 정확하게 그런 개념들을 설명하진 못했다.

○ 비판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라캉이 위상학 등 수학 분야의 용어를 사용한 것, 라캉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적 개념을 오남용한 것 등을 비판하면서 라캉을 “습자지 지식꾼” (superficial erudition)이라 칭하였다.
다만 그들은 라캉 저술의 순수히 정신분석학적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았다.
리처드 도킨스는 라캉이 “사기꾼인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굳이 수학 전문가의 의견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라캉의 저술들을 평가절하 하였다.
프랑수아 로스탕은 라캉 저술을 “사이비과학자의 무의미한 횡설수설로 이루어진 앞뒤 안 맞는 물건”이라 하였으며, 노엄 촘스키는 라캉은 “웃기는 자이며 자의식과잉 돌팔이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과거 라캉 분석가였던 딜런 에반스는 나중에는 라캉주의는 과학적 기반이 부재하며 환자들을 돕기보다는 해를 끼친다며 라캉주의를 포기하고 라캉의 작품들을 “성전” 취급하는 라캉 추종자들을 비판하였다.
리처드 웹스터는 라캉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모호함과 오만함, 그리고 그 결과 생겨난 “라캉교” (Cult of Lacan) 뿐이라고 매도하였다.

○ 저서
라캉은 1966년 ‘에크리’ (Écrits)를 출판하였다. ‘에크리’는 구조적인 관점에서의 프로이트적 분석에 대한 논문집이다. 이 논문집은 그의 생각에 대한 절대적 해석이 불가능하게끔 쓰여져 있다. 1973년에서 1981년까지 출판된 그의 세미나의 의사록은 이에 비해서는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 Works
Écrits: A Selection, transl. by Alan Sheridan, New York: W.W. Norton & Co., 1977
Écrits: The First Complete Edition in English, transl. by Bruce Fink, New York: W.W. Norton & Co., 2006
Feminine Sexuality: Jacques Lacan and the école freudienne, edited by Juliet Mitchell and Jacqueline Rose, transl. by Jacqueline Rose, W.W. Norton & Co., New York, 1983
My Teaching, transl. by David Macey, Verso, London, 2008
The Seminar, Book I. Freud’s Papers on Technique, 1953–1954, edit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John Forrester, W.W. Norton & Co., New York, 1988
The Seminar, Book II. The Ego in Freud’s Theory and in the Technique of Psychoanalysis, 1954–1955,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Sylvana Tomaselli, W.W. Norton & Co., New York, 1988
The Seminar, Book III. The Psychoses, edit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Russell Grigg, W.W. Norton & Co., New York, 1993
The Seminar, Book V. Formations of the Unconscious, edit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Russell Grigg, Polity Press, New York, 2017
The Seminar, Book VI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1959–1960,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Dennis Porter, W.W. Norton & Co., New York, 1992
The Seminar, Book VIII. Transference,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Bruce Fink, Polity Press, New York, 2015
The Seminar, Book X. Anxiety, 1962–1963,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A. R. Price, Polity Press, New York, 2014
The Seminar, Book XI.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1964,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Alan Sheridan, W.W. Norton & Co., New York, 1977
The Seminar, Book XVII. The Other Side of Psychoanalysis,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Russell Grigg, W.W. Norton & Co., New York, 2007
The Seminar, Book XIX. …or Worse, ed. by Jacques-Alain Miller, Polity Press, New York, 2018
The Seminar, Book XX. Encore: On Feminine Sexuality, the Limits of Love and Knowledge,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Bruce Fink, W.W. Norton & Co., New York, 1998
The Seminar, Book XXIII. The Sinthome, ed. by Jacques-Alain Miller, transl. by A.R. Price, Polity Press, New York, 2016
Television/ A Challenge to the Psychoanalytic Establishment, ed. Joan Copjec, trans. Rosalind Krauss, Jeffrey Mehlman, et al., W.W. Norton & Co., New York, 1990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